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에 만난 지혜가 평생을 먹여 살린다 - 젊음의 가능성과 한계, 그 경계선 뛰어넘기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이주희 옮김 / 명진출판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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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입시 철이 다가오고 입시 준비에 바빠지는 입시생들을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과연 저들은 무엇을 기대하고 대학에 가려고 하는 것일까? 무슨 이유로 대학에 가고 싶어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은 과연 자의일까 아니면 타의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자의 반 타의 반? 이상한 질문 같지만, 실제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어보기 시작하면 그렇게 빗나간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학 입시 시험을 치루면서 면접을 할 때 시험관들이 자주 묻는 질문은 "어째서 이 대학 (혹은 학과) 에 지원하게 되었습니까?"라고 합니다. 작곡과 예비과정을 다니면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꼭 준비해두라는 지도교수님의 말씀에 좀 의아했었습니다. 아니, 국립음대에 시험을 치러 왔으면서 자기가 왜 왔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시험 당일이 되어 초조한 마음으로 대기실에서 기다리면서, 이 질문이 결코 누구에게나 "당연한" 질문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본 것만으로도 열 명에 일곱 혹은 여덟 명 정도가 이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하나같이 이 질문이 던져지자마자 우물쭈물 거리면서 결국은 진부하거나 엉뚱한 대답을 하곤 했답니다. 누가 시켜서 온 입학시험도 아니면서 참 이상한 일이죠?

 

흔히들 너무 쉽게, 그리고 너무 단순화시켜 교육의 문제를 논하고는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서는 너무 획일화 되어있다, 너무 주입식이다, 비자율적이고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혹평들이 쏟아져나오고는 합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경우, "선진국 어디는 이렇게 하고 있고 다른 나라에서는 학생들이 이렇다"라는 비교를 근거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물론 확실히 교육방침에 따라서 대단한 차이가 있고, 그것은 학생 대부분에게 큰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그리고 교육을 하는 입장에서는 멈추어서거나 고이지 말고 어떻하면 더 발전해나갈까 날마다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교육 차이"가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일방적인 것일까요?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책 "스무 살에 만난 지혜가 평생을 먹여살린다"를 지금 공부를 시작하는 모든 대학 새내기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 책을 쓴 젊은 여성 철학가 로랑스 드빌레르는 현재 파리 가톨릭 대학과 파리 예수회 신학원인 상트르 세브르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총 세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모두 20개의 "지혜"를 선사하는 이 책은 그녀가 집필한 첫 대중서라고 하는데, 그것이 믿겨지지 않을만큼 그녀의 문체는 간단명료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그야말로 쉽고 대중적인 문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독서 경험을 많이 쌓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즐겁게 읽을 수 있을텐데요 (오늘 뉴스에 의하면 대한민국 청소년의 네명 중 한명은 전혀 독서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만큼 이제 사회에 들어서는 "예비 어른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네요.

 

 

대학에서 배울거라 생각했지만 배우지 않은 것

 

엄청난 고난과 역경(?)을 딛고 대학에 입성한 새내기들. 하지만 일 년, 이 년이 지나면서 부풀었던 마음은 점점 사그라들고 하나 둘 실망하기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지금까지 워낙 강력한 주입식 교육을 받았던지라 강압적이기보다는 자발적인 강의 방식에 점점 느슨해지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포괄적인 의무교육을 끝내고 이제 드디어 자신의 전문분야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시기인데 오히려 헤이해져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다니 정말 대단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학교나 선생님이 분명히 정해준 것"에 익숙해졌던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와서도 그러한 수동적인 자세를 이어나가고는 합니다. 즉, 스스로 자신의 전공을 위해 발전하려고 하기 보다는 "결국 대학 들어와서 배우는 것도 없고 쓸데없는 짓이었어!"라고 푸념하는 것이죠. 드빌레르는 말합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 밖의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것에 주력한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언제나 분수와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한다. 게다가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데에는 인색하다." (194 페이지)

 

그녀의 이 짧은 문구는 가슴 깊숙이 파고 들어왔습니다. 사실 그랬습니다. 배우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은 순간적으로 자신을 잘나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알량한 자기합리화일 뿐입니다. 또한 이렇게 올바르지 못하고 잘못된 것만 지적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비판하는 행동 외에는 진취적이거나 건설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드빌레르가 던지는 질문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지혜는 이렇듯 정곡을 찌르면서도, 우리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돌아볼 수 있도록 따뜻한 설명과 권유를 잊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어느새 그동안 자만, 자신없음, 게으름, 위선에 가리워있던 자신을 다시한번 성찰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그녀의 말이 직선적이라 할지라도 결코 우위에서 던지는 핀잔이 아닌 상냥한 지적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누구일까? - 사춘기 시절 나 자신에게 던진 질문

