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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타토르 ㅣ 로마사 트릴로지 3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7월
평점 :
3부작이라는데 처음부터 다 보자니 가격적 부담이 커서 우선 2권째에 해당하는 "루스트룸"을 샀었다. 한참 책장에 방치된 상태로 놔두다가 책의 두께가 보관하는데 부담이 되어 얼른 읽고 중고로라도 내놔야겠다 싶어서 꺼내들게 되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키케로이며, 저자는 키케로의 비서역할로 여러 문서기록을 남긴 노예, 티로의 입을 빌려서 그가 살았던 시대의 정치상황, 그 안에서 공존했던 여러 인물들의 활약상, 키케로와 티로의 눈에 비쳐진 그들의 '진면목' 등 다양한 일상들이 역사상 기록으로 남았던 사건들의, 우리가 알 수 없었을 뒷얘기까지 불러내서 촘촘히 재구성하여 그려내었는데, 사실 이 시리즈를 읽기 전까지는 이름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유명한 웅변가라는 것 외에는 정확히 어느 시대에 활약을 했으며 주요 업적이 무엇인지 전혀 관심도 없었던 사람에 대해서 정신없이 빠져들기에 충분한 흥미진진한 구성이었다. 급하게 2부를 읽고나서 허겁지겁 사든 것이 3부, 딕타토르였다.
딕타토르, 독재관이란 말의 라틴어. 로마공화정의 체제에서 딕타토르는 국가의 위기상황에서만 원로원의 의결을 거쳐 임명되고 그 임기는 6개월을 넘기지 못 한다. 그리고 그 해당 위기상황이 해소되는 즉시 임기가 채 만료되지 않았다고 해도 독재관은 그 지위를 내려놓아야 한다. 이 딕타토르의 정신을 잘 보여준 영웅적 인물은 로마공화정 초기인 기원전 5세기, 이웃 민족들의 연합공격으로 국가의 존립에 위기가 닥친 로마인들이 찾아간 킨키나투스였다. 그는 농사를 짓다가 찾아온 로마 사절들 앞에서 토가로 정장을 하고 그 호출을 듣고나서 딕타토르로써 군대를 이끌고 나가 전쟁에서 승리하여 로마를 위기에서 구출해낸 뒤 바로 그 지위를 내려놓고 농부로서 자신의 일터로 되돌아갔다. 단 15일 만의 최고권력자!! 이러한 영웅담과 전설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로마의 공화정. 하지만 이 딕타토르의 고귀한 정신을 (어쨌거나 공화정체제의 열렬한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훼손한 이가 있었으니 그가 공화정 말기에 "종신"딕타토르 직위에 취임한 카이사르였다.
당시 로마가 팽창일로를 거치며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땅이 넓어지면 부의 재분배와 그로 인한 지배세력의 알력이 등장하는 것은 東西古今을 통틀어 당연지사인 듯 하다), 그간의 로마의 탁월한 정치체제와 엘리트교육으로 인하여 출현하기 시작한 영웅들이 쌓이고 쌓여 드디어 그 수준이 최고조에 달함으로써 가문의 영광과 개인의 역량으로 무장한 엘리트들이 원로원이라는 이름 하에 집단으로 討議를 거쳐 국정을 경영하는 공화정체제에 오히려 위기가 닥쳐왔던 시절, 키케로는 바로 이 로마의 공화정 말기에 살았던 변호사로서 원로원 의원이며 집정관까지 지낸 원로계급으로(원로원 안에서도 집정관 출신 등은 상위급으로 타 의원들로부터 존경과 양보를 얻는 위치였다) 중앙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었다. 그는 공화정의 몰락에서 제국으로 행정체제가 바뀌어가려는 그 과도기 시절에 1차 삼두정치의 주요인물들과 함께 당시 로마 정치를 이끌어갔던 주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격렬한 정치투쟁으로 인하여 1차 삼두정치의 모든 인물들이 세력을 얻고 또 그 결과로 끝내는 비명횡사하는 모습들을 다 지켜보고나서 2차 삼두정치에 나선 이들의 내부계약에 의해서 살해될 때까지, 그가 주로 활약했던 시대를 생각해보면 키케로의 삶은 어떤 면에서는 공화정의 운명을 대변하는 인물이었는지 모른다.
