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마르크스 - 그의 생애와 시대
이사야 벌린 지음, 안규남 옮김 / 미다스북스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길고 긴 철학역사에 있어서 마르크스만큼 널리 알려져 있으면서 수많은 오해와 편견 그리고 선입견에 고생(?)하는 철학자는 드물 것 같습니다. 막연히 그의 업적이나 사상에 대해서 들어보았지만 (사실 철학 사상이 대부분 그렇듯이) 직접 연구하고 깊게 생각해보지 않는 이상 스스로 어떠한 판단이나 설명을 하기 꺼리게 되는 마르크스. 오늘 소개할 책은 바로 이 마르크스에 대해 쓰여진 평전 중 최고라는 극찬을 받는 이사야 벌린의 "칼 마르크스 - 그의 생애와 시대" 입니다. 사실 "최고의 평전"이라는 찬사는 의미가 깊은데, 이 평전이 무려 73년 전인 1939년에 출간되었기 때문입니다. 철학사의 중심 인물 중 하나인 마르크스에 대해서 활발하게 연구되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벌린의 평전을 뒤집을 만큼 뛰어난 평전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벌린의 뛰어난 업적을 더욱 더 빛나게 하는 듯 합니다.
 
430쪽에 육박하는 방대한 분량의 평전을 소개하기 전, 먼저 이 책의 저자인 이사야 벌린에 대해 몇 가지 언급하고자 합니다. 지난 97년 서거한 벌린은 세계적인 전기작가이자 사상가로 영국의 옥스포드, 왕립 아카데미를 기반으로 수많은 저서를 집필했습니다. 그의 마르크스 평전에 있어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책을 집필할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28세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마르크스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어 대학 강의를 위해 자본론을 힘들게 읽은 것이 전부라고 합니다. 하지만 1933년 마르크스 평전을 쓰라는 제의를 받은 후 본격적으로 그의 사상과 생애 연구에 착수했고, 이 평전을 시작으로 그는 뛰어난 전기작가로서의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시대와 사상을 막론하고 풍부하고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저술해나가는 벌린의 평전을 읽다가 보면, 지금까지는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인식되어왔던 마르크스를 새롭게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포괄적인 연대기
 
부제가 "생애가 시대"인만큼 벌린은 단순한 평전이라기보다는 칼 마르크스의 사상 세계와 그것이 정립될 수 있었던 (혹은 정립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사상 뿐만 아니라 동시대 인물들과 그들의 배경, 사상을 폭넓게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위인전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철학 논문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렇다고 문체가 복잡하다던가 읽기 어려운 책은 아닙니다. 물론 마르크스와 그와 연관된 주요 키워드 (자본론, 프랑스 혁명, 프롤레타리아 등) 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다면 쉽게 읽어내려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벌린은 이러한 연관테마들에 대해 기본적인 설명을 생략하고 있기 때문에 보다 원활하게 평전을 읽으려면 먼저 이러한 테마들을 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벌린의 챕터 맥락은 연대적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챕터 안에서 설명하고 있는 사건의 발단와 전개에 있어서 굳이 이것에 의한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어쩌면 제약을 받는다는 자체가 설명하는데 있어 불가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인과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시대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것 같습니다.
마르크스의 삶에서 만나고 이별한 수 많은 인물들과의 관계들, 또한 마르크스의 생활환경 (그의 경제적 상황, 가족관계 등) 을 그의 사상의 발전과 접목시켜 이해해보려 하는 관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벌린은 "그가 이러이러한 일을 했기 때문에 훌륭하다 (혹은 훌륭하지 않다)"라는 전반적인 위인전의 관점과는 달리 "그가 이러이러한 일을 하게 된 배경은 이러했다"라고 설명함으로써 객관성을 유지하면서도 그 인과관계를 훌륭히 나타내보입니다.
 
 
명료하지만 단정적이지 않게
 
당시까지만 해도 스스로를 마르크스 전문가로 인식하지 않고 있었으면서도 벌린의 평전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마치 그가 마르크스 시대의 흐름을 타고 그와 함께 사유하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그만큼 그의 문체는 단호하면서도 명료한데, 그런 와중에도 최대한의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인상적입니다.
 
"그(이사야 벌린)는 자신이 다루고 있는 인물들의 개성을 그려내지만, 그러면서도 독자들이 알고싶어 하는 것은 흥미진진한 결혼 이야기나 옷에 대한 취향이 아니라 그 인물들의 사상이라는 것을 잠시도 잊지 않는다." (415 페이지, 앨런 라이언의 추천사 중)
 
앨런 라이언의 이 한 문장은 벌린의 접근방식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압축적으로 훌륭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벌린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중심으로 기술하면서도 여러가지의 관점을 통해 "칼 마르크스"라는 인격체를 입체적으로 구성합니다. 독선적이고 타협이라고는 모르는 일차원적인 모습 뿐만 아니라 사상을 정립해나가는 도중에도 수많은 유혹과 갈등에 시달린 그의 인간적 모습과 그 양면성의 재생은 특별히 탁월합니다.
(여담이지만 벌린의 평전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경우 책의 맨 마지막에 수록된 라이언의 추천사를 먼저 읽어보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벌린에 따르면 그의 초기 원고는 출판물의 두 배 가량의 분량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편집자들의 엄격한 요구에 의해 대부분의 철학적, 경제학적, 사회학적 쟁점들에 대한 논의를 삭제했다고 하는데, 책을 읽어본 지금 원래의 구성은 어땠을지 더욱 궁금해지네요. 벌린은 이로 인해서 주로 지적 전기에 중점을 두고 재구성했다고 합니다.
 
 
칼 마르크스 - 그에게 헌정하는 평전
 
"한평생 그의 사명은 어떤 식으로건 자본주의 사회를 전복시키는데 기여하는 것 (...) 오늘날의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에 기여하는 것이었습니다" (404페이지,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추모식에서)
 
복잡하고도 방대한 마르크스 사상에 있어 이 평전이 훌륭한 입문서이자 참고서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벌린은 단호하지만 객관성을 유지하며 fact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어 (혹은 어떠한 주장을 할 경우 그에 합당한 증거와 근거를 제시하고 있어) 역사상 가장 중요한 철학자 중 한 명이자 (아마도) 가장 많은 오해와 선입견으로 인식되곤 하는 마르크스를 구체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마감기간을 지키기 위해 이 책을 한번 읽은 시점에서 글을 쓰고 있지만, 벌린의 평전은 충분히 두세번 다시 곱씹으면서 공부하고 연구할 가치가 있는 책임에 분명합니다. 철학이 전문분야도 아닌지라 여러모로 아쉬움도 많이 남는 서평입니다만, 마르크스와 그의 사상에 입문하려는 분들 뿐만 아니라 철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 모두에게 꼭 추천하고픈 책입니다. 명작은 시간을 초월한다고 하는데, 그 사실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벌린의 평전. 이 기회로 다른 저서들도 꼭 찾아봐야겠습니다.
 
[www.muserika.com]
erikaC's Live Blog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