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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인테리어 해부도감 - 부엌, 거실, 욕실, 수납, 가구에 이르기까지 세계적 거장 11인의 지혜를 빌리다 ㅣ 해부도감 시리즈
마쓰시타 기와 지음, 황선종 옮김 / 더숲 / 2013년 3월
평점 :
언제 시간이 다 지나가나 하루 하루 손꼽아 기다리던 이사가 어느새 다음주로 성큼 다가왔습니다. 너무 이사를 가고 싶어 꿈까지 꿀 정도였지만, 가뜩이나 봄이 시작되면서 많아진 일에 정신없는 스케쥴로 하루하루가 빛의 속도로 지나가다 보니 이러다가는 이사준비를 제대로 마치지 못하진 않을까 새로운 걱정을 시작해버렸네요. 체크리스트를 만들어가면서 이것저것 준비하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이사 하는 그 날까지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을 듯합니다.
이사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난 뒤 가장 관심이 가게 된 부분은 다름아닌 인테리어였습니다. 아무리 예쁜 집으로 이사를 해도 인테리어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예쁜 집을 정글(?)로 만드는 것은 시간 문제! 그리고 이런 저런 집을 보러 다니다 보니, 예쁘게 인테리어를 한 집들은 거의 모델하우스 뿐이더군요 (라고 쓰고 있는 제 집도... 재주가 없는지라 예쁘게 꾸미진 못했답니다).
꼭 돈을 들인다고 해서 집이 예뻐지는 것도 아니고, 센스와 인테리어에 대한 이해력만 갖추고 있다면 누구든지 저예산으로 인테리어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장점! 인테리어라고 해서 거창하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소소한 아이디어와 생각의 역발상을 통해 꿈꾸던 러브하우스를 만들겠다고 다짐한 만큼, 인테리어에 관한 책을 먼저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첫 만남이 바로 오늘 소개할 책인데요, 유명한 건축가이자 교육자 마쓰시타 기와 씨의 "주거 인테리어 해부도감"을 만나보시죠!

열한 명의 여성 디자이너,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
하버드 대학원 디자인 스쿨 건축학부를 졸업한 엘리트 마쓰시타 기와 씨의 "주거 인테리어 해부도감"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다름아닌 이 책이 소개하고 있는 열한 명의 여성 디자이너들입니다. 보통 건축가 하면 핀란드의 알바 알토, 바우하우스로 유명한 발터 그로피우스 등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해부도감"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건 이 책이 소개하고 있는 건축가 (혹은 디자이너) 들은 모두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들이라는 것이죠.
이렇게 이야기하면 "페미니스트적인 발언이다!"라는 비판을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역사적으로 상당히 많은 직업 분야 (특히 예술) 에서 여성들의 역할은 극히 제한되고 억눌려져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음악에 있어서도 그랬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가 낭만파의 거장 로버트 슈만의 아내 클라라 슈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엄청난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로버트는 선천적 피아니스트였던 아내 클라라를 사랑하면서도 대단히 견제했는데, 그녀가 설상가상(?)으로 작곡마저 시작하자 그녀의 작품을 없애버리거나 발표하지 못하게 막는 등 심하게 반대하였습니다. 21세기 들어와 더욱 활성화된 젠더 스터디 (gender study) 를 통해 여성 작곡자들의 숨겨진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늘어났는데요, 이들 대부분이 남성들과는 달리 제대로 교육을 받거나 자신의 재능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만나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건축에서는 이야기가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이들 대부분이 늦은 19세기 혹은 20세기에 살았던 여성들이라 예전만큼 활동에 제한을 받지 않았던 것도 있었겠고요. 이들은 세계적 거장으로 불리우는 건축가들과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그들에게 도움을 받고 또 도움을 주면서 자신들의 작품세계를 확장시켜 갔습니다. 때로는 공적으로 때로는 사적으로 가까운 관계였던 그들은 서로에게 영감을 제공하였고, 떠오른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추진시켜 나갔습니다. 이 책에서는 그들의 대표작뿐만 아니라 삶까지도 살짝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데요, 사랑하면서도 증오하는 애증의 관계에서 잉태된 작품들을 다시한번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건축 이야기
건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저입니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건축가" 혹은 "건축학"이라는 괴리감은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기자기한 일러스트와 친절하고 맛깔나는 설명을 읽다보면 어느새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따라가는 느낌을 받았으니까요. '아, 이런 생각을 했기에 이런 작품을 만들었구나'하고 이해하다 보면 불편하다고 푸념만 했지 그것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했습니다. "역시 전문가는 달라!"라는 깨달음(?)과 감탄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나 역시도 인테리어에 있어 어떤 불편함과 선에 대한 갈망을 느낄 때마다 이들처럼 창의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면 좋겠다라는 도전을 받았네요.

