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1만 년의 시간여행 1 - 동서 문명의 교차로, 자세히 읽기 터키, 1만 년의 시간여행 1
유재원 지음 / 책문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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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터키라는 나라는 한번이고 꼭 가봐야할 곳으로 여행리스트 1순위에 올라가 있으면서도 이슬람국가에 중동쪽 위치라는 지리적 상황 때문에 막연히 두려워서 선뜻 나서지지 않는, 내게는 석류알 같은 존재이다.  먹고는 싶은데-심지어 몸에도 좋다는데- 시큼털털할까봐서 선뜻 손을 대지 못 하고 그저 그 빛깔에 홀려서 언제고 먹어보겠다고 두고만 보고 있는 그런 존재라고나 할까.  그래도 터키 관련된 기행문이라든가 여행후일담 기사 등이 나오면 가급적 챙겨보고 있는 편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그 나라의 오래된 문물과 역사에 대해 너무 무지한 내 자신이 답답해하던 차에, 이 책은 기행문으로 쓰였지만 사실은 그 역사에 대해 세세한 설명으로 터키의 과거에 대해 문외한들이 잘 알 수 있게 씌여져있다는 서평을 보고 사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터키는...  참으로 오래 전에 황금문물을 이룩하고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으며 엄청난 군사력으로 무식하게 학살을 자행하며 인명이나 인권에 대해서는 눈꼽만큼도 관심없는 잔인무도한 폭도들이라는 정도였었다.  그런데 사실 그 왜곡된 시각은 터키(라기 보다는 그쪽에서 나타난 민족들)의 앞선 군사력과 문물로 유린당해 상대적으로 터키에 대해 비우호적일 수 밖에 없는 서구의 영화나 소설에서 기인한 편협한 무지함이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나서 알게 되었다.  

 

 

저자는 이스탄불을 둘러보며 이스탄불을 쟁취하기 전의 터키인들의 역사까지 깊숙하게 들어간다.  이러저러한 황제들이 있었고 그들이 제국을 확장하기도 하고 권력암투로 내정을 어지럽히기도 했던, 한 나라의 역사가 빼곡히 하지만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놀라운 것은..  읽는 그 순간만큼은 중국사나 로마사를 읽을 때와 느낌이 다르지 않은데, 각 황제의 이름 뒤에 괄호 안에 별 의미 없는 듯 첨부되어있는 재위기간을 보면 그 때마다 "헉?!"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재위기간이란 것이 기원전 몇백여 년 정도는 기본으로 나오고 있으니..  그 때 우리나라는 역사인지 전설인지 구분도 안 되는 고조선 시대이고 중국도 요즘 들어서야 신탁통치 부족국가가 실제로 있었다고 슬슬 인정받고 있는 상나라 정도 때였을 텐데, 이들은 벌써 성을 쌓고 전투병을 거느리고 거대한 궁전에 화려함이 가득한 일상생활을 즐기며 문자를 가지고 제국을 일구고 있었단다.  특히 제국시절의 터키는 그 크기가 유럽 내에서 영향력과 영토가 크다고 생각했었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나 프랑스왕정시대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어마어마한 제국이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았다. 

 

 

