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음악의 거장들 - 그 천년의 소리를 듣다 : 한국 음악 명인열전
송지원 지음 / 태학사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도 당연하지만 외국사람들이 의아해하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노래방 문화"입니다. 요즘은 아시아에서부터 유입된 가라오케가 유럽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긴 합니다만, 우리나라처럼 골목마다 노래방이 있고, 또 즐겁게 노래방을 찾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의 가라오케의 경우 노래방처럼 방이 나뉘어져있는 형식이 아니라, 큰 홀이나 레스토랑 한 켠에 반주악기와 조그만 무대가 마련되어 있는 형태로, 다른 손님들과 자신의 노래를 나눈다는 의미가 큽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노래방은 작게는 서너 명 정도밖에 들어갈 수 없는 공간도 있으며 심심찮게 홀로 노래방을 찾는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남에게 굳이 들려주지 않아도 스스로가 노래를 즐기고 노래를 부르며 스트레스를 털어버리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노래를 즐겨부르고 음악을 가까이하는 것을 좋아했던 것은 우리나라 역사와 함께 흘러온 오랜 풍습이라고 합니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음악을 사랑하고 아꼈으며,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도 꾸준히 전통음악의 역사를 이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학창시절부터 배우게 되는 서양음악사와는 달리,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에 대해서는 그 지식을 쌓아나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국립국악원이나 정동극장 등 우리 고유의 음악을 이어가는 여러 기관을 통해 국악을 접할 수는 있겠지만, 아직 서양음악에 비해 서적도, 공연도 그리고 음원도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더욱 더 반가운 책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소개할 "한국 음악의 거장들"에서는 역사 속 잘 알려지지 않았던, 우리 음악을 위해 몸과 마음 그리고 인생을 바쳤던 총 52명의 한국의 음악가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한국 음악의 역사를 말하다 


책의 내용을 소개하기 전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책의 내용과 구성을 미뤄두고서라도,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지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내지구성, 그리고 매 페이지마다 눈을 즐겁게 해주는 한국화와 고악보들을 넘기고 있노라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옛 조선으로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입니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참 안타깝게도) 아직 생소한 특유의 음악전문용어나 시대를 대변하는 전문용어들에도 불구하고, 알기 쉽게 설명하는 친절한 저자의 문체는 지식이 전무한 사람도 즐겁게 책 속으로 빠져들 수 있게 합니다. 

이 책을 집필한 송지원 연구교수는 서울대학교 문학박사로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재직중인 한국음악의 권위자입니다. 그러나 해박하고 폭넓은 지식을 어렵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옛날 이야기를 풀어나가듯 음악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그려나갑니다. 어떠한 패턴을 가지고 음악가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각 음악가의 혹은 파란만장하거나 혹은 고결한 인생 속 그들을 매료시킨 음악을 풀어나갑니다. 비록 세월이 지나 그들의 음악을 직접 듣지 못한다 하더라도 예화와 일화 속 모습을 통해 그 소리를 잠시나마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봄꽃은 모두 졌지만 무성한 초록이 깊어지기 시작하는 초여름 어느 날 땅거미가 질 무렵, 숲의 짙은 향내 그득히 맴도는 토담집에서 은은히 울려 나오는 가야금의 청정한 소리를 상상해 본다. 음이 너무 많아 꽉 차지도 않고, 너무 적어 성기지도 않으며, 속도가 너무 빨라 촐싹거리지도 않고, 너무 느려 생각의 끈을 놓치게 하지도 않는, 흙의 묵직한 내음 풍겨 내는 그런 소리를 말이다. 우륵의 음악에서 그런 향내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47 페이지)


모두를 매료시킬만큼 뛰어난 연주자였지만 평생 가난에 허덕이던 거문고의 대가 김성기, 미천한 계집종의 신분이었지만 여러 명상을 감동시킨 명창 석개, 지금으로 말하자면 작곡과 무대연출 그리고 감독까지 겸하여 음악극을 만들어낸 채홍철 등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우리 음악의 거장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즐거움입니다. 귓가에 맴도는 우리 음악의 그림자만으로 상상해보는 그 때 그들의 음악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은 어찌보면 대단히 아쉬운 일이지만, 다른 면에서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들의 음악은 그들의 모든 것이었다


