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KBS 선정 도서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에는 별 생각없이 집어들었었다.  레고센터에 가고 싶단 아이의 말에 주말반을 등록해주고나니 수업시간이 70분이란 말에 그냥 앉아있기엔 지루할 테니 싶어 지난 토요일 아침 급히 집을 나서며 손에 잡히는 대로 대충 들고나간 책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이가 들어가고 난 뒤 방문객 코너에 앉아서 대충 다리를 꼬고 앉아서 읽기 시작한 내 자세가 정좌로 고쳐지며 집중해서 읽는 자세로 변한 건 금방이었다.  아니, '이런 류의 책은 전에도 접해본 적이 있지' 싶은 가벼운 마음에 철퇴를 내리치며 다가오는 내용의 묵직함에 자세를 바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따지고보면 이제는 나도 오랜 만에 친구들과 모이면 부모님들은 건강하신지와 주변에 아픈 사람은 없는지를 확인하는 나이가 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의 근황이, 요즘 어디에서 뭐한다더라가 아니라 어디 다치거나 아프신 곳은 없는지가 더 어울리는 관심사가 된지도 벌써 몇 년째다.  가까운 친인척 중에 30대 1명과 60대 2명 등 이미 암으로 세상을 등진 이들도 있고 지금은 구순의 나이를 넘기셔서 정신은 맑아도 몸의 기력이 급전직하하여 하루하루 그냥 살아내는 것 자체가 삶의 목표가 되어버린 분도 계시다.  그리고 뵐 때마다 예전과 같지 않은 체력으로 부모님의 연로함과 노쇠함이 눈에 띌 때마다 그냥 못 본 척 눈길을 돌려버리는 내 자신이 있다.  그러고보면 우리 모두가 피할 길 없이 당연히 가야하는 길인데 그저 모르는 척 못 본 척 못 들은 척 하며 지내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전에 어디서인가 실험한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30대의 건장한 남녀에게 70대 노인이 되는 기분을 느껴볼 수 있게 수치로 환산한 내용을 추로 바꿔서, 조끼를 입게 하고 발목에 추를 달고 무릎에 두꺼운 것을 대서 전체적으로 몸을 무겁게 만들고 관절의 자유를 빼앗은 상태에서 지하철로 특정지역까지 이동하는 미션을 수행하게 한 실험이었다.  실험을 마친 뒤의 소회에 이구동성으로 나온 공통점은, 젊은이로 살아갈 때는 그다지 생각해 볼 필요도 없는 수준의 일상생활인데 노인으로서의 신체적 조건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길을 나서보니 엄청난 노력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고난이도의 모험 그 자체였다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별 생각없이 훌쩍 건너간 작은 틈이 발목을 접지르게 할 위험한 장애물이 되었고, 그다지 높아보이지 않는 낮은 턱은 오르기 전에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도전의식을 갖고 올라가야하는 고지로 변했고, 옆으로 휙휙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속도는 안전의 위협을 느끼게 하기 충분했으며, 눈 앞에서 미련없이 닫히는 문들과 그 안에서 부대끼는 청장년들의 무응대에서 느껴지는 무관심은 자신들의 생명에 대한 공포를 느끼기에 충분했다고. 

 

 

 

