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글쓰기(혹은 여타의 창작행위)를 통해 자기, 본질, 진리, 전체에 이를 것이란 망상에 빠지기 쉽다. 이 망상은 글쓰기에 근엄한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는 장점이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근엄한 것이 더 이상 쿨하지 않은 요즘에는 그것도 별로 인 듯 하다.

글쓰기에 대한 망상을 이젠 거꾸로 돌려보자. 글쓰기(혹은 여타 창작행위)는 환원 혹은 졸이는(boiling-down)하는 것이 아니라 부피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내가 쓴 것이 나다. 10자를 쓰면 나는 10자고, 100권을 쓰면 나는 100권이다. 10자를 쓰나 100권을 쓰나 알맹이가 없으면 내가 아니라는 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자그만 책은 그걸 강변한다. ^^  

이를 삶에 대한 망상으로 번지게 해보자. 우리는 마치 어떤 외재적 삶의 공식 혹은 심연의 삶의 원칙이 미리부터 우리를 지배한다고 착각한다. 그리고 이 착각으로 인해 초래된 삶으로부터의 자기 소외에 절망한다. 세상을 탓한다. 삶을 죽이고 인간을 소외시키는 이 비정한 현대 사회를! 그러나 조금만 틀어보면 자신의 착각이 현실이 되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이 착각으로 두 가지 죄악을 범한다. (1) 우선 자기 삶의 음악과 춤을 죽였다. 한마디로 살아가는 일을 썰렁하게 만들고 주변사람들도 썰렁하게 만들었다. (2) 그리고 춤추려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객관적 돌뿌리'를 선사한다. 객관적 돌뿌리는 바로 춤을 포기한 그 자신이다. 다른 삶의 암세포가 되는 것이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殺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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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04-06-30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착각 잘 알면서도 절대 걷어내지 못하더군요,

간달프 2004-07-03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착각... 감옥이자 궁전이거들랑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