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건방진 캥거루에 관한 고찰
마크 우베 클링 지음, 채민정 옮김, 안병현 그림 / 윌컴퍼니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예전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웃음"을 읽으면서 유머야말로 세상에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작가의 주장이 어쩌면 진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강압적으로 요구하는 것과는 달리 재미있고 유쾌하게 뼛속 깊은 곳으로 내려가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튼 전체적으로 지식과 경험의 수준이 상향화된 지금, 유머와 풍자는 어떤 감동적인 메시지보다 더욱 직접적이고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마크 우베 클링의 <어느 건방진 캥거루에 관한 고찰>은 그야말로 "걸작"이다. 평소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 옳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이상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이렇게 시원하게 긁어주는 풍자라니! "이보시오들, 이것은 이러이러해서 좋지 않으니 우리 저러저러한 방향으로 생각해봅시다" 정도의 진부한 메시지로는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설득력이 있었다. 킬킬대며 웃는 동안 그의 날카로운 메시지는 아무런 저항없이 빨려들어오는 것 같았다. 읽고 있노라면 이것이 풍자라는 것 자체를 잊을 정도로 말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 만큼이나 소설(?)의 시작은 엉뚱하고 묘하다. "평범한" 생활을 하던 저자의 옆집에 어느날 뜬금없이 캥거루 한 마리가 이사를 오고, 피할 수 없는 여러 번의 만남 끝에 (반강제적으로) 그들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무엇보다 말이 많고 서로 보내는 시간 또한 많지만, 정작 캥거루의 진짜 정체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지껄이고 주장하지만, 그가 말하는 것들은 그 자신에 대해 어떤 것도 발설하지 않는다(여기서부터 느끼는 바가 크다). 
재미있는 것은 자신은 확실히 캥거루와는 달리 소시민적이고 책임감있으며,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올바른 사람이라고 (아마도) 여겼던 저자는 날이 가면 갈수록 캥거루와 상당히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물론 둘은 사사건건 다투며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지만, 사회에 대한 불만과 개인주의,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과 꺾이지 않는 (대부분 쓸데없는) 신념에 있어 둘은 꼭 닮았다. 어쩌면 저자는 자기 자신을 투영한 주인공 캐릭터를 통해 사회를 비판하고 뭔가 "더 나은 인간"이라고 스스로 여기는 우리들이 얼마나 실없는 존재인지 나타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면서 키득키득 웃으며 간간히 빵 터졌던(?)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난다. <어느 건방진 캥거루에 관한 고찰>은 풍자인지 만화인지 유머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고, 웃기고, 유쾌하다. 심지어 나와는 전혀 다른 관점을 대변하거나 내 신념에 위배되는 풍자를 할 때도 킥킥거리며 웃어넘길 수 있다(이러니 유머가 엄청난 무기 아닌가!). 
책을 읽으면서 유일하게 아쉬웠던 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풍자를 이해하기엔 나의 사회적/역사적/정치적 지식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좀 더 알았다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을 것을. 염치없는 바람일 수도 있겠지만 역자나 출판사가 좀 더 이 책에 대한 정보나 풍자의 내용을 설명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깔깔 웃으며 책을 덮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궁금하고 미묘한 것들이 떠오르게 되니 말이다 (가장 기본적으로, 왜 그는 캥거루였을까!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에 대한 풍자인가? 근데 왠 공산주의? 경찰은 왜 그를 찾고 있었고,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나타난건지... 아이고 누가 설명 좀 해줬으면 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