이제 총선을 앞두고 투표소를 향할 젊은 표심을 잡고자 나름 성공해서 뽑혀 나온 40대 초선용 예비후보들 중 한 명은 엊그제 이런 말을 했었다.  "꼰대들의 정치에 신물난 이들을 위해 나섰다, 그냥 두고보고 있는게 비겁하니까" 젊은 투사로 나섰단다.  이 나라에서 언제부터 "기성인=꼰대=중장년층을 걸친 노년층 전부"라고 동의어로 읽히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가치관의 차이와 사상의 차이는 사실은 나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란 점을 간과하면서부터 우리는 주변의 노년들이 보내고 있는 현재와 내가 보내게 될 노년의 미래를 너무 무시하게 된 것은 아닐까.  이민2세대로 저명한 외과의로 미국에서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저자는 말한다, 국가가 발전하며 죽음을 대하는 의료행위의 변화는 단순한 치료목적에서 삶의 품위를 유지하는 최선을 찾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하긴 그런 부분에 있어서 많이 깨어있는 미국조차도 그런 운동이 수면 위로 올라와서 실생활에 접목되는 현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10년 경부터라니, 개도국의 끝자락에서 앞으로는 위로 더 올라갈지 아니면 밑으로 굴러떨어질지 몰라서 몸부림을 치고 있는 대한민국의 인생들에게는 아직 너무 사치스러운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삶들도 '그저 살아내기 위해서 살던 삶'에서 발전해서 '조금은 살아보기 위해서 사는 삶'까지 갔으니까, 이제는 '살아갈 가치가 있기에 살아보는 삶'으로 나아갈 때가 되지 않았을까.  열심히 살아온 결과가 그저 신분증 상의 수치인 나이로 일률적으로 '꼰대=사회발전의 저해요인=세금의 낭비로 계산되는 잉여인생'이 아닌, 여태 살아온 그 삶 자체로 인정받고 대접받을 수 있는 그런 노년 말이다.  그 노년의 끝이 요즘 만연한 일반적 요양원에서의 직원의 마음에 안 들면 휠체어에 앉아 무릎 정도는 걷어차여도 되는 그런 삶이 아니라,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을 때 재산 다 탕진해서라도 어디 버텨보자는 병상에서의 전투적인 마감이 아니라, 그 삶의 마무리를 가족이/주변인들이/지역사회가/국가가 함께 지켜봐줄 수 있는 그런 의료시스템 말이다.  하긴, 이 나라에서 그런 의료시스템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우선 개개인의 생각의 틀이 달라져야할 테고, 그 중에서도 모든 것을 그저 이분법 논리로 '아군 아니면 적'이라는 식으로 단순도식에 빠져 허우적대는 정치인들이 가장 크게 달라져야하긴 하다.  결국 거둬간 세금을 자기네 표밭에 허식으로 뿌려대고 정작 필요한 곳에는 쓸 돈이 없어 국민들을 더 쥐어짜야한다고 얘기하며 선정적인 어투로 투표권자들을 자극하는 그들이 지금처럼 총천연색으로 여의도꽃밭에 만연하는 한, 한국에서의 삶의 질과 의미있는 마무리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겠는가 싶기도 하다.

 

이에 대한 좋은 대조로, 저자는 1908년 하버드대의 철학자 조시아 로이스교수가 편 책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죽음을 의미없는 것으로 느끼지 않게 할 유일한 길은 자신을 가족, 공동체, 사회 등 더 큰 무언가의 일부로 여기는 것이다....그러나 더 큰 무언가의 일부라는 믿음이 있다면, 죽음이 단지 끔찍한 공포로만 여겨지지는 않을 것이다.  로이스는 말한다... [우리 밖에 전력을 다해야 할 대의가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 안에 그 일을 기꺼이 해내고자 하는 의지, 그 일을 하면서 좌절하고 꺽이는 것이 아니라 더 풍부해지고 더 스스로를 드러내는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말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자신이 남기고 갈 것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산다는 것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느끼도록 해주는 목적을 우리 밖에서 찾고자하는 깊은 욕구를 가지게 된다."

 

 

 

아이가 내년이면 초등학교 입학할 것이기 때문에 올해 마지막으로 남은 유치원에서의 1년을 어떻게 채워나가야할지 부산을 떨며 이런저런 책들을 사봤다.  아이의 국어실력과 수학은 어떻게 하고 등등 참으로 디테일한 내용들의 책들이 엄청난 수로 검색되었었다.  그런데 그런 책들을 몇 권 사서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잔가지들의 나무결들만 들여다보느라 큰 틀을 보는 것은 잊어버렸었나 보다.  생각해보면, 이 아이가 학교생활을 잘 적응하길 바라는 이유는 단 하나, 훗날 이 아이가 자라나서 이 둥지를 떠나갈 때 자기 힘으로 훨훨 날아가기를 원해서이다.  그리고 이 아이가 날아가서 새롭게 정착할 그 사회는 내가 살아온 사회보다 더 합리적이고 질서가 있으며 어떤 일을 행했을 때 그 결과에 대한 당연한 예측과 신뢰가 가능한 사회이길 바란다.  그리고 이 아이가 그 사회에서 한 사람의 몫을 해내며 그 사회가 그 후세대에게 좀 더 좋은 사회로 전달되어지는데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나의 사랑하는 어린 아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한 사람의 남자로, 사회인으로, 인간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생명체로, 자신의 삶을 돌아봤을 때 가슴뛰는 즐거움과 미소로 돌아볼 수 있는 추억, 그리고 온 몸을 적시는 행복을 맛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내가 지금 읽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제목 그대로, 죽어갈 때의 마지막 순간에 어떤 모습으로 여생을 대하고 어떻게 떠나갈 것인지 준비하는 그 과정 또한 중요한 것이란 것을 깨닫게 해준다.

