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큐 포 더 무비 - 고단한 어른아이를 위한 영화 같은 위로
신지혜 지음 / 시드페이퍼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영화 "아바타"가 대 히트를 기록하면서 3D 열풍이 영화계를 강타했습니다. 상업적 영화라면 (그리고 특히 액션물이라면) 3D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고 있고,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던 고전들이 3D화 되어 재개봉하는 일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기술의 발달과 함께 영화는 꾸준히 관객들의 오감을 충족시키기 위한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때로 더 자극적이고 더 폭력적이거나 더 선정적인 방향으로 흘러나가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경험하지 못한 것을 더욱 더 현실감있게 경험할 수 있게 해주고자 하는 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던 – 그러니까 모든 영화가 2D였던 시절, 아니 영화에 색채도 없고, 음악도 없던 시절부터 영화가 우리에게 의미했던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알지 못하는 것을 바라보는 창"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각진 스크린에 비추어지는 영상을 통해 알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알게되고, 가보지 못한 곳의 풍경을 바라보며 경험하지 못했던 사건을 함께 겪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책을 펼칠 때마다 또 하나의 여행이 시작된다는 비유는 영화에 있어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편의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 깜깜한 극장 안에서 잠시 현실 세계를 잊고 영화 속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니까요.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책 – "땡큐 포 더 무비" – 을 읽으면서 '영화는 왜 존재할까?'라는 질문이 수차례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지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만족시키며 여가생활을 즐기기 위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생활과 이야기를 엿보며 만족감을 얻는 일종의 관음증 때문에? 아니면 알지 못하는 주인공과 알지 못하는 상황에 우리의 삶을 투영시키고 접목시키며 공감을 얻기 위해?

그러한 질문들이 책을 읽을 때에 따라다니는 것은, 무엇보다도 저자 신지혜씨가 바라보는 "영화"라는 장르가 많은 감수성을 깨우고 새로운 오감을 자극하는, 그런 매개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CBS 음악 FM에서 매일 오전 11시부터 약 한시간 가량 만날 수 있는 "신지혜의 영화음악". 우리나라 라디오 프로그램 중 영화음악만을 집중적으로 다룬 정규 프로그램으로서는 유일무이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프로그램은 1995년 시작되어 올해로 무려 18년째 이어지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정해씨 등 많은 DJ이들이 거쳐갔으며, 이 책의 저자인 신지혜씨는 1998년부터 진행하기 시작하여 올해로 15년째를 맞고 있다고 합니다. 빨리 생겨나고 빨리 사라지는 요즘에는 보기 드문 일이죠.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무엇이 이 프로그램을 (그리고 신지혜라는 진행자를) 이토록 오랜 시간동안 꾸준한 사랑을 받게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일곱가지 테마, 마흔 아홉 개의 영화

 

 

"마음을 어루만지는 약손"이라는 수식어는 신지혜씨의 문체에 더없이 잘 어울립니다. 그녀의 감성적이고 따뜻한 문체는 마치 아날로그 사진집을 펼쳐보는 듯한 느낌을 주며, 그녀가 들려주는 영화의 이야기는 그 예술성과 완성도를 떠나 그야말로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키워드로 수식되는 테마를 소개하며 그에 연관된 영화를 찾아 때로는 심리치료사처럼, 때로는 오래된 친구처럼, 때로는 감성적인 소녀처럼 설명하고 이야기해나가는 과정은 책을 읽는 동안 하나의 따뜻한 휴식처럼 다가올 것입니다. 그녀가 선택한 영화의 키워드 (테마) 만 보아도 그녀가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별 (farewell)

고독 (solitude)

기억 (memory)

인정 (acceptance)

치유 (healing)

용서 (forgiveness)

사랑 (love)

 

영화를 바라보고 정의하는 관점은 참으로 다양하겠지만, 신지혜씨에게 있어서 영화는 감성을 투영하는 창 같습니다. 그녀 스스로도 자신에게 있어 영화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영화는) 행복하고 아름다운 도피처이자 환상의 통로 (196페이지)

 

"방송은 목표, 영화는 꿈"이라는 문구를 항상 품고 다녔다는 그녀. 책을 읽으면서 그녀에게 있어 영화는 정말 "꿈과 환상"이며 일상에서 얻지 못하는 풍부한 경험과 감성 그리고 자신의 존재가치를 성찰할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매개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선택한 키워드 안에서 영화를 풀어나가면서 때로는 비범하게 그녀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영화는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예전엔 음악을 듣기 위해서 콘서트 홀을 찾을 수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손쉽게 집에서 언제든지 원하는 음악을 (그리고 때로는 영상과 함께) 들을 수 있게 되었다면, 영화 역시 인터넷의 발달과 매체의 다양함으로 인해 예전보다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굳이 영화관에 가거나 DVD를 빌려보지 않아도 VOD 방식으로 원하는 영화를 즉석에서 다운받아 관람할 수 있는가 하면, 지하철을 타고 가는 짜투리 시간에도 핸드폰이나 태블릿으로 영화를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렇듯 영화에 대한 접근성이 쉬워진 것은 그렇게 긍정적이지만도 않습니다. 특별한 이벤트였던 영화 관람은 이제 일상적인 것으로 전락해버렸고 그렇기 때문에 영화가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메세지의 효과는 감소한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채널이 많아지고 시간을 때우기 위한 편성 드라마가 많아진 것은,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는 감성마저 점점 무뎌지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고전"이 그 가치에 있어서 높게 평가받는 것은 단순히 시간이 오래 되었고 예전에 나왔던 작품이라서가 아니라, 깊은 고뇌와 사유 끝에 탄생한 하나의 세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지혜 씨의 칼럼 (이 책을 읽다보면 연관성을 가진 칼럼들을 키워드로 묶어내었다는 설명이 더 적절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에서 소개하는 한 편 한 편의 영화들. 이미 본 영화라면 추억을 꺼내볼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보지 못한 영화라면 이 기회에 관심을 가지고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하나의 영화를 소개하는 과정이 조금은 짧은 감이 있어, 충분히 그 영화에 빠져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나 합니다. 특히 직접 보지 않은 영화라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줄거리가 금방 이해가 가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함께 테마를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마지막으로 "땡큐 포 더 무비"는 과연 누구를 위한 책인가 생각해보았습니다.

한 편의 조용하고 작은 휴식같은 이 책은 영화매니아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가, 감성적으로 메말라있는 사람들에게는 충전의 기회가, 또 영화를 좀 더 알고 싶고 궁금해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가이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뜻한 위로가 절실한 시대, 책 한권의 여유로 힘들었던 마음에게 작은 선물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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