공화정을 지키기 위해서, 개인적 야심을 갖고 군사력을 앞세워 대중을 호도하며 권력을 탐하는(어쨌든 키케로의 시선으로 볼 때는) 노회한 권력자들 사이에서(이 중에는 삼두정치의 그 유명한 크라수스, 폼페이우스, 카이사르 뿐만이 아니라 로마의 오래된 엘리트귀족 가문들의 다양한 후계자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키케로는 그 뛰어난 두뇌와 언변을 이용하여 百尺竿頭의 위험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교묘한 줄타기를 해간다. 분명 정치싸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견을 대변하기 위하여서는 군사력과 폭도를 수시로 이용하는 당시 정치적 특수성을 고려하여 피와 죽음이 난무하는 시대상은 어쩔 수 없이 기본이었고.. 그런 가운데 한 번은 정말 키케로가 그러한 政爭에서 승리, 자신의 정적들에게 죽음을 내림으로써 그 우위를 로마 전역에 떨치는 순간은 키케로와 함께 승리의 전율을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키케로의 행보에 의아함을 느끼게 된 것은.. 삶은 돌고 도는 것이라 누구 하나가 영원히 권력의 정점에 있을 수는 없는 법, 결국 키케로도 제1차 삼두정치인들의 밀약과 그들에 동조한 정치적 음모에 의하여 추방되고 중앙에서 밀려나게 되는데 그런 가운데 중앙정치에서의 은퇴를 결심하고 실제로 정계은퇴 선언까지 한다. 그런데 후일 주변의 권유를 빙자하여 사실은 본인의 의지로 다시 원로원으로 복귀하고 마는 모습, 모 아니면 도인 상황에서 실패는 곧 죽음 뿐이란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하고야 마는 모습은 내게는 약간 당위성이 부족한 결정같아 보였다.
로마의 미덕이라면, 패자에 대한 승자의 아량이라고 할까. 추방령을 내려지면 그 당사자에게는 일정한 시간이 주어지고 그 시간 안에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로마의 지배령 밖으로 벗어나면 된다. 문제는 로마의 지배령이 당시에도 이미 어마무시할 정도의 크기였기 때문에 보통 몇일로 주어지는 시간 내에서는 로마 중심부에서부터 출발할 경우 그 지배령을 모두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일 것이다. 결국 주어진 시간이 다되면 인간사냥을 당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는데, 이 부분은 진나라를 부국강병케 한 상앙이 이후 도망가다가 자신이 만든 법, 신분증이 없으면 어디에도 묵을 수 없게 한 법에 의하며 결국 추적 끝에 잡히게 되는 것을 연상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경우 주로 이런 처분을 받는 이들은 정치가들이란 점을 고려, 실제로 원로원에서 그런 처분이 공표되기 전 원로원 내의 친분세력들로부터 해당인사들은 대부분 사전귀띔을 얻게 되고 미리 대비하여 실제 추방령이 발표되기 전까지는 이미 로마를 벗어나 멀리 달아날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정적이 달아날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여도 결코 공권력이나 폭도들을 조정하여 그들의 탈출로를 미리 막으려고 시도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현대사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당시 로마인들의 배포와 암묵적이긴 하나 상대에 대한 기본적 존중을 엿볼 수 있었다. 가치관에 따른 정치신념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나와 다른 편이란 이유만으로 개인적인 원한으로는 발전하지 않는..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며 스쳐지나간 숱한 대한민국 땅의 정치인들로서는 참으로 갖기 어려운 합리성과 배포라고나 할까.
여하튼 이런 여러가지 장치를 통해 1차 삼두정치인들에 의해 밀려난 키케로는 분명 카이사르에게 정치로부터 손을 떼겠다고 약속을 한 뒤에 로마로 돌아온 것임에도 불구, 주변의 부추김과 상황의 교묘한 농간에 의해 정말 "기쁘게" 다시 원로원으로 돌아가고 만다. 내게는 이 부분이 老欲으로 느껴져서 키케로의 고귀한 원칙(공화정 死守)에 의문이 들게 되었다. 과연 그는 공화정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명예를 이용하여 다시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명예욕을 위해서 공화정을 이용하여 다시 그 싸움판에 뛰어든 것일까? 내가 그를 직접 대면해본 것도 아니고 오직 남은 기록만으로 재구성하여 접할 수 밖에 없는 현재로서는, 당시 로마인의 가치관과 생활태도를 고려 결코 구분해낼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본인조차도 혼동스러워할 질문이 아니었을까? 대의는 공화정을 위해서였으나 그 뒤에 꿈틀거리는 개인의 욕망 또한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으리라.
