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이 이루어지는 브루클린 라이크
박인영 지음, 고윤지 사진 / 낭만북스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예술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예술가란 어떤 사람들일까?


막상 음악을 한다고 하면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많은 환상과 편견(?)을 가지신 분들과 만나게 됩니다. 조선시대 광대 패거리를 보듯 한심한 눈길로 보시는 분들이 있는가하면 범상치 않은 기인을 만난 듯 모든 것을 신기해하시는 분들도 계시기도 하죠. 개인적으로는 이도 저도 아닌 그저 "같은 사람"으로 봐주시는 분들이 가장 편하긴 합니다. 

음악을 공부하고, 업으로 삼아 살아온지 이제 10년이 넘다보니 자연스럽게 수식어가 "학생"에서 "선생"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마음같아서는 아직 한참 더 많이 배우고 많은 것을 공부하고 싶은데, 어느새 제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지도해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린거죠. 매 주 차세대의 음악가, 내일의 예술가를 꿈꾸는 학생들과 만나면서 오히려 제가 공부하던 때보다도 더 "예술이란 무엇이며", "예술가는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는 때가 많아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유난히 "예술"에 관한 책들에 눈이 많이 갑니다. 예전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관심 분야(음악, 영화, 사진 혹은 미술)에만 국한되어 있었다면, 조금 더 폭 넓은 의미의, 자유로운 "예술개념"을 찾아나서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책 소개를 읽자마자 절대 놓칠 수 없는 책이 한 권 있었는데요, 바로 오늘 소개할 <내 꿈이 이루어지는 브루클린 라이크>입니다!




사진집? 매거진? 포트폴리오? - 아니, 브루클린!


평소에도 관심을 가지고 보는 출판사 낭만북스의 신간 <브루클린 라이크>는 브루클린에서 동거 생활을 시작한 두 여성의 만남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글을 쓴 박인영 씨는 우리나라의 <코스모폴리탄>의 에디터로 일하다 2009년부터 뉴욕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그녀의 룸메이트 고윤지 씨는 그보다 1년 일찍인 2008년부터 뉴욕에서 프리랜서 포토그래퍼로 활동 중이고요. 두 사람이 브루클린을 우연찮에 알게 되어 사랑에 빠진 것은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예술가적인 성향이 있거나 예술가의 삶을 꿈꾸고 있다면 그녀들이 말하는 브루클린은 그야말로 예술가들의 메카라 할 수 있을테니까요.


마치 한 권의 잘 만들어진 사진집을 보는 듯 멋지게 편집된 <브루클린 라이크>는 전 페이지가 컬러로 되어있으며 종이재질 역시 우수해 몇 년을 두고 봐도 색이 바래거나 페이지가 손상될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을 듯 합니다. 제본 역시 튼튼하게 잘 되어있어 책을 180도로 쭈욱 펼쳐 보아도 뜯어지거나 보기 흉하게 벌어질 일도 없고요. 특히 두 페이지 크기의 사진이 실려있는 책이 180도로 예쁘게 펼쳐지지 않을 때면 참 속상했었는데 <브루클린 라이크>는 그럴 걱정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오랜 시간 사랑을 받고 있는 모든 페이지에 서로 다른 일러스트가 그려진 다이어리처럼 한 장 한 장 넘겨갈 때마다 전혀 새롭고 다양한 사진과 디자인들이 읽는 내내 시각적인 기쁨을 더해줄 것입니다. 다양한 공간의 윤곽과 깊이를 감성적으로 담아낸 고윤지 씨의 사진은 깊이, 그리고 멀리 보면 볼 수록 매력적입니다. 각 인물의 컨셉과 성격에 맞게 구성된 페이지와 인터뷰 질문들은 그야말로 12인 12색을 잘 나타내기에 책을 덮는 그 순간까지 지루할 틈이 없을 거에요.



예술가들의 새로운 메카, 브루클린을 말하다


브루클린에서 활동하는 열두 명의 아티스트를 만나 그들의 삶의 공간에 들어가보는 것. 그들이 말하는 예술과 예술가의 삶이 무엇인지 자유롭게 묻고 답하는 것. 이 책에 대해 듣자마자 '어머, 이 책은 읽어야 해!' 하며 당장에 손에 쥐게 만든 컨셉입니다. 사실 주위에서 "예술 좀 한다"는 사람들이 정작 예술활동에는 그닥 큰 무게를 두지 않고 겉모습이나 말하는 것에만 신경쓰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예술가같다"는 말이 겉멋이 잔뜩 든 워너비 예술가를 폄하하는 말처럼 느껴지다보니 브루클린의 예술가들은 어떤 모습과 일상을 가지고 있는지 더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미지의 무언가(?)를 향한 기대가 충족이 되는 것을 느꼈고요. 


