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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시 도요타인가 - 위기의 한국기업에 해법 내미는 도요타 제2창업 스토리
최원석 지음 / 더퀘스트 / 2016년 10월
평점 :
도요타는 2009년, 미국발 리콜사태로 엄청난 위기를 겪는다. 그 때 우리나라 언론을 통해 접한 도요타의 모습은 휘청거리는 공룡이었고 곧 멸종될 맘모스였다. 특히 미국청문회에 불려나가 눈물을 흘리던 도요타3대, 당시 최고책임자의 모습은 정말 그 예측에 마지막 확인점이었다. 그리고 잊혀졌다, 가끔 거리에서 도요타차량들을 보면 '저들은 나중에 저 차를 어쩌려고 하지?'하는 의구심으로 나름 측은하게 바라보기도 했었다.
2011년, 일본 동쪽을 휩쓴 엄청난 해일은 도요타의 공장기반시설도 망가트리고 올스탑시켰다는 뉴스를 다시 접했다. 雪上加霜, 신은 도요타를 버리기로 하셨구나 하는 생각으로 苦笑를 머금고 그 뉴스를 지켜봤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후속뉴스는 없었기에 그대로 잊어버렸고, 그 후에는 거리에서 도요타차량을 봐도 과거에 산 차들이겠거니 무시했었다.
그 도요타가 사실은 일어나고 있었단다. 2009년, 서슬퍼른 추궁 앞에서 눈물을 질질 짰던 그 3세는 사실 각고의 노력으로 도요타를 일으켜세웠고 그로 인해 1년 뒤 잃어버린 판매량을 거의 회복했다고 한다. - 그런데 이 부분은 우리나라 언론 중 그 누구도 다루지 않았었다. 2011년, 대지진으로 생산기반의 대부분이 파괴되었지만 2009년부터 체질개선을 통해 이미 이뤄둔 내구성으로 정확히 2주 뒤 그들은 생산을 재개했고 3개월 만에 모든 피해를 복구하여 전 생산시설을 정상화했다고 한다. -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역시 우리나라 언론 중 그 누구도 다루지 않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가능하게 했던 것은, 실패에서 교훈을 얻고 그것을 현장에 접목시킴으로써 체질개선을 통해 오히려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하는 경영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6년, 한국은 나라의 근간산업 중 하나인 해운업이 좌초 직전까지 갔고, 나라의 큰 수출동력인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가 위기에 봉착했다. 머리를 맞대고 그 위기를 성공의 기회로 삼기에도 부족한 이 때에 드러난 비전문가부류의 정권농단과 거기에 빌붙어서 단물만 빼먹었던 부류들. 이것만으로도 어이상실인데, 또 그들의 치부가 드러났을 때 기회는 이때다 하며 오히려 득달같이 달려들어 역시 단물을 빼먹으려 숟가락 올리기 동작에 여념이 없는 또 다른 부류들의 泥田鬪狗를 보며 나라 밖 정세는 지금 舊韓末 때와 다름없는 엄청난 위기인 이 때에,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들처럼 한참 침몰 중인 배를 수리해서 다같이 살 길을 모색하기는 커녕, 선장실 안에 있는 선장의 파이프와 모자가 탐이 나서 그 문고리를 붙들고 싸우고 있는 개 떼들을 보고 있자니 너무 답답하던 차에 "왜 지금 다시 도요타인가"라는 소개문에 끌려 집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크게 2가지 포인트에서 충격에 가까운 놀라움을 느꼈는데 그게 바로 위 2가지 점이었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 자본주의 선진국들에는 재벌이 없다고 들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100여 년 가까이 그 기업체를 이어오고 있는 회사들 뒤에는 사주가문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데, 그들이 오너가문으로서 전적으로 회사를 지배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재단을 세우고 창업자의 뜻이(대부분의 경우 大義를 표명하는 先見者들) 회사경영에 그대로 살아서 유지되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오너가문에서도 물론 최고경영자가 나오지만 그들이 최고경영자가 되는 길은 실력과 능력으로 인정받았을 때 뿐이고 그 피로 인해 무조건 주어지는 자리는 아니다.
