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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살벌한 유럽여행 워크캠프
박설이 지음 / 푸른영토 / 2015년 7월
평점 :
아이와 함께 마트를 갔다가 꼬마가 마트 안 키즈카페에서 놀겠다고 해서 아이를 맡기고 시장을 본 뒤 차에 옮겨놓고 보니 키즈카페에서 약속한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꼬마가 노는 동안 푸드코트에서 떡볶이나 먹으며 기다리려고 보니 나름 긴 시간이라 좀 지루할 듯 하여 마트 내 위치한 문구/서점에서 가벼운 읽을거리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몇 페이지 들춰보니 그럭저럭 소일하기에 알맞을 것 같아서 샀다. 푸드코트에서 간식 먹으며 페이지 넘기다보니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정도의 가벼운 책은 맞는데, 읽으며 든 감상은 처음 생각처럼 그냥 깔깔거릴 수준은 아니고.. 솔직히 말하면 내내 정말 한심하단 생각을 하며 읽느라 그다지 즐겁지는 않았다.
저자는 22~23세 정도의 젊은이인데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열리는 work camp란 것에 참가하여 처음 양국을 간 경험담에 대한 얘기이다. Work camp란 참가비를 내고 일정기간동안 해당 지역에 가서 주어진 업무를 하면서 숙식을 제공받는 것이라 한다. 캠프 특성 상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모여서 함께 머물며 일을 한단다. 여기까지는 그 아이디어만 놓고 보면 "여인의 몸으로 익숙하지도 않은 언어를 쓰는 곳, 이미 온갖 소매치기 등으로 유명하다고 주의하라 알려진 그 곳으로 혼자서 낯선 나라로 과감히 떠나다니 멋지네"라고 되야하는데 책을 읽다보니 갈수록 한심하단 생각이 든 이유는 이것이다.
처음 파리에 도착해서 아마 눈 뜨고도 코 베이는 도시에서 좌충우돌을 많이 한 듯 싶다. 내용 상 저자는 그 원인들을 못 되고 인종차별적인 파리지엥들로부터 찾은 듯 싶은데, 솔직히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저자의 (무식하다 할 정도의) 무방비 상태가 그 대부분의 좌충우돌을 초래한 것이란 느낌이 강했다. 가령 예를 들어서 서울에서 길을 헤맬 때 누군가 낯선 사람이 말을 걸며 어딘가에 서명해달라고 하면 그렇게 쉽게(설사 그 사람의 "한국"말을 잘 못 알아들었다 하여도) 끄덕이며 해맑게 웃으며 서명해줬을까? 누군가 길거리에 좌판을 벌려놓고 마사지를 하며 가격은 만족도에 따라 지불하면 된다는 식으로 호객행위를 한다면 홀로 여행 중인 젊은 아가씨로서(할머니라고 해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사람을 위아래로 잠시 스캔하지도 않고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쉽게 몸을 맡길까? 사무실의 카운터 뒤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미안하지만 나 급하니 잠시 이 사무실의 전화 좀 빌려쓰자고 말할 수 있을까?(상식적으로 말이다.) 늦은 밤에 홀로 낯선 길에서 떨어져나오는 스케쥴을 택하면서, 하차 이후의 상황에 대하여 전혀 대비를 하지 않음으로써 숙소 문 앞까지 데려다달라고 관광버스 가이드에게(해외에서 당일투어버스는 거의 노선버스 수준이므로 서울의 시내버스에 탄 과거 버스안내아가씨를 생각하면 된다) 요청할 수 있을까?(거절당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버스에 속한 이가 그 버스에서 잠시 내려서 자신을 숙소 문 앞까지 동행해줘야한다는 희안한 논리와 자신감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 정도면 회사의 규정을 100% 어기는 것인데 회사직원 입장에서는 안젤리나 졸리쯤 되야 혹 가능할지도 모를 예외가 아닐까..)
