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 플랜북 - 한 권으로 완성하는 나만의 세계여행
김동국 외 지음 / 미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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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외국생활 때문인가 저는 누구보다 집을 사랑하고 집에 있는 걸 좋아했답니다. 일주일내내 집에 있어도 전혀 답답하지 않고 오히려 아늑해서 좋았어요. 타지생활을 하다보면 집이 그립고, 고향(?)이 그리웠으니까요. 그래서 공연이나 콩쿨, 세미나 등으로 다른 도시에 다닐 때면 호텔을 벗어나지 않고 늘 방에 콕 박혀 있었답니다. 지금은 가장 후회하는 일 중 하나에요. 

8년 전, 결혼하며 한국으로 완전히 들어오게 되었을 때의 마음은 '여차하면 다시 나가서 살지 뭐~ 이제 동반자도 있겠다, 얼마나 좋아?' 였는데... 세상에. 다시 나가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유학이나 이민은 고사하더라도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느껴진답니다. 이제 아이까지 생기고 나니 더더욱 그렇지요. 
그래서인가, 아니면 드디어 철이 들어가는 것인가(?) 요즘에는 참 여행 생각이 간절하답니다. 하다못해제주도에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도 설레고 행복해지더라고요. 예전에는 다른 곳에 가서 고생하는 것이 그렇게 싫었는데, 아이가 조금 큰 지금은 고생 좀 하더라도 새로운 곳을 보고 경험을 쌓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세계여행 플랜북>은 이런 저에게 단비같은 책이었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실제로 세계여행(혹은 대륙여행)을 한 다섯 팀(!)의 실질적인 경험담과 팁이 실려있어 언제 올지 모르는 우리만의 세계여행을 좀 더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었어요. 

7월 초, 결혼기념일을 맞아 제주도에 2박 3일 다녀오면서 깜지 쓰듯 여행 계획을 빼곡히 짜봤답니다. 아들도 웬만큼 커서 액티비티를 함께 즐길 수 있기도 했고 숙소에만 콕 박혀 아까운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게다가 하필이면 여행이 폭풍을 동반한 장마 때라 비가 올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의 수를 따져 꼼꼼하게 시간표를 작성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여행 계획을 세울 때는 시간표를 짜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특히 먼 거리를 이동하는 여행이나 바꿀 수 없는 일정(비행기나 기차 시간표, 숙식 등)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유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으려면 경험이 좀 쌓여야 할 것 같았답니다. 처음부터 장기간의 세계여행보다는 몇 주, 혹은 몇 달 정도의 여행을 하며 스스로가 어떤 여행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준비하고 실행해야 하는지 연습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가장 놀랐던 것은 세계여행이 의외로(?) 많은 예산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단 일주일 유럽여행 여행사 코스에 몇백 만원이 깨지는 것을 보면서 세계여행을 하려면 적어도 집과 재산을 다 팔고(?!) 떠나야 하는구나 싶었는데, 고급 액티비티를 서너 개 포함해서 2년 일정에 3500~4000만원이라니, '이거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구나!' 싶었답니다. 물론 지금 당장은 가능하지 않다 하더라도 목표를 가지고 꿈꿔볼만한 목표가 된 것 같아요. 
게다가 저자들이 제안한 루트뿐만 아니라 아낌없이 전수한 노하우와 함께 직접 원하는 일정을 짜볼 수 있기에 "맞춤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에요. 남부 프랑스의 코타주르라던가, 크로아티아의 리예카 등 제가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도시들은 아쉽게 빠져있었지만 저자들이 가르쳐준 것을 참고해서 루트를 짜면 충분히 여행일정 안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답니다. 확실히 가고 싶은 도시는 개인마다 다른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책의 대부분을 도시를 소개하는 데 쓰고 있긴 하지만 앞뒤로 수많은 노하우를 공개한 이 책이 참 고맙기도 합니다. 

여행에 들고 다니기엔 이 책은 꽤나 묵직합니다(저자들의 조언에 따르면 가장 먼저 가방에서 빼야 할 물품이기도 하지요 ㅎㅎ). 혹시나 해서 eBook으로 출간되었을까 찾아봤더니 아직이더라고요. 만약 전자책으로 출간된다면 꼭 다운받아서 가져가고 싶은 "세계여행 잡학사전"같은 책이었답니다. 언젠가 올 지 모르는 인생 버킷 리스트를 꿈꾸는 분이라면 꼭 읽어보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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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경영 - 4차 산업혁명과 파괴적 혁신 대우휴먼사이언스 22
홍대순 지음 / 아카넷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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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어 올해도 참여하고 있는 예술인파견지원 사업을 진행하면서 수시로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질문은 '과연 나는 이 사업을 통해 예술적 개입을 실현하고 있는가'입니다. 


