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복
리샤르 콜라스 지음, 이주영 옮김 / 예미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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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어디까지의 슬픔을 감당할 수 있을까. 

리샤르 콜라스의 장편소설 <할복>은 역사와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비극적인 삶을 산 에밀 몽루아의 일생을 다루고 있습니다. 세계 제1차 세계대전부터 제2차 세계대전, 베트남 전쟁과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소설의 현실적인 배경 때문인지 살고자 몸부림 치는 에밀 몽루아가 꼭 실존했던 인물처럼 느껴졌어요. 믿기지 않는(그러나 결코 과장되거나 부자연스럽지 않은) 우연의 연속으로 이 모든 전쟁에서 기어이 살아남은 그는 결국 할복으로 길고 고단했던 삶의 마침표를 찍습니다. 그의 삶 이야기가 알려질 수 있었던 건 그가 죽기 전 주일 프랑스 대사관에서 일하던 R.C. (저자의 이니셜과 같은 건 우연일까요 ㅎㅎ)에게 의문의 소포 두 박스를 보냈기 때문이죠. 소포에는 여러 장의 LP판과 서른 여섯권의 수첩이 들어있었습니다. 몽루아는 R.C.에게 그의 삶 전부를 전달하며 이 수첩들을 꼭 순서대로 읽어달라고 부탁하죠. 그는 아마도 닷새 정도면 다 읽을 수 있을 거라고 편지에 적었지만 R.C.는 3박 4일만에 다 읽었고, 그 이야기를 전달받은(!) 저는 1박 2일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그만큼 흡입력 있고 충격적인, 그리고 애처로울만큼 비극적인 이야기였어요. 

"에밀 몽루아"는 수첩을 쓴 주인공이 가진 하나의 이름에 불과합니다. 그의 첫 이름은 "볼프강 폰 슈패너"로 유능한 정형외과 의사 아버지와 낭만적인 천재 피아니스트 어머니 아래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냅니다. 아버지도 독일의 유망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어머니 역시 보르도의 귀족 딸로 제1차 세계대전 뒤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를 염원하던 이상주의자 외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베를린으로 유학을 온 프랑스 사람이었습니다. 부족할 것 없고, 바랄 것 없는 이상적인 환경에서 자라난 그의 인생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건 히틀러가 기득권을 잡기 시작한 다음부터였는데, 어느새 나치의 앞잡이가 되어 나날이 미쳐가는 아버지와 현실에서 끝없이 도피하는 어머니는 더 이상 그에게 안전한 울타리를 만들어주지 못했어요. 결국 베를린이 소련군에 의해 함락되면서 그의 삶은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기 시작합니다. 

볼프강에서 모리스로, 모리스에서 에밀로 (성까지 합치자면 더 여러 번이지만) 신원이 바뀌었지만 그런 그의 인생 전반에 걸쳐 가장 의미있던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아버지의 학교 동기이자 그의 집에서 할복 자살한 일본 사무라이 겐소쿠였고 다른 한 사람은 부모님이 놀이 친구로 수용소에서 데려온 유대인 에밀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주인공에게 각기 다른 "삶의 의미와 가치"를 건네주었는데 겐소쿠는 '용서를 구할 필요없는 후회 없는 삶'을, 에밀은 '사랑이라는 불씨를 위해 사는 삶'을 알려주죠. 

"볼프강, 사람은 그 어떤 후회도 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단다 (...) '그 어떤 용서도 구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았구나. 나에게조차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았어.' 그러면 이 사람은 평화롭게 죽을 수 있다는 것이지. - 겐소쿠"

"우리는 사랑을 하며 살아갈 거야, 모리스. 사랑은 찰나의 순간일지도 몰라.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사랑을 하며 살아갈 거야. 사랑이라는 불씨를 위해 살아가야 한다고!" - 에밀

어린 주인공에게 큰 영향을 준 소중한 두 사람이었지만 너무나 갑작스럽고 끔찍하게 세상을 떠납니다. 주인공은 그들의 말을 마음에 간직한채 인생의 노를 쉬지않고 젓기 시작해요. 헤아릴 수 없는 비극의 연속에도 그가 삶에 대한 의지를 내려놓지 않은 것은 이 두 사람의 말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가 그토록 지키고 싶은 사랑을 잃고서야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로 결심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에밀 몽루아의 삶은 가히 가학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담담하게 적어 내려간 인생의 "고백서"는 참담하고 끔찍하기 그지 없습니다. 작가가 굳이 이렇게까지 그를 극한으로 밀어넣어야 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요.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던걸까, 어디까지 추락시키고 싶었을까, 왜 그는 인간이 감당할 수조차 없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을까 묻게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 소설은 정말 흡입력있고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습니다. 이야기의 배경과 사건이 지나칠 정도로 현실적이다보니 마치 역사의 소용돌이로 함께 휘말려들어간 착각마저 들거든요.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차례로 잃고, 지켜야 할 대부분의 것을 상실한 그가 끝없이 삶의 의지를 불태우며 마지막 불꽃이 꺼지기까지 살아냈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그가운데 드러나는 전쟁의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지만요. 

그는 왜 새해 아침이 밝을 때 일본에서 생을 마감했을까. 살아야 할 사람은 죽고 죽어야 할 사람은 사는 운명의 아이러니는 무엇일까. "한 많은" 인생을 내려놓기로 결심한 다음 어째서 서른 여섯 권의 수첩에 빼곡히 자신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갔을까. 왜 그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으로 R.C.를 지목한걸까... 책을 덮은 다음에도 끊임없이 질문이 떠오릅니다. 

생전에 미처 알아채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는 겐소쿠와 에밀에 대한 약속을 모두 지켰습니다. 겐소쿠의 금화는 아들에게 잠시나마 돌아갔고, 에밀이 말한 사랑을 하며 끝까지 살았으니까요. 도무지 사랑하지 못할 상황에서도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자기 안에 있는 악마에게 잠식당했다고 느낀 그는 질긴 운명을 끔찍한 고통을 통해 잘라내버리기로 결심하죠. 

여운이 깊게 남는 에밀 몽루아, 아니 모리스 드 그라브, 아니 볼프강 폰 슈패너의 삶이었습니다. 

PS. 초반에 주인공의 어머니가 그를 "마인 클라인 모짜르트"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문법적으로는 "마인 클라이너 모짜르트(Mein kleiner Mozart)"가 맞습니다. 처음엔 오타인가 싶었는데 끝까지 이렇게 나오더라고요. 원본이 그런 건지 번역본이 그런 건지 문득 궁금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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