 

 

이제 막 세상에 첫 발을 내딛으려는 만 5.5세 꼬마의 삶의 무게는 90을 넘긴 노인의 삶의 무게에 비해 결코 가볍지 않다.  마찬가지로, 90을 넘겨 앞으로는 침상생활이 전부인 노인의 남은 시간의 가치는 이제 세상을 떠맡아가기 위해 자라나고 있는 5.5세 꼬마의 시간의 가치보다 결코 덜하지 않다.  하나의 인생은 그냥 쏘아놓은 화살처럼 앞으로만 달려가는 인생인 것 같지만 인간이란 사회적 동물이란 점을 감안할 때, 결국 그런 여러 인생들이 서로 실타래처럼 꼬여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 아이가 태어났을 때, 이 아이를 키우면서 더 멀리 더 넓게 보며 아이가 성장하는데 최선의 도움을 주는 부모가 될 수 있기를 기원했던 그 초심을 잃지 말고..  주변의 노년들의 모습을 "어쩌겠어"하는 마음으로 못 본 척 못 들은 척 무심하게 넘기지 말고..  내가 갈 길이니까 또 내 아이가 걸어갈 길이니까 나부터 다시 한 번 내 자신을 돌아보며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다.

 

 

 

횡설수설했지만.. 책의 내용은 사실 단순한 호스피스 관련 서적이라 생각하고 읽기 시작한 상태에서, 누구나 언젠가는 마주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여과없이 직면하게 해줌으로써 실은 모든 사람들의 개개인이 지닐 수 밖에 없는 고유의 가치와 삶의 무게를 자각하게 해주는 책이란 걸 알게 되니 이 책이 지닌 깊이를 내가 단순하게 요약하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 셈이다.  어찌보면 이 책에 대한 가장 좋은 설명은 그 뒷표지에 이미 나와있는지 모른다:

 

"이 책은 때로 눈물짓게 만들고, 때로 분노하게 만들며, 삶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문제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너무나 다루기 어려운 문제를 성찰하도록 촉발시킨 보기 드문 역작이다."

[네이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중국, 당시의 나라 - 중국 땅 12,500Km를 누빈 대장정, '당시'라는 보물을 찾아 떠나다
김준연 지음 / 궁리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국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우습게도 김용의 영웅문 시리즈를 통해서였다. 어렸을 때 정말 빼곡하게 작은 활자로 가득차서 6권에 나눠 출간되어있었던 삼국지연의를 너덜너덜하게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던 나에게, 오빠 방에서 굴러다니는 영웅문 책은 겉표지부터 뭔지 매혹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 분명 장검을 짚고 옷자락을 휘날리며 서있던 "미남"청년의 미소 띈 얼굴이었던 듯.  여하튼 그렇게 집어든 영웅문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며 거기에 나오는 갖가지 인물들이 정사의 실존인물들이란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중국역사도 탐닉하게 되었다.  김용이나 고룡의 작품집 대부분은 명청을 배경으로 하나 호기로운 군웅할거를 그리기에는 역시 춘추전국시대나 한나라 때가 제일이었던 것 같다. 

 

사기, 십팔사략, 열국지 등의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활자들이 책장에서 일어나서 마치 트랜스포머가 변신하는 것처럼 철컥철컥 서로 붙으며 전장 한복판에서 말을 달리는 군웅들의 모습으로 변한다. 그들이 달리는 말발굽 밑에서 먼지가 일어나고 머리 위로 높이 장검을 휘두르며, 하늘을 가리고 날아드는 화살들 밑에서 군사들이 장창을 들고 서로 사투를 벌이며 일으키는 함성들이 들려오는 착각이 들었었다. 이러다보니 대학에서 공부하기를 원했던 학과는 사실은 동양사학과였었는데 어쩌다보니 상대적으로 미개하고 비천하다 생각한 서양문물 관련 학과를 들어가게 되어서 참 서글펐던 기억도 있다.  그러면서 중도관을 4년 내내 드나들면서 결국 전공과목과는 상관없는 동양사학과 쪽 책들을 열심히 빌려서 읽었던 추억도..  여하튼 취향이 주로 날아다니고 쏘고 싸우고 무너트리고 묻어버리고 (조나라의 40만대군을 한 번에 생매장했다는 진의 백기 장군이라든가 삼국지 시대의 조조 10만대군 생매장 등등) 인구도 많고 땅도 넓은 중국답게 스케일 크게 놀았던 시절에 열광하다보니, 의외로 문약한 느낌의 당송 시대는 나한테는 그다지 매력도 없고 볼 품도 없는 세상이었나 보다.  물론 당송 시대에 크게 발전하고 발현한 문물과 온갖 고미술품 등은 언제고 한 번은 박물관에서 꼭 접해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은 갖고 있지만.

