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말하다
데이비드 두쉬민 지음, 추미란 옮김 / 정보문화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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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음악미학이 정립되던 시기, 가장 큰 수확(?)이라 할 수 있는 개념의 변화가 바로 기악음악(노래가 없이 악기로만 이루어진 음악, Instrumental Music)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었습니다. 이전까지는 가사가 없기에 그 전달성에서 천대받을 수 밖에 없었던 기악음악은 18세기에 들어와 그 언어적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고, 더 나아가 형이상학적인 위엄을 부여받게되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표현"이 되었습니다. 언어의 한계가 시작되는 데에서 음악의 메시지가 시작되는 셈이지요. 약 150년이 흐른 19세기 후반에는 당대의 철학가이자 미학자 한슬릭과 쇼펜하우어 등이 기악음악이야말로 진정한 음악이요, 가장 높은 미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음악이라고 공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동안 텍스트를 수반하여 그 가치를 인정받던 음악이 드디어 홀로서기에 성공한 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 수록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해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게 됩니다. "열 명의 아티스트에게 예술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적어도 열두 개의 정의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우스갯소리처럼 이야기합니다만, 그만큼 예술에 대한 관념도, 정의도 사람마다 제각각인 것 같습니다. 

예술이 어떤 것에 대한 표현이라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구체적인 미디엄이 무엇이고, 무엇을 표현하는지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결국 우리는 예술을 통해 무언가를 말하고, 또 듣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인가 요즘은 음악외적인 요소들에서 언어적 개념을 찾는 것에 점점 더 큰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요즘은 취미로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비록 멋진 장비도, 대단한 것을 찍으러다니는 것도 아니지만 카메라 렌즈를 통해 새롭게 정의되는 주변환경을 주의깊게 살펴보고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 참 즐거운 일입니다. 그렇게 사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키워가던 도중, 오늘 소개할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제목에서부터 깊은 공감이 느껴지는 "사진을 말하다"를 함께 만나보시죠.

 

 

 

 

평평한 프레임에 입체적인 세상을 담다 

저자인 데이비드 두쉬민은 전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가 보고 느낀 것을 카메라에 담는 프로페셔널 포토그래퍼입니다. 본래 캐나다 출신인 그는 뜬금없게도 신학을 전공했는데 졸업한 뒤에는 더욱 더 뜬금없이 12년 동안이나 코미디언으로써 무대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연신 유쾌한 문장에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 오랜 시간동안 갈고닦은 언변 덕분이 아닌가 싶네요. 뜬금없이 시작한 만큼 뜬금없이 무대를 떠난 그는 그제서야 비로소 포토그래퍼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물론 그 전에도 취미로 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만) 현재 사진을 찍고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뭔가 아담 샌더스를 연상시키는 장난기 가득하지만 선한 인상의 두쉬민의 글은 주의깊게 읽지 않으면 그 안에 담긴 유머와 은유를 알아채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음미하며 읽으면 깨알같은 멘트의 매력에 빠져버릴 것 같더군요. 사진을 사랑하고 열정을 가지고 설파하면서도 지나치게 진지하지 않고, 모든 것을 여유롭게 받아들이는 그의 자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진에 대해서만큼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인 제가 사진에 대해서 가장 알고 싶었던 것은 "어떻게 하면 좋은 사진을 찍는가?"라기보다는 "어떤 것이 좋은 사진인가?"였습니다. 취미로 찍는 사진은 그저 자기 만족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무언가 나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수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아까 이야기한대로, 마치 외국어를 배우듯, "사진"이라는 언어를 조금이나마 배워보고 싶은 그런 마음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음악과도 너무나도 다른 세계의 언어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 언어에 대한 개념부터 잡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두쉬민이 책의 초반부터 강조한 "3차원 세상의 2차원화"는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3차원으로 인식되던 세상은 2차원으로 재조립되고 그때 만들어진 사진 속 요소들은 건물이나 나무나 사람이 아니고 선과 톤이다. (135 페이지)

당연히 알고 있던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곱씹으면 곱씹을 수록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착시로 인해 (또는 오랫동안 그 기법의 컨텍스트에 익숙해졌으므로) 우리는 사진을 보면 자동으로 그것이 표현하고 있는 (원래의) 3차원 세계를 재조립해나갑니다. '이것은 작고 그림자 진 것을 보니 조금 더 뒤에 있는 사물이군' 혹은 '지평선이 여기 있는걸 보니 대충 높이가 이정도 되겠어' 하고 2차원적 정보를 토대로 렌즈가 바라보던 세상을 재구성하는 것이죠. 그저 사진을 감상하고 "읽기"에는 문제가 없습니다만, 어떤 특정한 메시지를 담고 싶다면 바로 이 면을 간파하고 역이용할 수 있는 지식과 노하우가 필요할 것입니다. 

