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폴란드사
김용덕 지음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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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보면, 스쳐 지나가듯이 알고 지나간 국가가 사실은 얼마나 유구한 역사와 다양한 질곡의 시간들을 거쳐서 살아남은 나라였는지 새삼 알게되어 놀라게 된다. 

 

지난 여름에 약 열흘 간 아이와 둘이서 프라하를 다녀왔다.  그 때 처음으로 깨달은 사실이, 유럽연합의 일원으로서 어느 정도 치안과 교통의 편리성이 보장된 가운데 아직은 유로통화를 쓰지 않기에 물가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나라로의 여행은 얼마나 매력적인 것인가였다.  그 때도, 사실 그 전에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동구권국가에 대한 첫 여행지로 체코를 본의 아니게 택하면서 여행출발일이 다가와서야 그 나라에 대해 텅 빈 머리로 가기에는 예의가 아닌 듯 하여 마지못해 체코역사 관련책을 사들었다가 그 역사의 길이와 깊이와 다양함에 푹 빠져들었었더랬다.  덕분에 프라하에서 아들과 둘이서 보낸 시간은 참으로 풍성하고 추억이 송글송글 맺히는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다녀온 뒤, 서유럽 대비 정말 저렴한 물가 수준과 친절한 시민들, 또 외지인과의 의사소통에 부족함이 없는 국가의 교육수준에 크게 감동받아서 내년 여름에도 동구권 국가를 도전해보고자 했다.  그래서 위의 조건에 부합하는 나라를 찾다보니 나온 곳이 폴란드였다.

 

 

내가 폴란드에 대해서 아는 내용이라곤, 1) 아우슈비츠가 위치한 나라, 2) 마담 퀴리가 폴란드어를 공부하다 들킬 뻔 했던 일화가 있는 나라(마치 우리나라가 일제 치하 때 학교에서 국어와 한글을 몰래 숨어서 공부해야 했었던 것처럼), 3) 그 옛날 "명화의 극장" 등에서나 보여줄 법한 (하지만 얼마 전 지상파방송에서 특집으로 보여줬던) 율 부리너 주연의 영화 "대장 부리바"에서 장남역으로 나왔던 미남배우 토니 커티스가 적군의 장군 딸과 사랑에 빠져 자신의 부족인 코사크족을 배신하고 총부리를 거꾸로 돌리게 되는데, 그 때 토니 커티스를 멋있게 변신시킨 군복이 바로 당시 폴란드의 장교복이며 그 전장터는 폴란드라는 것-이 영화를 어릴 때 보고 느낀 감상은 역시 폴란드에 대해 부정적이었는데 마지막에 나온 부족장인 율 부리너가 나무에 묶여 화형에 처해지는 장면을 바라보며 부족원들이 말을 몰고 멀리 달아나는 장면 때문이었다, 사람을 화형에 처하다니 끔찍하다 싶은 생각에 어린 마음에 폴란드는 야만적이란 인상이 깊이 박혔던 듯 하다, 4) 그리고 이제는 고인이 된 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조국, 5) 마지막으로 수도가 바르샤바인 곳으로 초대 민주대통령이 바휀사였던 나라 정도였다.  이 정도 지식으로 도전하기엔 터무니없음을 알기에 폴란드 관련 책을 찾아보니 동유럽여행책의 일부로 몇 페이지 정도 할애된 것 외에는 폴란드만을 따로 다룬 책이 별로 없음을 알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따지고보면 체코도 그랬는데, 많지 않는 저서들 중 그래도 꼭 하나는 그 내용이 매우 충실하며 그 자체로도 소장가치가 충분한 책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만일 책과도 인연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런 부분에서 나는 나름 복 받은 편이라고 괜히 행복해본다.) 

 

 

그래서 알게 된 도시, 크라쿠프.  크라쿠프는 마치 경주처럼 그리고 프라하처럼 그 나라에서 천년의 수도로서 위상을 드높였던 도시였다.  그 곳에는 폴란드 최초의 그리고 아마 유럽 역사상 가장 선구적인 때에 세워진 대학이 있고(지금도 대학으로서의 기능을 그대로 갖고 있는),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수뇌부가 이 곳에도 본부를 두고 있었기에 파괴가 덜 이루어진 그래서 과거의 모습이 나름 잘 간직된 도시라고 한다.  크라누프에는 지금도 그 대학을 세우며 가난한 백성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으로 가득했던 왕비의 발자국이 찍힌 대리석판이 그 길에 남아있고 프라하성처럼 처음보다는 뒤로 갈수록 점차 건축이 더해져 거대한 성이 된(하지만 현존하는 모습은 프라하성만큼의 규모는 못 되고) 바벨성이 수도로 있는 동안 존재했던 국왕들의 석관들을 품고 아직도 건재하다고 하다.  크라쿠프에 수도가 있었을 당시에는 폴란드의 국세가 매우 강해서, 항상 나약하고 주변국가들의 침략만 받은 줄 알았던 이 나라가 실은 러시아도 위협하고 스웨덴까지 그 영토를 넓혀 전투를 벌였단 사실도 처음 알았다. 