그 위대했던 제국의 와해는 1차세계대전 이후였다는데도 그런 거대한 제국에 대해서 나는 어쩌면 그렇게 무지몽매할 수 있었을까.  심지어 그리스는 터키의 식민지였다니, 전혀 몰랐었다.  근대까지 유럽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고 유럽인들에게 항상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이, 현대에 들어서서 유럽이 세계질서를 좌지우지하게 되면서 철저히 무시당하는 수모를 겪게 된 원인인 듯 싶다.  가령, 할렘이란 것이 있기는 하나 내가 영화나 소설 등으로 갖게된 왜곡된 이미지와는 달리, 동아시아에 존재했던 후궁제도와 비슷한 수준이었다든가.  심지어 술탄은 할렘에서 과거 중국의 황제들이 그러했듯이 주지육림의 세월을 보내지도 않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터키에 존재했던 화려했던 제국이 얼마나 왜곡된 이미지로 폄훼당하고 있었나 생각하게 된다.   페르시아나 바빌로니아와 달리 끈질기게 오래 살아남은 위대한 제국은 근세에 들어서 역사 속에서 패자가 되어 철저히 무시당했고, 불행히도 그 제국의 후손인 오늘날의 터키공화국은 그런 왜곡된 시각을 정정하고 나설 정도의 경제력이나 국력이 안 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기사, 불안한 정정으로 조용할 날이 없는 중동에서의 경제활동보다는 부가 모이는 유럽에 편입되기 위해서 EU가입을 꾸준히 모색하고 있는 오늘날의 터키로서는 과거의 영화를 운운할 형편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터키는 식민시대를 거치지 않아서 고고학자(란 이름으로 포장된 근세초기의 유럽의 문물약탈자)들의 관심을 이집트 대비 상대적으로 덜 받은 것이 행운이라고 할까..  덕분에 지금 터키에 가면 아직도 도시 전체가 살아있는 유적지로 남아있는 상태라니 여행자들로서는 감사할 일이다.

 

 

책 속에서는 이름만 접해보고 그 실체에 대해서 알려주는 책들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항상 궁금해했던 여타 나라들도 언급되고 있다.  특히 히타이트에 대한 서술 부분 중, 당시 통치자들에게 백성이란 애시당초 관심대상이 아니었다는 부분은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예나 지금이나 민간인들은, "백성"이든 "민초"든 "국민"이든 그 호칭만 다를 뿐 결국 위정자들의 현실유지를 위해 세금을 내는 존재로서만 그 존재가치가 인정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에 씁쓸했다.  민중이란 결국 국가가 보호해줘야만하는 중요한 존재라기 보다는, 국가란 거대한 물건이 버티고 굴러가는데 필요한 자금(세금)을 대기 위한 톱니바퀴이며 필요없을 때는 가차없이 烹 당하는 존재란 것이 1만년이란 시간의 흐름에 상관없이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사실이란 것이 안타깝다.

 

 

이런 저런 상념을 뒤로 하고도 이 책은 터키라는 나라를 다시, 아니 조금이나마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 멋진 역사서이자 기행문이란 점에서 충분히 소장의 가치가 있다.  언제고 터키를 여행할 때는 꼭 이 책을 들고가서 하나 하나 대조하며 시간을 거슬러 여행을 해보고 싶다.  그 때까지는 어떻게든 내 무지함과 왜곡된 지식을 떨쳐버리고 그 언젠가에 함께 할 우리집 꼬맹이가 경이에 찬 눈초리로 열심히 질문할 때 조금이나마 바른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엄마가 되어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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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제국쇠망사 - 권력흥망의 비밀을 품은 제국 침몰의 순간들
리샹 지음, 정광훈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요즘 다시 역사물에 빠져들고 있다.   한동안 역사소설 쪽으로 몰입했다면 지금은 한무제, 진시황, 조조 등의 열전을 넘어서 고대 역사서라든가 현대인들의 역사평론으로 들어가고 있다.  20여 년 전에 읽었다 하더라도 새로운 번역자에 의해 다시 나오는 고전들은 다시 읽어도 그 깊은 맛이 자꾸 우려내는 찻잎과도 같다.  현대인의 역사평론집으로는 그 전에 읽었던 책들이 一國의 역사에 대한 거시적인 시각이나 또는 一人에 대한 평전이었다면, 이 책은 중국대륙에 존재했던 고대제국들의 역사를 관통하면서도 말년의 쇠망사에 초점을 맞춘, 독특한 형태의 역사평론서다.

