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가 작아졌어 비룡소 창작그림책 13
정성훈 글.그림 / 비룡소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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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본격적으로 책에 반응하기 시작하면서 엄마의 취미가 되어버린 동화책 수집. 읽고 이해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색감이 예쁘거나 아름다운 그림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좋은 놀이가 된다. 아직 혼자 앉지 못하는 아들이기에 무릎에 앉혀놓고 책을 펼치면 이젠 눈으로만 보지 않고 손바닥으로 탕탕 두들기기도 한다 ㅎㅎ

어지간히 책 욕심이 많은 내가 지칠줄 모르고 모았던 책들은 대부분 전공서적이나 자기계발, 혹은 인문 서적이었다. 같은 책이라도 왠지 소설은 선뜻 구입하게 되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창피한 이야기지만 태어나서 한번도 시집은 구입하지 않았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삭막한 이유였다. 정작 음악을 직업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감성을 충전하는데는 인색한 나였다. 정보, 지식,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는 것이 좋았지, 사색에 빠지고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소설과 에세이, 시집에는 눈이 가지 않았다.

아들 덕분에 동화책을 읽고 하나하나 구입하게 되면서 그동안 메말랐던 마음이 촉촉하게 젖어들어가는 것 같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가장 동화책의 혜택(?)을 보고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나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동화책이라고 단순하고 뻔한 내용이 아니었다. 물론 어른의 입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금새 파악할 수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감탄하게 되곤 했다. 때로는 동화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뭉클해져 눈물이 나오기도 했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사자가 작아졌어>가 특히 그랬다.

선명한 컬러와 특이한 그림체로 눈길을 끌었던 책. "사자가 작아졌다"니 도대체 무슨 말일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아들 이름을 지을 때 사자처럼 용맹한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지금의 이름을 선택했기에 더욱 관심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사자가 작아졌다!
정글의 왕이라 불리는 사자.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던 사자가 작아지고 나니 모든 것이 커다란 장애물로 다가온다. 지금까지 생각조차 안해볼만큼 사소했던 것들이 사자에게 거대해져버렸다.

작아진 몸으로 움직이려다가 그만 물에 빠져버린 사자. 그런 사자를 건져올린건 다름아닌 아기 가젤이었다. 그것도 어떤 아기 가젤이 아니라 바로 어제! 사자가 엄마를 점심으로 먹어버린 그 가젤이었다.
엄마를 빼앗긴 어린 가젤은 복수심에 사자를 물에 빠뜨려버리려고 하고, 사자는 어떻게 해서든 마음을 돌려놓으려고 애를 쓴다.

노래를 불러도, 춤을 춰도, 예쁜 그림을 그려줘도 가젤의 마음을 돌릴 순 없었다. 엄마를 잃은 슬픔. 그것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너무나도 아픈 것이었으니까.

살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가젤의 마음을 돌리려 애쓰던 사자는 자신이 직면한 현실을 직시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어제 저질러버린 일은 애초부터 만회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어린 가젤에게서 엄마를 앗아간 사자는 비로소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깨닫게 된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사과를 건네는 것.
그리고 바로 그 때 마법같은 일이 일어나게 된다...


보잘 것 없이 작아진 사자가 한없이 짧은 팔과 다리로 가젤을 껴안고 사과의 말을 건네던 장면에서 갑자기 뱃속에서 무언가 꿈틀하듯 움직이고 가슴이 메었다. 사과를 한다고 가젤의 엄마가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을 빌미(?)로 사자를 이것저것 부려먹었으면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을런지도 모른다.
우리 사는 사회가 사실 이렇지 않은가 싶었다. 잘못을 했을 때 물질적인 것으로 무마하려들거나, 반대로 남의 잘못을 빌미삼아 한탕(?) 해보려고도 하고... 괴로움에 처한 사람에게 그나마 위로를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진심어린 사과인데 돈 한 푼 들지 않는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싶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사자는 복 받은(?) 게 아닐까? 작아지지 않았더라면, 낮은 곳에서 가젤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더라면 평생 자신이 한 일을 자각하지도, 가젤의 마음을 이해하지도 못했을테니 말이다.


아가들이 읽는 동화책 내용을 뭐 이리 비약하나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읽고 또 읽으면서 감동은 더욱 진하게 다가왔다. 동화책답지않은(?) 그림의 배치와 기법도 인상적이었지만 하염없이 나약해져버린 사자의 모습과 눈물가득한 가젤의 눈이 가슴아팠다. 동화책으로도 이런 감동을 줄 수 있구나 새삼 깨달았다. 저자의 다른 동화책으로는 "토끼가 커졌어"와 "꽃괴물"이 있다는데 이 책들도 꼭 챙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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