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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꼼수다 정치 상식 사전 Special
김민찬 지음, 김영진 그림 / 미르북스 / 2012년 4월
평점 :
때는 바야흐로 1996년,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입니다. 계기가 무엇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한창 논술과 논증에 대한 관심이 자라나고 있었을 때였는데, 그 관심은 자연스럽게 정치로 이어졌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 정치에 대해서 안다면 뭘 알겠냐마는 주간 시사잡지를 읽는 것으로 시작해서 정치비판적인 에세이들을 신문에서 찾아읽는 것이 취미가 되어버렸는데, 그래서인가 뉴스의 내용을 유심히 집중해서 듣다보면 왠지 모르게 스스로 비판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답니다.
그 때 지하철 역 안의 작은 서점에서 발견한 책이 한 권 있었는데, 변상욱 씨가 쓰신 "언론 가면 벗기기" 라는 책이었습니다. 집에 가다말고 서점 앞에 쭈그리고 앉아 그 책을 이리 저리 뒤적거리며 읽었는데 목차만 봐도 흥미진진한 전개에 지갑에 있던 돈을 모두 털어 사가지고 왔던 기억이 나네요. 몇 번을 읽고 또 읽어 지금은 누렇게 바랜 책이 되어버렸지만, 아직까지도 이 책을 볼 때면 제가 어린 나이에 용돈을 털어 산 몇권 안되는 책 중 하나라는 것과 어려운 내용이었지만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오릅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러 이제는 20대 후반이 되었지만, 사실상 정치에 대해서는 오히려 훨씬 무관심해져버린 것이 사실입니다. 그 때는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어도 이해하고 싶어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는데, 지금은 조금만 모르는 내용이 나와버리면 아예 귀를 닫아버리기도 하니까요. 언제부터 세상 돌아가는 것, 아니 우리나라가 돌아가는 것에 이렇게 무심해졌는지 모르겠지만, 더욱 더 심각한 것은 저의 이런 모습이 우리나라 젊은 층 대부분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우려입니다.
작년 10월 말에 있었던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제가 생애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한 날입니다. 작년 5월에 한국으로 들어와 있었던 첫 선거였으니까요. 그런만큼 더 관심을 갖고 따져보게 되고, 후보 두 사람의 발행물이나 공약 등을 확인하게 되더군요. 당연히 나경원 후보의 승리로 끝날 것 같았던 선거가 오늘의 박원순 시장님을 만들어내고, 매일 매일 답답하고 가슴아픈 뉴스 헤드라인들 사이사이 들려오는 박원순 시장님의 활약은 소중한 한 표를 드린 저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곤 합니다.
"더이상 국민은 우매하지 않다"라는 희망을 걸게 해준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지난 4월 11일 2012년 총선을 치룰 때도 분명 깨어있는 국민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선거 전이 원래 그렇듯이 이슈도 많았도 진통도 많았기에, 그만큼 높은 관심과 여론을 힘입어 어쩌면 모든 것을 뒤집어놓을 수 있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결과는 참혹하기 그지 없었는데, 어떤 후보가 당선되었고, 어떤 정당이 우위권을 잡았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너무나도 저조한 투표율이 그 이유였습니다. 부정선거가 자행되었다는 의혹은 그렇다치고 엄연한 국민의 권리를 두 명 중 한명 꼴로 행사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사기 충분했는데, 저 역시 '이렇게 국민이 움직이지 않으니 정치권에서 무엇이든 가능한 것이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나와서 데모를 하는 것도 아니고 시위를 벌이는 것도 아니라 단촐하게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하루 종일 시간을 두고 투표장을 열어두었는데 그것마저 하지 않았다고 하니... 어떻게 보면 정말 답이 없는 것 같더군요.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20대 여성의 투표율은 고작 8%에 불구했다고 합니다. 20대 여성으로서 투표를 하신 분들은 대한민국 20대 여성의 8% 안에 드는 상위층이라는 자부심을 가지실 수도 있겠네요.
여기서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이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정치에 대해 무관심할까?
그리고 여러가지 답을 생각해볼 수 있겠네요.
1. 자신에게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서
2. 정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어서
3. 관심을 가져도 안가져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생각해서
4. 스스로도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서
5. 모두 다 꼴보기 싫어서
...
반은 웃자고 써본 이야기지만, 농담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것이 더 씁쓸한 현실입니다. 분명 많은 사람들이 생활이 힘들어 괴로워하고 있고 그 중 많은 괴로움은 분명히 해결할 수 있는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너무 뿌리가 깊어 다시는 변화시킬 수 없는 것처럼 계속 이어지는 "나쁜 정치"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이러한 질문에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는 못해도 우리 스스로가 이런 질문을 생각하고 해결해나갈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자 출간된 책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지난 4월 초 출간된 미르북스의 따끈따끈한 신간, "나는 꼼수다 정치 상식사전 Special" 입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꼼수다"라는 브랜드 이미지 때문에 이 책을 읽기 전 상당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나는 꼼수다"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비판이 목적인 비판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방송이고, 듣는 사람의 눈살을 찌뿌리게 만드는 욕설이나 비방은 그 내용이 아무리 정당하다 해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으니까요.
