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위한 미움받을 용기 - 아들러 심리학의 성장 에너지
기시미 이치로 지음, 김현정 옮김 / 스타북스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제목과 내용이 정말 어울리지 않는 책이다. 이 책을 쓴 기시미 이치로 씨는 아들러 심리학 전문가로 작년에 일본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아들러 심리학의 전문가가 스스로의 육아 경험을 바탕으로 육아심리학 책을 집필해 주신 것만으로도(!) 이 책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어떤 육아전문가가 육아조언서를 쓰기 위해 아들러 심리학을 공부한 것이 아니라 정확히 그 반대의 상황인 것이다.

저자는 서문부터 이 책에는 "육아와 관련되지 않은 것은 적지 않았다"고 선언했고 그 약속은 분명히 지켜졌다. 이 책에는 오롯이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례만 소개되어 있으며 각 상황을 아들러 식으로 분석해보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다른 육아서와 기본적으로 관점의 차이를 가지고 있는 책이다.

앞서 제목과 내용이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 책의 카피문구는 "어떻게 하면 아이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이기 때문에 제목인 "엄마를 위한 미움받을 용기"와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아마도 아이에게 미움을 받더라도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바른 길로 이끌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나온 책이 아닐까 싶었다. 아직 어리디 어린 우리집 꼬꼬마지만 성숙한 엄마 역시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리미리(?) 시작을 하고 싶었던 마음에 책을 집어들었다.

아들이 조금씩 밤잠을 자면서 생겨난 나만의 시간에 다시 독서를 시작했는데, 당연하지만 읽게되는 책의 절반은 육아서였다. 지금까지 정독한 육아서만 서른 권 정도 되니 그래도 "읽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렇게 읽기 시작한 육아서들을 살펴보면 분명히 나라별 특징이 있었다. 아마 문화적 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시대적 특징이 있었고 육아 역시 (흥미롭게도) 트렌드에 아주 민감하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서 책이 발간되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저자의 나이가 어느 정도인지도 책의 내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읽었던 많은 육아책들 (그리고 그 중에 내가 아마도 평생 소장할 주옥같은 책들) 가운데 이 책의 의미는 정말 특별하다. 특별한 목차나 내용의 구성도 없고, 육아를 위한 "쪽집게 레시피"가 나와있는 것도 아니다. "아들러 심리학"이라고 해서 자녀와의 갈등을 심리학적 수리수리 마수리로 풀어보려 이 책을 읽는다면 단번에 실망할 것이다. 이 책의 제목 중 "미움받을 용기"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를 위한" 책인 것만큼은 정말 확실하다.


아들을 키우면서 무엇보다 나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게 되는 시간이 많았다. 오랫동안 켜켜히 쌓여간 나의 내면은 어느샌가부터 잘 들여다보지 않아 먼지가 수북히 쌓인 지하실 같았다. 내가 느끼고 이해하고 생각하는 패턴들은 "그게 나니까"라고 쉽게 넘기기 일쑤였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행동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아들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그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고 말이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흠 하나 없는 새하얀 도화지를 선물받은 느낌이었다. 아름다운 색채와 본격적인 그림은 아이가 스스로 그릴테지만 그 때까지의 스케치는 내 몫이라는 것이 큰 부담이자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특히 인생의 반 이상을 결정한다고 알려진 첫 36개월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아들에게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지 쉽사리 알 수가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무엇보다 내 안의 작은 나와 마주하게 되었다.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생각하고 느꼈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했는지, 기뻐하고 슬퍼했는지 처음으로 제대로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때로는 아픈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했고, 이 책에서 말하는 좋지 않는 부모의 모습이 이미 내게 녹아들어 있는 것 같아 조바심도 났다. 처음 읽으면서는 이해가 가지 않고 '설마 이렇게 해도 괜찮다는 것은 아니겠지?'하고 고개를 저었던 부분도 읽고 또 읽다보니 수긍이 가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많은 감정이 오갔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누가 자기 자식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고 싶지 않을까. 최고의 최고를 주어도 아깝지 않고 오히려 모자라게 느껴지는 것이 엄마아빠의 마음일 것이다. 그만큼 사랑하고 아끼고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인 아이다.
하지만 과연 그 마음을 느끼고 행복하게 감사하는 아이는 몇이나 될까? 엄마아빠가 자신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그 어느 것도 아끼지 않을만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아이들은 얼마나 있을까? 아무리 내리사랑이라고 하지만 (그걸 알고 있는 아이들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정말 아이들의 가히 배은망덕한(?) 미숙함 때문인걸까?

표현하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그렇게 나는 생각한다. 아무리 사랑하고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더라도 그것을 상대방이 느끼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몇십년 지나 "사실 내가 너를 정말 많이 사랑했다"라고 말하면 오히려 듣는 사람이 난감할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책이다. 아니, 앞으로도 계속 필요할 책이다. 어떻게 사랑을 표현하고, 아이를 믿어주고, 신뢰와 사랑 가운데서 존중하며 (그러나 제대로 훈육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 훌륭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 읽어서는 제대로 실천하지 못할테니 읽고 또 읽고 다시한번 더 읽어야지.

문득 이 책의 시리즈로 "아버지를 위한 상처받을 용기"가 함께 발간되었음이 떠오른다. 어떤 책인지 확인해봐야겠다. 신랑에게도 이 책 만큼은 꼭 정독해주기를 부탁했다. 내가 해주는 존중이 아닌 아이가 느끼는 존중, 내가 주는 사랑이 아닌 아이가 느끼는 사랑, 내가 가진 신뢰가 아닌 아이가 아는 신뢰가 되길 바라면서 오늘부터 나 자신이 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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