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인문학 - 우리 시대 청춘을 위한 진실한 대답
정지우 지음 / 이경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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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고등학교 3학년과 대학교 1학년의 경우, 실제로 나이는 한 살 밖에 차이나지 않는데도 그 삶에 있어서는 엄청난 차이를 느끼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한참 전 인터넷에 "19살과 20살의 차이점"이라는 유머 글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죠. 웃으라고 만든 이야기지만 씁쓸한 현실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고등학교때까지만 해도 술을 마시기라도 하면 어른들의 눈초리를 받아야 하고 학교에서도 "불량학생" 취급을 받지만, 한 살 더 먹었을 뿐인데도 이제는 술을 꼭 먹어야 하는 상황에 적응해야 합니다. 절대 먹어서는 안되는 입장에서 먹지 않으면 안되는 입장으로의 전환. 하지만 이것은 "어른으로 입문하는 청소년들"에게 닥치는 "정체성의 혼란" 빙산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려서부터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놀라우리만치 일률적이고 간단합니다. 공부 열심히 해라, 탈선하지 마라... 어떻게 생각하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그 순간부터 유년기의 12년이라는 시간은 오직 대학입시를 향해 달려가는 과정일 것입니다. 남들보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경쟁하고, 성적이 곧 능력의 척도가 되며, 마치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는 그 날이 바로 20년 가까이 플레이해온 게임의 엔딩이라도 되는양 그 목표점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죠. 누군가가 대학은 끝이 아니라 그제서야 시작일 뿐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전반적인 사회의 흐름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피나는 노력 끝에 드디어 대학 입성. 뭔가 꽃가루가 휘날리는 멋진 엔딩이기를 기대했건만, 청소년과 어른의 중간에서 방향성마저 잃은 채로 자신의 새로운 포지션에 적응하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죽어라고 공부를 했건만 정작 "어른이 되는 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이런 "청춘"들에게 필요한 이야기. 지금까지 쉬지않고 달려오느라 미처 겪지 못했던 성장기의 고통을 덜어줄 진솔한 조언과 대답들을 담은 한권의 책을 소개할까 합니다. 바로 출간과 함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정지우 씨의 "청춘인문학"입니다.






이 책은 이경출판사에서 "어른으로 입문하는 세대"를 위한 첫 책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야심찬 신간임은 물론, 수많은 비슷한 서적들과 차별화된 컨셉으로써 신선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첨예함을 겸비한 작품임이 분명합니다. 보통 책을 구입하거나 읽을 때에 커버를 그렇게 중요하게 보는 편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춘인문학"의 커버 및 디자인은 여러 면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2012년 현재를 백분 반영한 (정확한 발행일은 2012년 4월 19일입니다) 따끈따끈한 신간임에도 불구, 디자인이나 폰트 등을 보면 오래된 책 같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네요. 물론 저 자신의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내용이 훌륭한만큼 이 책이 서점에 진열된 것을 보았을 때 이 시대의 "청춘"들의 아이캐쳐 (Eye catcher) 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인가 안타까울 뿐입니다. 내용이 부실하더라도 프로페셔널한 디자인에 가독성을 높인 레이아웃을 적용하여 눈길을 끄는 다른 책들과 비교해보았을 때, 이 책의 겉표지만 보고 "아, 내게 필요한 책이겠구나"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솔직히 우려됩니다. 그만큼 이 책이 입소문을 타고 더 많은 청춘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문제의 내적 요인 - 외적 요인 - 해결책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 1부에서는 오늘날의 "청춘"이 어떠한 모습인지를 조명하며, 그들이 사회로 나오는 과정에 있어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는 딜레마에 대해 설명합니다. 기성세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청춘세대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예리하고 날카로운 판단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내 이야기인가?" 하는 착각을 불러올 정도로 정확합니다. 하지만 청춘세대의 문제점을 꼬집으면서도 결코 그들을 판단하거나 몰아세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요인들을 분석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청춘세대의 오류를 지적할 때마다 저자는 그 문제를 청춘세대에만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는 주어를 사용함으로써 어른으로서 가르치는 입장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 그들을 이해하고 용납하는 입장을 강조합니다.

