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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세계 - 우리가 잃어버린 가장 오래된 감각에 대하여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나지윤 옮김 / 소용 / 2025년 11월
평점 :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은 후, 작성된 글입니다 ***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을 꽤나 쉽고 가볍게 사용하곤 합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배우자를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죠. 가끔은 친한 친구나 좋아하는 연예인을 향해서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 말이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 어떤 깊이를 담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여유는 잘 가지지 못합니다. 시라토리 하루히코의 <사랑이라는 세계>는 남용 속에서 희미해진 ‘사랑’의 본질을 다시 바라보도록 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장 4절
철학자인 저자가 사랑의 뿌리를 성경에서 찾는 방식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인용하며 그는 사랑을 “받는 경험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실천할 때 드러나는 힘”으로 정의합니다. 사랑은 누군가가 나에게 주기를 바라는 감정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선택하여 건네는 행위이며, 강제나 거래가 아닌 ‘자신의 의지’에서 솟아날 때 비로소 그 순도가 높아진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라 부르는 관계에 계산과 조건, 거래적 태도가 끼어드는 순간 그 관계는 사랑의 외양을 하고 있을 뿐, 실제로는 포획, 집착, 소유, 구속의 형태로 타락하기 쉽습니다. 이런 관계들은 언뜻 깊어 보이지만, 그 핵심에는 상대를 ‘도구화’하는 욕망이 자리합니다. 그리고 행위에 다른 목적이 얹혀지는 순간 변질된다는 것이 저자의 경고입니다.
책의 전반부가 ‘타인과의 관계 속 사랑’을 다루었다면, 중반부부터는 사랑의 본질을 찾기 위해 시선을 내면으로 돌립니다. 사랑은 둘이 서로에게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이 온전한 ‘나’로 존재하는 가운데 상대와 하나됨을 경험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내면의 고요함 속에서 존재의 중심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죠. 저자는 이 지점을 “타인과 닮지 않은 나 자신을 충실히 살아내며, 진짜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길러진 ‘사랑하는 능력’은 자신과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게 하며, 서로에게 집중하고 몰입함으로써 결국 그 사람 속의 ‘인간 그 자체’를 경험하는 기쁨으로 이어집니다.
타인에게서 출발하여 나의 내면으로, 다시 세상으로 확장되는 이 여정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홀로 존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랑할 수 있다”는 문장에 깊게 공감했어요. 그래서 우선은 집중과 몰입을 통해 매 순간을 진실되게 살아내는 훈련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값싼 애정과 가짜 사랑이 넘쳐나는 시대 속에서, 다시 본질로 돌아가게 만드는 책이라 기꺼이 추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