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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위한 집필 안내서 - 궁금하지만 물어볼 수 없었던 작가와 출판에 대한 이야기
정혜윤 지음 / SISO / 2018년 6월
평점 :
한동안 자기계발과 실용서에 빠져있다가 어느 순간 "현타"가 왔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한 권을 써머리(Summary)해도 A4용지의 반도 채 되지 않는다던가, 30페이지로 요약할 수 있는 내용을 지지부진하게 끌어 300페이지를 만든다던가, 책 제목이나 프롤로그와는 전혀 다른 결론으로 끝나버리는 책들. 그중 일부는 사서 본 책도 아닌데 읽은 시간이 아까워 억울할 때도 있었어요. 조금 더 과장해 보태자면, 이 책을 만들기 위해 베어진 나무에게 미안해질 정도랄까요.
새로운 인생의 챕터를 꿈꾸며 책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이미 몇 년 전부터 불고 있는 유행이죠. 문제는 어디에나 그렇듯이 "수요"가 있다보니 그것을 노린 상술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는 거에요. 오프라인 서점에 가면 어렵지 않게 "책쓰기를 위한 책"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중 대다수는 마치 동네 헬스클럽 전단지에나 쓰여있을 만한 제목을 가지고 있는데요, "당신도 한 달 만에 책을 낼 수 있다", "누구나 쉽게 책 쓰기", "잘나가는 작가로 제2의 인생 살기" 등 다이어트 광고같은 책들이 쏟아져나오다 보니 이젠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어지지 않더라고요. 간혹 그런 책들을 읽어야 할때면 끝까지 멈추지 않고 읽는 게 고역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답니다.
그러다가 이 책을 만났어요. <작가를 위한 집필 안내서>. 뭔가 제목에서부터 진정성이 느껴졌다고 하면 과장일까요. 이 책 또한 "이것만 알면 당신도 작가!" 라고 이름붙일 수 있었을텐데 왜 이렇게 다소 딱딱해보이는 제목을 선택했을까 싶기도 했죠. 어쩌면 바로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 참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자인 정혜윤 씨는 (책에는 자세히 나오지 않았지만 맥락상) 이 책의 출판사인 SISO의 대표이자 10년넘게 북에디터로 활동한 이력이 있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넘사벽의(?) 커리어 우먼인 것만 같은데, 아이를 낳고 2년 뒤 1인 출판사를 차려 바쁘게 일하고 있는 워킹맘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녀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건 남편의 외조가 절대적이었다고 하네요. 지금도 쉴 새 없이 원고를 확인하고 글을 다듬고 책을 출간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정혜윤 씨가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이 책을 쓰게 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책 쓰는 것에 기술이 있다는 것도 생각해 보면 웃긴 일이고 개성이 드러나는 글, 사유가 녹아 있는 글이 점점 없어져 가고 있는 이유도 ‘무조건 내가 알려주는 대로 써라, 무조건 이렇게 하면 된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독자들 역시 그렇게 써낸 책에는 관심이 없고, 모를 거라 생각하지만 다 안다. (186 페이지)
오랫동안 편집자로 일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원고들을 보며, 새롭게 작가로 데뷔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도 많았을 테지만, 책을 읽다보면 이 책은 상당히 "겨냥한" 느낌이 들어요. 제가 좀전에 언급했던 "다이어트 광고같은 글쓰기 비즈니스"를 향해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 것 같거든요. 우아하지만 단호하게 비판하는 그녀의 말이 통쾌하기도 했습니다.
그 어떤 주제가 나와도 구체적인 방법은 없고 ‘자신을 만나 컨설팅과 조언을 듣고 바뀌었고, 변했다’로 끝을 맺었다. 결국 그 대표를 만나 컨설팅과 조언을 듣지 않는 이상 그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그런 노하우를 밝히는 것이 영업 비밀을 누설하는 거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글이라면 이 책은 고급스러운 전단지에 불과할 뿐이다. 어쨌든 그 책은 무언가 얻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 독자에게 꽤나 큰 배신감을 안겨 준 책이었다. (28 페이지)
얼마 전에 읽었던 책이 생각나기도 했어요. 저자의 말대로 "나한테 와서 인생 바뀐 사람이 정말 많다. 책에서는 공개 못하는 노하우를 몇백 만원 클래스에서는 공개한다"고 강조했던 책이었죠.
아이를 키워 본 주부가 책을 쓴다면 ‘아이 교육 전문가, 놀이 육아 전문가’ 등으로, 직장인이 책을 쓴다면 ‘독서법 전문가, 퇴사 준비 전문가’ 등으로 없던 직업을 하나씩 만들어 주는 것이 우아하게 말해 브랜딩이고 막말로 하면 포장이다. (213 페이지)
이렇게 신랄하게(?) 다른 책들을 비판한 그녀의 책은 어떨까요? 저는 책을 읽으면서 "정말 정직하게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저자가 오랫동안 편집자로 일하면서 쌓아온 노하우와 팁들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느낌이었어요. 작가가 되고 싶거나 책을 쓰고 싶은 사람들의 기본적인 마음자세와 노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신뢰가 갔어요. 조금만 생각해보면 "짧은 시간에 쉽게 전문가가 될 수 있다"처럼 터무니없는 주장도 없으니까요. 저자가 말한 것처럼 시간과 노력을 다해 가치있는 글을 써서 책으로 출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도(正道)이자 유일한 길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아낌없이 노하우를 쏟아내었지만 이 글을 읽고 실천할 수 있는지는 전혀 다른 이야기겠죠. 저도읽으면서 책쓰기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을 반성했답니다. 연말로 생각했던 출판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더욱 치열하게 준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순간이었어요. 지금 책쓰기를 고민하고 계시다면 괜히 엄한(?) 책에 시간과 돈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이 책으로 자신만의 특별한 출간 준비를 하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