 

그러기에 신문에서 우연히 이 책에 대한 소개를 읽기 시작할 때는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웬걸.. 당시를 쫓아서 여행을 간다는데 그 곳곳이 무협지를 통해 또 역사서를 통해 접해봤던 이름만으로 그리운 장소들이 곳곳이란다.  페이지수는 두껍고 그만큼 내용도 알찰 테니 가격도 그에 상응하게 비싸고..  고민하다가 주문해서 받아든 것이 아이의 유치원 방학하기 딱 일주일 전이었다.  주문한 책들 중 뭐부터 읽을까 고민하다가 가벼운 소설류들을 먼저 읽은 뒤 이 책을 집어들었는데.. 내려놓을 수가 없을 정도로 빼곡하니 들어찬 시들과 사진들 틈에서 풍류가 솔솔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이의 방학을 맞이해서 여행을 가야하는데 이 책을 가져갈까 하다가 너무 두꺼우니 가방 무거울까 두려워 내려놓고서 떠난 일주일 내내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눈 앞에 어른거리는 책 내용으로, 고작 책 무게 때문에 놓고 온 내 자신을 못내 한심해 할 정도였다.  책의 페이지 수도 페이지 수지만 감칠나게 풀이하며 들어서있는 천년 묵은 시인들의 감상은 결코 페이지를 급히 넘길 수 없게 해서 결국 다 읽는데 이래저래 일주일은 넘게 걸렸나 보다.  당 시대의 명시들이 서려있는 장소를 찾아 북으로 남으로 온갖 명산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저자의 뒤를 쫓아서 나도 한 번씩 들어본 장소에서 어렸을 때 읽었던 무협지들의 주인공들과 역사서의 각종 군웅들이 살아나오는 느낌으로 설레이며 함께 헐떡거리며 쫓아다녔다.  정말 읽으면서 "나도 가봤으면.."싶은 마음이 절로 들게 하는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입담, 요소요소 깔끔하게 들어가있는 사진들은 책의 두께를 잊게 해주는 덤이었고.

 

중국은 이제 한자도 간자체를 사용해서 그나마 떠듬거리며 읽는 한자도 소용이 없고 중국말은 하나도 모르니 나로서는 이래저래 개인여행을 나설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단체여행으로 가자니 중국여행은 아직도 주로 "노세 노세 쌀 때 대충 빨리 싸게 싸게 노세~" 분위기라 역시 내 취향도 아니고.  저자와 같은 중국 역사나 문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학자들이 이벤트성이라도 좋으니 한 번씩 여행상품을 기획해서 따라가 보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유럽이나 중동 쪽은 그렇게 관련학계 학자들이나 교수님들이 인솔하는 여행들이 가끔 한 번씩 있다고 들었는데, 하긴 중국은 여행 인프라가 아직 많이 정비가 필요한 상태인지라 언제쯤 그런 여행상품이 나올지도 모르겠고, 나온다고 해도 그 광활한 나라에서 어느 쪽 끝을 봐야할지도 모르긴 하겠다.  그래도 저자의 뒤를 쫓아다니며 따라다닌 여행길 중에 만난 장강의 위엄은, 언제고 거기서 배를 타고 직접 보고 싶단 생각이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이 책을 통해 나로서는 가장 찰지게 와닿았던 백거이의 시들 중 장강의 구당협을 노래한 시는 시공을 뛰어넘어 내 눈 앞에까지 그림을 펼쳐준다.

 

"구당협은 천하의 험한 곳이라

밤에 거슬로 올라가기란 진실로 어렵도다

(중략..)

맞바람에 물결 이는 것에 놀라는데

바를 당기며 어둠 속에 배가 온다

걱정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소?