 

"사람들은 자신이 어느 지점에서 만족하는지 잘 모른다. 그냥 그 순간의 본능에 충실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본능은 언제나 과도함을 추구한다." (226 페이지)

 

사춘기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자아를 찾아가는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전까지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수 많은 "왜?"라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채워가면서 혼란스러워지는 시기죠. 왜 내가 공부를 해야 하며, 왜 세상은 이런 것이며, 왜 이것을 하지 않으면 안되며…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궁극적인 난관에 봉착한 채, 불안정하면서도 위태로운 정신적 성장통을 피할 수 없는 시기인 사춘기.

하지만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20대가 된 지금, 그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은 상태입니까? 아니면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면서 불안정하고 불투명한 세계에 "익숙해" 진 상태입니까?

 

 

"스무 살에 만난 지혜가 평생을 먹여살린다"가 인생에 입문하는데 있어 소중한 경험이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가 학업, 성공이라는 통상적인 주제 뿐만 아니라, 20대에게는 빠질 수 없는 중요한 테마, 연애와 사랑 그리고 인격양성까지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매우 주관적으로 상대를 보는 건데 객관적으로 본다는 건 이미 사랑이 시들었다는 뜻이다. 안타깝게도 객관성은 더이상 사랑하지 않을 때에만 가질 수 있는 현명함이다." (20 페이지)

 

"원래 무식하면 용감한 법이고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게 어리석고 음흉한 자의 수법이다" (68 페이지)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그녀가 라 로슈푸코를 인용하며 도달하는 "좋은 사람"에 대한 정의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저지르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오류 중 몇가지만 꼽자면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착한 것"과 "올바른 것"의 혼동일 것입니다. 사실 이 "착하다"는 가치관은 20대뿐만 아니라 인생에 걸쳐 직면하게 되는 트라우마와도 같은데, 특히나 요즘에는 "착하다"라는 말이 "무능력하다"와 거의 동일시되면서 "차라리 못될지언정 절대 손해보아서는 안된다"라는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드빌레르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무력함이나 무능력으로서 표현될 것이 아니라 "자제"라는 능력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좋은 사람이란 화내기가 얼마나 쉬운지, 심지어 남을 괴롭히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를 알면서도 그것을 자제하며 선하게 사는 사람이다" (라 로슈푸코 인용, 169 페이지)

 

모두가 모두의 이익을 위해서 싸우고 남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금방 정글처럼 변할 것이라고 그녀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매일 뉴스 일면을 장식하는 기사들을 접하면서 우리는 그녀의 이러한 우려가 실제로 이미 대다수 현실이 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총과 칼로 무장하고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베어버리는 것은 슬프고도 잘못된 선택일 것입니다. 드빌레르는 이제 스스로의 행동을 책임져야할 "어린 어른"들에게 진심어린 충고를 보냅니다.

 

"인간의 이기적인 용망 때문에 분란과 다툼은 끝없이 일어난다. 이것을 해결하는 유일한 해결책은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다." (180 페이지)

 

스스로가 자기 자신이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성찰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남의 입장이 되어보며 관용과 이해를 배워야 할 나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속된 말로 "나이값을 못하는" 어른들을 보면서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하고자 하는 인생의 새내기들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그녀가 하고픈 조언일 것입니다.

 

 

20대인 그대가 철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프롤로그에서 드빌레르는 어째서 철학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용적 수단"인지 설명합니다. 철학을 단순히 어려운 것, 복잡한 것, 실용성 없는 탁상 공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해서 그것을 내 생활에 실제적으로 필요한 지혜로 바꿀 수 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수 많은 철학자들과 그들의 아포리즘을 소개하면서 드빌레르는 철학에 담겨있는 "실용의 광맥"에 대하여 말합니다.