 

 

책의 내용은 중국대륙에 존재했던 거대한 통일왕국들의 시작부터 마지막 청왕조의 직전까지를 그리고 있다.  청왕조의 멸망도 사실 그 왕조가 지난한 시절을 보내며 서서히 쇠망해나가던 차에 일어난 일이기는 하나, 그 최종도장은 중국 내부의 세력이 아닌 일제라는 외세에 의한 것이기에 빠졌나 보다.  그러다보니 이 책은 최초로 통일제국을 건립한 진나라를 시작으로 명나라의 쇠망으로 맺음을 한다.  읽다보니 역설적으로 느껴진 부분은, 앞의 제국이 이래저래 해서 무능한 황제와 탐관오리들 틈바구니에 웅대한 꿈을 품고 일어서는 영웅이 새로운 제국을 건립하는 모습이 그려져있는데, 그 다음 장에 넘어가면 그 영웅이 건립한 제국이 다시 시대를 제대로 못 읽고 현실 속에 안주해서 자기들끼리 당쟁하다가 멸망으로 치닫는 부분이다.  이래서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던가.. 

 

 

진제국은 시황제 이전에 이미 유능하고 시대를 앞서간 통치자들이 있었기에 진왕 정이 그 일대를 통일하고 중국대륙 최초의 통일제국을 건립할 수 있는 기초가 다져졌었다.  꿈에 그리던 통일제국의 통치자로 올라선 진시황은 그러나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하늘의 뜻에 대해 너무나 오만했던 나머지 후대에 대한 교육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소홀했던 것 같다.  뒤늦게 2대를 지목하고 사망했을 때는 이미 늦었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탐해 큰 물을 살필 줄 몰랐던 주변의 간신들로 인해 그의 제국은 곧 허망하게 무너져버렸다.   그렇게해서 한제국을 건립한 유방과 그 후사들은 또 무제 때의 과도한 국세확장과 자랑으로 이미 검증된 황태자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준비가 안 된 후계자들을 통해 서서히 멸망으로 치닫는다.  왕조들의 역사가 어쩌면 그리도 똑같이 흘러가는지..  읽다보니 이것이 꼭 먼 과거의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라 오늘날 한국 땅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는 내용이란 느낌이 너무나도 강해서 서글퍼졌다.

 

 

먼 훗날, 지구國 동아시아州  한국郡의 공화국 시절을 기술한 역사책에 보면 뭐라고 쓰여있을까?  "*대 대통령 당시, 정치는 심한 당쟁으로 얼룩져있었고 국론은 사분오열로 정국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여당과 야당으로 크게 분류할 수 있는 당파들은 각기 이익과 목적을 위하여 국민의 생활과 경제에 대해서는 그 눈과 귀를 닫고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이전투구를 벌이며 이합집산으로 상대를 헐뜯기에 여념이 없었으니, 통치자로 고군분투하는 모모 대통령은 항시 행정을 집행하는데 어려움으로 어떠한 결과도 내놓을 수 없었다..."라고 연도만 달라질 뿐 내용은 똑같지 않을까?  문제는 이 내용들이 중국 고대제국들의 쇠망시절을 묘사하는 서두와 똑같다는 것일 뿐.

 

 