염여퇴보다도 높다오"

 

맛깔스러운 끝마무리.. 구비구비 장쾌하게 부딪히며 넘어가는 바다같은 강물 위에서 일엽편주에 몸을 맡기고 한밤중에 둥둥 떠밀리려 가자니 걱정이 염여퇴라 하는 거대한 바위보다도 높단다.  장강에서 암초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해왔던 염여퇴는 결국 중국정부의 폭파로 1950년대에 비장하게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니, 장강에서 배에 몸을 맡기고 떠내려가는 후세인들 입장에서는 이를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아쉽다고 해야하나.   

 

저자의 기행을 쫓아가다보면 억울하게 젊은 나이에 죽어간 한나라 초기의 여태후의 아들들과 손녀 얘기도 나오고 진시황, 유비와 제갈량, 관우, 왕소군, 양귀비 등 시대를 초월하고 곳곳에서 과거의 인물들이 걸어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 책 내용 중에는 내가 막연히 환상을 품고 있었던 동악과 동정호 풍광도 나온다.  하지만 예전에 어디선가 무협지에서 읽었을 때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니' 하고 크게 놀랐던 그 곳은 어디인지 여전히 모르겠다.  "호수 안에 섬이 있고 그 섬 안에 또 호수가 있고, 그 호수 안에 또 섬이 있고 다시 그 안에 호수가 있고.. 이렇게 9겹을 싸고 들어가는 곳"이란 묘사였던 것 같은데.. 황산과 더불어 언제고 중국을 갈 날이 오면 꼭 한 번 찾아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인데, 이제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 풍광 자체가 허구일 수도 있겠다 싶다.

 

중국시문학, 백거이, 장강, 무협지배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긍정의 힘 : 두 번째 이야기 - 조엘 오스틴이 전하는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
조엘 오스틴 지음, 정성묵 옮김 / 글로세움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섭다, 아직도 책을 내고 또 팔리고 있다니. 성공주의, 배금사상의 합리화를 위해 성경을 짜집기로 인용하고 있는 번영신앙(다른 말로는 기복신앙 또는 현대판 성황당식의 무속신앙) 선두주자의 책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조이스 마이어의 절실한 기도의 능력
조이스 마이어 지음, 유정희 옮김 / 두란노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번영주의, 기복신앙.. 나의 믿음의 크기만큼 내게 복이 주어질 것이고 친구같은 신이 그 복을 주려고 대기 중이니 이렇게 기도해보라, 그게 바로 능력이다 하는 책. 위험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성경의 탄생 - 성경은 어떻게 인류 문명을 지배했는가?
존 드레인 지음, 서희연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신약시대에 돌입한 것은 올해로 기원후 2015년째, 그 전의 구약시대는 대략 기원전 5천에서 6천년 전부터라고 한다.  그 기나긴 시대에 나타났다가 스러져간 문명들에 대해 간력하면서도 엑기스들을 뽑아내어 정리해낸 책이다.  그 장구한 역사 대비 실제 책은 두껍지도 않다, 에필로그까지 포함해서 437페이지.. 그런데 서구에서 문명의 기원을 찾아갈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기원전 3,500여년 전의 수메르 문명에서부터 대략 사도 바울 때까지 거의 4천년간의 이야기를 다룬다.  얽히고 섥힌 신화들과 일상생활에서 밀접하게 신들을 믿어왔던 고대인들의 삶에 얽힌 이야기들은 오늘날의 다난한 중동의 정세만큼이나 복잡하지만, 또한 그간 잡다한 책들을 읽으며 여기저기서 접한 내 짧은 지식에 꿰맞춰져가면서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어서 간만에 책을 읽는 며칠 동안 현대사회를 잊고 고대사회에 몰입하는 경험을 해보았다.

 

