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 <살인의추억> <말죽거리잔혹사> <실미도> <태극기휘날리며>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등 최근의 대다수 한국 영화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 듯 하다. 나는 이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명시적으로는 '허우적거림'을, 암시적으로는 '탈출'을 내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들은  판타지(올드보이), 큰 역사(태휘, 실미도), 작은 역사(살인의추억, 말죽거리잔혹사, 효자동이발사), 일상(여자는남자의미래다) 등의 각기 다른 배경 속에서 공통적으로 꿈틀거리고 있다. 대체로 모든 인물들은 허우적거린다. 그들은 자신이 누군지 잘 모르며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것 같다. 기껏해야 범인(혹은 자기들을 허우적거리게 만든 장본인들)이 누구인지 알고자 할 뿐이다. 나쁘게 말하면 남의 탓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그들은 어느 한 순간도 자기 자신과 만나는 환희(혹은 소크라테스를 빌어서 "자신과 일치하는 것" homolegein autos heauto)에는 이르지 못한다. 방황과 좌절이란 측면에서 그들의 영화는 사춘기적이다. 그들이 자주 다루는 것은 '폭력'과 '섹스'다. 사춘기에는 누구나 폭력과 섹스에 집착한다.

홍상수의 영화는 그 경향이 가장 심하다. 거의 유아적이다. 끊임없이 남의 탓 만 하면서 자기 인식에 실패한다. 어쩌면 거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성장이 멈춘 것이다. 그는 우울한 피터팬이다. 그는 실험영화의 인큐베이터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김기덕의 영화는 좀 색다른 것 같다. 물론 그의 영화에도 자기 인식의 환희 따위는 없지만 그것을 향해 겁없이 돌진하는 용기는 더 큰 것 같다. 그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봄(Spring/Seeing)은 유기적 순환계의 일부이지만 동시에 자기 인식에 이른 '눈뜸'의 봄(Seeing)으로의 업그레이드를 암시하는 듯 하다. '봄'의 이중성은 (김우창의 책제목을 빌어서) "풍경"(사계,순환,전체,자연,순리,윤회 따위)으로부터 "마음"이 독립되는 순간을 함축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장 어른스럽다.

대개 이들 감독들이 '모래시계 세대'라는 점도 공통점이다. 한국은 민주화되었고 이 세대는 민주화의 주역이지만 아직 그들은 자기 스스로의 주인에는 이르지 못했거나 이르지 못했다고 여기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실제로도 한국이란 나라는 지금도 일본과 함께 미국의 위성국가(satellite state)이다. 미국인들은 한국인과 일본인들을 어린애 다루듯이 한다. 그러나 언제가는 곧 경을 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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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magic 2004-05-18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가는 곧 경을 칠 거다..... 무섭고도 시원하네요.

간달프 2004-05-18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을 친다" .... 뜻과 달리 말이 참 경쾌하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