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종로에서 늦은 시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버스 맨 뒤에 앉아 휘황찬란한 거리의 조명을 바라보고 있던 중 도로 한가운데 몇몇 사람이 모여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 중심에는 헬멧을 쓴 한 사람이 바닥에 누워 있었고 경찰관 두 분이 곁에 있었습니다. 어렵지 않게 방금 사고를 당한 오토바이 운전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죠. 사고가 난 뒤 이미 상당한 거리를 "날아"온 듯, 주위에 그가 타던 오토바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워낙 막히는 시간대라 조금 의아했죠. 속도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도로에서 어떻게 저런 접촉사고가 벌어졌을까 하고 말입니다. 한 쪽 신발이 벗겨진 채 바닥에 누워있는 그를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간담이 서늘해졌습니다. 늦은 시간 탓에 잘 보이지 않았던 헬멧 아래 고여있는 피는 이미 그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픈 병은 자신이 앓고 있는 병이고 세상에서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직면한 문제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자신에게는 예민하고 집중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관심하다는 이야기겠죠. 우리가 "서민들의 삶이 어려워졌다"라고 말하면서도, 기름값이나 전기세 등 스스로가 직접 느낄 수 있는 물가상승을 제외하고는 무엇이 구체적으로 어려운지 별로 알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니, 알고 싶어 하지도 않습니다. 스스로가 살기도 버거운데 다른 어려운 사람들의 짐까지 떠안고 싶지 않아서일까요? 오히려 억울하고 힘든 이야기를 피하고 싶은 경우가 대부분이죠.
여기, "진짜 서민"들의 어려운 삶이 무엇인지 말하고자 하는 한 기자가 있습니다. 삶의 최저선에서 매일 매일을 고군분투하며 연명해야 하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말합니다. "대한민국은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없노라"고. 그리고 "현실은 시궁창"이라고. 가슴아프고 끔찍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현실을 외면하는 이상 극복할 수 없다고 호소하는 그녀, 임지선 기자의 "현시창"을 소개합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흔들리는 청춘, 흔들리는 대한민국.
경제가 어려워지고 서민들의 생활이 각박해질 수록 사람들은 "흔들리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회가 흔들리고, 사람들이 흔들리고, 청춘이 흔들리고 있노라고. 신문을 장식하는 크고 작은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반복될 수록 충격에도 익숙해지는 느낌입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 살기 위해 몸과 마음을 내던지고 어렵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뭔가 나 자신과는 동떨어진 것만 같은 이야기를 읽고 난 뒤 잠깐 생각에 잠길 수는 있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릿속에서 잊혀지기 마련입니다.
한겨레 사회부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삶의 여러 모습을 직접 목격한 임지선 기자는 방관자의 모습을 한 우리에게 스물 네가지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가장 낮고 어려운 자리에서부터 삶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서부터 기력을 잃고 방황하는 청춘들의 이야기까지. 그리고 그녀는 말합니다. 이 이야기는 그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라고. 그리고 이 이야기를 직시하고 인정하지 않는 이상, 현실은 나아질 수 없다고.
"너무 많은 이들이 청춘을 위로하고 치유한다고 나서는 세상이다. 나는 스물네 건의 사연을 내보이며 이래도 세상이 이들에게 '힘내라'는 말을 건넬 수 있겠냐고 반문하려 한다. 이것은 철수와 영희,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나 혼자 잘살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청년이 미래에 대한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드는 사회는 '나쁜 사회'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7 페이지, 프롤로그 중)
총 네 가지의 테마로 나뉘어진 사연들은 제각각 우리 사회의 비참한 현실을 조명합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 뛰어나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어두운 음지에서부터 현란한 조명 속 외로운 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뉴스를 통해서 들었지만, 깊은 사정을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입니다. 전후사정을 알지 못하고 단신으로만 접하는 것과 한 사람 한 사람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임 기자는 바로 여기 우리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황 씨가 죽을 때까지 걱정했던 학자금 대출은 고스란히 남았다. '이제 학자금 대출이자 내는 날이 다가오는데, 어떻게 해야 하죠?'라고 여동생은 물었다. 늘 자랑스러웠던 성실하고 착한 오빠가 남긴 것이 빚뿐이라는 사실을 동생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승원 씨를 짓누르던 학자금 대출을 어머니와 여동생이 떠안지 않기 위해서는 사망 직후 3개월 안에 법원에 '상속포기 신청'을 해야 한다. 현실은 냉정하다." (20 페이지)
소외받는 소수의 이야기
그렇다고 "현시창"이 누구나 공감하고 공분할만한 사람들의 사연만을 담은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소수의 이야기 역시 임지선 기자의 펜을 피해가지 않습니다. 대대적인 단속으로 생존의 위기에 처한 윤락가 여성들의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타임스퀘어에서 시작한 그들의 질주는 바로 옆 골목 안 집창촌의 스산한 길목에서 끝이 났다. 알몸에 피칠갑을 하고 귀신 분장을 한 여성들은 유리방 앞에 다다라 모두 미끄러져 넘어졌다. '다 같이 죽겠다'며 바닥에 뿌려놓은 석유 때문이었다. 빨간 물감에 석유가 섞여 번들번들해진 알몸의 여성들은 바닥을 뒹굴며 통곡했다." (157 페이지)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몸과 여자로서의 존엄성 그리고 도덕까지 내던져야 하는 윤락가 여성의 삶은 비참합니다. 자신을 속박하는 무서운 "삼촌"들에 종속되어 노예처럼 살아가야 하는 것이 그녀들의 삶. 최소한의 인권 역시 그녀들에게는 사치인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 보는 남자와 한 방에 갇혀 때로는 잔혹하게 살해당하면서도 죽어서까지 낙인찍힌채로 무시당하는 것이 그녀들입니다. 그렇다고 확실히 도덕적으로 판단받지 않을 수 없는 그녀들의 삶의 방식을 지켜보면서 임 기자는 그것이 옳다 그르다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발버둥치는 삶의 모습을 관찰합니다. 정당하건 정당하지 않건,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치는 그녀들의 비참함을 고발합니다. 그녀들의 절규가 유리방 안에서 공허하게 울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도록 말입니다.
