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교수님이 알려주는 공부법
나이절 워버턴 지음, 박수철 옮김 / 지와사랑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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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서평을 쓰면서도 몇 번 언급했었지만, "철학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지는 정말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 전까지는 철학이라는 학문은 그저 뭔가 생각이 많은 학자들이 탁상공론을 벌이며 대단한 시간낭비와 말장난을 하는 것이라고까지 생각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박사논문을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의 발상과 정의 그리고 평가에 있어서 철학은 필수불가결의 존재임을 깨닫고 그 가치를 비로소 알게 된 후, 철학은 저에게 있어 아주 핫(hot)한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조금 더 잘 알고 싶고 깨닫고 싶은 학문이 되었죠.





하지만 철학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다름아닌 입문의 어려움입니다. 접근하기도 어렵고, 뭔가 방대하고 거대해보이는 학문의 특성상 마음을 굳게 먹지 않고선 왠만해선 시작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죠. 철학에 쉽게 입문할 수 있도록 친절한 입문서들이 다양하게 등장했습니다만, 전공생도 아니고 그저 입문서를 읽는 것만으로 철학의 세계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어려운 일 같습니다. 또한 워낙 전문용어가 많이 등장하는 탓에 처음엔 어지간히 머리가 아프기도 하고요.


오늘 소개할 책은 바로 이 "철학 공부"에 관한 책입니다. 어렵고 복잡하기만 할 것 같은 "철학 공부법"을 가르쳐주는 이 책은 놀라우리만치 얇고 간결합니다. 게다가 안을 들여다보아도 전문용어나 화성어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큼지막한 글씨체가 눈에 쏙쏙 들어온다니! 현재 영국 개방 대학교 (Open University) 의 철학 교수로 재직 중인 나이젤 워버턴 교수가 소개하는 "철학 공부법", 벌써부터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철학은 결코, never, 복잡하지 않다


저의 첫 철학 입문책은 일단 500쪽의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책이었는데, 각 장마다 수 많은 철학가들과 그들의 사상 그리고 그것에 대한 비판과 보충, 발전의 내용을 컴팩트하게 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간단히 훑고 지나가는데도 500쪽이 넘어간다니 오히려 읽으면서 머리가 더 복잡해지는 느낌이더군요. 각 철학자의 사상을 단 몇장 안에 요약하는 것부터가 무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뭔가 이해가 된다기보다는 "확실히 모르겠군!" 이라는 결론을 낼 수 있게 도와준 것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학문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되어야 하는 것일까? 나이젤 워버턴 교수는 철학이란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스스로가 철학자가 되는 과정임을 강조합니다.


"철학을 읽을 때, 들을 때, 논할 때도 마찬가지 원리가 적용된다. 철학자로서 읽어야 하고, 철학자로서 들어야 한다. 철학을 논한다는 건 단순히 철학에 관한 토론이 아니라 철학적 토론을 뜻한다. (...) 단순히 타인의 생각을 배우는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이 철학자로서 사고하는 방법을 배우는 문제인 것이다." (11 페이지)


바이올린 연주가가 역대 거장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만으로 바이올린을 제대로 연주할 수 없는 것처럼, 철학 역시 나 자신이 철학가로서 사고하고 평가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은 철학공부에 있어서 가장 기초가 되는 바탕이라고 합니다. 역사를 배우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나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사상의 논쟁이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철학은 역사적으로 많은 고뇌와 생각을 거쳐 사상을 정립해온 이들과 맥락을 함께 하여 나 자신의 생각을 키워나가는 학문인 듯 합니다. 아무리 많은 철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사상과 스스로의 생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저 무의미한 탁상공론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철학은 복잡하지 않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단순히 지식을 나열하고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참 진리를 찾기 위하여 스스로가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이기에 오히려 흥미진진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철학 교수님이 알려주는 공부법"에서는 나 자신이 철학가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스스로를 정비해나가야 할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철학은 배우는 학문이 아니다


제목을 번역하는 과정에 있어서 사실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의 원제는 "PHILOSOPHY: The Essential Study Guide" "철학 교수님이 알려주는 철학 공부법" 으로 번역되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통상적인 공부법을 기대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가는 실망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오해 가운데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더라도, 이 책을 읽으면서 공부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소중한 지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정체된 (진부한) 사상가가 되기는 쉽다. 그런 사상가가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진정으로 사고하기를 외면한 채 타인의 말과 글을 단지 암기하고 앵부새처럼 반복하는 소극적 방식에 안주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결코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15 페이지)