모두가 누군가를 의지하고 믿을 수 밖에 없었고 그런 식으로 자신을 믿어주는 누군가를 배신해야 하며 또 자신이 믿는 그 누군가의 배신으로 정치적 파멸을 당하고 이는 곧 죽음으로 대변되었던 그 과도기 시절, 이렇게 다시 그 치열한 정치싸움에 뛰어들어 영웅들의 죽음을 모두 지켜보면서도 끝까지 살아남았던 키케로는 카이사르가 후계자로 지정한 옥타비아누스에게 조언하며 "그 어린애"가 그저 무사히 살아남으려나 하는 의구심에서부터, 결국은 2차 삼두정치의 1인이 된 옥타비아누스의 배신으로 분노에 떨며 안토니우스의 정치목적과 또 키케로와의 仇怨이 얽혔던 그리고 결국 또 비명횡사했던 클로디우스의 전처로서 당시 안토니우스의 아내인 풀비아의 증오심의 복합적 결과로 배편을 구하지 못 하여 망명에 실패한 뒤 결국 원로원의 명령에 따라 쫓아온 호민관에 의하여 처형이 집행됨으로써 그 삶을 마감하게 되었다. 영웅들의 각축장이 되어버렸던 공화정 말기, 그 무대의 주요인물들과 함께 才器를 겨루며 1차 삼두정치인들에 의하여 로마에서 추방을 당하였고 2차 삼두정치인들에 의하여 생명을 빼앗긴 키케로에 대하여, 후일 초대황제가 된 옥타비아누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가 어느 날 그의 딸 집을 갑자기 방문하였을 때, 외손자가 키케로의 저술을 읽다가 할아버지의 소리에 급히 숨겼을 때 황제는 그 책을 꺼내보게 한 뒤 자신의 손자에게 책을 돌려주며, "얘야, 그 분은 훌륭한 저술가이자 탁월한 웅변가였고 로마를 사랑한 애국자셨단다"라고 평했다든가.. 다른 건 몰라도 티로의 입을 통해 과거의 사료릍 통해 소설형식으로 재구성된 키케로의 삶은 분명, 크라수스와 안토니우스의 무관심과 증오를 넘나드는 거리감, 폼페이우스의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수준의 이용감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던 존재감 외에도 카이사르와 옥타비우스에게서 받은 존경과 애정이 느껴졌었다. 여하튼 동시대에 복합적으로 등장했던,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존재들 중 하나로 기록된 몇몇 이들이 그의 군사력이 제로임에도 불구 政略을 세움에 있어서 반드시 고려해야했던 인물이라면, 키케로는 분명 대단한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
이 책을 읽고나서 흥미가 생겨서 당시 과도기를 알아보기 위해 "로마공화정"이란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책에 나온 다양한 기록과 그 분석을 통하여 책의 저자는, 1) 로마의 뛰어난 정치체제는 호전적이고 영예를 탐하는 엘리트들을 독려하여 그 지배가 팽창하는데 일조하였고, 2) 그로 인하여 지배력의 팽창을 통해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피정복지들에서의 압력/긴장관계, 그리고 3) 그 긴장을 풀어내기 위하여 또 다시 등장하는 더 뛰어난 엘리트들의 출현과 그들에게 집중되는 고도의 관심과 군사력 등이 필연적으로 뒤따라오게 됨으로써 4) 결국 공화정이라는 집단 엘리트지도체제의 몰락을 자초하게 되었다는, 어찌보면 하나의 수레바퀴마냥 맞물려 굴러가는 운명의 서술이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를 바탕으로 생각해볼 때, 키케로 혼자(또는 그에게 동조한 몇몇 원로원 의원들)의 힘만으로는 몇백년에 걸쳐 서서히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굴러가고 있던 그 거대한 수레바퀴의 방향을 바꾸거나 속도를 늦추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정치가이자 웅변가, 공화정 역사를 통해 배출된 여러 집정관들 하나에 불과했을 키케로의 삶이 수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조명받고 膾炙되며 그 저술들과 기록이 잊혀지지 않고 계속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이유는, 그런 모든 것을 앎에도 불구 그에 초연하여 운명에 맞서서 자신의 원리원칙을 지켜내고자 최선을 다했던 한 사내의 모습에서 숭고함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 원리원칙을 고수하고자 한 과정이 다 옳거나 바른 결정만은 아니었다는 점, 그리고 그의 뛰어난 두뇌와 판단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내린 결정들이 모두 시의적절하고 최선의 것은 아니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아, 하지만 결국 우리 모두는 인간이지 않은가?! 로마공화정의 운명이 거기까지였음을..
"Finitum non capax infiniti... Spote dei, aeterm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