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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움직이는 법 - 전 로비스트가 알려주는 설득의 숨은 비밀
폴커 키츠 지음, 장혜경 옮김 / 예담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여러가지 "남자와 여자의 차이점"을 짤막한 글로 모아둔 게시글을 읽고 "좋아요"를 누른 적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바로 "남자는 여자가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좌절하고, 여자는 남자가 변할거라 생각했다 좌절한다"는 말이었는데요. 핵심을 콕 찌른 말이라는 생각에 피식 웃을 수 밖에 없게 되더군요. 이처럼 남자와 여자가 서로 바라는 것이 다르고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 보니 오랜 세월동안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간극으로 고생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초월한 공감대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두가지가 바로 1) 상대방의 돈을 내 주머니에 집어넣는 것과 2) 내 생각을 상대방의 머리에 집어넣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후자인 2번은 겪으면 겪을 수록 불가능에 가깝지 않나 싶을 정도로 힘겹고 어려운 과제인 것 같습니다.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삼척동자도 알만한 기정사실도 학생들에게 이해시키고 알아듣게 설명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너무나도 자명하고 당연한 이야기라 무슨 부가설명이 필요하겠나 싶은데 그것을 처음 듣고 이해해야 하는 사람의 입장은 참 많이 다른가봅니다. 하물며 의견차를 좁히기 위한 대화 가운데 있다면 얼마나 많은 설득과 설명이 필요할까요.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바로 이 설득에 관한 내용입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말주변이 좋은 사람들을 보며 많이 부러워합니다. "나도 저렇게 말을 잘했으면" 혹은 "입만 열었다 하면 원하는 걸 얻는군!" 하며 그들의 화려한 언변을 부러워하기도, 혹은 달갑지 않아 하기도 하고요. 대형서점에 한 책장 가득 꽃혀있는 "처세술"과 "설득의 기술" 책들만 봐도 우리가 얼마나 말의 기술을 갈망(?)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데요, 로비스트 폴커 키츠가 말하는 "설득의 비밀"은 무엇인지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움직이는 법>을 통해 함께 만나보시죠!

'다르다'는 장벽에 가로막혀 보지 못하는 현실
세계적인 마술사 데이비드 카퍼필드가 보여준 마술 중 인상깊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빌딩이나 거대한 비행기를 사라지게 하는 마술도, 사람을 네 조각으로 나누는 마술도 아니었고,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마술은 더더욱 아니었는데요, 한 여성을 바로 앞에 앉히고 그녀의 앞에서 손에 들고 있던 계란을 사라지게 하는 마술이었습니다. 이 마술에서 앉아있는 여성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그야말로 박장대소할 수 밖에 없었는데, 계란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녀가 미처 보지 못하는 사이 카퍼필드가 그녀의 뒤로 계란을 던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순식간에 계란이 없어져 신기해하고 놀라워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이렇게나 쉽게 넘어갔다는 것에 더욱 놀라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이와 비슷하다고 폴커 키츠는 말합니다. 그는 오랫동안 유능한 로비스트로 활약하였으며 그가 집필한 책은 독일을 비롯한 10여 개국에서 베스트셀러로 오를 만큼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유쾌하면서도 날카로운 심리학자인 그가 말하는 "설득의 비밀"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논리가 입장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경우에도 논리로는 아무것도 달성하지 못한다. 논리가 소용이 있는 경우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는가? 객관적으로 논리를 펼치려 노력한다. 그것 자체도 아무 도움이 안 되는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더 상황을 악화시킨다. 우리는 객관적 논리를 펼친다고 믿는다. 사실은 자신의 부탁을 자신의 시점에서 정당화할 뿐인데도 말이다. (51 페이지)
서로 자신의 주장을 하기 바빠서, 자신의 논리를 입증하기 바빠서, 혹은 지고 싶지 않다는 아집으로 인해 우리는 눈 앞에 펼쳐진 뻔한 상황을 놓치고 있다고 그는 말합니다. 상대와 내가 서로 다른 입장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방법으로는 도저히 그 간극을 좁힐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자신의 입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옳음을 주장한다면 타협이 이루어질리는 만무합니다. 그는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 누군가를 배신하거나 속여 내가 원하는 바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 뒤에 공통적인 관심사를 통해 간극을 좁혀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조금의 트릭이 있을 수도 있지만). 로비스트라고 해서 새까만 정장을 입고 007 가방에 현금을 가득 넣은 채 '뒷거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공개적으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들의 원하는 바를 전달하기 때문에 용납할 수 있는, 문제가 없는 설득의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책을 읽으면서 점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첨예한 그의 글솜씨 (혹은 언변) 때문이 아니라, 아마도 이것이 우리 모두가 조금씩은 가지고 있는 대화 기술의 부재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옳은 것이 승리하고, 더 나은 의견이 받아들여진다는 순박한 믿음 때문에 오히려 의견 일치라는 평화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입니다. 누군가와 의견이 벌어졌을 때 옳고 그름을 따질 것이 아니라 의견 차이의 원인을 분석하고 상대가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지, 상대의 욕구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상대를 움직일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해결책이며,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가 어떤 부분을 생각하고 연구해야 할지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조목조목 설명합니다.
