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와의 만남 - 음악으로 이룬 종합 예술 클래식 음악과의 만남 1
닉 킴벌리 지음, 김병화 옮김 / 포노(PHONO)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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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공부하는 초기에는 모든 것에 정의 내리는 것이 즐겁습니다.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런거야. 이것은 이렇게 유래하고 발생했고 저것과는 이러저러하게 틀리지" 등 수업 시간 혹은 책을 통해 배운 지식을 그대로 재생(Replay)하는 단계입니다.

시간이 지나 조금 더 깊이 들어가게 되면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들이 그렇게 단정적으로 결론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졌던 개념들이 역사적으로 복잡다양하게 쓰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A는 B다"라고 간단하게 말하기가 어려워진 것이죠. 이때 즈음 되면 음악에 관해 묻는 사람들의 질문에도 애매모호하게 대답하기 시작하는데, 덕분에 음악공부 초기보다 부쩍 자신감이 없어보이기도 합니다.

흔히들 사람들은 "전문가에게 물어보면 오히려 복잡하게만 이야기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네이버 지식을 검색해보면 쉽게 설명 가능한 것을 왜이렇게 빙빙돌려 이야기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죠. 15살에 대학에 입학하면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건너뛰는 바람에 수학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는데, 작년 음향 공부를 시작하면서 여러 수학 개념들을 익혀야 했었습니다. 가장 먼저 부딪힌 벽은 다름아닌 로그함수였는데, 여러가지로 검색해보고 찾아본 뒤 결정적으로 모든 것이 헷갈리게 된 것은 바로 서울대학교 계산통계학과를 나오신 아버지께 여쭈어보았을 때인데요. 그나마 "이렇지 않을까"하고 추측하고 이해했던 것들이 아직도 미적분 계산이 가능하신 아버지의 설명을 들은 이후 와르르 무너져내렸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특정 분야에서 그래도 어느정도 경험과 경력을 쌓은 전문가들은 어떤 것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하기를 꺼립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에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도 드물며, 모든 것에는 양면 혹은 적어도 몇 차원의 세계가 있기 때문에 쉽사리 단정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자신의 무지를 역설하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이런 신중함을 가장한 비겁함은 특히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걸림돌이 되곤 하는데요, 명쾌한 해답을 원하는 학생들에게 '그게 그렇게 간단한게 아냐'라고 설명할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짐을 느끼곤 합니다.


다른 교수님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가 가장 말하기 어려워 하는 부분은 이 중에도 특별히 "역사"입니다. 짧은 시간에 오랜 기간의 역사를 종합하여 이야기해주려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생략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 복잡한 것을 간단하게 설명해야 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마다 "과연 내가 하고 있는 이 이야기가 충분한 검토를 거쳐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매사에 조심스러워집니다. 어차피 베일에 싸여 어떤 색안경을 끼고 볼 수 밖에 없는 역사를 가르치는 저 자신이 확실하게 이야기해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참 크기만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이유 때문에 연구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자신감에 차있는(?) 문헌을 선호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문헌들은 (아마도 같은 이유로) 확실한 대답과 서술을 피하고 있기 때문에 답답하기는 매반입니다.


그러던 중 PHONO 출판사의 굉장히 특별한 시리즈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이미 클래식 음악에 대한 주옥같은 책들을 다수 발간한 PHONO 출판사였기 때문에 어떻게 생각하면 그야말로 "믿고 보는" 시리즈가 되었는데요, 이미 우리들에게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 (모짜르트와 베토벤, 쇼팽, 바그너 등의 거장 작곡가들의 삶과 음악을 이야기한 책이죠)와 "클래식, 시대와의 만남 시리즈" (고음악서부터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클래식 음악의 작품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첫번째 재즈음반 12장" 등 음악역사에 대한 다양한 책들로 알려져있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정말 인상깊게 읽었던 "음악가의 음악가 나디아 불랑제" 역시 포노 출판사를 통해 발간되었습니다. 

조금 더 찾아보니 포노 출판사는 월간포토넷으로 알려진 (주)티앤에프출판사업부의 브랜드로 음악서적을 전문으로 발간하고 있더군요. 이젠 정말 박물관화 되어버린 서양음악출판계에 정말 필요하고도 소중한 출판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검색으로 발견한 페이스북 페이지 링크는 이렇습니다: http://www.facebook.com/photonetbooks).