 

3차원 세상에서는 선들이 서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절대 교차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두자. 그런데 사진으로 평면화하면 그 선들은 서로를 두 동강내거나 연결하거나 새로운 선을 만든다. (81 페이지)

셔터가 눌리는 그 순간 3차원 세상은 선과 톤으로 압축되어 2차원 프레임 안에 갇히고, 이것들은 그 구성 요소와 배치 그리고 각도에 따라 각각 새로운 메시지를 보는 사람에게 전달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막연하고 아리송했던 개념들이 시간이 지날 수록 점차 조금씩 구체화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사진을 찍기 시작할 때 흔히 우리가 말하는 "입문서"에서는 먼저 노출이나 초점 그리고 렌즈에 대해 설명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많은 입문서에서는 "좋은 사진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먼저 정해주기도 합니다. 그저 사진 찍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면 굳이 할 말이 없지만, 안그래도 모든 것이 정해진 각박한 사회에서 자신의 취미나 예술활동마저 주입식 "규칙"으로 얼룩지게 된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까요? 두쉬민의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이미 능숙한 포토그래퍼인 그가 우리에게 어떠한 고정관념적 관습을 가르치기보다는 사진의 기초적 원리를 이해시킴으로 스스로 사진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해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이렇게 했던 것인데, 당신 스스로 한번 다시 생각해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장인은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 

저번 달 비엔나에 여행을 갔다가 신혼 초 신랑이 선물해주었던 삼성 디카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카메라에 정도 많이 들었고, 무엇보다도 신랑에게 처음 선물받은 카메라였기에 정말 속상했고, 이사와 여행 사진들이 가득 담긴 메모리카드조차 분실센터에 맡기지 않은 범인(?)이 정말 야속하기만 했는데요.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속상한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신랑은 제가 정말 가지고 싶어했던 뉴미러팝 카메라를 선물해주었답니다. 

새 카메라를 고르는 과정에서 참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다시 디카를 살 것인지, 아니면 요즘 그야말로 '핫'한 미러리스 카메라를 살 것인지, 따져보면 따져볼 수록 점점 미궁으로 빠져드는 선택에 이리저리 갈팡질팡하다 결국은 다시 디카를 구매하기로 결정했는데 그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디카로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면, 아무리 카메라가 좋아도 찍을 수 없을테니까요. 

 

모든 사진 입문 책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제가 겪은 몇 권의 책들은 "입문서"가 아니라 "지름신 강림서"였습니다. 이제 막 사진에 대해 알아가고 조금 더 배우고 싶은데 일단 멋진 고가의 장비들을 기준으로 설명하면서 이 렌즈 저 렌즈를 비교해주니 일명 "똑딱이"로는 아무것도 못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하고 싶은 것은 사진을 통하여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지, 적어도 A1 크기의 현수막에 고퀄리티 사진을 현상하고 싶은 것이 아닌데도 말이죠.

그러다가보니 뭔가 "사진 입문"으로 시작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가격비교 사이트에서 고가의 장비를 검색하고 있는 이상한(?) 데자뷰가 반복되곤 했습니다. 한참 둘러보다가 내리게 되는 결론은 "가격도 부담스럽고 가지고 다니기도 부담스러우니 그냥 관두자" 정도였고요. 그러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도대체 내가 뭘 하고 있나 싶기도 하더군요. 

(굳이 이것을 '사회적 분위기' 탓으로 돌리고 싶진 않지만 사실상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이런 어려움(?) 때문에 사진 입문을 어려워하시지 않나 싶습니다. 사진 좀 찍는다고 하려면 제대로 된 DSLR 정도는 가져줘야 하고 렌즈는 종류별로 하나씩은 있어야 '내가 사진좀 찍는다'하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장비를 모두 갖추려면 적게는 몇 백, 많게는 몇 천 정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보통 부담이 아닙니다. 특히 동호회나 인터넷 카페에 소속되어 있다면 심한 경우 제대로 장비를 갖추지 않으면 이야기에 끼기 조차 힘들다고 하는데요. 어마어마한 고가 DSLR에  어마어마한 대포 렌즈를 끼우고 어마어마한 해상도로 사진을 찍어 결국 블로그에 가로 550px로 압축해 올리는 이유는 아직도 잘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전문 포토그래퍼인 두쉬민씨의 장비는 물론 알아주는 고가 모델들이지만, 책을 넘기다 보면 그가 iPhone4로 촬영한 사진들도 눈에 띕니다 (그리고 그 사진들이 이러한 인쇄물에서 고가 DSLR 사진들과 비교해 - 사람들이 상상하는 만큼 -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놀라운 사실도 다시금 느끼게 되고요). 요즘 휴대폰 카메라도 성능이 좋기 때문에 사진 찍기에는 충분하다...라는 어줍잖은 결론을 내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카메라의 스펙은 기종에 따라 달라지지만 결국 그것을 본질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다른 어떤 스펙도 아닌 "나 자신의 스펙"이 된다는 것이죠.