이기기를 원하는가, 설득하기를 원하는가
영화를 보다가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장면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억울하게 괴롭힘을 당하던 주인공이 어느 순간 모두 앞에 당당히 서서 뛰어난 논리와 촌철같은 말로 상대를 완전히 제압할 때가 특히 그런데요, 지금까지 난공불락처럼 보이던 상대가 점차 무너져내리면서 주인공이 확고한 승리자로 우뚝 서게 될 때의 그 희열은 말로 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특히 잘 만들어진 영화라면 그 카타르시스는 더 압도적이죠!). 어떻게 보면 이런 영화 장면들의 영향으로 인해 우리 역시 우리 삶 가운데 이런 장면들을 꿈꾸게 되곤 하는데요, 모두 아시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가 않습니다. 현실에서는 내가 이기도록 모든 것을 조정해주는 시나리오 작가도, 나에게 유리한 앵글을 잡아주는 활영감독도, 무엇보다도 나의 승리를 더욱 빛나게 해줄 조연들도 없기 때문이죠.
저자는 "상대를 움직여야겠다는 목표"가 흔들려서는 안된다고 누차 강조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상대가 마음을 바꾸어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지 결코 그를 이기거나 그의 위에 올라서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근본적으로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서 혼동한다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으며, 성공할 수도 없다고 그는 말합니다.
쇼펜하우어는 19세기 초 <토론의 법칙>에서 토론에서 판정승을 거둘 수 있는 방법들을 가르쳤다. 만일 당신의 인생 목표가 그것이라면 꼭 그의 책을 읽어보아야 한다. 하지만 쇼펜하우어 본인도 제 아무리 언변이 뛰어난 사람도 상대의 의견을 바꿀 수 없다는 진리를 인정하였다. (…) 반대 의견으로 상대를 설득하려 하면 할 수록 당신은 상대의 입장을 바꾸겠다는 애초의 목표에서 점점 더 멀어질 것이다. (39 페이지)
흔히 TV에서 벌어지는 토론이나 청문회를 보면 그저 자신의 옳은 입장을 주장하고자 남의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는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애초부터 상대의 입장이나 의견은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내가 옳은데 너네는 왜 틀리냐'는 식의 융단폭격을 듣고 '아 그랬구나, 우리가 잘못했다'고 고백할 상대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식의 (토론 아닌) 토론은 결국 남의 잘못을 들추어내는 진흙탕 싸움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고요. 논리와 주장 없이 상대방을 파악해 움직일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폴커 키츠가 말하는 "설득의 비밀"입니다.
생활에 적용하기 전 잠시만 생각해보기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개인적으로 아주 조그만 디테일까지도 깊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가끔은 상황이 눈앞에 그려지기도 했고, 무릎을 치며 "세상에, 이런 방법이 있었군!" 하고 감탄하기도 했고요. 또한 제가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시니컬한 독일식 유머에 읽는 내내 참 즐거웠습니다. 짜임새있고 설득력있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지난 행동도 많이 반성하게 되더군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 책 내용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확실히 무리가 있습니다. 일단 독일(즉 중유럽)과 우리나라의 문화차이가 엄청난데다가 그가 예로 들고 있는 상황들 역시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상황이라기보다는 독일에서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목차만 읽고 곧장 생활에 적용한다면 적잖은 진통을 겪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권하고 싶은 것은 우리에게 "설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아주 드문 책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처세술이나 "~하는 법"으로 끝나는 책들은 대부분 '이렇게만 하면 완전 당신이 이긴다'는 말도 안되는 약속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수리수리 마수리 내맘대로 움직여라 얍! 에 해당하는 주문은 현실에 없으며, 그런 사고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면 상황을 악화시킬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상대를 움직이는 법>은 일단 상대와 내가 어떻게 다르며, 그 차이를 어떤 식으로 극복하고 나의 의견을 전달해야할지에 관한 책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거나 나의 의견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데 애를 먹었다면 꼭 한번 읽어보고 자신의 설득 기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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