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배우는 우리아이 감정읽기 - 0~2세 부모가 알아야 할 발달단계별 아이의 심리
린 머레이 지음, 김경영 옮김 / 이덴슬리벨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 참 스펙터클하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책을 받아들자마자 펼쳐 읽기 시작했다. 0세에서 2세 아기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라니, 이제 18개월을 바라보는 아들을 가진 내겐 조금 늦은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래도 놓칠 수 없었던 특별한 육아책. 도대체 어떤 내용을 만나게될까 궁금했다.

그리고 나의 궁금증은 특별하게도 기대 -> 놀라움 -> 분노 -> 깊은 깨달음 의 굴곡진 롤러코스터를 경험하게 되었는데,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느낀 것도 정말 오랜만이다. 중간즈음 읽었을 때는 완독이고 뭐고 그냥 "뭐 이런 책이 다 있어!" 하며 덮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래도 기왕 읽기 시작한 것, 도대체 어떻게 끝나나 보자(?) 하는 심산으로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마지막 몇 장을 남기고서 나의 때 아닌 분노는 깊은 깨달음으로 변해버렸다. 이 무슨 드라마도 아니고.

초초초보 엄마였던 내가 아기를 키우면서 범했던 가장 큰 실수를 꼽는다면 뭐니뭐니해도 "월령별 아기 발달"을 너무 신뢰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초보 엄마들에게 이러한 가이드는 거의 성경말씀이다. 무지와 두려움으로 가득한 새로운 인생에 한 줄기 빛처럼 찬란하게 비춰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엄마들의 성향을 잘 알고있는 듯, 각종 육아서와 육아 가이드, 병원, 발달센터, 심지어는 분유회사나 이유식 용품 회사들까지 저마다의 엄청난 이론을 펼쳐대곤 한다. 심할 경우엔 "주차별 발달"까지 거론해가면서, '생후 12~14주에 첫 급성장기가 찾아와 잠을 잘 안 자고 보채게 된다' 등의 노스트라다무스 버금가는 망할 예언들을 쏟아내는데, 그놈의 급성장기와 배앓이, 유문협착증 덕분에 첫 6개월을 얼마나 가슴졸이며 두렵게 보냈는지, 언제 한 번 그딴 이론을 펼쳐대는 사람들을 만나면 한 방 날려주고 싶은 기분이다. 혹시 나같은 초초초보 엄마가 밤새 자지 않고 울어대는 아기 때문에 두 눈이 팅팅 부어 고민하며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급성장기 따위는 없고(만약에 있다 한들, 어쨌든 그들이 말하는 그 시기는 분명히 아닐 것이다!), 배앓이나 유문협착증은 너무나도 소수의 아기들에게 나타나는 드문 현상이라고. 그냥 그 때 아기들은 해줄 거 다 해준 것 같은데도 울고 안 자는게 일상이고, 시간이 지나가면 저절로 좋아지고 해결될 것이라고 말이다. 부디 나처럼 온갖 분유와, 젖병과, 각종 육아용품을 수집하며 애꿎은 아기를 괴롭히지 않길 바란다.

서론이 길었지만,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더이상 쓸데없는 육아서"는 보지 않겠다고 다짐한 나였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바로 "사진"이라는 특징 때문이었다. 기존의 육아서는 "이러이러하게 하면 아기가 잘 잠. 끝"에서 그쳤다면 이 책은 사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증명해보일거라 기대했다. 그리고 그 궁금증과 기대는 책 안에서 확실하게 채워질 수 있었다. 짜증날 정도로 말이다.

도대체 이 책 대로만 된다면 육아 스트레스라는 것이 존재할까?