보통은 각 건축가/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신의 집에도 곧장 적용할 수 있을만한 아이디어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복잡하기만 했던 거실을 어떻게 바꾸면 탁 트인 뷰(view)를 확보할 수 있을지, 부엌의 동선을 어떻게 개선해야 자리도 넓어지고 일하기도 편해질지. 건축가들이 주거 인테리어를 생각할 때의 순서들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의 공간 역시 어디가 가장 문제인지 추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건축가 혹은 디자이너의 이름이나 그의 주요 작품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더라도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만났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저도 연신 "아, 이것이 이 사람 작품이었고, 이러한 배경으로 탄생하였구나" 외치면서 즐겁게 책을 읽었답니다. 그렇게 다시한번 작품을 감상하면서 생각해보니 스스로도 어떻게 그것을 사용해야 하고 대체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기술적인 면은 따라가기 어렵겠지만, 대단한 비중을 차지하는 아이디어야말로 우리가 생활에 접목시킬 수 있는 주옥같은 지식이 아닐까요? 물론 경제적인 면이나 시간적 여유를 생각하면 당장 집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는 없겠지만, 차근차근 하나씩 진행해나가는 즐거움도 정말 클테니까요.
주거 인테리어, 정말로 "하기 나름"!

이번에 집을 구하면서 여러 사람에게 "신축 아파트를 알아보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답니다. 유럽에서 생활하던 저에게 아파트란 개념은 별로 매력적인 것도, 특별한 것도 아니었는데요, "아파트가 좋고 빌라나 오피스텔은 사지 마라"는 일방적인 조언에 가끔은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사람마다 원하는 것이 다르고 추구하는 것이 다를텐데도 너무 "좋은 것"과 "나쁜 것"에 대한 개념이 획일화되어있다는 느낌이었어요.
한참을 (반강제적인) 조언을 듣고 있다가 문득 물어보았습니다. "왜 꼭 아파트를 고집해야 하는데요?" 보통은 이렇게 물으면 '도대체 너무 당연한 걸 왜 묻지?'라는 멍한 표정이었는데요, 구체적인 이유를 굳이 듣겠다고 고집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요즘 아파트들이 잘 나와. 그래서 생활하기가 편해."
"애들도 생각해야지, 아파트에서 키워야 해."
"제대로 살려면 아파트에서 살아야지."
물론 아파트가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런 대답들은 별로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는데요,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들었던 첫번째 답변 "아파트들이 잘 나오니 살기가 편하다"에 정면으로 반박할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아파트가 잘 나온다는 말은 무엇보다도 방의 배치라던가 가구를 놓을 위치가 최적화되어있다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요즘 새로 지은 집들을 돌아다녀보면 예전과는 달리 덩치가 커서 골칫덩이였던 냉장고나 김치냉장고 등을 효과적으로 수납할 수 있는 빌트인 가구들이 마련되어 있는 곳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연 예쁜 집으로 꾸밀 수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대답은 NO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예쁘게 공간을 마련해 놨고 가구를 배치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라고 하더라도 인테리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다면 어수선해지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조금만 돌아다녀보면 그런 집들을 상당히 자주 만날 수 있답니다...라고 말하면서 저도 대단히 찔리네요! ㅎㅎ).
어떻게 가구를 놓아야 시선을 가로막지 않고 넓은 느낌을 주며 어떤 배색이 가장 효과적일지 아는 것은 우리같은 민간인(?)들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 분야의 전문가들처럼 생각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주거 인테리어 해부도감"을 차근차근 읽다 보면 일단 "무엇이 가장 거슬리는지" 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제거하고 개선할 수 있는지가 다음 스텝이겠죠.
지금 내가 거주하고 있는 공간에서 어떤 점이 가장 문제인지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거기서부터 인테리어가 개선되고 시작되는 것일테니까요. 집을 꾸미거나 새롭게 단장할 때 이 점을 중심으로 가구배치를 바꾸고 재정렬하다보면 한번에는 아니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최적화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름답고 예쁜 집에서 살기 원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는 "내 집, 내 공간"에 대한 갈망이 다른 나라보다도 더 크고 간절한 것 같습니다. 제가 살던 오스트리아에서는 상상도 못할 빚을 져가면서도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고 싶어 하니까요.
하지만 인테리어라는 것은 돈 하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으리으리한 집을 사고 최고급 가구로 집을 꾸미고 모든 것을 책임져줄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고용할만한 경제적 여건이 된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일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조금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ㅎㅎ
하지만 크게 돈을 들이지 않고도 내 집을 나에게 최적화된 러브하우스로 만들어 가는 것. 조금의 지식과 노력 그리고 관심만 있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가구만 해도 무작정 좋은 브랜드의 비싼 제품을 구입하는 것보다 공간에 가장 잘 맞는 가구를 구입하거나, 그것이 힘들 경우 주문제작을 하더라도 알맞은 비용으로 원하는 것을 주문할 수 있는 요령이 필요하다고 느꼈고요.
마쓰시타 기와 씨의 "주거 인테리어 해부도감"은 저처럼 인테리어 혹은 건축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관심을 가지고 지식을 키워나가고 싶은 분들에게 멋진 입문서가 될 것입니다. 또한 건축에 대해서 어느정도 알고 있는 분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열한 명의 여성 건축가 혹은 디자이너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고요. 한가지 아쉬운 것은 (아무래도 저작권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만) 소개된 작품들을 실사진이 아닌 일러스트로만 만나다 보니 공간감각(?)이 부족한 저로써는 많은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더라고요. 조금이라도 실제 사진을 참고로 넣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