예술적 개입(artistic intervention)
듣기만 해도 "있어 보이는" 말이긴 합니다만 직접 현장에서 뛰고 관련 서적을 읽고 인터넷에서 선례 자료를 찾아보아도 더욱 막막해지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벌써 5년째 국가지원을 받아 한국예술인복지재단과 문화체육관광부가 진행하고 있는 예술인파견지원 사업을 극도로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예술인들이 기업 혹은 기관에 파견되어 예술적 개입을 통해 기업/기관의 이슈를 분석하고 혁신을 이룬다" 정도일텐데 예술과 경영이라는, 어찌보면 극적으로 대치되는 관계에 있는 두 분야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혁신을 만들지에 대한 실질적인 매뉴얼은 아직 미비한 상태입니다.

이 책 <아트경영(The Art of Business)>의 저자 홍대순 씨는 세계 최초로 경영 컨설팅 회사인 Arthur D. Little의 코리아 대표를 역임한 경영 베테랑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제목인 "아트경영"은 예술로 경영해나간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은데, 영문 제목 "The Art of Business"는 전혀 다른 뉘앙스를 풍기고 있어 혼란스럽네요. 굳이 저자의 이력을 자세히 보지 않아도 그가 "예술"보다는 "경영" 쪽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다른 경영 전문가와 다른 점이라면, 기업의 미래를 "예술"에서 찾고있는것입니다. 


아트경영에서의 투입 자원은 경영과학 시대의 물리적 자원과는 다른 상상(imagination), 감성(emotion) 등의 매우 소프트한 자원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자원들이자 무한 자원이다. 사용하고 사용해도 소진되지 않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상상과 감성 자원을 통해 구현하는 산출물은 의미(meaning), 심비(beauty), 감동(excitement)으로 구성된다.


사실 지금 모두가 변화와 혁신을 외치지만 그 변화와 혁신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이 없습니다.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렇기 때문에 회사마다 외치는 혁신과 패러다임의 전환이 공허하게 들리는 것 같아요. 번지르르한 말 뒤에 정작 내실은 없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저자는 소프트한 자원으로의 전환, 가치의 변화,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의 업무환경 등이 없다면 그토록 애타게 외치는 변화는 찾아올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이때 변화의 주된 핵심은 예술가들의 창작과정에서 얻은 것이며, 이는 인간의 본성에 부합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오랜 세월동안 예술과 경영 사이의 접점을 찾고 예술을 경영으로 접목시키기 위한 저자의 연구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짧은 시간 고민한 뒤 가설을 세운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례와 이론을 공부하고 분석하며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 저자의 노력에 숙연해질 정도니까요. 분명 이런 가설과 함께 연구를 시작했을 때는 예술경영에 대한 지식도 이해도 전무했을텐데 말입니다. 
저자의 연구는 기업을 경영하는 실무진에게도 유익하지만, 예술인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예술인의 본분을 다시한번 깨닫고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게 되니까요. 또한 저자가 갈망하는 예술이 우리 사회에 이런 긍정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려면 우리 예술인들의 역할이 참 중요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정작 창작활동을 하는 우리들은 쉽게 그 가치를 잊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곤 하니까요. 

1부에서는 "왜 아트경영이 필요한지"에 대해 설명하고, 2부에서는 아트경영이 실무에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사례를 소개합니다. 아무래도 아트경영 자체가 생소하고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이렇다 할 사례가 없다보니 2부 보다는 1부가 훨씬 임팩트있고 호소력이 있었던 것 같아요. 후에는 2부가 1부만큼 단단해지도록 국내에서도 좋은 사례가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알지 못하던 가치를 정립하고, 그것에 시간과 열정, 자원을 들여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테지만 말이에요. 