 제 2부에서는 청춘세대 뿐만 아닌 전반적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딜레마에 대해 설명합니다. "현대에서 현대인으로 산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사회의 불공평함을 불평하는 것은 쉽지만, 어째서 그러한 입장까지 가게 되었는지 분석하기는 어렵습니다. 저자는 청춘세대의 문제점이 그들 혼자의 것이 아니라 "현대"라는 시대적 입장으로 인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게 문제야"라고 쉽게 말해버리기 전, 그들을 그런 상황으로 몰아넣은 것은 다름아닌 시대적 배경이라는 것이죠. 또한 이 시대에 범람하고 있는 "잘못된 조언"들과 "선입견", "편견"등을 재조명함으로써 그것들이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혼란을 부를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마지막 3부에서는 문제의 내적 요인 (청춘의 문제) 과 외적 요인 (현대의 문제) 를 반영한 앞으로의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저자 스스로가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어떤 구체적인 조언으로 "이렇게 살아라"라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 방향을 잡아나갈 수 있도록 그에 필요한 것들로 "무장"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한다"는 조언은 이미 지금까지 무수히 들어왔으며,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다른 사람이 정해주고 만들어주는 대로 살아오기만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쳐 이제 진정한 어른으로 사회에 나가려 할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는 힘"일 것입니다. 이 책은 바로 이 힘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이 힘을 향한 길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정도" 혹은 "정답"이란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결국 스스로 삶의 방향성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개발해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눈 먼 자로 살아가기



 "현대인은 더 이상 자기 삶의 중심이 될 수 있는 불변하는 지혜를 알지 못한다. 따라서 자기 삶과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본적인 지도조차 가지고 있질 못하다." (93 페이지)


현대라는 시간에 대한 저자의 지식과 지혜는 대단합니다. 때로는 철학자처럼 깊이 사유하고 의문을 가지다가도, 때로는 심리학자처럼 날카롭게 분석하기도 하고, 마케팅 전문가처럼 트렌드를 민감하게 읽어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설명하는 "현대"라는 시대는 일방적이지도, 단면적이지도 않은 입체적인 구도로 그려지게 됩니다. 결국 "아는 것이 힘"인 것처럼, 우리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극복해야 할 문제를 깨닫는 것도 여기서 시작하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시대의 흐름을 객관적으로 읽어나가려는 노력은 스스로 하기에는 문제가 있을 뿐더러 수월하지도 않습니다. 특히 이제 "어른 입문자"로서 사회로 나오는 청춘들에게는 이 문제보다도 훨씬 더 중요해보이는 외적인 이슈가 많습니다. 삶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거나 살아가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생각해보기에는 당장 눈앞에 닥친 일들을 해결하는데 급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의미있고 활기차고 다양한 일들로 청춘을 채우고싶지만, 그러한 일들이 가져올 '무의미성' 즉 '비실용성'을 감당하지 못한다." (20페이지)


그렇다면 오늘날의 청춘은 단지 스펙쌓기와 멀고도 험한 학자금에 짓눌려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일까요? 저자는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이들은 주로 온라인에 머무는 걸로 보인다. (...) 또 항상 메신저를 켜두고 정확한 주제 없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상당수를 채우고 있는 이러한 시간을 가리켜 스스로 '잉여짓 하는 시간'이라 칭하고 있다." (26페이지)


"이러한 관계망은 무엇보다도 '실시간'을 요구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거기에 몰입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만들어서 정신과 시간, 집중력을 갉아 먹는다." (28페이지)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얼마 안되는 시간을 무의미하게 '소모'함으로써 스스로 인생을 다져나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경향은 단순히 무지와 게으름으로 치부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단순소모적인 취미가 "생생한 현실감을 느껴보기 위해, 삶에서의 자극을 위해 시도되는 것" (99 페이지) 이라고 설명합니다. 현실 감각을 잃어버린 현대인이 현실감을 느끼기 위해 찾게되는 욕구라는 것이죠.


