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실수를 하는가
조지프 핼리넌 지음, 김광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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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멀다하고 "XX녀"사건으로 시끄러웠던 요즘, 굳이 안방극장을 방문하지 않아도 참 많은 반전을 겪게된 것 같습니다. 이제는 뭔가 좀 큰 일이 터지면 오히려 반전을 기다리게 될 정도로,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전개에 당황스럽거나 놀라워할 수 밖에 없었죠. 얼마 전에도 포스팅했었던 "악마 에쿠스 사건 (포스팅 읽으러 가기)" 역시 처음에 알려졌던 그리고 추측되어졌던 것과는 전혀 다른 정황이 밝혀졌고, 맞았다고 주장했던 "채선당 임산부"가 도리어 개념없이 종업원을 깔보고 욕설을 퍼부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네티즌의 반응도 이곳에서 저곳으로 휙 휙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이미 셀 수도 없이 경험한 판단의 오류들. 잘못된 판단들. 도대체 이런 실수는 어째서 발생하는 걸까요?

지금까지 저의 개인적인 생각은 "신중히 생각해보지 않고 성급히 결론을 내리기 때문에" 였습니다. 제대로 정황을 알아보지도 않고, 변수를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판단하기 때문에 실수하게 된다는 지론이었는데 언뜻 들으면 상당히 일리가 있어보이는 것 같습니다. 정황을 잘 알아보고 여러가지 생각을 거쳐 결론을 내린다면 그만큼 실수할 가능성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하지만 오늘 소개할 책을 읽은 뒤, 저의 지론에 더이상 자신감이 실리지 않더군요. 틀린 말은 아니라 할지라도 이것이 참이라고 가정할 경우 "신중히 생각하고 내린 판단은 옳다 (혹은 아마도 옳을 것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신중한 판단이 실수를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향이라고 착각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실수를 예방하는 것". 누구든지 이 기술을 터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삶이 편해질까요? 실수하지 않는 삶이라는 것은 정말 편리할테니까요.

그리고 여기. "인간의 구조적 결함이 만든 실수의 감옥에서 탈출하는 비법!"이라는 엄청난 문구를 내건 한 책이 있습니다. 오늘 그 책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제목을 읽은 순간 "이 책은 꼭 읽어야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퓰리처 상 수상 경력에 빛나는 저명한 저널리스트가 들려주는 비법이라니 정말 궁금해지지 않습니까? 세상의 많은 것들을 보고, 생각하고, 경험한 그, 조지프 핼리넌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신비의 기술, "실수 예방법"이 무엇인지 꼭 알고싶었습니다.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 언제나 그렇듯이 – 책의 내용에 관한 자세한 스포일링은 삼가합니다. 리뷰는 언제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을 제시한 것이니 참고로 이용해주세요^^)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의 90%는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의 탓이다

 

자연재해라던가 불가항적 요소들을 제외하고 나면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의 90%는 순전히 우리의 탓이라고 합니다. 바꿔 말하자면 우리 스스로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것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수긍할 수 밖에 없던 것은, 실수라는 것을 깨닫고 난 뒤에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많은 정황 증거가 있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뼈아픈 에피소드를 고백하려고 합니다.

작년 이맘 때였던 것 같습니다. 14년간의 긴 비엔나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들어올 준비를 하던 중, 14년간 쌓이고 쌓인 짐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처리할까 고민도 많이했고 적잖이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짐이 많으면 많을 수록 가격 부담도 커지는데다가 얼마 후 결혼식이었기 때문에 신혼집을 처음부터 여러가지 잡동사니로 꾹꾹 채워넣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렇게 정리하기로 마음먹어도 어찌나 그 과정이 지루하고도 힘들던지, 다시 그 때로 돌아가라면 그야말로 악몽일 것 같습니다.