두쉬민은 카메라의 기능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어떤 장비에 대해 강조하거나 칭찬하지 않습니다. 고의처럼 자신이 사용하는 장비나 그 장점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으며, 그가 사용하고 있는 장비에 대한 정보는 그저 사진에 첨부된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장비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 할 이야기는 너무도 많습니다. 결국 셔터 스피드나 조리개의 성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기초를 이해하고 원하는 대로 적용하여 사용할 수 있는 나 자신의 능력이 더 중요하니까요. 자신의 실력이 점점 더 좋아져 결국 가지고 있는 장비의 스펙을 훌쩍 뛰어넘을 때 비로소 "좋은 장비"에 눈을 돌려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사진, 당신의 언어가 되다

우리는 원하는 대로 순간을 만들어 낼 수는 없지만 순간을 선택할 수는 있고 그런 순간의 선택은 사진에서 매우 중요하다. (107 페이지) 

그림과 사진의 가장 다른 점이라면 바로 "창조하는 것"과 "재창조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의 머릿 속 상상의 세계에서 마음껏 창조할 수 있는 그림과는 달리 사진은 이미 "있는 것"을 재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예 없는 것, 혹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피사체로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의 세계가 신비롭고 무한한 것은 사진이 결코 "있는 그대로의 것을 그대로 재현"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히려 완벽한 객관성으로 존재 그대로를 전달하려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떻게 사진을 찍던간에 그 찍는 사람의 메시지가 담길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요?

 

순간을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는 것. 그것은 포토그래퍼가 가진 가장 근본적인 권리이자 그의 사진을 결정하는 핵심 포인트일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예술이 그렇듯, 그러한 포토그래퍼의 선택에 규칙을 일방적으로 적용하려는 것은 그 규칙의 고지식함 만큼이나 보수적이고 케케묵은 발상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규칙에 얽매여 창조한 예술은 규칙에 대한 예술이지 열정이나 아름다움, 혹은 인간이 수 세기 동안 예술의 대상으로 정직하게 다뤄온 것들에 대한 예술이 아니다. (55 페이지)

 

파트 1과 파트 2의 이론적 설명을 거쳐 파트 3에서는 두쉬민이 촬영한 스무 장의 사진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며 그 안의 요소들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두쉬민은 선택된 사진과 선택되지 않은 다른 사진들을 서로 비교하면서 각 한 장 한 장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를 짚어봅니다. 사진 속 언어들이 추상적으로 느껴졌다면 그것을 구체화시킬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사진찍기의 규칙과 정형화된 사진의 언어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되는지, 그리고 그것을 접한 우리들이 정말 그 의도대로 느끼고 읽게 되는지를 주의깊게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고요. 

 

다시 강조하지만 좋고 나쁘고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당신의 이미지가 어떻게 읽힐 것인가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 (171 페이지)

 

보지 않고 "읽는" 사진. 찍지 않고 "말하는" 사진.

 

분명 사진에 대해 알고 싶고 사진을 배우고 싶어 읽기 시작한 책인데, 읽는 내내 오히려 음악과 접목시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사진이 말하고 싶은 만큼, 음악도 말하고 싶으니까요. 약 200년 전, 어떠한 텍스트로부터도 자유로운 기악음악의 미학을 재조명할 수 있던 것은, 직접적인 언어와 텍스트로 표현하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바로 그 한계에서 더욱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찾기 시작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진도 마찬가지죠. 설명을 듣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 그 자체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비록 그것이 관찰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러한 불특정성이 우리로 하여금 상상할 수 있는 마지막 "예술의 한 켠"을 마련해준다는 것. 이 책을 읽으며 다시한번 예술의 "소통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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