 

그러고나서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 바르샤바로 수도를 천도했단다.  내가 폴란드 국민에 대해서 무의식 중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아마 그곳에 위치한 아우슈비츠수용소의 존재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 수용소가 위치했다는 것 자체가 그 국민이 얼마나 당시 나치에 우호적이었나 싶어서, 내 나름의 무지한 생각으로 멋대로 판단했었던 듯 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니 그것은 완전히 왜곡된 생각이었다.  서울만큼 오래된 수도였던 바르샤바는, 나치에 대한 극심한 저항의 처벌로 히틀러가 "바르샤바라는 이름만 남기고 모든 걸 없애라"는 명령에 따라 철저하게 파괴되고 말았었다. - 마치 서울이 일제를 거쳐 한국전쟁을 지나면서 거의 모든 것이 공중분해된 폐허로 화한 것처럼..  폴란드에 그 이름만으로도 "인간은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생긴 것도, 실은 유태인들에 대한 관대한 정책으로 유태인 거주율이 유럽 내 국가 중 상대적으로 높았기 때문에, 이동거리를 줄이고자 폴란드령에 만든 것이었다.

 

그 뿐인가, 마담 퀴리의 일화를 통해 은연 중에 폴란드에 대해 품고 있었던 "나약함"이란 이미지는 이 책을 읽으며 사라졌다.  폴란드인들은 강했고 군사행동에도 능했으며 무엇보다 자국령과 자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방어를 한 국가였다.  단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마치 로마의 혼란기 때 그러했던 것처럼 왕이 선거제로 선출되면서(로마는 암살로 새롭게 군인황제들이 등극하는 형태였다면) 대귀족들의 구미에 맞게 유럽 각 지역의 유력가문 중에서 왕이 뽑혀서 오다보니 국가의 정책이나 군사력에 대한 일관적이고 장기적인 계획이 없어 결국 점차 국가 자체가 무력화해져갔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주변에 새롭게 등장하는 3개의 강대국, 러시아/체코/오스트리아는 점차 폴란드의 영토에 관심을 갖게 되고 뚝뚝 떼어서 분할하는 지경이 되고. 이후에는 러시아와 프로이센의 쉬운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 과정에서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물론 내부의 우리나라식으로 하면 을사오적들이 있었고...  거기에 동조하는 나약하고 근시안적인 소귀족들은 "폴란드가 그 누구에게도 해가 안 된다면 누가 우리를 괴롭히겠는가"하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그 모습들을 다년간에 걸쳐 지켜보는 동안 폴란드라는 나라는 한 때 위대한 왕국, 서쪽 유럽국가들을 터키의 맹공으로부터 지켜내줬던 보루 역할에서 주변 강대국들인 사자(체코왕국)와 독수리들(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따지고보면 황족들이 모두 게르만족의 피를 받았던) 사이에서 갈기갈기 찢겨지는 고기조각의 신세가 되고 만다.

 

 

읽으면서..  한반도에서 명멸했던 수많은 王朝들과 그리고 특히 국왕이 미처 시대상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 한 가운데 자신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부 상위지도층의 주도로 나라를 통채로 빼앗기고 황제는 독살당하고 마는 조선왕조의 마지막 모습이 보이는 듯 하여 마음이 못내 불편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동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약간 흥미진진했던 것은..  결코 차르의 아성을 건들일 자는 없으리라(그 지리적 특성 상) 생각했던 러시아제국이 실은 로마노프 왕조 때의 차르 중 한 명이 전쟁에 대한 패배로 한 번은 폴란드에까지 끌려와서 충성서약을 맹세하고 갔다는 것이나(그만큼 강대국이었다니..), 프라하에서는 은연 중에 자국이 주로 피해를 입은 국가였단 느낌의 설명을 받았었는데 알고보니 체코도 줄기차게 주변국(폴란드)를 침공하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또 하나의 강대국에 불과(?)했다는 것, 그리고 서양사 책들 속에서 이렇게 저렇게 접해봤던 왕들과 황제들이 폴란드 역사를 읽는 가운데에서도 숱하게 함께 스쳐지나가는 것이 역시 유럽의 역사는 이웃들을 빼놓고는 시대가 연결이 안 되는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이었다.

 

 

이 책은 폴란드 역사에 대한 개략적 소개를 목적으로 했다기보다는, 폴란드에 대한 애정을 품은 저자가 각 국왕들의 치세에 맞춰서 연대기적 순서로 나열하다보니 전체적 시대상은 독자가 읽어나가며 따로 노트에 표기해서 대조하지 않는 한, 한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는 점이 특이점일 듯 하다.  그러니 폴란드라는 국가의 역사 자체에 관심이 있어 책을 찾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그렇게 친절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나라에 대한 무지를 조금이나마 씻어내고 폴란드인과 만났을 때 (한류에 대한 이야기를 뺐을 때) 뭔가 가벼운 공통화제거리를 찾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으로도 충분하리라 생각된다.  특히 사람과의 만남보다 그 국가에서 오래된 도시들과 다양한 유물들과의 만남에 기대감이 부풀어 있는 to-be-여행객이라면..  이만큼 충실한 입문서가 없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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