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살롬, 압살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9
윌리엄 포크너 지음, 이태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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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포크너. 20세기 미국의 주요작가 중 한 명이고 노벨상 수상자라는 작가.  영미문학 쪽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일종의 원로대접을 제대로 받는 작가.  그래서 샀다, 21세기에 새롭게 출간된 책들만 주구장창 사서 읽기에는 내 자신의 인문학적 수준이 너무 수직하향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 추락하는 속도를 좀 늦춰보고자 하는 생각으로. 

 

그런데 읽다보니 이건 뭐..  이 작가는 주로 노예제도가 아직 합법적이었던 시대부터 남북전쟁을 거쳐 남부가 패배지역으로서 전쟁의 상흔을 딛고 일어나는 시기 등에 걸쳐 그 혼돈의 순간들을 배경으로 소설들을 많이 썼다고 한다.  그에 걸맞게 이 책의 배경은 남북전쟁 직전부터 시작하여 남북전쟁을 거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그 후에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으로 한 집안의 연대기 같은 것을 주절주절 얘기하는 구성으로 시대상을 돌아보고자 했던 것 같다만..

 

(독립된 지위로서의 역사)수준이 일천한 국가에서 태어나 국력에 힘을 입어 국제상을 탄 경우인 것인지.. 내용은 정말이지 중구난방 그대로였다.  주절주절 얘기하고자 한 대상으로 나온 서트펜이란 자는, 그 이유도 분명치 않게 새롭게 찾아서 정착한 땅에서 일방적으로 적대적인 주민들에 의해 "무조건"적 악인으로 낙인이 찍힌다.  대체 그가 왜 악당이어야만 하는지, 그리고 그가 왜 악당으로서 모든 행동을 하는지, 그 배경도 이유도 근거도 실제 상황도 전혀 없다.  그냥 말 그대로 주절주절 넋두리하는 식으로, 그는 이렇게 음침하게 생겼고 저렇게 행동했고 그래서 못된 넘이란 식. 이 작가가 토마스 만의 "부덴부르크가의 사람들"이나 도스토엡스키의 "카르마조프의 형제들" 등을 읽고 큰 충격과 동경심과 경외심을 품었을 것이란 것은 이해한다. 사람이라면 그럴 수 밖에 없는 작품들이니까.  하지만 그들의 흉내를 내고자 어설프게 한 가문을 끌고 들어와서 중구난방으로 그러니까 어쩌구 저쩌구 개연성없는 전개로 끌고나가는 이야기방식은 정말 식상함을 떠나서 혐오감까지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또 마침표가 어디 있고 쉼표는 어디쯤 찍혀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문장의 구성.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을 읽고 감명받았었나?  풍광의 자세한 묘사로 독자들에게 어떤 감명을 주고자 한 것이 저자의 의도였다면..  저런, 실패를 넘어서 실소를 머금게 하는 탁월한 선택이었다고밖에는.

 

애시당초 이렇게 황당한 작품을 번역서로 접하려면 2가지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첫번째는 저자가 워낙 황당하게 쓴 작품이든지 아니면 두번째로는 역자가 기가 막히게 짜집기한 완전히 새로운 졸작이든지.  그래서 읽다가 너무 황당한 나머지 저자와 역자의 설명부분을 다시 봤다.  저자는 윌리엄 포크너, 남부 쇠퇴상에 관심이 많아서 주로 그쪽 이야기를 배경으로 많은 작품활동을 했고 시제를 현재와 과거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하고 긴 문장을 구사하였단다.  이런 톡특함을 인정받아서 전미 도서상, 퓰리처상,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고.  역자는 이태동, 외대 영어과를 졸업한 뒤 미국 대학원서 영문과로 석사학위, 서울대 영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서강대 교수직을 거쳐 현재는 서강대 명예교수인 분이라고.  결론은 나왔다, 복잡하고 긴 문장을 구사하는 것이 특기인 작가가 정말 딱 그 부분만 특기였다는 것.

 

호메르스의 오딧세이를 원문으로 읽으면 길고 시적인 문장으로 그 해석이 참 어렵단다.  바꿔말하면 길고 복잡한 문장으로 구성된 창작물이 다 형편없는 것은 결코 아니란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 인생을 담고 철학을 담고 이야기를 담은 탁월한 story-teller가 그러한 문장구사능력까지 갖춘 경우와 그저 겉모양만 따라서 하는 자가 하필이면 그런 문장구사능력만을 갖춘 경우는, 작품세계로 들어간다면 분명 천양지차일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아주 반면교사적 작품이었다.

 

물론 영문과생도들 입장에서는 이 작가의 작품들이 매우 훌륭한 교재이자 상위학위를 따고자 할 때 논문주제용으로 선택하기 좋은 사람일 거란 생각은 들었다.  어쨌든 내용이나 뜻 전달에 상관없이 말 갖고 장난치는 걸 좋아한 사람이란 것은 이미 세계적으로 공인된 것이니까. 하지만 그런 목적이라면 차라리 제임스 조이스를 권하고 싶다, 난해하기 그지없고 지루하기 짝이 없지만 최소한 읽는 동안 실소를 금치 못 하게 하는 수준의 작가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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