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포시용의 형태의 삶
앙리 포시용 지음, 강영주 옮김 / 학고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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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forme)란 우리 의식이 부여한 형식도 아니고, 형이상학적인 기하학적 세계의 법칙에서 연원하는 것도 아니다. 포시용이 포착하고자 하는 형태란 구체적이고 다양한 세계로부터 스스로 뚫고 나오는 존재로서 (내 생각으론) 비물질적인 구체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사고를 요약해서 보자면 인간 너머의 자연도 아니고, 순수 추상(즉 수학적인) 세계의 것도 아니며, 인간의 의식이 창조한 게슈탈트적 세계도 아니다.

그는 이것을 형태(forme)라고 이름짓고 미술사를 통해 그 형태의 궤적을 쫓아 그들의 삶의 과정을 이야기한다. 이 형태는 어떤 선험적 양식이나 역사적 결정론에 의해 제어되지 않는 것으로, 그리고 인간적인 영역에서 분리되어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기서 미술작가와 형태라고 불리우는 영역 사이의 긴장관계가 설정된다. 작가는 형태 위에 군림하는 존재도 아니고, 추상적 질서에 의존해 그것을 구현하는 매신저도 아니며, 그렇다고 자신의 혼을 자연에 빼앗긴 무당도 아니다. 그는 인간과 분리되어 사는 형태의 역동적 삶과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작품을 만든다. 작가는 형태의 삶이 구현하는 일관된 총체와 대화하거나 혹은 반대로 싸우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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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2 - 바람 부는 길에서 동문선 현대신서 93
피에르 쌍소 지음, 김주경 옮김 / 동문선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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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스러운 점은 저자의 '느림'과 '길'이 겁많은 소시민들에 의해서 아주 소시민적으로 다시 읽혀지고 있다는 점이다. 느림이란 속도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와 경쟁 체제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의 선언임에도, 소시민들에게 그것은 단지 '커피 한 잔의 여유' 정도로 받아들여 진다. '길'이란 모든 것이 하나, 즉 자본주의적 승리로만 귀결되는 갇힌 방으로부터 과감하게 벗어나서 심지어는 無를 향해 달려갈 수도 있어야 한다는 과격한 선언 역시, 소시민들에게는 단지 내가 좋아하는 길을 가야한다는 식의 소아병적 처세술로 변질되고 만다.

어떤 식으로 책을 보건 그건 그 사람 마음이지만 나는 이런 식으로 읽는 것을 '제자리 뛰기' 운동에 불과한 것으로 본다. 자신의 현재 자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한 단계 높은 곳으로 뛰어오르는 듯한 자기기만적 자극을 즐기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 순간적으로 뛰어오르지만 결국 자신의 원래 자리로 되돌아 올 것이다. 이건 자본주의적 노동과 여가의 상호순환 관계와 다를 것이 없다. 그들은 잠시 무엇으로부터 떠나있는 듯한 환상을 즐기지만 그것은 다시 그들을 그 무엇에 더욱 성실하게 묶여 있게 만드는 '여가'의 이중적 성격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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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열전 1 (반양장) - 내 비록 환쟁이라 불릴지라도
유홍준 지음 / 역사비평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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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열전>이 추구하는, 바자리의 <르네상스 예술가 열전>식의 전기적 미술비평은, 현대에 있어서 학문적으로 별 호응을 받지 못하는 방법론이긴 합니다. 요즘에는 도상학과 고도의 양식분석,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비평이나 정신분석비평, (신)역사주의, 페미니즘 비평 등으로 매우 전문화되어 있지요. 하지만 이런 현대비평들이 고전적 비평방법론에 대한 (일부) 안티테제적인 위상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오히려 이런 현대비평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고전적 비평방법도 더불어 완숙해져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점에서 유홍준의 <화인열전>은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전기적 비평이야말로 다른 여러가지 비평 방법론들을 하나로 얽어 내는데 더 없이 안성마춤이 아닐까 하네요. 형식과 내용, 그리고 그 주변 맥락과 정치적 상황 및 사상 등이 하나로 얽혀 들어가도록 만드는 것은 그 만큼 그 시대에 쌓아올려진 문화적 내공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니, 우리 미술사학계에 나름대로 기여한 바가 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게다가 전기적 비평은 대중적 호소력도 아주 높은 장르이므로, 때마침 불고 있는 미술과 역사에 대한 대중적 관심에 새로운 지적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또한 전기적 비평은 텍스트와 캔버스로만 수렴되는 작금의 창작 태도에 대해서 텍스트 밖과 캔버스 밖으로 눈을 돌리라는 간접적인 메시지를 던져주기도 합니다. 밖을 내다보지 못하고 밖을 헤메지 않은 자는 모조품이나 혼성품은 만들 수 있을런지는 몰라도 고유한 작품을 완성하지는 못할 겁니다. 계간지 역사비평에서 연재될 때 꼬박꼬박 프린트해서 모았는데 드디어 출간되었군요. 망서림없이 구입해버렸습니다. 양장본과 보급판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양장본을 골랐는데(책 물신주의자이기 땀시) 아주 매혹적이군요. 이제 한 장 씩 읽어내려갈 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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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니어링 자서전 역사 인물 찾기 11
스콧 니어링 지음, 김라합 옮김 / 실천문학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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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베스트셀러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 기요시의 논리대로라면 이 책을 읽는 사람 중 80%는 어쩔 수 없이 빈곤으로 전락하게 되어있다. 어차피 경쟁의 일선에 뛰어들게 되면 그 중 80%는 일하고 대신 20%가 먹어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기본적으로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중심에 옳고 그름에 대한 나름의 판단없이 그저 경쟁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있다면 죽을 때까지 두려움 속에 살아야 한다.