 

"철학을 안다는 것은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아는 것이고 본질을 알고 나면 더는 그 대상이 두렵지 않다" (프롤로그 중)

 

자신에게 닥친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가장 마지막에 떠오르는 것이 "훌륭한 사람들은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나갔는가?"가 아닐까요? 연애에 실패하여 좌절했을 때, 원하는 대학에 몇 년 째 합격하지 못해 실의에 빠졌을 때, 경제적으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우리에게 닥친 환경이 대단히 특수하며 난해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럴 때일 수록 나의 문제를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듯한 세상이 더욱 더 무례하고 뻔뻔하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드빌레르는 철학에서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나는 나보다 먼저 태어나 치열하게 고민했던 세상의 모든 철학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우리가 그들보다 나중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는 늦게 태어난 덕분에 그들이 평생을 바치며 이루어놓은 고민의 결과물을 아이스크림처럼 입안에서 녹여먹기만 하면 된다. 내 머리가 소크라테스보다 뛰어날 리 없는데 그와 같은 고민을 평생 머리 싸매고 한다 해서 더 나을게 있을까?" (프롤로그 중)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타의적으로 성장해온 시기를 마치고 이제는 자발적으로 살아야 할 시점에 다다른 20대에게 철학이 필요한 것, 그리고 방대하고 복잡한 철학을 어떻게 실생활에 적용시키며 실용적인 "지혜"로 사용할 수 있는지. 이것이 바로 저자가 이 한권의 책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당신이 선택하고 결정한다

 

"나는 어쩔 수 없었어",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어". 살면서 이러한 변명을 얼마나 많이 하고 얼마나 많이 듣게 되는지 모릅니다.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참 효과적인 변명인데,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초월적인 힘 (혹은 상황) 을 개입시키며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은 그 정당성만큼이나 비겁한 행동일 것입니다. 드빌레르는 철학자 사르트르를 인용합니다.

 

"상황이 나를 표현한다"

 

결국 내가 그러고 싶었건 그러고 싶지 않았건 그러고 있는 것은 나의 결정이며, 이것이 나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라는 뜻이죠. 어떠한 조건에서건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은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지금의 상황이 되어버렸어!"라고 변명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드빌레르는 말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선택했다면 선택에 대한 책임과 선택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즉, 노력이 필요하단 뜻이다 (…) 그런데 기권보다 더 나쁜게 있다. 그것은 바로 선택을 유보하는 것이다." (107 페이지)

 

많은 사람에게 걸림돌이 되면서도 "성격적인 단점"이기 때문에 묵인되곤 하는 우유부단함. 그녀는 이 우유부단함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시간은 흐르고 어느새 선택이든 기권이든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코앞에 닥친다. 그런데도 여전히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은 채 어정쩡한 상태로 있다면 그것은 타인의 선택에 따르겠다는 것과 같다. 이것은 기권조차 스스로 결정할 수 없을 만큼 무능력하다는 뜻이다. 이는 선택할 능력도 기권할 용기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택을 유보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타인의 선택에 모두 내맡기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108 페이지)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의 자유와 권리를 포기하고 남의 선택에 따라 인생을 산 것에 대해 불만을 품어서는 안 된다. (…) 원하는 것을 선택해야 할 때 기권했거나 다른 이의 선택에 맡긴 것은 바로 자신이니까 말이다." (109 페이지)

 

이것이 아마도 그녀가 이 한권의 책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결정적인 메세지가 아니었을까요? 이제는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할 시간이다. 나의 선택과, 행동과 생각 그리고 미래를 위한 노력까지. 더이상 남에게 좌지우지되거나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기대서거나 의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스스로, 진취적으로,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할 때다"라는 도전적 메세지. 20대 뿐만 아니라, 나이는 더 들었어도 아직까지 이 숙제를 달성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필수불가결한 조언일 것입니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 원하는 학과를 졸업하고 나면 막연히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노력해온 학생들에게 이 책은 다소 거슬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몇 년 인생의 선배로서 그들에게 던지고 싶은 충고는 다름아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깨닫는 것이 큰 발걸음이 될 것이다" 입니다. 저 역시 세 개의 학사학위와 하나의 석사학위를 졸업하면서 이런 막연한 기대와 희망에 부풀어있다가 실망한 경험이 있습니다.

고등학교까지 모든 학생이 "같은 것에 대한 지식"을 교육받았다면, 이제 대학생이 된 지금부터는 스스로가 자신의 발전을 위해 발벗고 뛰어나갈 차례입니다. 이것을 빨리 깨닫고 올바른 방향을 잡은다면 불필요한 시간낭비와 실망을 건너뛰고 보다 힘차게 날개를 펼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차피 내일의 행복 따위는 없다. 행복할거라는 기대감만 있을 뿐이다. 왜냐면 당신은 현재에 충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23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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