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 Up - 초급과 고급 과정의 실전 페미니즘
율리아 코르빅크 지음, 김태옥 옮김 / 숨쉬는책공장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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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째 뉴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미투고백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참 심란해집니다. 우리 사회에 이렇게나 성폭력이 만연했다는 사실도 경악스럽지만,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상반된 반응이 더 경악할 노릇이니까 말이죠. 게다가 이 모든 것이 여성인권운동과 "페미니즘"과 연결이 되면서 상황은 더욱심각해진 것 같습니다. 지지받고 도움이 필요한 성폭력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젠더의 대립이 일어났으니 말이죠. 혹자는 이것이 "반드시 거쳐야 할 과도기적 사건"이라고 했지만, 불처럼 번져가는 사회적 현상이 결국 어디로 향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저는 페미니스트는 아닙니다. 이것은 제가 "실제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한국에서 통용되고 이해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마치 정치적으로 보수론자에 속하지만 한국에서는 "보수=자유한국당"으로 통하기 때문에 보수론자라고 말하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터진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것들이 조금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페미니즘에 대한 구체적인 공부와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페미니즘이 옳다고 말할 수도, 옳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죠. 때문에 "초급과 고급 과정의 실천 페미니즘"이라는 부제에 이끌려 이 책 <스탠드 업(STAND UP)>을 읽게 되었어요. 


이 책의 저자 율리아 코르비크는 1988년 생으로, 젊은 페미니스트이자 <더 유러피언>의 편집자입니다. "남자아이들만큼이나 팔굽혀펴기를 잘한다"는 체육선생님의 칭찬을 거북하게 느꼈던 그녀는 대학에서 유럽학, 커뮤니케이션학, 그리고 신문방송학을 공부하면서 남자 저자들의 책만 실어놓은 것에 화가 났다고 합니다. 새로운 반향을 이끌고 있는 30대의 대표적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녀의 문체는 다소 공격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제가 아는) 다른 페미니스트들에 비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느낌이 들었던 책이었습니다. 물론 혼전성관계나 낙태, 성소수자에 대한 그녀의 의견은 우리나라에서 그 자체만으로도 거북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이것은 어쩔 수 없는 문화적 장벽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책에서 등장한 TV 프로그램 <Germany's Next Top Model>이나 특히 <Bachelor> 같은 프로그램을 직접 보면 저자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정말 무리는 아니다 싶으니까요. 성적으로 대단히 개방적이지만 그것이 상당히 남자들에게 유리하게 국한되어 있고, 많은 여자들이 그러한 "개방된" 문화 안에서 역차별을 당하거나 성적인 유린대상이 되어버리는 것은 - 적어도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거기에서 우리나라 정서와 공통분모를 찾는 것부터 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런 불편한 감정과 선입견을 내려놓고 이 책을 읽는다면 "아, 페미니즘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자 하는구나"의 맥락을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모든 말에 동의하지도 않았고, 마음이 불편한 때가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필요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한 명의 여자 - 그리고 아내, 아들을 가진 엄마 - 로서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볼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이런 자아성찰과 고민은 현대를 살아가는 누구나 가슴 속에 담아두어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은 "당신도 페미니스트이며, 이제 그것을 인정하라!"고 수없이 권하지만, 저는 아직까지도 제가 페미니스트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물론 페미니즘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정신 - 사람은 누구나 성별(젠더)에 관련없이 동등한 기회를 부여받아야 한다 - 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며 그렇지 않은 불의가 일어날 때 분노합니다. 하지만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지지하고 그 편에 서기에는 페미니즘 역시 너무나도 많은 모순과 자기합리화에 물들어있다는 생각에 쉽지 않아요. 


저자는 - 상당히 적은 부분이긴 하지만 - 여자들이 차별받는만큼 남자들 역시 자신의 성 때문에 많은 차별을 받고 있고, 이것 역시 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굉장히 공감되는 부분이에요. 자신에게 유리한 이권은 그대로 누리면서, 차별당하는 것만 억울하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나라에서건 어디에서건 페미니즘 운동은 결코 범국민적인 지지와 이해를 얻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부터도 공감할 수 없으니까요. 

책을 읽던 중, 지금의 "미투 사태"에 맞는 구절도 찾을 수 있었어요.


그러나 이는 우리가 생각하던 틀에 맞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경험한 것을 강간에 포함시켜야 하는지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피해자가 많다. 게다가 그들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인지의 여부까지. 칼을 든 낯선 사람이 수풀 속에서 튀어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해자에게 연대의식을 느끼며 보호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그는 원래 좋은 사람이었어! 아무도 자신을 믿어 주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차라리 관계를 유지시키려는 것이다. '진짜' 강간의 신화는 여성들이 친분관계를 끝내고, 연락을 끊고, 고소하는 일을 어렵게 만든다. (272 페이지)


개인의 잘못이나 실수, 범죄, 이례적인 일이라고 치부하지 말고, 이것을 사회적으로 분석해보고 어떤 변화가 필요할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서로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배려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성 자체를 적으로 간주하고 뭐든지편을 갈라 적대관계를 조성한다면, 과연 이것이 성숙한 인격적인 성장을 위한 것이 될 수 있을까요?

책에 등장하는 몇몇 인물은 "여성, 남성이라는 말 자체를 없애야 한다"라고 주장하는데,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았던 부분이에요. 저는 "한국인"이고 무엇이 어떻게 되건 끝까지 "한국인"으로 남을 거에요. 설사 언젠가 국적을 바꾼다 하더라도 제가 "한국인"이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을 테니까요. 마찬가지로 저는 "여성"이고, 제가 무슨 일을 하건 어디에 가건 "여성"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것을 부정하거나 지우려 하는 것은 "여성"이라는 것 자체가 마치 열등하거나 감추어야 할 것처럼 치부하는 것 아닐까요. 저는 여자이고, 이대로가 좋아요. 제 남편과 아들이 남자이고, 그대로가 참 좋은 것처럼요. 여성이 여성으로서 존중받고 싶다면 남성을 남성으로서 존중해야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보수와 진보 만큼이나 이번 미투 사태는 남성과 여성의 대립구도 속에 그 본질을 잃어가고 있지 않나 걱정이 됩니다. 성경은 "사랑은 이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7)"라고 말합니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 그리고 사랑이 있다면 거쳐야만 하는 이 힘든 상황을 성숙하게 해결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많은 남성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도 불편하고 "욱" 치밀어 오르는 순간도 있겠지만, 적어도 "반대되는 입장의 사람들의 생각"을 알기 위해 한번쯤은 읽어볼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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