20대 80 사회라는 용어는 본래 자본주의와 세계화에 대해 비판적인 진영에서 만들어진 용어인데, 공교롭게도 이 용어가 사람들의 강박적인 두려움을 강화하는데 사용되었다. 20대 80사회의 위기에 직면하자 사람들은 그 해결책을 사회 대신 개인에게만 기대어 찾고자 했다. 그러나 그것은 요행에 의존한 도박과 다를 바가 없으며 세상을 더욱 더 같이 살기 힘든 곳으로 전락시킨다는 점에서 비의도적인 죄악이기도 하다. 그런 죄악을 전파하는 책이 기요시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란 책의 해법이다. 기요시는 어느 인터뷰에서 자기는 이기는 방법에만 관심이 있지 옳고 그름은 따지지 않는다고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녔다. 이런 사람의 말로부터 우리가 도데체 뭘 배워야 한다는 소린가?

하긴 원래 이 자본주의 세상이란게 언제는 정상이었던가? 외려 이 비정상이 스콧 니어링과 같은 정상을 비정상으로 몰고 고립시키고 해꼬지한 걸 보면 비정상도 아주 심각한 비정상이다. 니어링은 요즘 자주 거론되는 반부르조아적이고 우발적인 저항자나 우나버머같은 반문명적 테러리스트와는 전혀 다르다. 그는 사회주의야말로 인류가 자본주의의 악폐를 일소하고 다가가야할 궁극적 이상으로 굳게 믿고 있으며, 그것을 자신의 경제학적 실증연구를 통해 사실에 근거해서 또렷이 추적해 왔다. 그의 엄격한 자기 관리와 진리를 향한 투신은 그를 스파이로 몰아 법정에 세웠던 법정을 굴복시켰고, 그 법정을 지키던 법원경찰들로부터 '당신은 제게 어두움을 거둬내 주셨다'고 감사의 말을 듣기까지 했다.

간디는 자연은 필요는 만족시켜주지만 탐욕은 만족시켜줄 수 없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사실 현대 자본주의사회는 지구가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탐욕을 확대재생산하는 체제이다. 인류는 이미 필요 이상으로 먹고 필요 이상으로 소비한다. 소비는 이미 필요의 단계를 넘어서 과시와 기호의 단계로 변질되었고, 온 사회가 조바심치며 신경증적으로 살인적으로 경쟁하는 집단히스테리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브레이크가 없다. 이런 사회라면 차라리 모두 비슷하게 가난한 삶이 낫다. '가난함'이란 '필요'만을 충족시키고 정신의 풍요을 누릴 줄 아는 삶이다. 이걸 깨닫지 못하는 인류는 극심한 풍요 속에서 언제나 극심하게 불행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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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분석철학
M.K.뮤니츠 지음, 박영태 옮김 / 서광사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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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철학에 접근하는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중심적인 주제와 그 논의 과정에 따라서 접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시대별로 각 철학사조에 접근하는 것이다. 전자류이 책은 보통 '철학의 제문제'와 같은 제목으로 되어있고, 기반없는 초보자가 다가가기엔 좀 난해하고 벅찬 면이 있다. 반면 후자류의 책은 흔히 '철학사'로 칭해지고 비교적 이해하기 쉽지만 각 철학자들 사이의 쟁점들을 세밀하고 명확하게 다가가도록 해주지는 못한다.

이 책은 이 두 가지 접근의 장점을 모아서 비트겐슈타인을 정점으로 한 20세기 초 분석철학의 쟁점과 전개를 다루고 있다. 처음 접하면 방대한 내용 때문에 겁을 먹기 쉽지만 다 이유가 있다. 이 책은 철학자들의 원문이 아주 자주 인용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논의의 쟁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문맥에서 사용되었는지를 비교적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비트겐쉬타인의 저서를 한 장 한 장 따라 읽어가면서 설명을 듣는 강독수업같은 인상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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