어쩌면 바로 이러한 면이 특히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철학을 더욱 더 어려운 존재로 부각시키지 않나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주는 지식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비판적인 검토 없이 시험을 위해 그대로 외워야 하는 교육 가운데서 어쩌면 스스로 생각하는 행동은 점차 잊혀져가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나 철학은 누군가에게 주입식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사고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책 역시 전혀 두꺼울 필요가 없었던 것이고요. 단지 철학을 시작하는 데 있어 귀중한 조언들을 담은 이 책은 철학 공부에 있어서 어떠한 확실한 방향이나 여정을 제시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하지만 철학 시험을 준비하고 있거나 에세이 등의 작문을 해야 하는 학생들이라면 "철학 교수님이 알려주는 공부법"에서 보다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팁을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자신의 의견에 대한 논증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하는 철학 에세이의 경우, 저자는 오랜 경험을 통해 학생과 채점자의 입장 모두를 고려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합니다. 무엇보다도 철학 에세이를 쓰기 전 반드시 알아야 할 기초지식과 마음가짐 그리고 시험을 준비하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하였기 때문에, 논술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가이드라인들은 철학 에세이나 논술 등에 국한되지는 않습니다. 학사 논문이나 레포트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도 철학적인 고찰과 계획은 맡겨진 과제를 수행하는데 있어 필수불가결의 존재일 것입니다. 결국 철학이 하나의 학문에 그치지 않고 모든 학문 위의 궁극적인 포지션에 있는 데에는 분명 이러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겠죠. 스스로 생각하는 법, 사고하는 법을 배우고 더 나아가 자신의 가설을 성공적으로 입증하고 논증에 성공하는 것은 철학 뿐 아니라 모든 학문에 있어 요구되는 이상이니까요. 



당신에게 지금 철학이 필요한 이유





"내가 볼 때 지금까지 한걸음 물러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 즉 자기 삶을 점검해본 적 없는 사람들은 깊이가 없을 뿐 아니라 위험해 보이기까지 한다. 20세기의 소중한 교훈들 중 하나는, 인간은 아무리 '문명화'되었어도 도덕적 순응주의자라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주변 사람들이 제시하는 도덕적 주문을 무비판적으로 따르곤 한다. 나치 독일에서 르완다 사태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지배적 흐름을 맹목적으로 따라만 갔다. - 스티븐 로, [철학 학교] 중" (57 페이지)


제가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버트런드 러셀의 인용구가 이 책의 머리말에서도 등장합니다.


생각하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죽는다. 

Many people would sooner die than think; In fact, they do so.


철학은 어쩌면 실제 삶과는 전혀 관련없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릅니다. 니체가 "신이 죽었다"고 이야기하든지 카뮈가 "가장 심각한 철학적 문제는 자살이다"고 주장하든지 프로이트가 내 안에 나 조차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괴물이 살고 있다고 경고하든지 결국 지금 당면한 인생과는 별 상관이 없어보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철학의 궁극적 가치는 그러한 "역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그러한 역사를 되짚어보고 판단하며 자신의 생각과 사상으로 녹여나갈 수 있는 것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위의 스티븐 로 인용구에서 꼬집었듯이, 많은 역사적 비극들은 군중의 우매함으로부터 비롯되었으니까요.
철학이라는 학문을 학문으로서 배우지 않는다 하더라도, 스스로 생각하는 철학적 사고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작고 얇은 한 권의 책으로 철학적 사고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게 된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한 성과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사고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의 가치를 깨달은 사람들의 특권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세상으로부터 "괴짜" 혹은 "미치광이"로 불리우던 사람들이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놓았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닐테니까요. 하지만 학교에서 제공하는 의무교육과는 달리 철학은 (철학을 전공하는 소수를 제외하곤) 스스로 배우고자 노력하고 깨닫고자 해야 하는 것이기에 오히려 그 가는 길이 더 낯설게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서평을 쓰기 앞서 이 책을 두 번 완독했지만 앞으로도 몇 번 더 완독할 생각입니다. 컴팩트하게 쓰여져 몇 번 읽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스스로가 왜 어떻게 공부를 하느냐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적은 책이기 때문입니다. "철학 교수님이 알려주는 공부법"은 이런 면에서 철학을 공부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생각하는 힘과 논리를 키우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가이드라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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