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Vermeer를 세이렌을 향해 가는 오딧세우스에 빗대보는 것은 어떨까? 그는 세이렌의 노래에 매혹되지만 그의 몸은 배의 마스트에 묶여있다. 이와 유사한 내적 긴장이 그의 그림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베르메르의 그림에는 그가 활동했던 동시대의 장르화가들과 질적으로 다른 면이 있는데 그가 포착한 일상은 미덕이 아니라 모호함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인간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모호함이 아니라 그림 속의 모호함이다. 당신 화란의 여타 장르화가와 달리 그는 인간보다는 인간을 넘어선 것에 더 천착했으며 회화야말로 그런 일을 맡을 자격이 있다고 여긴 듯 하다. (그의 <회화의 알레고리>나 <천문학자>) 그는 일상을 화폭에 담아도 사람이 아니라 빛에 더 관심이 있다. 아마도 일상의 사람에 관심을 보인 유일한 예는 <진주목걸이를 한 소녀>가 아닐까? 그러나 이 그림 역시 모호함을 담고 있다. (이 불명확성 덕에 다빈치의 <모나리자>에 비견된다고 한다.) 이 모호함의 영역은 인간(특히 부르조아 공동체 내의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세이렌의 영역'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는 빛과 빛깔에서 세이렌의 노래에 도취된다. (따라서 구름은 흰색일 수 없다.) 하녀 그리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그는 그녀에게서 관능의 노래까지 듣게 된다. 관능도 빛과 빛깔의 영역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마스트에 묶인 밧줄을 풀어버리고 저 세이렌의 바다 속으로 사라져 버릴까? 하지만 그는 바다 앞에서 멈추어 선다. 합리적인 이성을 아끼는 부르조아라면 그의 멈춰섬/견뎌냄을 '미덕'으로 찬양했을 사태다. 사실 베르메르는 17세기 네델란드의 도시들이 이뤄놓은 다양한 성과에 대해 매우 자랑스러워했던 (개신교로부터 개종한) 카톨릭 신자이자 근대적 이성의 찬미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선 뭔가 중요한 것 - 삶 그 자체 - 을 잃어버린다. (이것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언급한 "계몽 이성의 역설"이기도 하다)

세이렌과 오딧세우스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카프카의 <세이렌의 침묵>이란 짧은 글이다. 카프카는 이 신화를 오딧세우스가 아닌 세이렌의 시각으로 보여준다. 가뭇한 수평선 위로 오딧세우스의 배가 나타난다. 오딧세우스는 밧줄과 밀납으로 자신의 몸과 귀를 모두 붙들어 매고 있다. 그걸 본 세이렌은 어이를 상실했다. 특히나 밧줄과 밀납을 창안한 자신의 얄팍한 지혜에 도취된 오딧세우스의 의기양양한 얼굴에는 더욱 그랬다. 그래서 세이렌은 아무 노래도 부르지 않는다. 이것이 세이렌의 가장 무시무시한 막강의 무기였다. 오딧세우스는 그것도 모르고 자신이 세이렌의 노래로부터 안전하다고 착각했다. 오딧세우스는 얼핏 세이렌들을 본다.

"스치는 시선으로 그가 먼저 본 것은 고개를 돌리고 깊이 숨을 쉬는 세이렌들과 그들의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 그리고 반쯤 열려진 입이었다."

                  (카프카, <오드라덱이 들려주는 이야기> 중 "싸이렌의 침묵" p.91 (문학과 지성사))

이 구절을 보니 베르메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하녀 그리트는 오딧세우스의 세이렌이었을까? 베르메르는 그녀의 속을 들여다 보았지만 (그래서 그의 아내가 언급하듯 "음란하다") 밧줄을 풀지는 못한다. 베르메르에게 어떤 식으로든 -  오만한 어리석음이든  자기구속적 나약함이든 - 연민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딱 그만큼, 열정과 절제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상태로 정지함으로써 묘한 긴장을 남긴다.


 


화가의 아틀리에, 혹은 화가의 알레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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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04-09-09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정과 절제 사이의 긴장선 상에 아슬아슬한 상태로 정지함으로써의 묘한 긴장.....^^
재미있는 글 감사드리며 .....__ & _ !!


정답 : 추천 , 펌

간달프 2004-09-09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셨나요? 이 영화 적극 추천합니다.

간달프 2004-09-11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ou are a fly on his web. We are all."

베르메르의 장모가 하녀 그리트에게 한 말이다. 아직도 귓전에 울리는 대사다. 그 뜻이 명확한 듯 하면서도 모호하다. 왠지 자꾸 되뇌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