책에서 소개된 오스트레일리아의 원로배우 폴 호건(Paul Hogan)의 말이 가슴 깊이 와닿습니다. 어쩌면 그의 Statement가 왜 아트경영에 미래가 있는지 단번에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없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묘사한 세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 폴 호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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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위한 집필 안내서 - 궁금하지만 물어볼 수 없었던 작가와 출판에 대한 이야기
정혜윤 지음 / SISO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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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자기계발과 실용서에 빠져있다가 어느 순간 "현타"가 왔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한 권을 써머리(Summary)해도 A4용지의 반도 채 되지 않는다던가, 30페이지로 요약할 수 있는 내용을 지지부진하게 끌어 300페이지를 만든다던가, 책 제목이나 프롤로그와는 전혀 다른 결론으로 끝나버리는 책들. 그중 일부는 사서 본 책도 아닌데 읽은 시간이 아까워 억울할 때도 있었어요. 조금 더 과장해 보태자면, 이 책을 만들기 위해 베어진 나무에게 미안해질 정도랄까요. 


새로운 인생의 챕터를 꿈꾸며 책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이미 몇 년 전부터 불고 있는 유행이죠. 문제는 어디에나 그렇듯이 "수요"가 있다보니 그것을 노린 상술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는 거에요. 오프라인 서점에 가면 어렵지 않게 "책쓰기를 위한 책"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중 대다수는 마치 동네 헬스클럽 전단지에나 쓰여있을 만한 제목을 가지고 있는데요, "당신도 한 달 만에 책을 낼 수 있다", "누구나 쉽게 책 쓰기", "잘나가는 작가로 제2의 인생 살기" 등 다이어트 광고같은 책들이 쏟아져나오다 보니 이젠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어지지 않더라고요. 간혹 그런 책들을 읽어야 할때면 끝까지 멈추지 않고 읽는 게 고역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답니다. 

그러다가 이 책을 만났어요. <작가를 위한 집필 안내서>. 뭔가 제목에서부터 진정성이 느껴졌다고 하면 과장일까요. 이 책 또한 "이것만 알면 당신도 작가!" 라고 이름붙일 수 있었을텐데 왜 이렇게 다소 딱딱해보이는 제목을 선택했을까 싶기도 했죠. 어쩌면 바로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 참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자인 정혜윤 씨는 (책에는 자세히 나오지 않았지만 맥락상) 이 책의 출판사인 SISO의 대표이자 10년넘게 북에디터로 활동한 이력이 있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넘사벽의(?) 커리어 우먼인 것만 같은데, 아이를 낳고 2년 뒤 1인 출판사를 차려 바쁘게 일하고 있는 워킹맘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녀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건 남편의 외조가 절대적이었다고 하네요. 지금도 쉴 새 없이 원고를 확인하고 글을 다듬고 책을 출간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정혜윤 씨가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이 책을 쓰게 된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책 쓰는 것에 기술이 있다는 것도 생각해 보면 웃긴 일이고 개성이 드러나는 글, 사유가 녹아 있는 글이 점점 없어져 가고 있는 이유도 ‘무조건 내가 알려주는 대로 써라, 무조건 이렇게 하면 된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독자들 역시 그렇게 써낸 책에는 관심이 없고, 모를 거라 생각하지만 다 안다. (186 페이지)


오랫동안 편집자로 일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원고들을 보며, 새롭게 작가로 데뷔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도 많았을 테지만, 책을 읽다보면 이 책은 상당히 "겨냥한" 느낌이 들어요. 제가 좀전에 언급했던 "다이어트 광고같은 글쓰기 비즈니스"를 향해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 것 같거든요. 우아하지만 단호하게 비판하는 그녀의 말이 통쾌하기도 했습니다.


그 어떤 주제가 나와도 구체적인 방법은 없고 ‘자신을 만나 컨설팅과 조언을 듣고 바뀌었고, 변했다’로 끝을 맺었다. 결국 그 대표를 만나 컨설팅과 조언을 듣지 않는 이상 그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그런 노하우를 밝히는 것이 영업 비밀을 누설하는 거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글이라면 이 책은 고급스러운 전단지에 불과할 뿐이다. 어쨌든 그 책은 무언가 얻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 독자에게 꽤나 큰 배신감을 안겨 준 책이었다. (28 페이지)


얼마 전에 읽었던 책이 생각나기도 했어요. 저자의 말대로 "나한테 와서 인생 바뀐 사람이 정말 많다. 책에서는 공개 못하는 노하우를 몇백 만원 클래스에서는 공개한다"고 강조했던 책이었죠.