작년인가 읽었던 "1587 만력15년"이란 책이 생각난다.  명나라는 숭정제 때 멸망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상 그 멸망의 징조는 만력제 때 이미 기초를 닦아놓았다는 것이 중국사학자들의 공론이란다.  위 책의 제목은 "그 해 아무 일도 없었다"라는 뜻으로 붙여진 것인데, 태평성세였기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아니라 이미 고이고 썩기 시작했기에 의욕도 발전도 없이 정체된 사회로서 멸망으로 치닫기 시작하는 때를 나타내기 위해 쓰여진 것이다.  섬뜩하지 않은가..  고인 물은 썩을 일 밖에 안 남았고, 무능한 관리자들과 자기 이익만을 위해 치고받고 싸우는 염치불구한 정치가들이 넘쳐나는 나라에는 망할 일 밖에 안 남았다는 것을 그간 역사의 현장들을 통해 알 수 있다면, 도돌이표처럼 지금 이 나라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여의도의 모습이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인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첫 장에서 끝 장까지 잠시도 손에서 놓지 못 하고 읽었다.  그 시절에는 혜안이 있는 자들은 산으로 숨어들고 이웃나라로 넘어가서 뜻을 펼치고 또는 후학을 가르치며 후세를 도모했다는데, 21세기의 현재 사리사욕과 일신의 평안에 혈안이 된 자들이 정치꾼으로 활약 중인 고인 물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우리들은 이 끝없는 소용돌이를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곧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도 그 나물에 그 밥들이 도토리 키재기 식으로 나와서 서로를 향해 왈왈~ 짖어댈 후보군들을 바라보며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이래서 역사서의 묘미는 과거를 미루어 현재를 바라보며 미래를 염려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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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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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렸을 때 해문출판사에서 나온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전집을 하나씩 사서 모으는 취미를 가진 적이 있었다.  한 권씩 나올 때마다 60여 권을 사모으면서 그 중 몇 권은 허를 찌르는 반전('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이라든가), 또는 번역자의 절묘하면서도 귀여운 문체에('갈색 옷을 입은 사나이'에서 나온 "고시랑 고시랑거렸다"-아마 '구시렁 구시렁'의 귀여운 표현이었을 것이다, 사전에도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크리스티 여사의 매력에 쏙 빠져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떨 때는 포와로나 미스 마플과 함께 진중하게 사람의 심리를 쫓아가는가 하면, 또 어떨 때는 빙그레 웃음을 짓게 하는 로맨틱한 주인공들도 나왔다 (내가 지금까지도 즐겁게 기억하는 "갈색 옷을 입은 사나이"처럼).  그런가 하면 크리스티 여사의 창조물들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톰과 페니(?) 커플과 같은 매력적인 부부탐정(?)도 있었고, 여하튼 이런 매력적인 인물들은 무궁무진하게 끌어내는 그녀의 매력은 아무리 책의 권수가 많아져도 줄어들지가 않았다.  그래서 해문출판사에서 나온 크리스티 전집을 미처 다 사지 못 하고 잊어버리고 있던 차에 드디어 마지막 권이 나온다는 기사를 읽고 혼자 쓸쓸해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그렇게 열심히 사모으고 아끼던 책들도 지금은 다 어디 갔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새삼 애정을 갖고 읽었던 책들의 표지그림들은 아직도 기억난다, 정말 출판사가 애정을 갖고 만들지 않으면 그렇게 성의껏 나올 수 없었던 전집이라 생각되기에 새삼 당시 해문출판사의 출판진에 감사하고 싶다. 

 

- 내 개인 취향이긴 하겠지만, 어렸을 적 그 느낌을 살리고 싶어서 다른 출판사에서 다른 번역자를 통해 나온 '갈색옷을 입은 사나이'를 사봤는데, 책의 겉표지도 속지 느낌도 그리고 번역의 감칠맛도 과거 해문출판사 전집에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그렇게 애정어린 마음으로 접한 작가이지만, 그녀가 추리소설 이외의 책을 썼다는 것은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물론 실생활에서 남편인 크리스티 대령의 외도사실을 알고 그 충격으로 잠시 집을 나간 뒤 단기 기억상실에 걸렸었다는 등의 개인사에 대해서는 어디선가 어렴풋이 읽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그런저런 개인적인 경험들이 그녀의 삶에 어떤 무게를 더했을 것이라 상상하기에는, 크리스티의 작품을 한참 읽었던 당시의 나는 너무 어렸었고 그녀의 작품들은 항상 유쾌하고 즐거웠었다. 

