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 커글린 가문 3부작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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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별 생각없이 집어든 책이다.  지난 주말, 시내에서 볼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아이 손을 잡고 잠시 들른 서점에서 중절모를 쓰고 담배를 피고 있는 한 남성의 흑백사진으로 장식된 이 책을 봤을 때, 10대시절에 읽었던 터프가이 탐정이 그리웠던 차에(불행히도 그 탐정의 이름이 생각이 안 난다, 분명 유명 탐정시리즈물의 주인공이었는데..) 그 탐정의 모습이 연상이 되어 충동적으로 집어들은 책이었다.  그리고나서 서재 책상 위에 내려놓고 잠시 잊어버리고 있다가 그저께 밤에 아이가 잠든 뒤에 혹 수면유도용이 될까 싶어 집어들었었다.  웬걸.. 이건 수면유도용이 아니라 수면축객용이었다. 

 

시작부터 흥미진진하다, 깡통에 발을 담고 이제 곧 바다에 던져지기 위해 배의 출발을 기다리는 주인공이 자신의 발을 덮고 굳어가는 시멘트를 바라보며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밤의 세계에서 특이하다면 특이하다 할 수 있는(나름 안정적인 집안 출신이니까) 주인공 조 커글린은, 미국의 금주시대를 배경으로 한 어둠의 시절에서 밤의 제왕으로 자리를 잡아나가는데 그 모습이 거의 한편의 영화처럼 그려진다.  그러고보니 전에 시멘트에 묻혀버린 발을 바라보며 마지막 담배 한 대를 피우던 브루스 윌러스의 모습으로 시작된 마피아 관련 영화를 본 기억이 있는데..  그 제목이 뭔지 기억이 안 난다.  여하튼 그 영화에서도 주인공은 새파란 풋내기 청년이었지만 전투에서 져서 바다 속으로 수장될 과거의 영광을 보여주는 두목(윌러스 분)의 "웬만하면 이쪽 일 시작하지 마라"는 내용의 충고를 귓등으로 넘겨들었던 것 같다.  이 소설을 읽으며 연상된 영화는 그 뿐이 아니다,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영화 "대부"도, 또 금주시대에 활약했던 실존인물인 알 카포네도, 그리고 그와 엮였던 사람들의 모습들도 너무나 담담하면서도 사실적인 묘사 속에 당당하게 살아나온다.  심지어 재빠른 손놀림 속에 순식간에 고깃덩어리로 전락된 한 때는 사람이었던 이의 모습이나 또는 총알의 난사 속에 죽어간 시신들의 끔찍한 잔해들조차도 어떤 장면들에서는 심하게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실은 읽으면서, 이 작가가 실생활에서도 과연 이 밤의 세계에 전혀 상관이 없는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자연히 생길 정도로 모든 것이 너무나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1920년대의 금주령이 내려진 미국, 풍선효과로 오히려 밀주를 만들어내는 어둠의 세력에 더 큰 수입원을 안겨준 정책이 낳은 밤의 제왕들 세상에 주인공은 본의 아니게 끼어들게 된다.  시시하게 은행강도는 할지언정 원래 크게 놀 생각은 없었나 본데, 타고난 두뇌와 매력, 그리고 꼬인 인생으로 결국은 그렇게 되어간다.  그리고 원래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나 본데 마피아들 세상에서의 세력다툼에서 죽음 앞에서 돌아온 뒤 오히려 더 대단한 거물이 되어버린다.  물론 마지막 모습은 꼭 그가 원했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이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찾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한 시간을 갖는 것이라면 그 부분을 빼앗겨버렸으니까.   바꿔말하자면, 죽음 앞에서도 항상 불사조처럼 살아난다든가, 마치 신이 일부러 옆에서 지켜주는 것처럼 항상 행운이 따른다든가, 아니면 불가사의한 매력으로 항상 사람들을 현혹시킨다든가 하는 영웅놀이 소설들과는 달리, 조 커글린의 삶은 소설 속에서나 존재하는 허구의 삶이 아니라 마치 실존인물의 傳記를 읽는 느낌으로 삶의 희노애락을 고스란히 담고 눈 앞에 생생하게 그려졌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흡입력이 강하게 다가왔다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

 

작가의 필력에 감탄한 이유는, 단순히 밤의 세계에 대한 생생한 묘사 때문만은 아니었다.  탄탄한 스토리라인으로 내용을 이끌어가면서 사이사이에 껴넣은 풍광에 대한 묘사는 활자로 묘사된 한 장의 그림으로 떠오르기에 충분할 정도로 시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작가만 훌륭했다면 이렇게까지 작품이 재미나고 흥미진진하지 못 했을 것이다.  그 모든 시적 표현들과 또 때로는 지나치게 담담하기에 더 섬뜩하게 다가온 묘사들, 어둠 속에 살아가는 이들의 말투의 재미를 생생하게 살려내고, 또 아마 원작에서도 분명히 계산되어 들어가있었을 행간에 녹아든 복선과 의미까지 역시 흔들림없이 실어낸 역자의 실력은 분명 대단한 것이었다.

 

실은 겉표지에 끌려 책을 집어든 뒤 제일 먼저 한 일이 표지의 앞뒤 띄지를 살펴보며 譯者의 약력을 찾는 일이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 譯者를 보고 책을 고른다는 것을 출판사도 알아차렸나, 그 약력이 너무 간단하게 처리되어 있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책 안의 내용을 잠깐 살펴봤는데 뭔지 탄력이 붙은 글처리에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어 그대로 책바구니에 넣었더랬다.  결과적으로는 그러길 참 잘 했다.  수면유도용으로 집어든 의도와는 달리 결국 밤을 새워 읽게 만들기는 했지만, 그만큼 탄탄한 번역은 이 작품이 번역서가 아니라 작가가 직접 펴낸 원서란 착각이 들 정도로 쫀쫀한 譯書였다.  별 생각없이 집어든 책에서 엄청난 작가와 譯者를 발견한 느낌에 기쁘다.  이 譯書에 나온 시적 표현들이 영어로는 어떻게 되어있는 것일까,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은 원서도 사보고 싶고, 그 외에도 이 譯者의 손으로 번역된 이 작가의 책들을 더 읽어보고 싶단 마음이 굴뚝같이 들 정도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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