아이를 키워 본 주부가 책을 쓴다면 ‘아이 교육 전문가, 놀이 육아 전문가’ 등으로, 직장인이 책을 쓴다면 ‘독서법 전문가, 퇴사 준비 전문가’ 등으로 없던 직업을 하나씩 만들어 주는 것이 우아하게 말해 브랜딩이고 막말로 하면 포장이다. (213 페이지)


이렇게 신랄하게(?) 다른 책들을 비판한 그녀의 책은 어떨까요? 저는 책을 읽으면서 "정말 정직하게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저자가 오랫동안 편집자로 일하면서 쌓아온 노하우와 팁들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느낌이었어요. 작가가 되고 싶거나 책을 쓰고 싶은 사람들의 기본적인 마음자세와 노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신뢰가 갔어요. 조금만 생각해보면 "짧은 시간에 쉽게 전문가가 될 수 있다"처럼 터무니없는 주장도 없으니까요. 저자가 말한 것처럼 시간과 노력을 다해 가치있는 글을 써서 책으로 출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도(正道)이자 유일한 길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아낌없이 노하우를 쏟아내었지만 이 글을 읽고 실천할 수 있는지는 전혀 다른 이야기겠죠. 저도읽으면서 책쓰기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을 반성했답니다. 연말로 생각했던 출판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더욱 치열하게 준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순간이었어요. 지금 책쓰기를 고민하고 계시다면 괜히 엄한(?) 책에 시간과 돈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이 책으로 자신만의 특별한 출간 준비를 하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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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반려견을 돌보는 중입니다 - 노견 케어법과 남겨진 이들을 위한 위로법
권혁필 지음 / 팜파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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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았던 친동생이 일본으로 가게 되면서 정성껏 키웠던 햄스터를 제게 맡겼답니다. 연한 베이지색 털과 몽실몽실한 엉덩이가 참 귀여웠던, "코코리"였어요. 

지금은 동생과 할 얘기 안 할 얘기 다 하며 친하게 지내지만, 그때만 해도 참 다른 취향과 라이프스타일로 서먹했어요. 그래서 동생이 일본으로 가면 비엔나에 혼자 남게 되는 것에 걱정하지 않았는데 막상 닥치고 나니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더라고요. 넓은 집에 혼자 살면서 코코리에게 온갖 애착을 쏟기 시작한 이유가 되었답니다. 


한 살 반 밖에 되지 않은 나이었지만, 많은 햄스터가 그렇듯 코코리도 엉덩이 쪽에 종양이 생겨 부풀어 올랐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왠지 모르게 코코리가 떠났음을 '알았어요'. 떨리는 손으로 코코리의 집을 열어보니 동그랗게 몸을 말고 톱밥에 몸을 숨긴 채 딱딱하게 굳어있었답니다. 일어날 일인 걸 알았지만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몰랐어요. 밤낮없이 울고 또 울고... 너무도 괴로워하다가 그만(?) 강아지를 입양하기로 덜컥 마음먹었답니다. 그렇게해서 가족이 된 강아지가 바로 우리집의 "나이 든 반려견" 미아에요.

영화 "우리 개 이야기(All About my Dog)"의 마지막 에피소드 "마리모"가 잘 표현해 준 것처럼, 강아지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보다 정말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요. 10년동안 크고 작은 일을 함께 겪은 미아는 어느덧 "노견"이 되었답니다. 스튜디오에서 함께 믹싱 작업을 하고, 비행기를 타고 파리 공항에서 노숙(!)의 위험도 겪어보고, 백 만원 주고 산 중고차로 독일까지 하루종일 달리기도 하고, 빈 근교에서 열린 공연에는 같이 가기도 했죠. 결혼을 하고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미아와 신랑과 저, 셋이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한국에 들어온 후 알레르기성 질환이 생긴 것 빼고는 10년 동안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말썽 안 피우고 잘 살아준 미아지만, 확실히 노견이 되면서 예전에는 하지 않던 행동을 하곤 해요. 물론 아들 키우랴 일하랴 정신이 없어 잘 돌봐주지 못하는 제 잘못이 가장 크지만, 평생 하지 않던 화장실 실수라던가, 외출하면 심술을 부린다던가... 그렇지 않던 아이가 말썽을 피우니 타격이(?) 더 크더라고요. 혼을 내봤자 뭐가 좋겠냐는 마음에 그냥 수습하고 있지만, 이대로 계속 말썽을 피우면 어쩌나 고민을 할 때 이 책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어요. 분홍색 책 표지와 너무도 순해 보이는 리트리버의 표정 때문인가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와 함께 사는 것이 행복하니?"
이 한 마디의 질문에 반려견의 삶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반려견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하고 싶어 하고, 당신과 함께 추억을 만들어 가고 싶어 합니다. 당신이 어떤 직업을 가졌든, 어떤 집에 살든 그것은 반려견의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습니다. 반려견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함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으로 인해 달라질 반려견의 삶도 정성껏 돌봐주시길 바랍니다. (55 페이지)