 

이 책은 사놓고 한동안 책장에 놔둔지 좀 되는 책이었다.  아이가 하원하기 전까지 짜투리 시간 동안 가볍게 읽을거리가 뭐 없을까 두리번대다가 별 생각없이 집어들었는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하염없이 빠져들어가게 한 책이다.  작가의 필력도 필력이겠지만, 그간 내가 알아왔던 어딘지 모르게 재기발랄하면서 기발한 작가의 작품들과는 다른, 뭔가 안개 속에서 허우적대면서도 정작 찾아가기에는 너무나 두려운 빛을 향해 걸어나가는 느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진실을 향해 내면의 여행을 떠나고 있는 한 중년여인의 모습이 너무나 현실적으로 실감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책 내용 상 배경은 단순하다.  기차의 연착으로 본의 아니게 낯선 곳에서 약 일주일을 보내게 된 한 영국의 중산층 부인.  그녀가 만날 사람도, 할 일도, 읽을 것도, 관심을 가질 것도 없는 곳에 발이 묶이면서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모습과 그를 통해 주변을 되돌아보며 점점 알아가는 본인의 실체에 대해서 너무나도 담담히 그려나가고 있다.  내가 만일 두세살만 더 어렸을 때 이 작품을 접했더라면 지금처럼 머리 속에 북이 울리는 느낌으로 크게 다가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제 접해서인가...  주인공이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자신의 허상을 파악해나가면서 스스로 겁에 질리는 모습에 진심으로 공감하며 읽었다.  어쩌면 나도 지금, 삶에 너무 쫓기는 나머지 내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믿고 싶은 만큼 믿고 보고싶은대로 내 자신을 포장하며 적당히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 포장지를 낱낱이 벗겨내고 뒤집어보면, 이미 내 실체를 파악한 내게 가까운 누군가는 내 뒤에서 때로는 나를 동정하고 때로는 나를 비웃으며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자신의 허상이 벗겨지고 진실에 다가갈수록 그 크나큰 괴리감 때문에 주인공과 함께 나도 무서웠다.  지나친 감정이입일까?  하지만 겉으로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으나 사실은 빈 껍데기일 뿐 아무 것도 실제로는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의 엄청난 상실감, 두려움, 충격..  그리고 그것을 덮기 위해 결국은 自己否認으로 되돌아가는 주인공의 족적을 따라가면서, 이 작품을 써내려갈 때의 작가의 심리상태가 느껴져서 더 가슴 아팠다.

 

실생활에서 남편의 외도와 자식의 일방적인 행동 등으로 상처를 받으면서, 사회적으로는 성공하고 왕실에까지 인정받은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자신의 위치에 대해 얼마나 대내외적으로 큰 괴리감을 느꼈을까.  그녀는 그 모든 상처와 치부가 세상에 신문을 통해 드러나며 차라리 곪은 부분이 터져버렸지만, 이 책의 주인공처럼 가릴 수만 있었다면 그냥 모르는 척, 그렇게 평생 살다 죽기로 작정하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을지도 모른다.  길게 보면 누가 정말 행복한 상황이었을까, 작가의 실제 삶과 작품 속의 주인공의 결말과... 

 

어찌보면 이 책의 섬세한 필치는,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본의 아니게 현실에 안주하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포장된 모습으로 자기 자신조차 속이며 살아가고 있는 중년여성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에 또 너무나 와닿는 내용이다, 4~50대에 자신의 허상을 미리 깨닫고 주저앉지만 그래도 다시 일어나보려 버둥댈 시간이 있는 것과 6~70대에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는 것, 또는 죽을 때까지 아예 모르고 그렇게 안개 속에서 80대까지 안주하다가 주변 사람들의 상처에 상관없이 홀로 편히 세상을 떠나가는 것..  어떤 인생이 정말 평안하고 좋은 삶일까?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주변인들에게.   

