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기타리스트 - 그들의 기타가 조용히 흐느낄 때
정일서 지음 / 어바웃어북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width="100%" height="90" src="http://api.v.daum.net/widget1?nid=50739963" frameborder="no" scrolling="no" allowtransparency="true">


어느덧 학생들을 가르친지 몇 년이 지나고 나니, 뭐든 "역사"와 관련된 과목을 어려워하는 것은 저 뿐만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말이 역사지 바꾸어 이야기하면 "옛날 이야기"인데 뭐가 그리도 힘들게 느껴졌던지... 아무튼 음악사 시험이 다가오면 입술이 바싹바싹 마르고, 평소에는 가깝게만 느껴지던 유명한 작곡가들의 인생이 점점 더 미궁속으로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답니다. 도대체 시험에서 뭐가 나올지 (게다가 대부분이 구두 시험이었기에!) 알기는 커녕 예상조차 할 수 없었기에 더욱 긴장되었던 음악사. 역사라는 것 자체가 너무도 다층적이고 다각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에 그렇지 않았을까요?

그러다가 대학원에 진학하고 (이제는 음악사가 필수과목이 아닌 선택으로 바뀌면서) 조금 더 여유롭게(?) 역사에 관련된 과목을 수강하기 시작했는데, 본격적으로 음악사에 대한 관심을 가진 것은 다음의 두 과목을 수강한 이후였습니다. 


- "여자들"의 역할로 본 음악사

- "스캔들"로 본 음악사 


"태초에 음악이 있었더니"로 시작하는 대부분의 음악사와는 달리 먼 옛날이 아닌 추정할 수 있는 어느 시대부터 시작할 뿐더러, 하나의 테마로 살펴보는 음악사는 예전에 알던 것과 딴판이었습니다. 이해가 될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내용이 궁금한 것이 마치 드라마를 기다리는 마음 같았는데요, 그래서인가 그 이후로 어떤 "테마를 가진 역사 이야기"에 열광하게 되었답니다.


이제는 대중음악 없는 우리의 일상을 생각하지도 못하게 되었지만, 이 대중음악의 역사는 너무나도 짧아서, 정확하게 '우리가 아는 대중음악'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채 10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950년대 초기 시작된 록큰롤만 해도 벌써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확실히 그간 많은 일이 있었던 것만큼은 분명해보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뜨겁고 격동적이었던 20세기. 이 시기는 대중음악이 본격적으로 탄생하고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던 때인데, 사실 그 변화에 대해 기록하고 증언하고 있는 책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어쩌면 아직 "역사"가 되기에는 너무 가깝기 때문인지, 우리는 정작 우리가 (부분적으로나마) 겪어온 시기에 대해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더욱 특별한 오늘의 책. 더군다나 외국의 저명한 음악 저널리스트나 평론가가 아닌 우리나라 사람이 썼기에 놀랍고 감탄할 수 밖에 없는 "더 기타리스트 - 그들의 기타가 조용히 흐느낄 때"를 함께 만나보시죠.





While Their Guitar Gently Weeps 


비틀즈의 명곡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에서 따온 이 책의 부제가 읽으면 읽을 수록 이 책과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블루스 시대로부터 오늘날까지의 역사를 105명의 기타리스트들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이 책에서 소개하는 "기타"는 단순한 악기도 아니고, 음악 그 자체도 아닙니다. 기타는 그것을 잡고 연주하는 사람의 인생이자 그의 삶을 대변하는 하나의 언어로써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나타내고 싶었는지의 은밀한 이야기를 폭로하는, 그러한 매개체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본인은 절대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하고 싶지도 않았던 것들을, 은밀한 언어로 모조리 말해버리는 그런 미디엄(Medium) 말이죠.


105명이 기타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적어도) 105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같은 장르의 음악을 하고 있는 듯하면서도,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죠. 마치 우리가 다 같이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지만, 이야기하는 내용은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사실 저자의 책을 읽기까지는 기타리스트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습니다. 물론 지미 핸드릭스나 에릭 클랩튼, 산타나, 반 헤일런 같은 유명한 기타리스트의 대략적인 특징이나 플레이 스타일은 알았지만 "그들의 스타일이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로 다른 스타일들과 구분되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기 어려웠습니다.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다르다고 느끼는지"가 설명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하지만 확실히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어가는 느낌이었답니다.


Chapter 01 초기 블루스의 거장들 (~1950)

Chapter 02 록큰롤의 개척자들 (1950년대)

Chapter 03 영웅들의 탄생 (1960년대)

Chapter 04 록 오브 에이지 (1970년대)

Chapter 05 헤비메탈 무법지대를 크로스오버하는 연금술사들 (1980년대)

Chapter 06 좀 더 강한 사운드 혹은 그 대안 (1990년~)


연대별로 여섯 개로 나뉘어진 챕터를 통해 기타리스트들을 만나다 보면 어느새 대중음악의 역사가 머릿속에 펼쳐집니다. 한 명의 기타리스트에 대해 배우고, 그의 음악세계에 대해 읽어나가면서 유투브나 멜론 스트리밍 등의 서비스를 이용하여 그의 음악을 직접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이야기를 맺을 때마다 저자가 추천하는 "The One and Only" 음반에 수록된 곡이라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죠!