혹시라도 저 같은 망설임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안심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꼼수다"는 이 책의 취지를 보다 쉽게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수식어"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무엇보다도 이 책의 전작 "나는 꼼수다 정치 상식사전"을 미리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총선과 대선이 있는 "선거의 해" 2012년이 가기 전에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전작에서는 담지 못했던, 특히 선거 전 꼭 알아야 할 깨알같은 지식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비꼬기 위한 비판이 아니라 깨우치기 위한 비판"이라는 것에 있습니다. 물론 시대가 시대이고 저자의 정치적 성향이 반영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이 책에서는 "내가 더 잘났고 내가 더 많이 안다"는 식의 비꼬기는 없습니다. 많은 정치 서적이 이러한 우월감이나 회의적 비관주의에 빠져 읽는 사람 마저 불쾌하게 만드는 것에 반해 "정치 상식사전 Special"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의 기본을 알려주기 위한 본분을 잊지 않고 쉽고 명쾌하게 설명해나갑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고 심지어 증오하기까지 한다면,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을까?' 묻게되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수시로 오르내리며 온갖 욕과 상소리를 듣는 이명박 대통령. 하지만 어째서 대통령이 싫으냐라고 묻는다면 명쾌한 답변을 듣기 힘듭니다. 우물쭈물 "그냥 나쁘다"라고 하지 않는다면 얼버무리면서 말도 안되는 추상적인 말을 하곤 하니까요. 실제로 대통령이 비판받아야 할 일들은 따로 있는데 엉뚱한 말 한 마디나 예전의 잘못을 들추어 욕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결국 모두들 싫어하니 나도 싫어하는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던간에 대통령에 대해서 비판할 수 있는 권리는 국민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비판이 무엇에 근거하고 있고, 얼마만한 지식에 기초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신빙성과 가치가 결정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신랄한 건설적인 비판은 세상을 바꾸어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근거없는 묻지마 식의 몰아붙이기 비판은 말하는 사람의 입과 인격만 더럽힐 뿐이니까요.
모두가 4대강 산업에 대해 비판하고 욕을 하고 있지만, 정작 4대강 사업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인지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또한 4대강 사업이 어째서 서민경제에 위협이 되고 대기업에 의한, 대기업을 위한 사업이라고 비판받고 있는지 명확하게 설명하는 사람 역시 만나보기 힘들더군요. 비판하는 쟁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고 하기보다는, 남들이 다 나쁘다고 하니까 함께 욕하는가 하면, 힘든 생활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아닐까요? 그 이유가 어찌되었든간에 쟁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남발하는 비판은 개선으로 갈 수 있는 건설적인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치가 과연 무엇이길래? 김민찬 씨는 정치는 야구경기나 드라마같은 하나의 "무대"라고 설명합니다.
"정치도 그렇다. 정치라는 무대 자체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정치란 각본이 잘 따인 한 편의 연극 같기도 하고, 때로는 감동적인 드라마 같다. 물론 진흙탕 싸움과 같기도 하다.
신인 정치인의 등장은 야구처럼 이번 시즌 어떤 활약을 펼칠까 사뭇 기대를 갖게 한다. 신인이지만 MVP가 되거나 예상을 뒤엎고 강팀을 이기는 이변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관객이 없는 공연과 관중이 없는 스포츠 경기는 망한다. 흥행이 없는 모든 무대는 가치가 없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프롤로그 중, 6페이지)
정치란 하나의 무대이며, 이 무대는 결국 관객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호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정치의 생리 때문에 우리가 정치를 알아가야 하는 것이며 관심을 가지고 그 경과를 지켜봐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스포츠 경기나 영화 혹은 연극과는 달리 정치는 그 기준과 결과의 정당성, 경과가 투명하지 않기 때문에 보는 사람들은 항상 혼란 속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깨어있어라! 더 알아야 한다! 라고 이 책은 도전합니다. 자신의 배를 채우려는 악한 정치인들에게 가장 유익한(?) 국민은 바로 아무것도 모르고 양떼처럼 끌려오는 국민들입니다. 때로 양떼 가운데 다른 방향으로 가려고 애쓰는 양도 있고 반항하며 메에~ 메에~ 소리지르는 양들도 있지만 거대한 군중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소리를 지르는 양이 아니라 못된 양치기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깨어있는 양치기입니다.
"지못미의 정치 현상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국민 스스로 먼저 나서는 역할이 필요하다." (163페이지)
"세상을 바꿀 힘은 우리 안에 있다 (...) 세상을 향한 분노 대신 정치 참여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거창하고 위대한 담론이 아니라 개인의 인생에 파고드는 문제를 공론화해 생활 정치를 이끄는 노력이 필요하다." (206페이지)
"시민이 시민에게 비판을 제대로 가할 수 있을 때야말로 정치가 자생력을 갖는다." (240페이지)
실망만 가득 안겨준 4.11 총선이 지난 후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누군가 나라에 대해서 불평을 한다면 꼭 물어보라고. 4월 11일 총선에 참여했는지. 그리고 만약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불평할 자격도 없다고 말해주라는 것이었는데, 한편으로 웃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하기 그지 없더군요. 정치의 "정" 자도 몰랐던 제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뒤 정치에 대해서 공부는 하지 않더라도 최대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노력조차도 하지 않고 무언가가 나아지기를 원하는 것은 결국 요행을 바라는 것일 뿐, 아무런 책임감도 없는 행동일 뿐이라는 것.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사람이 한 사람 한 사람 늘어갈 때 비로소 "민주정치"가 완성될 수 있다는 것. 많이는 몰라도 이 정도만 자각하고 지켜보기 시작한다면, 이번 대선 때는 저번 총선 때와 같은 실망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2012년 말 총선을 앞둔 젊은이들. 청소년들과 대학생들, 그리고 취업에 쫓기며 정치에 관심가질 시간조차 없다고 생각했던 모든 젊은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쉽고 명쾌한 설명을 듣다 보면 어느새 그동안 어렵게만 느껴졌던 정치 용어들과 중요한 사건들, 현재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이슈들을 이해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해가 되기 시작할 때, 거기서부터 관심이 시작될 수 있는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