 

 

이 책은 짧은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그 여운은 정말 길게 남는다.  그리고 20여 년간 잊고 있었던, 작가에 대한 애정을 다시 떠올리게 해준다.  그녀는 단순히 영특한 추리작가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통찰할 줄 알았던 뛰어난 작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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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시대 - 춘추전국시대와 제자백가 제자백가의 귀환 1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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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누워 읽다 내려놓은 책에 대한 감상을 잊기 전에 적으려하다 보니 모바일 행이다. 길게 느낌을 나열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짧게 맺어야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읽고 난 느낌은, 우선 저자의 많은 지식에 감탄했다는 것. 하지만 반전은, 그의 개인적 해석이 오히려 그 지식이 지혜가 아님을 느끼게 해줬단 것.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약간 현학적이기도 한 내용을 읽다보니, 책에서 인용된 다양한 고전들에 대해 차라리 개인감상을 뺀 번역서를 냈다면 중국철학 및 역사에 대한 한국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한 저자의 노력에 더 부합했을 텐데 하는 정도의 아쉬움이란 것. 덕분에 망설이던 「여씨춘추」를 지르게 되었다.

이 책에 대해서는, 그냥 깊이 있는 고전을 제대로 된 번역서로 직접 접하는 것이 좋겠다는걸 깨닫게 해주었고 또 어떤 책들이 좋다는 걸 다시 알게 해준 노고로 별 두개 평점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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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전쟁 샘터 외국소설선 1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 샘터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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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읽고난 뒤 간만에 접하는 독서의 즐거움으로 바로 집어든 것이 이 SF소설이다.  한 동안 SF소설을 즐겁게 읽었는데, 최근에 읽은 몇몇 작품들은 너무 현란한 글솜씨로 내 지능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미래언어들로 씌여있어서 해당 장르 자체를 포기하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이 책에 대한 소개부분을 읽고 망설이다가 구매를 선택한 것이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75세 이상 노인들만 입대할 수 있고 한 번 입대하면 영원히 지구를 떠나서 돌아오지 못 하는 우주방위부대.  소설은 그 부대에 자원입대하는 한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전개된다.  알고보니 상당히 리더쉽이 강하고 지혜로운 이 할배가 우주여행을 떠날 때 독자인 나도 그의 뒤를 따라서 무리없이 함께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우선 저자의 탁월한 말솜씨 덕분이고 두번째로는 역자의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번역솜씨 덕분이라 할 수 있겠다.

 

주인공에게 소설 속에서 몇 번의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나 역시 마치 어렸을 때 읽었던 서바이벌게임북 때처럼 선택을 해봤는데, 책장을 넘겨보면 주인공은 매번 나와는 다른 선택을 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절묘한 타이밍으로, 유쾌하게 영웅을 만들어가는 계기로 도약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그 영웅 이야기가 껄끄럽거나 한심하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주인공이 다치고 부서지고 으깨지는 순간들이 나름 현실적이었고 그 고통도 사실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라고 할까..  읽으면서 함께 통쾌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고..  책을 덮고나니 시리즈물로 뒤에 2권 더 있다는데 다 구매해 볼 생각이 들었다.  다음 책들이 오기 전까지는 이 책을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정말 즐겁게 읽었다.

 

사족으로, 이 책 바로 직전 읽은 것은 영국인에 의해 씌여진 영국귀족이 주인공으로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반의 영국 내 작은 시골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풀어나가는 형사물이었다.  그 책도 앉은 자리에서 읽고 끝낼 정도로 상당히 흥미진진하게 읽었기 때문에 그냥 일어서기 싫어서 내친 김에 이 책을 집어들었던 것인데, 이 책은 미국인에 의해서 한 30세기 정도의 미래에서 벌어지는 미국인(또는 미국 출신의) 주인공이 우주에서 벌이는 전투로 또 다른 의미의 흥미진진한 내용이었다.  같은 영어를 쓰는 사람들인데 참..  두 권을 연달아 읽고보니 비록 번역자의 손을 거쳐 한국어로 접하긴 했으나 그들의 묘한 유머감각이나 센스의 차이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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