도요타의 3세 도련님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청문회 앞에서 흘린 눈물은 나약함의 표시가 아니라 자신이 대표하게 된 도요타회사의 임직원들과 주주들, 소비자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으로 흘린 눈물이었다. 우리나라 언론들이 신나게 짓이기고 무시하고나서 내버린 그 인물은, 뒤돌아서서는 회사에 각고의 노력을 주문하고 직원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여 회사 자체의 체질을 바꾸고 1년 만에 도요타제국을 부활시킨, 실은 아주 實한 전문경영인이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에디슨이 말했던가. 도요타의 걸음은 진중하고 목표는 명확하며 그 목표를 공유하는 상하/수평간 소통은 확실하다. 리더는 큰 바퀴가 굴러가는데 있어 이미 나타난 장애물을 고치고 필요하다면 과감히 제거하며 또 나타날 수 있는 걸림돌에 대해 미리 예측하여 계획을 수립해나간다. 그 모든 과정에는 適材適所에 위치한 전문가들과 투명한 소통이 이뤄지고 또 그러한 것이 가능하단 것을 모두에게 인식시킨 것도 주효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기업들과 그리고 그 기업들의 발목을 잡기보다는 오히려 격려하고 풀어줘야 할 정부는 이러한 모습의 일부분이라도 갖고 있는가..
이번 주 초 세차장에 들렸다가 기다리는 동안 잠시 접했던 동아일보의 칼럼들. 사회각계의 원로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지금의 이전투구 상황을 걱정하며 투쟁일변도보다는 협상의 테이블로 나와 앉을 때라고 했다. 小貪大失이라고, 외양간 문이 열렸다고 곡괭이 들고 쫓아들어갈 때가 아니라, 비쩍 마른 소의 여물을 누가 훔쳐갔나 따질 때가 아니라, 그 소를 일단 살부터 찌워놓은 뒤에 누가 잡을지는 나중에 얘기하자는 것이다. 곡괭이 들고 몽둥이 들고 외양간 문 앞에서 우리끼리 와와~하고 있는 동안 초가집 밖에서는 말을 타고 기관총을 들고 쫓아오는 화적떼들이 있는데, 그들이 문 앞까지 몰려와서 말의 앞발을 쳐들고 우리를 내리칠 때는 이미 늦었단 얘기다. 그리고 오늘 조선일보에 실린 호주의 한 교수 글은 더 인상적이었다.
"호주에서 내가 배운 중요한 점 가운데 하나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를 일으킨 사람에게 손가락질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빨리 수습하고 대안을 내놓을 것인가에 머리를 맞댄다는 것이다." (신숙희, 시드니 찰스 스터트대 교수)
바꿔말하면 도요타가 좌초의 위기에 처했을 때 그들의 발목꺽임을 보고 즐거워하며 희희낙락할 줄만 알았을 뿐 그들이 다시 자리를 짚고 일어나는 뒷부분은 간과했던 우리들 그 모습 그대로, 누군가의 실수로 엄청난 폐해가 일어났을 때 책임지는 모습보다는 "쟤가 시켰어요" 하고 달아나고 그 모습에 벌떼처럼 "나한테 맡겼다면 저 정도로 (들통나게는) 안 했을 것"이라며 당장 (내 것) 돌려달라고 하는 정치권의 징그러움에 우리끼리 이 좁은 나라 안에서 서로 손가락질 하고 있을 때가 아니란 얘기다.