때문에 지인들이 필요할만한 것들은 모두 나누어주고, 굳이 필요하지 않은 전자기기들은 모두 팔기로 마음먹었는데, 워낙에 좋은 가격에 내놓아서인가 감사하게도 눈 깜짝할 사이 거의 모두 처분되었습니다. 단지 지인들에게 이메일과 SNS를 통해 알렸을 뿐인데도요. 마지막 남은 몇 가지 물건들은 우리나라의 옥션에 해당하는 이베이(eBay)에 내놓게 되었는데, 시스템이 복잡하고 아무래도 위험부담도 큰지라 단단히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내놓은 물건은 Sony Handycam 세트. 아직 MiniDV카세트에 녹화하는 방식이었지만 작고 가벼운 외관에 구입한 당시 (2005년) 최고사양이었던지라 100만원 가까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따로 구입한 하드케이스 및 MiniDV 카세트, iLink 케이블 등 여러 악세서리도 함께 내놓았기 때문에 가격을 조금은 높게 책정했어요. 디지털 캠코더가 편리하긴 하지만 아직도 아날로그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혹시나 괜찮을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내놓은지 채 하루도 되지 않아서 덥썩! 어떤 사람이 최고가를 지불하고 사겠다고 나타났습니다 (이베이에서는 "경매가"와 "판매가"를 따로 책정할 수 있는데, 경매에 참여하고 싶다면 경매가를 부르고, 경매를 거치지 않고 꼭 구입하고 싶다면 판매가를 지불하면 됩니다. 이러한 시스템 때문에 판매가는 경매가보다 훨씬 높게 책정되고는 합니다) 좋은 모델이긴 하지만 선뜻 최고가를 지불한 것이 의아했답니다. 게다가 구입한지 얼마 되지 않아 실제 배송 요금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추가로 제시했고 나이지리아에 있는 삼촌에게 선물할 것이니 되도록 빨리 배송해달라고 부탁하더군요.

워낙 물건들을 처분하는데 지쳐있던 터라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은행거래가 아닌 이베이 고유의 거래 시스템 페이팔 (PayPal) 을 사용하겠다고 했을 때도 그런가보다 했고요. 한번도 페이팔을 사용해본 경험이 없었지만 해보면 되겠지라고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쪽에서 이미 송금을 했다는 메일이 도착하면서 조금이나마 있었던 의심은 깨끗하게 사라져버렸습니다.

정성스레 포장을 한 상품을 우체국에서 부치고, 송장을 스캔해서 보내준 뒤 확인 사인을 기다리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페이팔의 한가지 특징은, 받는 사람이 확인한 후에야 송금한 돈이 실제로 이체되는 것입니다). 다시한번 메일이 오더군요. 세관을 거치려면 어느정도의 세금을 내야 하는데 제가 그 세금을 내면 자신이 확인한 후 다시 송금해주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어… 이상한데?"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늦었죠.

 

 

우체국에 문의해본 결과, 아프리카 대륙을 중심으로 이베이에서 성행하는 사기 수법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자신이 필요하지도 않은 물품을 구매하고 송금한 것처럼 꾸민 뒤 물건은 있지도 않은 주소로 배송하게 하는 것입니다. 물품을 발송한 후에는 상대적으로 송금한 돈을 더 빨리 받고 싶어지기 때문에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세관에 쓰일 것이라는 돈도 송금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에게는 약 110 달러 정도 (당시 약 12만원 정도) 를 송금하라고 했는데, 이와같이 물건의 가격에 비해서 약소한 돈을 요구하면 그만큼 넘어가는 사람도 많다고 설명해주었습니다.

다급해져 우체국 소관의 항구에 연락해보았지만 이미 출발했다는 이야기밖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카메라는 있지도 않은 도착지를 향해 멀어져갔고, 저에게서 더이상 연락이 없자 그쪽 역시 연락을 끊어버렸습니다. 이베이에 신고를 하면서도 기분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더라구요. 주민등록번호제도가 없는 외국에서 다중 아이디를 만들어 사기행각을 벌이는 것은 일도 아닐테니까요.

 

 

실수를 저지르고 나면 "왜 못 알아차렸지?" 라는 자책감이 따라다닙니다. 그제서야 되짚어보면 충분히 의심할만한 구석이 많았는데도 말이죠. 또한 사람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이는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이런 사냥감을 고르는데 재주가 있어서 속을만한 사람을 잘도 찾아내는 것 같습니다. 당한 사람은 그저 억울하게 앉아있을 수 밖에, 다른 뾰족한 수가 없어 더 화가 나기도 합니다. 저의 경우, 억울하고 분한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속아넘어간 것은 자신이기 때문에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더군요. "더 큰 손해를 보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라"는 우체국의 위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실수를 저지르게 된 것일까요? 그리고 앞으로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지금까지는 막연히 "조심해야겠다"라고 생각한 반면, 이 책을 읽고 난 뒤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금 "실수"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과연 결과적으로 실수를 줄여줄지는 모르겠지만, 실수의 매커니즘을 인식하는 것, 즉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실수를 알아가는 것이 그 첫 단계인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실수? 그 이유는 다중적이다

 

운전기사가 네비게이션을 조작하다가 큰 사고를 냈습니다. 이 사고는 누구의 책임일까요? 그리고 어째서 이런 실수를 저지르게 된 것일까요?

