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 - 역사학자 홉스봄이 바라본 재즈의 삶과 죽음
에릭 홉스봄 지음, 황덕호 옮김 / 포노(PHONO)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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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는 정말 이상한 분야입니다. 알면 알 수록 더 아리송하고, 배우면 배울 수록 가장 기본적인 것마저 확실하게 말하기 어려워지죠. 음악사를 연구하고 깊이 공부할 수록 점점 “내가 아는 것(혹은 알 수 있는 것)은 정말 한정적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때문에 음악에 관련된 수업이나 강의를 의뢰받을 때마다 가장 꺼리게 되는 것이 바로 음악사 수업입니다.

재즈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재즈가 19세기 말 즈음하여 시작되었고 우리가 알고 있는 대중음악의 뿌리가 되었다는 것쯤은 조금만 찾아보아도 알 수 있지만, 정말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떤 구체적인 영향을 받아 성장하였는지 이야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재즈”라는 개념의 어원조차 베일에 감추어져 있으니까요.

때문에 저명한 역사학자들의 신간은 언제나 반가운 소식입니다. 오랜 연구와 깊이 있는 지식을 가진 역사학자들이 어떤 시선으로 과거를 바라보고 비평하는지 읽으면서 스스로의 견문도 넓힐 수 있으니까요. 때문에 Phono 출판사에서 발간한 한국어판 에릭 홉스봄의 재즈 이야기는 선택이 아닌 필수처럼 다가왔답니다. 오늘은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재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이라는, 조금은 대담한(!) 제목을 가진 흥미로운 이 책을 소개할까 합니다.

 

2014-11-07

 

세상에, 듀크 앨링턴과 카운트 베이시, 빌리 홀리데이를 거론하면서 “평범한 사람들”이라니! 목차를 둘러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습니다. 이들이 평범하다면 도대체 홉스봄의 시선에서 우리는 어느 즈음에 있는 것일까요?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재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은 홉스봄이 집필한 여러 서평과 다른 글들이 모여있는 그의 저서 <비범한 사람들>의 제 4장을 독립적으로 출간한 것이라고 합니다. (즉, 번역되면서 번역가와 편집자에 의해 지어진 제목인 것이죠) 홉스봄은 그의 글에서 “평범한 사람”이 아닌 “소시민(the little people)”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거기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추가적으로 설명합니다.

나의 관점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것이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역사라는 무대의 주연이 되었다. 그들이 행동하고 생각한 것은 차이를 만들어 냈고 문화와 역사의 형태를 변화시켰으며 또 지금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이 점이 전통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알려진 보통 사람들에 관한 이 책에 <비범한 사람들>이란 제목을 붙인 이유다. (9페이지)

총 7장으로 되어있는 이 책의 첫번째 대주제는 “평범한 사람들”로 총 네 명(시드니 베셰, 듀크 엘링턴, 카운트 베이시, 빌리 홀리데이)의 재즈 거장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빌리 홀리데이에 관한 글을 제외하고는 각 인물에 대해 쓰인 책들에 대한 반응이자 서평이기 때문에 홉스봄의 글을 읽다 보면 그가 말하고 있는 책들 역시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나라에는 아직 발간되지 않은 책들이 대부분이지만 Amazon.com을 통해 eBook으로라도 구입해서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는 몰랐던 재즈 거장들의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부분적으로나마) 감추고 싶은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그 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것처럼 생생하게 그림이 그려집니다. 다른 책들이 재즈역사의 큰 별들을 찬송하고 침이 마르게 칭찬할 때 홉스봄은 그들의 “인간적인 면”에 집중합니다. 그들의 뛰어난 음악 뒤에 숨겨진 조금은 어두운 이야기, 혹은 알리고 싶지 않은 이야기까지 거침없이 쏟아냅니다. 어쩌면 그것은 16살 어린 나이에 직접 엘링턴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보고 감명을 받았던 한 소년이 어른, 그리고 역사학자로 발전해가며 자신의 어린 시절 영웅들을 조금 더 다각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질풍노도의 20세기를 오롯이 체험한 홉스봄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셈이죠.

두번째 대주제는 “비범한 음악”으로 역사학자 홉스봄의 폭넓은 지식이 빛을 발하는 부분입니다. 재즈가 유럽으로 건너와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전했으며 그것이 특히 영국의 대중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하는 부분은 정말 흥미롭습니다. 미국으로부터 재즈를 “수입해온” 유럽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들의 가치기준과 문화로 재소화하였고 확실히 재즈는 미국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였습니다. 유대계 폴란드인 아버지와 유대계 오스트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베를린과 빈에서 보내고 히틀러 집권 뒤 영국으로 옮겨간 홉스봄은 이러한 성장 환경을 통해 다양한 유럽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는데, 다문화적인 그의 시각에서 바라본 재즈의 역사는 특별하면서도 객관적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재즈를 사랑하고 가슴 깊이 아꼈던 그였기에 더욱 애정어린 연구와 고찰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지막 장 “1960년 이후의 재즈”를 읽을 때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는데, 이 책의 부제가 왜 “역사학자 홉스봄이 바라본 재즈의 삶과 죽음”인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재즈의 “삶”은 알겠지만 “죽음”이라니! 주류는 아니더라도 (재즈는 사실 1920년대 이후 주류였던 적이 없었던 만큼)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재즈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불성설처럼 느껴졌으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즈는 그 기력이 쇠하여 죽음으로 가고 있다는 그의 사형 선고(!)도 충격적이었지만 그것에 제대로 반박할 수 없기에 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재즈는 장수의 축복을 누리지 못했다. 이미 1980년대에도 심지어 ‘뉴 뮤직’의 주요 스타들, 예를 들어 존 콜트레인, 앨버트 아일러, 에릭 돌피도 사라진 상태였다. 그러므로 재즈는 자신에 대한 애정을 배우기 시작한 새로운 팬들을 확보했음에도 더 이상의 변화와 발전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죽은 자들의 음악이었고, (…) 살아있는 음악인들이 과거의 사운드를 재생산하는 기이한 복고주의의 환경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의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164 페이지)

2012년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우리는 또 한 사람의 “재즈 역사의 증인”을 잃었습니다. 그의 말대로 지금의 재즈는 새로운 발전과 진보보다는 예전의 영광을 추억하며 끝없는 리바이벌을 반복하기만 하는 것일까요? 재즈를 사랑하고 아끼는 한 사람으로써 그가 남긴 마지막 문장들은 어떤 때보다도 진하게 마음 속에 남았습니다. 결국 20세기의 가장 아름답고도 찬란한 문화로 발돋음한 재즈가 21세기의 우리들의 손에 맡겨졌다는 책임감을 자각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재즈는 결국 화석화되고 마는가? 결코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 하지만 재즈는 그 음악을 필요로 하지 않고, 누릴 자격도 없는 사회 안에서도 생존하면서 자기 혁신을 이루는 비범한 힘을 지금껏 보여 주었다. 재즈의 잠재력이 고갈되었다고 생각하기에는 아직 때가 너무 이르다. 게다가 그냥 재즈를 들으면서 재즈 스스로가 자신의 미래를 헤쳐 나가도록 내버려 둔다고 한들 무엇이 잘못이겠는가? (17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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