중동의 고대문명에 대한 이야기들은 읽으면 읽을수록 감탄을 금할 수 없게 하는 것이, 그 오래 전 자신들만의 글자를 만들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기록하여 전했다는 점이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우연히 발견된 점토판에 기록된 내용들을 통해 복구되는 고대문명들의 찬란함은, 정말 때로는 나로 하여금 '딱 하루라도 좋으니 그 시대에 타임머신을 타고가서 그 웅장하고 화려한 면면들을 직접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허황된 꿈을 꾸게 만들곤 한다.  오죽하면 어떤 역사학자는 수메르 문명이 그 고대에 인류가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앞서간 문명이므로 외계인이 내려와서 만들어낸 문명이라고까지 주장할까..  특히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고대문명의 세계 7대 불가사의라 일컬어지는 바빌로니아의 공중정원에 대해서 가소롭게 생각했었는데, 그런 내 자신의 무지가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생각해보면, 지금의 공중정원들은(소위 옥상정원인 셈인데) 잘 포장된 콘크리트 위에 완벽한 방수체계를 갖춘 옥상에서 잘 갖춰진 배수시설을 도움으로 이뤄진 현대문물의 산물이다.  그런데 바빌로니아 시절에는 모든 건물들이 흙을 구워만든 벽돌로 이뤄진 것이었고, 아무리 그 위에 흙을 깔고 식물들을 심었다고 해도 그 식물들을 가꾸기 위해서는 그 사막에서 엄청난 양의 물이 필요했을 텐데 매번 그 옥상까지 필요한 양의 물을 공급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에 또 아무리 역청을 발라 방수를 했다 해도 여하튼 흙건물인 셈인데 어떻게 그 모든 건물들이 달리 수해를 입지 않고 버텨낼 수가 있었을까.  또 그보다 더 과거의 문명이었던 이집트의 초기왕조들의 번화함과 발달수준을 읽고 있자니 정말 입이 딱 벌어지는 내용들이었다.

 

내 머리 속에서 그냥 짜집기 식으로 단편적으로 알고있는 수준에서는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뭐" 했던 내용의 고대문명들이, 화려하게 치장된 전차들에 올라타고 깃발을 나부끼며 위풍당당하게 행진하는 군대들과 현대물로 치자면 몇층짜리 건물에 맞먹는 높이의 웅장한 신전들과 아름답게 채색된 거대한 건물들로 눈 앞에 그려지게 되자 그 발달한 시대상과 문물에 놀라서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따지고보면 제목이 "성경의 탄생"인데, 구약시절을 다룬 내용들은 성경을 떠올릴 수 있는 부분은 그 내용이 공존했던 "시대"라는 정도일 뿐, 대부분은 당시 번영했던 당대 최고의 문명에 대한 고찰이므로 딱히 기독교인이 아니라 해도 흥미진진하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다 읽고나서 덮으며 느낀 점은, 어느 나라든 고유의 문화와 문명이 존재한다는 것과 또 그 문화에 대해서 절대적인 경의를 표하는 것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란 점일까..  그런데 엊그제 읽은 신문기사 내용은 참 안타까운 내용이었다.  요즘 한참 IS 등 테러집단의 만행이 전 세계의 근심거리이자 화제로 떠올랐는데, 그 멍청한 후예들이 자국 내 박물관을 습격해서 메소포타미아 문명 시절 때의 석상들과 점토판들을 끌어내서 파괴하며 그 만행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공개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점토판들이 어떻게 우연히 발견되었고 얼마나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해독이 되어서 몇 천년 전의 세계를 생생히 전달해준 소통의 도구였는지를 생각한다면.. 또 그러한 목적으로 자신들의 조상들이 어떻게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점토판을 만들고 글을 새겨서 몇 번씩 구워내어 건져낸 결과물이란 점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을까, 같은 지구라는 행성에 태어나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구인으로서는 정말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는 기사내용이었다.  하기사 생각해보면, 전에 부시대통령이 석유를 노리고 이라크에 미사일을 퍼부어댈 때 그 당시 현존하던 最古의 박물관이 파괴되고 또 그 때의 폭격으로 파괴된 고대유물들은 셀 수도 없단 기사를 어디선가 읽고나서 타인이나 타문명에 대한 이해나 배려도가 현격히 떨어지는 정치판 졸부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움켜잡았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 하며 황당해했던 기억이 있는데(그가 비록 엄청난 부와 정치문벌을 자랑하는 가문의 하버드 출신이라지만 족벌/학벌이 개인의 수준에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제보니 문물이란 외국인에 의한 파괴보다 자국의 후예에 의한 파괴가 더 심각한 것인가 보다.  그러고보면, 현재 우리한테까지 남아있는 고대문명의 가장 오래된 것이 수메르 문명이지 실제로는 그보다 더 오래된 고대문명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그 가치를 모르는 중세인들이나 우리 조상들에 의해 일찌감치 파괴되어버려 오늘날까지 전달이 안 되는 것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사실 그 진실을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여하튼 오래간만에 몰입해서 읽으며 이것저것 생각해보게 해 준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