소개된 열두 명의 아티스트들의 하는 일과 현재 작품활동도 흥미로웠지만 더욱 매력적이었던 것은 그들의 주거 공간입니다. 자신의 개성만큼이나 제각각 꾸며놓은 그들의 방과 아파트를 보면서 문득 한국에 처음 왔을 때가 생각났습니다. 한국에는 집을 지을 때 이미 안방과 작은 방이 있고, 거실에는 심지어 TV를 걸 수 있는 아트월까지도 이미 마련되어있다는 것에 처음에는 적잖이 놀랐습니다. 자신의 집이라면 스스로가 결정하고 꾸미고 싶을텐데 미리 "이건 여기에, 저건 저기에 놓아라" 하고 결정해주는 느낌이랄까요? 원한다면 두번째 욕실을 드레스룸으로 꾸밀 수도 있을텐데 말입니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작업실을 주거지처럼, 주거지를 작업실처럼 마음대로 꾸민 그들의 공간을 보면서 한편으로 참 부러웠습니다. 내 돈 주고 사는 집에서만큼이라도 자유로워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어느새 집을 꾸밀 때 조차 '어떻게 하는게 정상이지'라고 생각하는 자신이 생각나서 말이죠. 이참에 인테리어를 확 바꿔볼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서른다섯 살이니 결혼해야 하고, 일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야 하고, 돈을 모아야 하고… 서울에 잠시 들어온 후 나이에 맞추어 사는 것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다. 그리고 2년에 걸쳐 지금 이 책을 마무리하면서 뉴욕에서의 내 삶을 추억하며 나이에 맞게 사는 것보다 나답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주변의 시선, 나이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잣대에서 벗어나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닌가. (20 페이지)


하늘로 치솟는 집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하나둘씩 예술가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브루클린. 이렇게 형성된 "예술가들의 집단 거주지"는 그 때문에 문화적으로도 다채로워졌을 뿐만 아니라 그 다양함 가운데서 자신만의 색을 찾을 수 있는 사유의 공간이 된 듯 합니다. 그렇다면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예술가의 전제조건은 무엇일까요? 예술을 한다고 하면 "그걸로 살 수 있나?" 혹은 "한달에 얼마나 벌어요?"를 물어보는 것이 일반적인 우리나라와는 달리 브루클린에서는 예술의 길이 '선택된 자' 혹은 '이상한 자'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서울에서는 꼭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서든, 자기가 좋아한 일이든 몇 가지 직업을 병행한다는 것이 별 상관없다. (83 페이지)




그녀들의 부러운 도시, 환경, 그리고 친구들 


제가 오스트리아에 처음 갔을 때만 해도 한국 사람이 그렇게 흔한 편은 아니었기에, 작고 까무잡잡한 한국 여자아이에게 궁금해하는 것이 참 많았습니다.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부터 "너네도 너네만의 언어가 있니?"라는 원시적인 질문까지(한글은 유네스코에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고!). 이제는 워낙 세계가 글로벌해진지라 그럴 일은 없겠지만, 가끔 그 때가 생각나면 피식 웃곤 합니다.

비교적 먼 나라의 외국인들이 늦게 자리를 잡기 시작한 우리나라나 오스트리아에 비해서 미국은 애초부터 "인종의 전시장"이라 불리울만큼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섞여 살아가는 곳이니만큼 조금 더 수용적인(tolerant) 것 같습니다. <브루클린 라이크>의 두 저자가 만난 친구들만 해도 벌써 다양한 출신과 국적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때문에 이들이 함께 만들어나가는 문화는 미국 문화도, 이들의 출신 국가의 문화도 아닙니다. 서로 다른 것이 만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진정한 하이브리드, 멀티컬쳐의 "브루클린 문화"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정형화된 것도, 정해진 것도 없기에 더욱 흥미롭고 매력적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비엔나의 친구들이 참 많이 생각났습니다. 음악이라는 (혹은 디자인, 미술, 연기와 같은 예술 분야라는) 큰 프레임 안에서 만난 출신지도, 성격도, 추구하는 것도, 목적도 제각각인 친구들. 사실 한 사람 한 사람 깊이 생각해보면 "정상인"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로 개성 만점의 친구들이 참 많았었으니까요 (어쩌면 예술을 하겠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상인"만큼이나 따분하고 지루한 파트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후로 벌써 3년이 되어갑니다만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조차 없다는 사실은 이따금 저를 참 서글프게 합니다. 친구를 사귀는 것 조차 사회에 나온 후로는 1대 1이 아닌 복잡미묘한 관계 가운데 진행되는 것이 관행인 문화가 원망스럽기도 하더군요. 


자신의 꿈을 위해 커다란 도시 뉴욕에 왔다가 떠나는 뉴요커들 사이에서 진짜 친구를 만나기가 어렵지 않느냐는 나의 질문에 "릴레이션쉽은 어디서든 어렵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관계에 있어서 자신의 직관을 믿는 것." 이라고 대답한다. 어떤 기대를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즐기고 관계 그대로에 감사해야 한다. (97 페이지)


2014년 우리나라를 휩쓸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가 SWAG이라는 말을 듣고 내심 기뻤습니다. 어쩌면 이제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며 다차원적인 취향과 문화가 공존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이상적인 바람 때문이었는데, 2014년 하고도 1월이 모두 지난 지금, 아직까지는 크게 체감하는 효과(?)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미 모두 똑같아지는 것은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을까요? 이제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사회라는 큰 틀 안에 서로 배려하고 조화되어 살아갈 수 있는 움직임의 때가 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야지만 <브루클린 라이크> 같은 다른 나라의 멋진 이야기가 먼 나라의 나와는 상관 없는 이야기가 아닌 조화롭게 영향받고 발전하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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