"이 날은 스물여섯 살인 그의 군 입대일이었다. 그는 훈련소 입소를 거부했다. 한국 사회에서 군대를 거부하는 일은 '감옥행'을 의미한다. 종건 씨는 일몰을 바라보며 조용히 기도했다. '제가 담대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215 페이지)
사법고시를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까지 우수한 성적으로 마친 그가 자신의 앞길을 스스로 침몰시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양심적 병역거부"로 철창 신세도 마다하지 않는 그는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대표적인 이단이자 사이비 종교로 널리 알려진 단체죠. "칼로 일어선 자 칼로 망할것이다"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군대에서 총을 잡는 것을 거부하는 교리 때문에 이미 여호와의 증인에 속한 남자들이 종교적 이유로 감옥에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이들은 "총만 잡지 않는다면 더 오랫동안 군대에 가도 괜찮다"고 호소하지만 현역으로 결정되는 이상 종교적인 이유로 예외가 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임 기자는 역시 이 테마에서도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단체의 타당성이나 부당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철저한 제3자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팩트를 나열합니다. 처음에는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말에 잠시 눈살을 찌뿌리다가도 종교단체에서 떠나 확실히 법칙에만 매여 모두를 천편일률화하려는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 도달하게 됩니다. 법은 외곬수일 수 밖에 없다지만 이렇듯 "개인"을 무시하고 "전체"를 강요하려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생각해볼 수 있게 됩니다.
흔들리는 청춘, 흔들리는 나라
"현시창"이 특별한 것은 여기 있습니다. 비참하고, 억울하고, 끔찍한 현실을 지적하면서도, 누군가에게 죄를 돌리지 않습니다. 수많은 언론들이 하는 것처럼 이른바 "공공의 적"을 조성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문제나 죄에 있어서 그 책임을 물을 "희생양"을 만들고 그에게 모든 죄를 씌우며 만족감을 느끼곤 합니다. 때때로 그 "희생양"이 극히 일부의 책임만을 가지고 있었다던가 혹은 아예 무죄한 사람이어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 것이 군중심리입니다. 어떤 사건이 벌어지게 되면 교수형대에 매달아야 할 죄인을 찾아나서고 형이 집행되는 순간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원시적인 행위가 지금 (인터넷 덕분에 너무 편해진) 우리의 여론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임 기자는 호소합니다. 특정한 어떤 사람에게가 아닌 우리 모두에게. 어쩌면 그녀는 역으로 우리에게 되묻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 욕하기 전에, 과연 '나 자신'은 이 일을 위해 무엇을 하고있느냐?"고 말입니다. 정치인이나 관련 책임자를 욕하고 탓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그들만의 책임일까요? 어쩌면 우리나라의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혹은 알려고 하지 않고)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그저 비판할 대상만 찾아 입과 손가락만 부지런했던 우리들 역시 그 비참한 현실의 일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잘 알지 못하면서, 혹은 더 좋은 방법을 강구하지 않으면서 그저 이러쿵저러쿵 욕만 했던 부끄러운 모습 말입니다.
"'현시창'을 '현실을 직시하라, 그리고 창을 들라'라고 새롭게 고쳐읽는다. 그리고 '지금(현)' '노래부르며(시)' '창의적으로(창)' 오늘의 현실을 이겨나가자고 제안한다." (저자의 말 중)
청춘이 미래를 보지 못하고, 청춘이 암담한 현실에서 살아가는 나라가 건강할 수 없습니다. 흔들리는 청춘은 흔들리는 대한민국을 뜻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흔들리는 청춘을 도와 서로를 위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은 미래를 원하고, 문제가 개선되기를 원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미화시키려 하지 않고, 누군가만을 탓하려 하지 않고, 비건설적인 태도를 버리고 진정 나아지기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출발점을 다지는 것입니다. 임 기자가 말한 것처럼, 위로하기 전 힘들더라도 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총 스물 네 개의 괴롭고 힘든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몇몇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걸까?' 답답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현실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합니다. 무작정 '어렵고 힘들다'라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어렵고 어떻게 힘든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해야 변화할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해야 할 시간입니다. 선거에 한 표를 행사하며 모든 것을 다 맡겨버린 후 안되면 욕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함께 생각하고 지켜볼 때 비로소 변화가 찾아오지 않을까요?
나라의 가장 중요한 행사라 할 수 있는 대선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여론도 뜨거워지고 언론플레이도 가중되기 마련입니다.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대한민국 국민들이 더욱 더 첨예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판단할 수 있는 성숙한 국민의식을 가질 수 있기만을 바랍니다. 스스로도 책임전가하며 탓할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통해, 부족한 저 자신의 시야를 조금은 더 넓혀준 임지선 기자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