음악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고도 오묘한 것이라, 그 시작은 비록 즐거움과 휴식일 수 있지만, 진정한 음악가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과 고뇌 그리고 괴로운 시간들이 겸해져야 하는 것 같습니다. 즐거워서, 즐겁기 위해서 시작한 음악인데도, 대가라는 경지에 이르기까지는 엄청난 댓가를 치뤄야 하는 것이죠.
우리나라 음악인들도 예외일 수는 없었습니다. 물론 재력이 넉넉한 상황에서 그야말로 풍악과 가무를 즐기던 음악인들도 있었지만, 수많은 음악인들이 그들의 생명과 인생을 바쳐 원하는 경지에 이르기를 소망하고 또 갈망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기 위해 능동적 주체가 되어 삶을 이끌었고, 일생을 소신껏 살았다. (...) 죽음을 앞둔 김성기는 가장 아끼던 음악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자신이 아끼는 제자에게 모두 전수해 주기로 결심하고, 추운 겨울날 노구를 이끌고 서강을 떠나 온통 꽁꽁 언 시린 땅을 밟고 제자를 찾아가 마지막 레슨을 치렀다. 장엄한 의식이라도 거행하듯이." (62 페이지)




마치 도인처럼 속세에 매이지 않고 자신의 음악세계에 빠져 살았던 음악인들. 올곧은 것을 중시했던 문화에 걸맞게 고집불통으로 자신의 소신을 위해 살았던 그들의 음악이 더욱 더 궁금해집니다. 일생을 재물도, 명예도 아닌 오직 음악을 위해 바쳐가며 결국 그들이 도달했던 경지가 어디였을지,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에서는 무엇을 보고 느낄 수 있었는지 감히 상상만 할 뿐이네요. 확실히 지금 어떻게 해서라도 유명세를 타고 음악으로 돈을 벌고자 혈안이 되어있는 뮤직 비즈니스와는 대단한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음악을 지켜온 사람들은 연주자들 뿐만이 아닙니다. 수많은 음악인재들이 음악의 보존을 위하여 힘썼고,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 이론가들의 활약으로 오늘날 그나마 많은 음악들이 전승될 수 있었습니다. 곡을 만들고 당시의 음악을 글로 남겨 후세에게 전파한 이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그러한 문헌을 통해 전통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백성을 사랑하기로 유명했던 세종대왕은 다른 한 편으로 음악성에 있어서도 뛰어났다고 합니다. 한글창시라는 대단한 업적 외에, 그가 음악에 있어서 달성한 업적 또한 대단합니다.


"조선의 여느 왕에 비해 음악성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세종, 그의 음악적 안목은 남달라 숱한 음악적 업적이 그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음의 시가를 표시할 수 있는 정간보 창안, 편경의 국산화 과업 성취, 아악 정리, 악서 찬정, <여민락>, <보태평>과 <정대업> 같은 음악 제정 등의 업적이 그의 통치 시기에 이루어졌다." (293 페이지)





모든 학문과 예술이 그러하듯, 수많은 이들의 수많은 땀방울과 노력 그리고 희생을 통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고, 그들의 그러한 업적을 바라보는 후세 사람으로서 그 역사에 대해 감탄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들이 헛되지 않도록 자긍심을 가지고 관심과 함께 그 정신을 이어나가는 것이 후대 사람들의 임무이겠죠.



우리의 음악에 푹 빠져보자


사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입니다만, 모든 것은 "관심"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어떤 학문도, 예술도, 그에 상응하는 대중적인 관심이 없이는 그 역사를 이어나가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많은 흥미로운 학문들이 관심의 부족으로 인해 사장되었거나 그 위력을 잃었고, 시간이 흘러가며 잃어버린 예술 또한 너무나도 많습니다.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와 얼이 담긴 음악이 이러한 무관심 속에 점점 기억의 저편으로 흘러가게 된다면 얼마나 안타깝고 슬픈 일일까요.





저 역시 서양음악을 전공하였고, 국악에 대해서 아는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한국 사람이고 음악인이긴 하지만 한국의 음악에 대해서는 사실 아는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하지만 이런 저런 기회로 국악과 접하게 되면서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조금 더 알고싶고, 스스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기회가 되는대로 공연도 찾아보고 여러 책들도 읽게 되었고요. 하지만 역시 드는 생각은, 우리나라 음악을 접하기에는 아직 환경이 많이 열악하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피아노나 기타를 배우기는 쉽지만 가야금이나 해금을 배우는 것은 어렵고 그만큼 부담도 많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욱 반가웠던 "한국 음악의 거장들". 이 책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국악에 관심을 갖고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 것이 좋고 다른 것은 나쁘다라는 이분법이 아니라,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우리의 것에도 관심을 가지고 어떤 것인지 궁금해 하는 마음이 들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관심이 모이고 모일 때에 그에 걸맞는 기회와 시장도 생겨나게 될테니까요.





"한국 음악의 거장들"의 가장 큰 장점은 우리나라의 음악인이라는 특정 테마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누구나 즐겁게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들을 수 없는 그들의 음악을 상상해보면서 시간 여행에 푹 빠져보는 그런 휴식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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