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베스트셀러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 기요시의 논리대로라면 이 책을 읽는 사람 중 80%는 어쩔 수 없이 빈곤으로 전락하게 되어있다. 어차피 경쟁의 일선에 뛰어들게 되면 그 중 80%는 일하고 대신 20%가 먹어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기본적으로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중심에 옳고 그름에 대한 나름의 판단없이 그저 경쟁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있다면 죽을 때까지 두려움 속에 살아야 한다.20대 80 사회라는 용어는 본래 자본주의와 세계화에 대해 비판적인 진영에서 만들어진 용어인데, 공교롭게도 이 용어가 사람들의 강박적인 두려움을 강화하는데 사용되었다. 20대 80사회의 위기에 직면하자 사람들은 그 해결책을 사회 대신 개인에게만 기대어 찾고자 했다. 그러나 그것은 요행에 의존한 도박과 다를 바가 없으며 세상을 더욱 더 같이 살기 힘든 곳으로 전락시킨다는 점에서 비의도적인 죄악이기도 하다. 그런 죄악을 전파하는 책이 기요시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란 책의 해법이다. 기요시는 어느 인터뷰에서 자기는 이기는 방법에만 관심이 있지 옳고 그름은 따지지 않는다고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녔다. 이런 사람의 말로부터 우리가 도데체 뭘 배워야 한다는 소린가?하긴 원래 이 자본주의 세상이란게 언제는 정상이었던가? 외려 이 비정상이 스콧 니어링과 같은 정상을 비정상으로 몰고 고립시키고 해꼬지한 걸 보면 비정상도 아주 심각한 비정상이다. 니어링은 요즘 자주 거론되는 반부르조아적이고 우발적인 저항자나 우나버머같은 반문명적 테러리스트와는 전혀 다르다. 그는 사회주의야말로 인류가 자본주의의 악폐를 일소하고 다가가야할 궁극적 이상으로 굳게 믿고 있으며, 그것을 자신의 경제학적 실증연구를 통해 사실에 근거해서 또렷이 추적해 왔다. 그의 엄격한 자기 관리와 진리를 향한 투신은 그를 스파이로 몰아 법정에 세웠던 법정을 굴복시켰고, 그 법정을 지키던 법원경찰들로부터 '당신은 제게 어두움을 거둬내 주셨다'고 감사의 말을 듣기까지 했다.간디는 자연은 필요는 만족시켜주지만 탐욕은 만족시켜줄 수 없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사실 현대 자본주의사회는 지구가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탐욕을 확대재생산하는 체제이다. 인류는 이미 필요 이상으로 먹고 필요 이상으로 소비한다. 소비는 이미 필요의 단계를 넘어서 과시와 기호의 단계로 변질되었고, 온 사회가 조바심치며 신경증적으로 살인적으로 경쟁하는 집단히스테리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브레이크가 없다. 이런 사회라면 차라리 모두 비슷하게 가난한 삶이 낫다. '가난함'이란 '필요'만을 충족시키고 정신의 풍요을 누릴 줄 아는 삶이다. 이걸 깨닫지 못하는 인류는 극심한 풍요 속에서 언제나 극심하게 불행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