갓난아기를 몇 번 쓰다듬어 엄마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면 아기가 즐거워 하면서 논댄다(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혼자 침대에 눕히고 이제는 잘 시간이라고 말하며 토닥여주면 낑낑대다가 이미 잠이 든댄다(세 시간 울리고 포기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 온갖 위험한 행동을 하는 아이에게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설명하면 엄마 눈치를 보며 그 행동을 멈춘댄다(말이여 방구여). 도대체 이게 어느 나라 이야기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이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영화 시퀀스를 캡쳐한 듯 자세한 사진들이 그 내용을 확실히 증명해보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뭐지? 우리 아기만 안되는 건가? 내가 잘못하는 거였나? 도대체 뭐가 다르기에 우리 상황이랑 이렇게 다른건데??

이쯤 읽었을 때 나의 궁금증은 가히 분노(?)로 변해버렸고, 어쨌건 이 책을 빨리 읽어버린 뒤 신랄하게 비판할 생각에 부풀어있었다. 몇천만 아기들 중 말을 듣는 몇몇 아기의 행동을 마치 보편적인 것인마냥 소개해놓고, 그렇지 못한 아기들이 이상하거나 그 아기들을 돌보는 엄마들이 모자란 것처럼 매도하는 흉악한(?) 책이라고 동네방네 떠들어야겠다는 의협심마저 들었다.

천만다행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끝까지 읽을만큼 내게 인내심이 남아있었다는 것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 책의 내용들을 적용하고 시도해볼만큼 용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앞서 이미 말했듯, 이 책을 읽어감에 따라 나의 "분노"는 점차 "깊은 깨달음"으로 변했고, 지금은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이 보여주는 현상에 집착해 그 결과를 이끌어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은 육아의 기본적인 자세와 아이를 대한 태도가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수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아기가 교육과 연습을 통해 능숙하게 수저로 밥을 먹게 되는 것은 하나의 현상이다. 하지만 그 현상은 무슨 비기나 치트키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은 바로 이 부분에서 부모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한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돌이 조금 지난 여자아이는 엄마가 양치질을 시켜주려고 하자 강하게 저항한다. 여기서 대부분의 엄마들 같으면 저항하는 아이의 손을 붙잡고 울려가며 양치질을 시켰겠지만(그렇다고 안 시킬 수는 없으니까!), 이 책은 조금 우회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양치질을 하고 싶지 않아하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준 뒤 칫솔을 가지고 엄마가 양치하는 흉내를 내고, 아이에게 엄마 이를 닦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양치하는 것이 어느새 놀이가 된 뒤에 다시 조심스럽게 양치질을 시도하고, 아이는 저항하지 않고 즐겁게 양치질을 마친다...... 교육만화에나 등장할 것 같은 이야기다. 호비와 함께 치카치카 노래를 부를 때는 그렇게 열심히 이를 닦는 흉내를 내면서 막상 양치질을 하려고 하면 울기 일쑤인 아들의 모습을 보면 좀처럼 이렇게 될 거라 상상이 가지 않았다.

속는 셈치고 책에 나온대로 시도하기 시작했다. 과정은 조금 달랐다. 하루에 수시로 장난감 칫솔로 양치질 하는 흉내를 냈고, 아들에게 내 이를 닦아달라고 부탁했다. 확실히 인형의 이를 닦아주는 것보다 더 재미있어 했고(간혹 목젖까지 밀어넣는 바람에 죽을뻔 했다), 아들이 한참 내 이를 가지고 논 뒤에는(!) 나 역시 장난감 칫솔로 아들의 이를 닦아주는 흉내를 냈다.

저녁이 되어 양치질 할 때가 되면 억지로 앉히거나 입을 벌리게 하지 않고 충분히 설명해주며 기다려주었고, 평소 칫솔모를 물어뜯어버리는지라 절대 칫솔을 쥐어주지 않았는데 "혼자 해볼래?" 하고 먼저 건네기도 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양치 하는 시간이 놀랍게 수월해졌다. 드물긴 하지만 혼자 무릎에 누워 입을 벌리기도 하고, 마지막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참는 때도 있었다. 물론 하기 싫다고 울거나 떼쓰는 경우도 있지만. 이 정도면 아주아주 놀라운 발전이다!