이번 시리즈는 바로 "클래식 음악과의 만남"입니다. 전 시리즈에서 클래식 음악을 시대별로 분류하여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클래식 음악을 몇백년간 이끌어온 중요한 장르 혹은 형식으로 분류하여 각 형식의 역사와 주요 작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첫번째 장은 바로 "오페라와의 만남"입니다. 가장 복잡다양한 종합예술인 오페라. 서양음악이 시작되고 발전한 이래 가장 화려한 장르라고 할 수 있죠. 음악 뿐만 아니라 대사, 가사, 안무, 무대미술, 조명과 연출 등 예술의 모든 부분들이 만나 조화를 이루고 (또 조화를 이루지 않는) 장르인만큼 그 역사 또한 상당히 버라이어티합니다. 모두 네 권으로 이루어진 "클래식 음악과의 만남" 시리즈 중 "오페라와의 만남"이 가장 기대가 되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역사도서들의 문제점은 바로 "읽을 수만 있을 뿐 들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공부하면서 정작 음악을 듣지 못한다는 것은 대단한 핸디캡일 뿐만 아니라 그 본질을 이해하는데 있어 필수조건을 배제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대학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교수님이 그에 따른 오디오 혹은 비디오 자료를 소개해주신다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학생들 (혹은 관심을 가진 분들) 은 그저 책을 읽는 데에서 그치곤 합니다. 하지만 요리의 만드는 방법과 그 맛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놓은 것을 읽었다고 해서 그것을 먹어본 것과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음악 역시 읽는 것이 아닌 듣는 데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내가 읽고 있는 이 작품이 어떤 소리가 나고 어떻게 나에게 다가오는지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PHONO에서 발간된 책들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주요 작품들을 무려 두 장의 CD에 담아 들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데요, 별책부록으로 들어있는 "아무 레코딩"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저명한 음악가들의 소중한 음원들이 담겨있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하게 됩니다. 

저 역시 음악사를 배우고 가르치면서 주요 작품들은 여러번 접하고 친숙하게 들어보았지만, 아무래도 현대로 거슬러올 수록 음반을 공수하기도, 신경써서 들어보기도 여의치 않아 이번 기회를 통해서라도 확실히 접하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약 400년의 오페라 역사를 130페이지의 짧은 분량에 소화해낸 저력도 그렇지만, 부록으로 기본적인 오페라 용어와 비교 연표 (Timeline) 등을 싣고 있기 때문에 오페라에 대해 짧지만 강력한 입문(Crash Course)을 원하는 분들에게는 정말 만족스럽고 유용한 책이 될 것입니다. 현실과 동떨어져 이질감이 들 수 있는 역사도 쉽고 컴팩트하게 풀어내고 있어 부담없이 읽을 수 있고 역사적 중요한 사건과 작품을 중심으로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나가기도 수월합니다. 또한 각 페이지 왼쪽 컬럼에 CD 아이콘이 등장할 때마다 부록 CD의 해당 트랙을 재생하며 책을 읽는다면 그야말로 "멀티미디어적인" 오페라 경험이 가능할 것 같네요. 사실 쓰여진 글 역시 해당 트랙을 독자가 듣는다 혹은 들었다를 전제하고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각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서라면 가장 이상적인(!) 음악역사공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자인 닉 킴벌리(Nick Kimberley)는 클래식 음악 평론가로 음악평론에 있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가 그의 문체에는 어떠한 주저함이나 여지를 남겨두고 있지 않은 것이 특징입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이것을 이렇게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구나" 하고 부럽기도 했답니다. 저에게는 여러가지 파편으로 어지러웠던 오페라의 역사와 작품의 순서들을 말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였습니다. 


PHONO의 시리즈들은 "완전체로 소장할 가치"가 충분한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모자란 부분들을 모두 채워넣고 싶을 정도로 한 권 한 권이 주옥같은 책인데요. 앞으로 이 시리즈를 통해 만나게 될 "교향곡과의 만남(2권)", "실내악과의 만남(3권)" 마지막으로 "합창곡과의 만남(4권)"까지 기대가 많이 됩니다. 음악역사에 대해서, 또한 음악 장르에 대해서 "살아있는" 입문을 원하는 분들께도 제격이지만, 그동안 교재선택에 어려움을 겪었던 다수의 음악사 교수님들께도 꼭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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