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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꼰대생활
조이안 지음 / 더로드 / 2024년 7월
평점 :
몇 년 전, 드디어 40대가 되는구나 마음의 준비를 다 해놨더니만 갑자기 나이 세는 법이 바뀌는 바람에 올해가 되어서야 드디어(!) 40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프로젝트에 따라 여러 사람들이 헤쳐모여 팀을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제는 어딜 가더라도 완고(완전 고참) 쪽에 속하는 걸 보니 저도 모르는 새(?) 나이가 꽤 들긴 들었나 봅니다.
기원 전 425년 소크라테스는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진위 여부는 좀 더 따져봐야겠지만 세대간 갈등은 어느 시대건 존재했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 부모님 세대가 저희 세대를 보며 한숨을 지으셨던 게 엊그제 같은데 저 역시 "요즘 아이들"의 취향과 성향, 생활 양식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곤 합니다. 허허. 그래서 요즘엔 괜히 잔소리를 시작해 "꼰대" 소리를 듣느니 가만히 있어 중간이라도 가자는 마음으로 입을 다물게 됩니다.
<슬기로운 꼰대생활>은 흥미로운 책입니다. 일단 작가 "조이안"에 대한 정보가 전무합니다. "의사이며 레스토랑 경영, 저작활동 등 다양한 경험의 소유자다. 평소 인생을 간결하게 정리한 '인생 매뉴얼'을 꿈꾸어 왔다" 이 두 문장이 전부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저자의 이름 역시 필명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은 있지만 화자는 비밀에 부치고 싶은 듯한 느낌입니다. 이는 어쩌면 그가 지향하고자 하는 "슬콘(슬기로운 꼰대)"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자가 자신에 대해 감추려 하면 할수록 점점 더 궁금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스스로를 "꼰대"라 지칭하며 슬기로운 노인네, 그러니까 "슬콘"이 되기 위한 매뉴얼을 쓰는 걸 자청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이 책은 크게 인생, 슬콘/건강, 교육과 신뢰, 행복 등 네 가지 챕터로 구성되어 있지만 어디서부터 읽어도 상관없을 듯합니다. 저자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긴 글을 읽게 하는 것조차 압박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컴팩트하게 구성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한 꼭지가 짧을 때는 겨우 두세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찌나 짧은지 제목과 내용을 두세 번 곱씹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작은 부분에서부터 저자가 - 우리가 흔히 말하는 - "꼰대스러움"으로부터의 탈피를 시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도 두세 번 들으면 잔소리가 된다고 하니 애초에 말을 짧게 짧게 하자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목소리를 줄이지는 않습니다. 읽다보면 저자의 독특한 단상과 철학을 자주 마주하게 되는데 처음엔 갸우뚱하다가도 이내 미소를 지으며 수긍하게 되는 것고 있고, 어떤 부분은 너무 독단적인 발상이 아닐까 생각에 잠기는 구간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부분에서 가감없이 의견을 표명하고자 자신에 대해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어요. 다르게 보면, 몇백 개가 되는 꼭지를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을까요. 저자의 글을 읽으며 자신을 돌아보고,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슬콘"으로 가는 한 걸음을 뗀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중용을 지키는 것"이 점점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포용적이고 열려있는 사람이고 싶지만, 어린 친구들이 (저에겐 뻔히 보이는) 시행착오를 겪으려 할 때면 수요없는 잔소리를 하고싶은 욕망(?)이 올라오곤 하죠. 어느 것 하나도 100% 만족스럽거나 옳다고 생각되는 방법은 없습니다만, <슬기로운 꼰대생활>은 기성세대로 넘어가는 우리들이 다음 세대와의 소통과 공생을 위해 한 번 쯤은 생각해봐야 할 내용들을 담은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인생 매뉴얼'이 이런 느낌일지도 모르겠네요.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가볍게 넘길 수는 없는 이 책을 "슬기로운 노인네"가 되길 꿈꾸는 분들께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