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스트리아에 살던 어린 시절, 공연으로 비엔나 외각의 작은 도시 Krems에 가게 되었습니다. 빈에 산지는 어느정도 되었지만, 한번도 차를 타고 밖으로 나갔던 적이 없었던지라 참 많이 설렜던 기억이 납니다. 기대가 가득했던 이유는 하나 더 있었는데, 그 당시 제가 가장 좋아하던 작곡가 루드비히 반 베토벤의 생가가 있었기 때문이죠. 가장 위대한 작곡가, 하지만 평생을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지내야 했던 그가 병약해져 인생의 마지막 가을을 보냈던 도시 크렘즈를 방문할 생각에 전날 잠을 설칠 정도였답니다. 그리고 드디어 크렘즈에 도착. 지금 돌이켜보면 공연이나 그 후 행사에 대해서는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답니다. 단지 이 작고 사랑스러운 도시의 좁은 길목을 걸으면서, 어쩌면 몇 백년 전 베토벤도 이 거리를 걸으며 악상을 떠올렸을까 궁금해했던 것이 떠오릅니다.
어떤 도시가 그만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지 않고, 어떤 도시가 사연이 없을까요? 도시의 크고 작음을 떠나 적고 많은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면서 도시는 세월의 흐름을 나이테처럼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나이테가 균일하고 곧을 때가 있는 반면 한없이 일그러져 고통의 흔적으로 남을 때도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그렇듯, 도시는 좋은 기억도 나쁘고 괴로웠던 기억도 품 안에 간직한 채, 그만의 역사를 만들어갑니다.
하지만 도대체 "역사"란 무엇일까요? 누가 "이것이 이 도시의 역사다!"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수많은 베일과 거짓말에 가리워 정작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지극히 일부분만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가 우리가 생각하기 바라는 정보에만 의지하여 나름대로의 도시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을지도요. 오늘 소개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답니다. 비록 유년시절과 20대는 대부분 비엔나에서 보냈지만,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고, 또 지금도 살고 있으면서도, 정작 이 도시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모르고 있다는 생각 말입니다.
수 천년의 역사를 품은 도시 서울의 베일을 하나 하나 걷어가면서 그 새로운 모습을 만날 기대와 함께 읽기 시작한 "다시... 서울을 걷다"를 소개합니다.
객관적 역사는 없다?
이 책을 지은 권기봉씨는 서울 토박이가 아닙니다. 월악산에서 자란 그는 서울대학교에 합격하면서 서울로 상경하게 되고, 수 많은 역사의 흔적들을 간직한 이 도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서울로 온 98년부터 서울에 대한 글쓰기가 시작되었다고 하니, 그의 역사적 관심은 이미 이 책이 발간되기 몇십년 전부터 결실을 준비한 셈이네요.
흔히 역사를 "사실적 측면(객관적 역사)"과 "기록된 측면(주관적 역사)"로 분류하곤 합니다. 그리고 회의론자들은 역사란 주관적인 측면만 가지고 있을 뿐 객관적으로 서술되거나 소개될 수는 없다고 단정짓곤 하죠. 저는 회의론자는 아닙니다만 어느 누구도 역사를 지극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야기할 수 없다라는 의견에는 동의하는 편입니다. 인간의 태생적 한계인지라 우리는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저자 권기봉씨가 서울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우리에게 묻고자 하는 것도 이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 미사어구와 아름다운 포장으로 왜곡된 진실들을 되짚어가면서 어째서 그것을 올바르게 다잡는 것이 중요한지 생각하게 합니다.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않고 있다고 해서 그냥 지나쳐넘기고 있던 것들 말입니다.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주장이며, 모순은 없는가. 일단 반민주적인 이승만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4.19를 "혁명"이라 표현한다면, 그런 민의의 결과로 탄생한 제2공화국을 뒤없은 5.16은 "군사정변"이나 "반역"으로 표현하는 것이 옳다. 반대로 5.16을 "혁명"이라 부르고 싶다면 4.19는 "폭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둘은 완전히 반대되는 성격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187-188 페이지)
2012년 2월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문을 연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에 대해 저자가 설명한 글입니다. 5.16 혁명을 "민족중흥과 근대화 혁명"이라고 입구에 설명해놓은 것에 대한 비판입니다. 아직까지도 역사적 사건의 부당함을 인정하지 않고 은근슬쩍 좋은 미사어구로 아름답게 꾸며 왜곡하려는 현실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예일 것입니다. 정치적 성향이나 지지하고 있는 정당 혹은 특정 정치인과는 무관하게 잘못된 역사는 잘못되었다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건만, 아직까지도 역사적 사실을 조금씩 다르게 포장하여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덧발라가는 행위로 인해 역사의 왜곡이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자는 또한 무턱대고 네거티브 유산이라 단정한 뒤 역사를 소실시킨 안타까운 사연도 언급합니다. 바로 옛 서울시청의 철거 사건입니다.