 

  1. 운전 중 네비게이션을 조작하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한 운전자 탓이다
  2. 차에 운전을 방해할 수 있는 네비게이션을 설치한 탓이다
  3. 운행 중에는 네비게이션을 조작할 수 없도록 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네비게이션 회사 탓이다
  4. 네비게이션을 조작하게 만든 상황 탓이다 (예를 들어 갑자기 목적지가 변경 되었다던가)
  5. 운전자가 충분히 숙면을 취하지 못한 상황이므로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 탓이다
  6. 여러가지 색과 그래픽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네비게이션의 디자인과 화면 탓이다
  7. 어떤 일로 화가 나 시야가 좁아지고 판단력이 흐려진 운전자의 정신 상태 탓이다

 

이것이 객관식 문제라면 여러분은 어떤 답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저라면 아마도 1번을 선택하지 않을까 싶네요. 분명 네비게이션을 켤 때마다 운전중에는 절대로 조작하지 말라는 경고 문구를 알면서도 무시한 운전자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왜 실수를 하는가"의 저자 조지프 핼리넌의 생각은 다릅니다. 물론 주 실수가 있고 그 주 실수에 도달하게 한 여러가지 작은 실수들이 있겠지만, 실수는 다중적이라는 것이 그의 의견입니다. 위의 경우, 경고를 무시한 운전자의 경솔함 만큼이나 차 안에 네비게이션을 설치한 실수도 크다는 것이죠. 결국 차에 네비게이션을 설치함으로서 운전자의 경솔한 경향이 드러나 사고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만약 애초에 네비게이션이 없었더라면 운전자는 이러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 테니까요.

 

 

이처럼 실수는 여러가지 조건이 연쇄적으로 충족되면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조건으로는 인간의 한계, 편향, 구성(framing)의 문제, 익숙함, 기능석 고착 등 정말로 다양한 관점들이 제시됩니다. 바로 이 부분이 이 책에 있어서 가장 특별한 점이 아닌가 싶네요.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 우리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조건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애써도 결국 우리가 영향받는 이 조건들부터가 전혀 이성적이지 않다는 것은 가히 충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우리는 저지른 실수를 분석하면서 그 이유를 단순화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데, 실제로는 하나 혹은 둘의 이유가 아닌 여러가지 조건의 연쇄작용으로 일어나는지라 결코 간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실수를 예방할 것인가?

 

실수가 일어나는 이유가 다중적이고 복잡한만큼, 그 실수를 예방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자신의 판단력과 객관성을 흐리게 하는 편향(bias)을 어렵게 깨달은 뒤라 할지라도 그것을 감안하여 태도를 바꾸는 일은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았을 때 어쩌면 실수는 인간에게 있어 구조적으로 예방하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흥미롭게 읽어내려가다가도 점점 "내게 이런 경향이 있고 이런 영향을 받고 있다니 그렇다면 어떻게 이성적으로 살 수 있을것인가?" 의문이 들 수도 있겠네요.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그 중요성을 깨달은 것은 바로 "겸손" 입니다.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다시한번 다른 가능성을 고려해보는 겸손. 자신의 주장이 꼭 옳지만은 않은 것이라는 여지를 두고 다른 의견을 들어보는 겸손.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기 때문에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는 겸손. 바로 이 겸손이 결국 실수를 예방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간은 존재 자체가 참 많은 부족함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부족함에서 벗어나려 하면 할 수록 점점 더 깊은 한계에 도달하게 되고,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부족함에 대한 좌절 혹은 부정하고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려는 독선으로 방향을 돌리게 합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실패란 없다 포기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명언들이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큰 위로가 되지 않는 것도 이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수많은 "나의 모습들". 나 자신도 잘 알지 못했던 "나 자신의 구조적인 오류"를 이해하고 그것을 통하여 관용을 키워간다면 자신의 실수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생산적인 노력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동안 우리가 필요이상으로 의지하고 맹신해왔던 정황, 재구성 그리고 자신에 대한 평가를 다시한번 되짚어보고 객관적인 시각을 발전시킬 수 있다면 저자가 주장한대로 분명, 실수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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