"이 양극단의 세계는 서로가 서로를 가능하게 만드는 순환기계다. 우리의 현실감을 앗아가는 세계가 더 공고해질수록, 그 세계를 잊게 만드는 현실감의 세계 역시 더 강렬해진다." (99페이지)





이러한 "현실감의 부재"는 오늘날 현대인이 겪게 되는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인데, 저자는 현실을 느끼지 못하고 자각하지 못하게 됨으로 인해 현대인들이 자신의 삶의 방향성마저 예측하거나 개척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우리들이 정당화하는 와해된 "개인주의"는 사실상 주장하고 있는 것의 반대 성향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는 것을 되짚어줍니다. 우리는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많은 자유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지만 ('원자화'), 사실은 우리가 '스스로의 욕망'이라고 생각했던 것 조차 타자의 욕망이었다는 것을 역으로 증명하는 것이죠.


"이러한 자기만족은 묘하게도 집단적인 성향을 띠고 유행적인 성격을 띤다. 우리가 느끼기에 우리 자신은 오로지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것 같은데,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묘한 집단적 흐름을 계속해서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 분명 우리는 고유한 개인이고, 상대주의를 중시하여 저마다의 욕망을 추구하는 원자들인데도 불구하고, 욕망은 '획일화'되고 '집단화'되는 경향이 생긴다.

 이는 우리의 마음속에 어떤 식의 '책략'이 일어난다는 것을 말해준다. 즉,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만족이 오직 자기 자신의 합리적 생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생각 자체가 사실은 외부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 우리는 타자 -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것 - 의 지시에 따라 자기 자신을 구성한다." (126-127페이지)


자신의 주관대로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충격적인 발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우리가 생각하고 사고하는 것 모두 경험과 환경에 의해 변형될 수 있는 것임을 깨닫는 것은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가기 위한 중요한 첫걸음입니다.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편견 속에서 우물안 개구리처럼 머무르고 있다면 결코 자신의 인생을 개선할 수 없을 것입니다.




청춘에게 삶을 말하다



흔히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하면 직접적인 삶과는 별로 관련이 없을 뿐더러 엄청난 미사구를 사용해 번지르르하게 만들어놓은 (개똥)철학을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른이 되어가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남들이 말하는 삶이 아닌 자신만의 삶을 찾아가는 것. 인간이라면 반드시 수행해야 할 과제인 동시에, 어느 누구도 나를 위해 대신 해줄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국 누가 먼저 대학을 마치고 취직을 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먼저 이 과제를 해결했는가가 자립적인 어른으로 거듭나는 것에 대한 척도가 될 것입니다.





"청춘인문학"이라는 제목은 어떻게 보면 이 책의 진취적이고 획기적인 내용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제목 같습니다. 이 책은 어른으로 입문하는 청춘들에게 그들이 겪는 성장통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며, 그것을 직시하고 이겨나가기 위해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하는지 조언하는 지침서입니다. 인문학에 대한 지루하고 뻔한 내용이 아니라, 인문학을 삶에 직결시켜 때로는 위로를, 때로는 도전을 주는 조언자인 것입니다.


이 책이 가지는 또 하나의 특징은 당장 눈에 보이는 문제해결이 아닌, 보다 넓은 시선으로 문제설정을 바라보며 "현대"라는 굴레 안에서 이상을 실현하려는 시도입니다. 아무리 우리 자신이 스스로를 갈고 닦아도 시대에 맞지 않게 산다면 보람을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우리들에게 먼저 우리 스스로에, 그 다음으로는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눈을 뜨라고 말합니다.



이제 막 인생을 꽃피우기 시작하며 즐거운 대학생활을 시작하려는 후배들에게 무슨 선물을 해야할지 정해진 것 같네요. 할 수만 있다면 부푼 마음을 안고 사회로 나오는 모든 청춘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얼마 전 리뷰했던 "스무 살에 만난 지혜가 평생을 먹여살린다"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배울 거라고, 언젠가는 가르쳐 줄거라고 막연히 기대만 하고 있었던, 하지만 배우지는 않았던 바로 그 것을, 이렇게도 명확하고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은 정말로 흔치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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