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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음악 취향은 - 음반 프로듀서가 들려주는 끌리는 노래의 비밀
수전 로저스.오기 오가스 지음, 장호연 옮김 / 에포크 / 2024년 8월
평점 :
사람은 30대가 지나면서 더 이상 새로운 음악을 듣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시작했고, 지금도 음악으로 먹고 살고 있지만 저 역시 그 즈음 멜론을 해지했던 것 같아요. 어느 순간부터 Top 100의 음악을 - 인사이트와 공부를 위해서라 할지라도 - 듣기 힘든 시간이 오더라고요. '아, 이제 나도 기성세대가 되었구나(?)'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작곡가로서 공식 데뷔한 것이 2005년이니 벌써 2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음에도 저는 음악에 대해 모르는 것이 참 많습니다. 사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어느새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지고, 작업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 멍하니 스크린을 바라보기만 하는 때도 많습니다. 그중 가장 당황스러운 순간은 제 예상과 관객의 반응이 전혀 다를 때인데요, 망했다고 생각해 어쩔 줄 몰랐는데 음악이 좋다고 칭찬해주시면 얼떨떨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겠지만, 저에게 굳이 말씀해주시진 않더라고요 ㅎㅎ).
<당신의 음악 취향은>이라는 책을 읽게 된 건 이런 이유였어요. 1980년대부터 수많은 거장들의 음반을 프로듀싱한 저자가 말하는 "음악 취향"이란 무엇인지, 사람들은 언제 어떤 느낌을 받고 어떤 감정이 생기는지가 궁금했어요. 음반 프로듀서는 누구보다도 트렌드에 민감하고 아티스트의 성향과 매력을 극대화시켜야하는 직업인지라 오랫동안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습니다.
저자는 각 챕터 서두에 참고할만한 (때로는 꼭 들어봐야 하는) 플레이리스트를 제시합니다. QR 코드를 찍으면 친절하게도 출판사에서 만들어놓은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로 연결되기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 틀어두기 좋아요. 누구나 한 번 쯤은 들어봤을법한 히트곡도 있지만 웬만해선 인생에서 만나기 힘든(!) 곡들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어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음악 청취의 중요한 일곱가지 차원으로 진정성, 사실성, 참신성, 멜로디, 가사, 리듬, 음색을 꼽는데 이 책의 구성 역시 이 일곱 가지 차원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일곱 가지의 차원이 결합하여 누군가의 독특한 '청취 프로필'이 된다는 사실이 흥미롭더라고요. 한 번도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본 적은 없던지라 책을 읽는 내내 신선하고 새로웠습니다.
음악과 취향이라는 지극히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개념을 어떻게 글로 표현해낼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그에 관련하여 어떤 가설이나 이론을 세울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는데 이 책을 읽으며 독특하고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물론 저자가 말한 일곱 가지 차원과 그에 대한 이야기는 공인된 사실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연구의 결과에 가깝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예술이라는 분야를 더듬고 가늠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 이래서 이런 느낌이 들었구나'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는거죠. 이 책은 음악을 사랑하는 - 혹은 앞으로 사랑하고자 하는 - 일반 대중들을 위해 쓰여진 책이지만 곳곳에 저자의 연륜과 깊은 경험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지혜가 담겨있어 전문 음악인에게도 많은 영감과 감동을 줍니다. 여러 번 읽고 음악과 함께 음미하며 소장할만한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