"사실 일제 잔재라는 이유로 당시의 건물들을 철거한다고 해서 완전히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제아무리 조선총독부를 헐었다 할지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잔재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제 때의 건물이라고 해서 옛 서울시청을 철거해버린다면 서울사를 넘어 한국사의 '1급 현장'을 한국인 스스로 지워버리는 셈이 된다. '서울의 오늘'을 있게 한 지하철 건설이나 강남 개발과 같은 굵직굵직한 역사적 결정들이 숱하게 내려진 공간이 바로 태평홀, 그리고 서울시청이기 때문이다." (124 페이지)
어떠한 사건을 보고 해석하고 판단하는 기준은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고, 무엇이 옳고 그르다를 판단하는 것은 난해한 일입니다. 한쪽에서는 아프고 괴로운 강점기의 흔적을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할 것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저자와 같이 네거티브 유산도 유산이므로 지켜야 한다는 입장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처럼 서울시청의 역사와 주요 사건들을 알고 있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저자의 비판으로 인해 비로소 관심을 가지고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언론에서 이 사건에 대해 접한다고 하더라도 이렇듯 구체적으로 역사적 가치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는 드물 뿐더러 언론의 경우 대부분 중립적이기보다는 한쪽의 입장에서 보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 당파 싸움 속에서 오히려 사건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리기가 부지기수니까요.
서울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총 4부, 25개의 사연으로 이루어진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의 제목이 참 마음에 와닿는 걸 느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제목 그대로 서울 시내를 "걷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것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것도 아닌, 좁디 좁은 골목까지 꼼꼼히 걸으면서 서울이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숨결을 찾아다니듯 저자는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서울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압구정의 땅값이 비싸고 서민들은 살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언제서부터 왜 압구정 일대가 "돈 많은 동네"가 되었는지 알진 못했습니다. 잊을만 하면 다시금 터져나오는 재개발과 지역주민 사이의 첨예한 대립을 익히 들었으면서도, 재개발로 인해, 재개발을 위해 어떤 변화를 겪게 되었는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는지 구체적으로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소공동에 한때 수많은 화교들이 모여살던 "차이나타운"이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많이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 혹은 미국, 영국과 같은 강대국 사람들에게 소외당하고 차별당한 이야기는 알아도, 불과 50년 전 소공동의 화교들이 말못할 탄압으로 위협을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부각되지 못했습니다. 창피한 과거는 그대로 묻어두자는 무책임함과 내 일 아니니 상관없다는 무관심 속에 묻혀진 사건들입니다.
"서울시는 노후한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화교회관'을 지어 입주시켜준다는 말로 화교들을 회유했다. (...) 그러나 지어준다는 화교회관은 함흥차사였다. 두 달이 지나도 새 건물을 올린다는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았다. 서울시와 한국 정부의 배신이었다. (...) 당장 새 가게를 내야 하는 이들도 있었기에 차선택이라도 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화의 제안대로 땅을 모두 팔아버린 것인데, 이는 곧 소공동 화교 축출작전이 성공리에 완료되었음을 의미했다." (47 페이지)
역사의 올바른 해석이 중요한 것은, 그 역사를 통해 현재의 우리들이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학살의 주범이었던 독일의 경우, 아직도 정신차리지 못하는 일부 네오나치들을 제외하곤 아주 젊은 세대들까지도 인종차별이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것인지 배우며 자라납니다. 전 세대가 인류를 상대로 저질렀던 끔찍한 범죄를 통해 그 심각성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한국은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많은 탄압과 고통을 견뎌낸 우리 민족에 초점이 맞추어져 정작 우리 자신이 가해자였던 모습은 잊어버리고 싶어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인종차별을 받았을 때의 고통은 오래 기억하지만, 또 다른 곳에서는 우리보다 힘든 사람들에게 폭력과 차별을 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공동의 화교들이 그랬고, 집없는 노숙자들과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 그리고 타지에서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렇습니다. 부끄러운 역사를 직시하고 그것을 제대로 소화해내려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요? 저자는 역사가 왜곡되고 정당화를 위해 눈가리기를 반복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강조합니다.
