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 - 여성주의 정치경제 비판
J K 깁슨-그레엄 지음, 엄은희.이현재 옮김 / 알트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경제에 주눅 들지 말라***

 

이 시대에 자본주의를 무시하는 것은, 중세 때 신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

 

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 (깁슨-그레엄·알트출판사·2013)

 

 

 

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 대체 뭐가 끝났다고 이렇게 뺨이라도 후려칠 듯 도발적인 제목을 단 것일까? 책의 얼개는 간단명료하다. 거대담론과 총체성 이론에 반기를 든 프랑스 발 포스트구조주의의 세례를 받은 미국과 호주의 여성주의 지리학자 두 사람이 (깁슨-그레엄이라는 공동필명으로) “우리가 알고 있던 그런 자본주의의 끝을 선포하기 위해 쓴 책이다.

 

그래서일까? ‘남성위주의 굵직굵직한 메타서사에 익숙하던 독자들은 어안이 벙벙해질 법도 하다. 무소불위의 자본주의가 거의 전 지구를 뒤덮은 오늘날, ‘자본주의의 종말이라니, 이 무슨 시대착오? 아니, 무차별적으로 지역을 잡아먹는 지구화의 침투 문제를 얘기하면서 이를 강간범의 발기 능력과 비교하다니, 경제이론이 여성주의를 만나 너무 막 나간 것 아닌가? (ㅋㅋ 강간범 발기 얘기도 신문엔 쏙 빠졌군요...^^&)

 

그런데 자본주의를 중세 때의 신에 비유한 대목에 이르면, 문득, 저자들의 의도가 아연 확연해지며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그때 언감생심 신을 무시하지 못했듯, 오늘날 우리도 자본주의 앞에서 잔뜩 주눅 들어 있다면, 그것은 중세 때와 마찬가지로 신화화한자본주의 탓임이 분명하다. 저자들이 파고드는 지점도 바로 이 자본주의 헤게모니의 신화이다. 사실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너무 신비화, 추상화, 금융화되어, 여느 경제주체들(우리들!)의 범접을 허용치 않는다.

 

깁슨-그레엄의 전략은 치밀한 하방운동이다. 필리핀 간호사와 호주 광부의 결혼에 따른 온갖 색다른 계급과정들을 꼼꼼히 따지고, 로컬이 다국적기업을 길들이기도 한 사례들을 분석하면서, 국민총생산에 시장생산물과 가계생산물을 모두 포함하게끔 국가회계를 뜯어고치자는 주장까지 소개한다. 우리의 경제적 삶이 실제 이렇게나 많은 자본주의 아닌 것들로 가득했던 건가, 놀라울 지경이다. “여가시간에 집에서 일하면서 자본주의를 으깨버리는 방법이라는 논문(!)을 쓴 두 공동체경제론자의 색다른 경제이론, 그 거침없는 질주가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박유안 (번역가)

 

 

 

*** 제가 써서 보낸 제목은 '경제에 주눅들지 말라'였는데, 12/16일자 동아일보 "책속의 이 한줄"에 최종 게재된 리뷰의 제목은 "자본주의 세상, 자본주의에 적용 안 받는 것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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