아들이 태어난 후, 조용하고 얌전한 미아는 어쩔 수 없이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였어요. 사람이 참 간사한것이, 못되게 행동하면 화를 내고 혼을 내면서 얌전히 잘 있으면 칭찬해주는 것이 아니라 잊어버리게 되더라고요. 그전까지는 딸처럼 온갖 사랑을 독차지했는데, 하루종일 그저 얌전히 있는듯 없는듯 "존재했던" 미아에게 너무도 칭찬에 인색했던 것 같았답니다. 거창한 것도 아닌, 너무도 작은 것인데 그마저도 줄 줄 몰랐던 것 같아요. 그리고 간혹 말썽을 피우는 이제서야 '그동안 미아가 참 착하게 잘 견뎌주었구나. 많이 외로웠겠다' 생각하게 되네요. 

이 책에서 말하길 강아지는 사람보다 훨씬 짧은 수명을 가지고 있지만, 그에 비해 잠을 자는 시간의 비율이 훨씬 높다고 해요. 때문에 강아지가 깨어있는 시간은 정말 소중한,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라는 거죠. 사람의 하루가 강아지에게는 일주일 정도라고 하니 하루라도 산책을 나가지 않거나 놀아주지 않으면 사람으로 따지자면 일주일동안 무료하게 보내는 것과 비슷하겠네요. 
그나마 교하로 이사온 뒤에 가끔 산책을 나가며 바깥공기를 쐬지만, 난개발로 인해 도로 뿐이던 오포에 살 땐 길게는 몇 개월 동안 단 한 번도 나가지 않았던 걸 생각하니 더없이 미안해진답니다. 사람이었으면 거의 "올드보이"의 감금 수준이었을까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햇살같이 해맑았던 미아였는데 말이죠.

나이 든 반려견을 "반려견"이 아닌 "나이 든 반려견"으로 보는 법. 그리고 그 자체를 인정하고 행복한 노년, 그러니까 마지막 시간들을 보낼 수 있게 해주는 것. 이 책은 억지로 눈물을 짜내거나 죄책감을 불러 일으켜 혼을 내는 책이 아니에요. 그저 담담하게 "이러이러합니다. 이렇게 해주시면 좋습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는데도 가슴 한 켠이 아려오는 것은 정말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미아의 모래시계가 어느덧 절반을 넘어 막바지로 가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나서인 것 같아요. 늦었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게 되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10년동안 강아지도 키우고, 아들램도 키우고, 엉망이지만 크고 작은 식물도 함께 키우다보니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생명을 키운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가장 많은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고 믿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죠. 오히려 아들은 언젠가 성장해 엄마아빠의 품을 떠나가겠지만 강아지는 영원히 주인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주인의 행동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게 됩니다. 조금 더 책임감과 사랑을 가지고 돌봐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어렸을 때의 귀여운 얼굴과 빠릿빠릿하고 장난기 가득한 모습 대신, 듬성듬성 빠진 털과 입냄새, 한껏 느려진 움직임과 건조한 발바닥만 남은 노견 미아. 노견을 키우는 것은 처음인지라 너무 많이 몰랐던 것 같아요. 이젠 더이상 "반려견"이 아닌 "나이 든 반려견"으로 미아를 바라보고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고 편하게 마지막 날들을 함께할 수 있도록 배웠던 소중한 시간이랍니다. 열 살 이상의 강아지와 함께 사는 분들께 꼭 추천해드리고픈 책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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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 국민성우 안지환의 도끼 갈아 바늘 만들기
안지환 지음 / 코스모스하우스(Cosmos House)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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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유학 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저희 부부와 친한 베이시스트 오빠가 고맙게도 참여중이던 뮤지컬 공연에 초대해주었답니다. 그 공연을 정말 꼭 보고싶었던 건, 이미 영화를 마르고 닳게(?) 보며 좋아했던 뮤지컬 <헤어스프레이>였기 때문이에요. 