또 모든 이동은 이미 이동수단을 예약하고 갔다면 그 시간을 맞추는 것이 여행자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이다. 또한 설령 내가 제 시간에 제 자리에 있었다 하여도 언제 그 열차가 연착을 하거나 플랫폼이 바뀔지 모르므로 전광판에도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야 한다. 왜냐고? 그게 그 나라의 시스템이니까 - 가령 작년 여름, 프랑크푸르트에서 아이를 데리고 트렁크를 끌고 뮌헨으로 가는데 딱히 예고도 없이 플랫폼 번호가 마구 바뀌고 1시간 넘게 연착이 되어서 만 5세 아이를 한 손에 끌고 또 다른 손에 무거운 트렁크를 질질 끌며 그 큰 중앙역을 이리저리 옮겨다닐 때도 난 독일의 기차시스템이나 역무원들의 부재에 대해 불평할 수도 있단 생각은 솔직히 못 해봤다. 따라서 만일 아침기차를 예약했다면 알람을 확실히 맞추고 그 알람을 울려주는 핸드폰이 때로는 주인을 배신하는 속성을 가진 수준의 기계라면 제2, 제3의 방비를 대비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 옳단 얘기다. 마음 편히 푹 자고 일어나서 달려갔는데 예약한 기차를 놓쳤다면? 기차패스를 샀으니 원래는 타 기차에도 무료로 올라타는 것이 맞겠지만, 일반적으로 패스로 허용되는 기차좌석은 등급이 아래등급으로 정해져있다. 이미 그 차량이 예약이 다 완료된 상태라면 윗 등급의 좌석을 예약해야 하고 그 경우에는 당연히 웃돈을 주고 사야한다. 상식 아닌가? 항공사의 잘못이 아닌 내 잘못으로 비행기를 놓쳤는데 내가 일반석 승객이고 다음 비행기는 일반석이 다 차고 비지니스석만 비어있다고 하면, 설령 항공사 측에서 많이 봐줘서 다음 비행기를 타게 해준다고 해도 그 차액은 지불해야한다는 것이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새삼스레 든 나의 궁금증은, 왜 자국에서는 결코 안 할 행동을 외국에 나갔단 이유만으로 그 곳에서는 "뻔뻔함을 무릅쓰고" 해보는 걸까 하는 것이다. 백인들은 좀 다를 거라고 생각한 것인지, 유럽인들은 좀 친절할 거라고 생각한 것인지 궁금하다, 나라면 오히려 더 위험할 거라고 생각되는데 말이다. 어느 나라건 현지인과 부딪힐 경우 그 곳의 공권력은 1) 자국의 언어에 능숙한 사람과 2) 자국의 국적을 갖고 있는 사람을 더 위해준다. 결국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잘못한 것이란 것이 확실하지 않는 한(가령 집시같은 아이들이 한껏 털려고 관광객을 우루루 둘러싸는 경우라든지) 경찰을 상대로 자신의 억울함과 피해를 주장하려면 일단 언어면에서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어야 한다. 물론 우리도 대사관의 도움을 요청할 수는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모든 도시에 대한민국 대사관이나 하다못해 영사관이 있는 건 아니고 있다고 하여도 그들도 업무의 폭주로 매우 심각한 상황이 아닌 한 바로 달려와줄 수는 없다. 따라서 제일 좋은 방법은 아예 그런 상황을 피하는 것이다. 바꿔말하면 그냥 처음부터 주의안테나를 120% 상향조정해서 다니는 것이다. 하긴 이런 것은 완벽한 한국말을 구사하는 토종 한국인이 知人이 한 명도 없는 한국 내 다른 도시로 잠시 여행을 갔다고 해도 당연히 탑재해야 할 아주 기본적인 "관광객의 자세"라고 생각되지만 말이다.
여하튼 내 경우는 생태적으로 패키지여행은 맞지 않으니 항상 자유여행으로 에어텔만 예약하고 가면 다른 건 몰라도 공항에서 숙소까지의 교통편은 확실히 확인해두고 혹 도착시간이 늦는다면 이후 이틀을 눈물젖은 빵만 먹는다고 해도 아예 돈을 더 써서라도 공항택시를 예약해놓고 간다. 그리고 도시 안에서 관광을 할 때는 하다못해 지도라도 제대로 챙기든지 아니면 그 엄청난 정보의 보고인 여행안내책자라도 한 권 사서 읽고 좀 공부라도 한 뒤에 들고 가는 것이 일반상식이자 예의 아닐까. 그 나라 말이 안 되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낯선 나라에서 가면서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은 어느 정도 해당국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고 가는 것이 아닌 한 굉장히 안일한 생각이고 만용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째서 모를까, 그것도 법적으로"까지조차" 이미 성년이 된 사람이 말이다. 또 스위스에서는 수도원 일을 돕는 work camp를 들어가게 되었는가 본데 기도시간에 몰래 눈을 떠서 둘러보다가 멍하니 앉아있는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킥킥 웃었다는 부분에서는 나까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건 정말 기본의 문제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camp leader로부터 한 소리를 들을 때는 "한국에서는 그렇게 하느냐"는 질문까지 나왔다며..
공자 왈, 길을 가며 셋이서 함께 가면 다 배울 점이 있다고 했다. 즉 나보다 나은 사람의 좋은 점을 골라 그것을 따르고, 나보다 못한 사람의 좋지 않은 점을 골라 그것을 바로잡는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정말 그 말씀을 떠올렸다. 책의 내용도 프랑스나 스위스에서 어떤 것을 봤고 그것을 통해 무엇을 느꼈는지는 전혀 안 나온다. 그저 본인이 "자초"한 고난의 행로와 그를 통해 좌절을 어떻게 얼마나 느꼈는지에 대한 서술만이 지루하게 나온 뒤 인천공항으로 돌아왔다는 것으로 끝맺음을 한다. 이 책을 읽은 나의 감상은, "혹 해외에 자유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낯선 나라에 홀로 또는 소수인원으로 가면서 그 나라의 언어나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면, 이 책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하여 "준비되지 않은 무능함과 외국인은 친절해야한다는 근거없는 믿음과 데오드란트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무지함으로 무작정 떠난다면", 그 귀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다녀온 결과물이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멈추는가를 직접 느껴보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를 他山之石으로 삼아서 그들은 해당국가에 대한 책들도 좀 사보고 여행안내책자도 읽어보고(수백만원 들여 거기까지 가는데 몇 만원 책값을 아낄 일인가? 그리고 도서관도 있으니 대여를 할 수도 있다, 그저 그 정도의 생각은 떠올릴 수 있는 수준의 지적 관심과 서점이나 도서관까지 다녀올 노력만 필요할 뿐이다) 좀 준비된 자로서 떠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他山之石용으로라도 필요하지 않다면..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활자낭비된 책이라 생각되니 나라면 읽는 사람의 시간을 생각해서 한 번 도전해보라고는 차마 권하지 못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