실패에서 교훈을 얻고 그를 통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은 꼭 직접경험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지도자들이 과거의 역사를 탐구하고 숙지하며 나아갈 바를 제시하지 않는가. 간접경험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새롭게 할 수 있다. 하물며 직접경험을 했다면야.. 도요타의 예를 통해 우리도 다시 시작하자.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너가 못 했네 난 잘했네 하는 소모적인 싸움으로 낭비할 시간이 우리에게는 더 이상 없다. 거대한 배가 정말 침몰해버리기 전에..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나아갈 바에 대하여 건설적이고 능동적인 대처를 위하여, 모두들 있는 자리에서 다시 최선을 다하며 일어서야 한다. 정말 내 아이가 성년이 되었을 때, "왕년에는.."이란 말로 자국을 소개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전쟁의 폐허에서 쑥대밭이 된 이 곳을 사람들이 다시 안심하고 살아가며 또 누군가에게는 방문해고픈 곳으로 50년 만에 탈바꿈시킨 그 저력을 믿고. 그런 자유를 위하여 숱하게 목숨을 바쳐간 전쟁기념관에 빼곡히 남겨진 전사자들의 이름들과 숱한 외란과 일제 치하에서 그런 이름도 남기지 못 하고 스러져간 순국자들의 넋을 위해서라도. 쭉 뻗은 손가락을 접어 펜을 들고 다시 각자의 일터에서 소통을 통해 일어나보자. 他山之石,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을 때 위기의식을 오히려 고취시키고 다시 각고의 노력에 채찍을 가하는 도요타의 경영진 모습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분명히 있다. 이제는 우리야말로 그들이 겪은 과거의 汚辱만 기억하지 말고, 그 뒤의 모습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교훈을 얻을 때이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책은 크게 3가지 측면을 나누어 분석했다. 첫번째가 리더. 리더는 전문성이 있어야 하며 그 목표기치가 확실해야하고 그것에 대해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기타 임직원들 및 소비자들과 공유해야만 한다. 무조건 나를 따르라는 식의 독불장군이 아닌 소통을 통한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그 목표를 차근차근 구현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두번째가 설계.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대해 다같이 이해가 일치했다고해서 그것이 그대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이 중요한데 그 과정은 주먹구구식으로 땅을 파들인다고 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정에 적합한 인재가 그에 맞는 설계를 세세히 꼼꼼히 그려냈을 때 실수없이 그 설계도면을 따라 일을 추진하고 그 결과로 목표가 달성되는 것이다. 목표도 단기목표여서는 안 되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밑그림으로서의 설계도 결코 급하게 성과를 보고자 하는 수준이면 안 된다는 것. 이 설계를 제대로 그려낼 수만 있다면 그 기다린 시간이 오히려 아쉽지 않을 정도로 천문학적 투자비용을 절약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환경. 뛰어난 전문가가 앞선 견해로 훌륭한 설계를 그려 그 목표에 부합하고자 한다한들 그 가치에 대한 이해와 공유가 없이는 모세혈관 구석구석까지 그 피는 흘러들어가지 않는다. 결국 서서히 괴사가 일어나고 끝에 가서는 잘라내는 수 밖에 없는, 쉽게 말하면 기업의 입장에서는 파산이나 매각 등을 통해 축소 내지는 망하는 길로 가는 수 밖에 없다는 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적용할까?
첫번째, 목표는 간단명료하게. 대한민국은 모든 국민들이 살아가며 어떤 일이나 환경에 대하여 예측이 충분히 가능한 보편타당한 헌법 하에 운영되는 민주법치국가이다. 그리고 정당한 행위를 통해 하는 상거래는 정당한 자산을 돌려주는 자본주의국가다. 이 당연한 것이 정말 실생활에서도 당연한 것이 될 수 있도록, 이 두 가지의 가치부터 먼저 회복하자. 운전을 할 때 모든 이들이 신호와 차선만 지키면 차체결함이 아닌 한 결코 사람으로 인한 접촉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단순한 진리 그대로, 사회가 그 가장 기본적인 "민주법치+자본주의"국가의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지연/학연/이념이 아닌 그 사람 개인의 목표기치와 소통능력, 전문가성을 보고 내 표 하나를 행사하는 국민이 되는 것이 지금 내가 할 가장 첫걸음인 듯 하다. 그렇게 뽑힌 그 전문가 집단이 장기적 안목으로 만들어낸 설계도를 가지고 국민들과 소통을 통해 이해와 협조를 구한다면, 5년의 뼈아픔이 오히려 우리에게는 재기의 발판이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한가지 부러운 점은.. 도요타도 노사분규로 많은 손해와 고통을 겪어본 회사로서, 노조와의 갈등에서 사원들을 구분했다고 한다. 회사에 대한 애정이 있기에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 사측에 반대하는 회사원들과 갈등 자체를 원해서 갈등을 일으키는 사원들(그로 인해 얻는 어부지리가 분명 있으리라). 후자에 해당하는 사원들은 다 축출해냈다고 한다. 그러고나니 방향성의 차이가 있을 뿐 회사에 대한 애정도와 목표는 동일한 이들끼리 남아서 함께 노력할 환경이 되었다든가.. 읽으며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국가에서는 그런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참 안타까왔던 것도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