한국 뮤지컬 씬에 아는 사람이 없었으니 대부분 생소한 이름이었어요. 그중 먼저 눈길이 갔던 배역은 역시 트레이시의 엄마인 에드나였죠. 통상적으로 에드나는 엄마지만 남성 배우가 연기하는 데다가 소위 "유명하거나 이슈가 되는" 셀럽들이 연기하는 캐릭터니까요.
2012년 공연 에드나는 배우 공형진 씨와 "국민성우"로 불리우는 안지환 씨의 더블캐스팅이었어요. 저희가 갔던 공연은 안지환 씨가 출연하는 공연이었답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나, 안지환 씨가 자전적 에세이를 출간했다는 소식을 듣고 내심 반가웠어요. 성우 안지환의 이름은 잘 알지 못했는데 6년 전 즐거웠던 뮤지컬 공연에 출연했던 배우이기도 하고, <TV 동물농장>, <위기탈출 넘버원>의 목소리로 이미 정말 친숙한 성우였으니까요.

마부작침(磨斧作針). 도끼를 알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뜻이라네요. 예화는 저도 어렸을 때 들었던 적이 있었어요. 당나라의 시인 이태백이 공부하기 싫어 선생님 몰래 산을 빠져나오다가 돌에 도끼를 갈고 있던 할머니를 만났다고 해요. 궁금하게 여긴 이태백이 묻자 할머니는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계속 하면 도끼로 바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답하죠.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계속 하면"이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던 이태백은 이내 산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안지환 씨는 자신의 주머니에 있던 것이 송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심정으로 노력에 매진했다고 해요.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는데, 어렸을 때는 자신이 주머니에 송곳을 가지고 있어서 굳이 나타내지 않아도 어느 순간 송곳이(자신의 재능이)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을 살다보니 피나는 노력 없이는 아무 것도 되지 않음을 깨달았다는 뜻이었어요. 그때부터는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심정으로 한 시도 쉬지 않고 목표를 향해 달려왔다고 하니 정말 멋진 청춘을 보내신 것 같네요. 


한 때 나는 스스로를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고 생각했다.
애써 숨기고 감춰도 탁월한 재능이 저절로 드러날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때부터는 할 수 있는 일이 노력밖에 없었다. 
도끼가 바늘이 되도록 스스로를 갈고 또 갈아야 했다. 
(프롤로그 중, 11 페이지)

유복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가난하지도 않았고, 불행하지는 않았지만 인생의 고저를 경험하며 여러 번 좌절을 맛본 안지환 씨의 에세이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그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걸까... 이 책을 읽으면서 수시로 느꼈던 감정이었답니다. 그는 스스로 이 책을 "도끼를 갈아 바늘로 만들어가는 긴 여정의 중간기록(프롤로그 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래서인가 책을 읽다보면 간혹 "이 이야기가 여기서 왜 나오지?" 할만한 에피소드들이 등장하곤 해요. 아마 본인의 기억을 완전히 보존하고 싶었던 저자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봅니다. 

만 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고, 셀 수 없는 많은 방송을 진행했지만 이전 히딩크 감독의 "나는 아직 배고프다"는 말처럼, 안지환 씨는 자신이 이룬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유명해지고 ㅎㅎ) 더 높은 것에 도달하기를 갈망하는 듯합니다. 또한 하나뿐인 딸을 응원하며, 힘든 한국 연예계에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마음이 참 멋진 것 같아요. 올해 그는 한국나이로 50세가 되셨다고 하네요. 반 백년이라는 세월동안 쉬지 않고 앞만 바라보고 달려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취감보다는 아쉬움이, 과거보다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큰 것 같은 그의 인생이 엿보이는 책이었답니다. 

딱히 글을 잘 쓰려고 한다거나, 멋지게 표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담담하게 옆의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쓰여진 글이라 단번에 끝까지 읽어버렸어요. 문장 사이사이에, 줄과 줄 사이에 지난 세월에 대한 자부심과 앞으로 다가올 더 멋진 시간에 대한 기대감이 묻어나오는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죠. "노력한 사람이야말로 진짜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런 면에서 안지환 씨는 마음놓고(?) 자랑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할 수 있는 게 노력밖에 없었다"는 그의 말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답니다. 
지금 당장 닥친 부족함과 쉽사리 풀리지 않는 앞길. 하지만 자꾸 다른 곳으로 탓을 돌리려 하는 우리들에게 "노력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아무튼 그의 삶을 엿보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성우를 꿈꾸는 지망생들이 짧게나마 읽을 수 있도록 마지막 챕터를 비롯하여 책 곳곳에 노하우를 공개하고 있답니다. 조만간 이 내용을 더 보충하여 전공서적으로 출간할 계획이라니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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