어쩌면 지난 많은 육아서를 읽으면서 좌절하고 짜증내고 괴리감에 멘탈이 붕괴되었던 것은 그 책의 문제라기보다도 마치 책의 내용이 아이와 내게 닥친 모든 문제를 한 방에 날려줄 치트키라고 기대했던 나 자신 때문은 아니었나 돌아보았다. 무슨 마법 주문도 아니고, 이대로 하면 아이가 정해진 시간에 자고, 일어나고, 정해진 분량의 분유나 이유식, 밥을 먹고, 기대하는 행동만 하면서 문제없이 자라줄 것처럼 말이다. 써놓고 보니 잠시나마 그렇게 생각했던 내 자신이 더 한심해진다. 멀리 갈 필요 없이 나 자신만 봐도 절대로 이렇게 될 수 없다는 걸 어렵잖게 알 수 있었을텐데.

문득 엄마들의 교과서이자 애증의 육아서로 불리우는 <베이비 위스퍼>가 떠오른다. 아기가 태어나기도 전 두 권을 밑줄쳐가며 정독했지만, 육아를 시작하며 책대로 되는 것이 단 한 개도 없어 집어던져버렸다. 육아를 책으로 배우려 했던 자기 자신을 탓해가며 도움이 되지 않는 책이라고 단정지었지만, 얼마 전 출산을 앞둔 지인에게 주기 전 다시 읽으면서, 그 책의 내용이 결코 허황되거나 말도 안되는 것이 아니라고생각했다. 문제는 당장 앞에 닥친 문제와 현상들에 집착해 가장 기본적인 틀을 보지 못한 나의 미숙함이었다. 참 늦게도 깨달았지만, 지금이라도 안 게 어디냐 위안삼고 있다.

<사진으로 배우는 우리 아이 감정 읽기>는 출산을 앞두었거나 갓난아기를 키우는 모든 엄마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알찬 내용도 그렇지만, 육아를 하며 엄마가 취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태도를 보여주는책이기 때문이다. 당장 아기가 안 먹고, 안 자고, 안 노는 것에서 잠시 눈을 떼어 "아기가 왜 그러는지, 내가 어떻게 위로하고 도와줄 수 있을지" 생각할 수 있다면 육아가 지금보다 몇 배는 수월해질 것이다. 진짜 그렇다. 엄마로써 가장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가 (말도 못하는 아기를 앞에 두고) "다 해줬는데 도대체뭐가 문제인거야"라고 소리치는 자신을 볼 때니까 말이다. 내 뱃속으로 낳아놓고선 전적으로 내 도움이 필요한 아기에게 짜증이나 내고 있다니, 화상도 이런 화상이 따로 없다.

18개월을 바라보는 아들은 요즘 소위 "미친 반항기"에 진입하고 있나보다. 조금이라도 뜻대로 되지 않으면 괴성을 지르고 떼를 쓰질 않나, 한 번 기분이 상하면 아주 그냥 난리법석이 나니 하루에도 몇 번 팍팍 늙는 느낌이다. 하지만 (쉽진 않아도) 매 번 "현상이 아닌 그 뒤의 것들"을 보기 위해 노력하곤 한다. 스스로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고, 새로운 것을 탐험하고 싶고, 배우고, 알고, 경험하고 싶은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다 문득 "아 정말 기특하다!"는 탄성이 나왔다. 스스로 세상을 궁금해하고, 배워가고, 습득해가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물론 아직 여러모로 미숙하기 때문에 엄마가 납득하게 표현하진 못하지만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어느새 나는 훨씬 성숙하고 관대한(?) 엄마가 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뭐, 이제 나도 엄마로써 한 살 반을 지나가고 있으니... 이 정도면 양호하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육아에 정신이 없어도, 일과 가정 사이에서 양다리를 있는 힘껏 찢느라 고생스러워도 결코 육아서를 읽기를 멈추어선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애 좀 키워봤다고 안주하기엔, 아직 내가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고, 내 인성 역시 훨씬 더 성숙해져야 할테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곁에 두고 열심히 참고하다가 소중한 지인에게 물려주고 싶은 멋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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