음악을 사랑하는 음악인의, 음악인을 향한 소중한 선물


"정말, 정말 하고 싶어서 한 (해낸) 일이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연신 되뇌었던 말입니다. 저자인 정일서 씨는 1970년 생으로 어렸을 때부터 알아주는 음악광이었고, 1995년부터 지금까지 KBS 라디오 PD로 맡은 프로그램 역시 모두 음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황정민의 FM 대행진", "남궁연의 뮤직스테이션", "이금희의 가요산책", "김광한의 골든팝스", "전영혁의 음악세계", "이상은의 사랑해요 FM", "신화 이민우의 자유선언", "레코드마니아", "팝스갤러리", "유희열의 라디오의 천국" 등 이미 음악매니아라면 한번쯤 들어보았을 프로그램을 연출하였고, 현재는 KBS2 라디오의 "이소라의 메모리즈"를 담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라디오를 잘 듣지 않는지라 (또한 들을 기회가 없었어서) 이런 프로그램의 이름과 인기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 프로그램들이 모두 한 PD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는 것을 알고 놀라웠답니다. 어떤 일을 10년만 꾸준히 해도 세계적인 전문가가 된다는데, 매일매일 전쟁터같은 방송을 19년 동안이나 해왔던 저자의 엄청난 내공은, 그가 사랑하는 음악에 대한 지식과 열정 그리고 감성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해서 누구나 책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저만 해도 대학과 아카데미 그리고 개인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화성학 혹은 음악통론 교재에 아쉬움을 느낀 것이 벌써 몇 년이 되었지만, 처음에 마음먹었던 "내가 직접 교재를 집필하자는" 다짐은 시간에 쫓기고 프로젝트에 지치다 보면 어느새 우선순위 가장 밑으로 떨어져버리기 일쑤였으니까요.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음악이 곧 일인 저자라 하더라도 방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다시금 다듬는 일은 정말 커다란 과제였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멋진 책을 출간할 수 있었던 저자의 저력이 한편으로는 놀랍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럽기 그지 없습니다.


"더 기타리스트"는 부족하기 그지없는 대중음악 관련도서에 큰 발전이자 수확일 뿐만 아니라, 음악인들에게는 머릿속 퍼즐을 맞추어 한 편의 거대한 그림을 완성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굳이 기타리스트를 꿈꾸거나 기타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더라도 이들의 역사는 곧 대중음악의 역사이기 때문이죠. 혹자는 대중음악의 역사를 "확성기(amplifier)의 역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확성되었던 가장 결정적인 악기 중의 하나가 바로 기타이고요.

기타음악의 역사를 따라 다시 바라보는 대중음악의 역사. 그리고 그 속에서 실질적으로 물결을 이루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더 기타리스트"는 단순한 기타리스트 평전 모음이 아니라 그들이 거대한 물결 안에서 어떻게 서로간 반응하고 발전해갔느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기타가 치고 싶었던게 아니라,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우면서, 가끔은 지겹고 어려워 접고 싶은 때가 있어도 쉽사리 그 매력을 포기하지 못했던 것은, 악기 안에 잠재되어있는 오케스트라같은 거대함 때문이었는데요, 다른 악기들과 달리 피아노와 기타, 혹은 오르간 등의 악기들은 연주자로 하여금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느낄 수 있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지고 다니기 용이하고 연주하는 모습이 멋진 기타는 수많은 (특히) 남성들의 선망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는데, 아마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105명의 기타리스트 모두가 남성인 것도 그런 연유가 아닐까요? 물론 제 지인 중에도 멋지게 기타를 연주하는 여성 기타리스트들이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기타가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되는 것만큼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기타는 누구나 주변에서 아주 쉽게 접하고 배울 수 있는 악기이다. 기타만큼 만만하고 편하게 접근 가능한 악기도 드물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것이 표현할 수 있는 음악적 영역은 무한하다 할 만큼 넓다는 것이 기타가 가진 최대의 매력이다" (머리글 중, 12페이지)


"중요한 건 대부분의 경우 기타라는 악기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이미 기타리스트를 꿈꾼다는 사실이다. (...) 아이들은 기타를 연주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어서 기타를 잡는다." (추천사 중, 박은석, 음악평론가)


추천사를 읽고서 그제서야 무릎을 탁 쳤습니다. 그렇구나. 기타리스트의 역사가 조금 더 특별한 것은 어쩌면 기타라는 악기 자체가 가지는 고유의 대중성으로 인해 음악을 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졌거나, 음악을 심각하게 고뇌하지 않고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어쩌면 이미 전설이 되버린 그들이 어렸을 때 누군가가 "음악을 시작하려고 하는구나. 그래, 이리 와봐. 음정과 음계부터 좀 배워보자"라고 말해버렸다면 그들은 채 자신의 판타지를 펼쳐보기도 전에 음악을 접어버렸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천만다행인건 아무도 그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고 (적어도 그들이 포기할만큼 겁을 주지는 않았고), 그래서 우리가 그들의 음악을 오늘날 들을 수 있는 것이고요.


책을 쭈욱 읽었습니다만, 다시한번 차근차근 읽어보면서 아까 이야기했듯 음악과 병행하여 한 명 한 명과 특별한 만남을 가져보려 합니다. 멋지게 서술된 책이긴 하지만, 직접 듣지 않고 읽기만 하는 음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런 면에서 저자가 항상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명반을 소개하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도움이자 감사해야 할 팁입니다.

"더 기타리스트"를 시작으로 앞으로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대단한 대중음악저서가 쏟아져나오길 기대하고 또 바랍니다!


width="100%" height="90" src="http://api.v.daum.net/widget1?nid=50739963" frameborder="no" scrolling="no" allowtransparency="tru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