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는 역사가의 눈이 있다. 여러 문헌이나 미세한 인간관계까지 살피는 주도면밀한 시선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 책에 인용된 히라노 겐(平野謙)처럼 문단사적이고 심리적인 유형의 비평가의 시선과 닮았으면서도 또 다른 무엇이다. 히라노 겐에게 역사는 이론적인 것과는 별개의 곳에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히로마쓰에게는 역사를 넘어선 일반 이론 따위가 없다. 아까 말한 '이론적인' 작업도 그에게는 어떤 의미에서는 역사적인 작업인 셈이다. 따라서 이 책이 문자 그대로 역사적인 책이라고 해도 이론적인 것의 곁가지인, 별도의 작업은 아닌 셈이다. 그것은 그것 자체로 이론적인 작업이다.

예를 들어 근대의 철학은 '근대'라는 역사성 속에 있다. 그것이 초역사적으로 타당성을 갖는다고 착각하는 것이야말로 근대 철학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론적인 비판적 고찰은 그 자체로 역사적인 고찰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이미 헤겔이 인식했던 사실이다. 그러나 그 역사적인 고찰은 즉시 하나의 이론이 된다. 그것을 비판하면, 세계를 파악하는 어떤 이론이나 담론도 여러 관계로 이루어진 역사적 세계에 속하고 그 역사적 세계를 초월하지 못한다고 한 것이 마르크스주의 이론이었다. 하지만 그 이론은 끊임없는 자기 검증을 요구받는다. 세상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기 자신도 그 자기 검증의 대상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히로마쓰가 계속해서 주장한 바는, 마르크스가 그 '근대'적인 사고의 한계를 진정하게 넘어설 수 있는 '지평'을 가져왔다는 것이지만, 그것은 결코 무언가 손쉬운 이론으로서 존재하지는 않는다.

'근대'란 무엇인가? '근대'를 넘어선다는 것은 무엇인가?히로마쓰 와타루의 이 이론적인 책은 계속 그것을 묻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또 하나의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근대 일본' 혹은 '일본의 근대'란 무엇인가? 이것을 묻지 않는다면, 어떤 이론적 고찰도 추상에 불과하다. 반대로 이론적 고찰이라는 것이 오히려 일본적인 것에 속하게 되고 말리라. 히로마쓰가 태평양 전쟁 전의 '근대의 초극'에 관한 논의를 다룬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근대의 초극에 대하여" 중에서, 히로마쓰 와타루, <근대초극론>(2003, 민음사)  239-240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weetmagic 2004-08-06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꾸 퍼가기만 해서 죄송합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