"오래되지 않은 역사조차 망각하는 순간, 학교교육에서조차 홀대하고 제외하는 순간, 나아가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E. H. 카의 말을 귓전으로 흘려듣는 순간, 반동의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된다." (195 페이지)
수많은 '우리들'의 이야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보다 밀접한 관련이 있는 근현대사의 현장을 찾아 다시 서울로 나섰다. 권력자의 시각이 아닌 이 사회를 구성하는 수많은 '우리들'의 입장에서 다시 서울을 걸었다. (...) 얼핏 익숙한 듯하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낯설기만 한 곳을 걸으며 우리가 서울이라는 공간과 역사에 얼마나 무심한지 살펴보았다." (머리말 중, 6페이지)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역지사지에도 한계가 있고, 자신이 직접 처한 상황이 아니고선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뉴스 헤드라인과 인터넷에서 쏟아져나오는 '부조리함'과 '억울함' 그리고 '끔찍함' 속에 어쩌면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것들에 귀를 닫아버리진 않았나 싶습니다. 어차피 내가 직접 당한 일도 아니고,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오는 것도 아닌데, '이번엔 내가 아니니 다행이군' 하면서 뚜껑을 덮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그렇게 반복되는 무관심 속에 언젠가는 그 피해자가 나 자신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도 않고 말입니다. 그리고 정작 내가 그 피해자가 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무너져내려가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알면서도 눈을 돌리고 알면서도 도와주지 않는 사람들을 탓할 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도시, 서울. 수 천년의 역사와 수 많은 사건들을 나이테처럼 간직한 서울시에게 어두운 면이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도, 부끄러운 사건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서울시의 한 부분입니다. 그렇다고 저자가 서울시의 어두운 면만을 부각시키며 비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마치 방랑자차럼 서울시 곳곳을 떠돌며 그 거리가 말해주고 있는 역사에 귀를 기울일 뿐입니다. 그 이야기가 때로는 어둡고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서울시의 한 부분으로서 인정하고 용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자처럼 서울을 "걸을 수" 있도록 마련된 서울시의 지도가 인상적입니다. 책 속에 등장했던 역사적 장소들과 이슈가 되었던 거리까지 보기 좋은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되어 있는 이 지도를 들고, 날이 풀리면 저 역시 "서울을 걷고 싶다"는 마음이 드네요. 이 지도에는 이번 "다시, 서울을 걷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의 장소들도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두 권의 책을 읽고 서울에 대해 궁금해졌다면 직접 답사를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지구의 지극히 작은 일부분 대한민국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중에 정말 작은 한 부분인 자신의 존재가 너무도 힘없고 무의미하게 느껴져 "내가 이렇게 해봤자 뭐가 달라지지"라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작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서울이 되고, 대한민국이 되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해볼 때입니다. 지나온 역사를 소중히 생각하고 그것의 밝고 어두운 면을 편식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모이게 되면, 분명 서울시 전체가 점점 변화하게 될테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되는 날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 저자는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일견 어두운 그늘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그림자는 그것을 만든 사물을 더욱 뚜렷이 부각시킨다. (...) 이제 필요한 것은 검은 그림자들을 배제하고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역사적이며 문화적인 맥락을 짚어내 씨줄과 날줄로 엮어가는 일이다. 모든 역사는 흘러간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의 가늠자'이자 '미래의 지표'로써 그 가치가 영원하기 때문이다." (33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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