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본의 죄, 어디까지 아니? - 독립유공자 후손이 쓴 일본이 우리에게 사과해야 하는 100가지 이유 ㅣ 탐험하는 고래 13
박찬아 지음, 김언경 그림 / 고래가숨쉬는도서관 / 2024년 4월
평점 :
얼마 전 영화로도 개봉한 뮤지컬 <영웅>의 대표적인 넘버, "누가 죄인인가"에서 재판을 받던 안중근 의사는 일본의 열 다섯 가지 죄를 나열하며 누가 죄인인지 되묻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 넘버가 아니었다면 일본이 구체적으로 우리나라에 한 만행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을 것 같아요. 옛날 역사책은 자주 읽어 나름 파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정작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는 무지하다는 걸 다시 한 번 체감하게 됩니다.
하지만 "누가 죄인인가"의 열 다섯 가지 죄로는 일본의 지난 만행을 다 담을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맹목적으로 일본을 우리나라의 적으로 간주했을 뿐,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는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정확하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아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하여 정확하게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 어쩌면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광복 후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이 두 가지 당연한 절차를 밟아나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세대에서는 이루지 못했더라도 다음 세대에서는 분명한 사죄와 용서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득 담아 출간된 책이 있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독립유공자 후손이 쓴 일본이 우리에게 사과해야 하는 100가지 이유를 담은 "일본의 죄, 어디까지 아니?"입니다.
독립유공자의 증손인 박찬아 작가는 서두에 분명히 밝힙니다. 일본이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만행을 있는 그대로 후손들에게 교육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저에게도 몇 명의 일본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놀라우리만치 자기 나라의 역사에 무지합니다. 아예 관심이 없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어쩌다가 과거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면 입을 모아 "한국에게 참 미안한 일이었지"라고 말하는데 거기에는 어떤 악감정도 죄책감도 없는 모습이었거든요. 고집으로 선조들의 잘못을 숨기려 하는 것도 아니었고, 가슴깊이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모습도 아니었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났으며, 그것이 어떠한 참상을 야기했는지 알지 못하는 무지함에서 나오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답니다.
'일본이 잘못한 것은 정말 많지만 100가지를 다 채울 수 있을까?'라는 저의 걱정은 쓸데없는 일이었어요. 일본의 잘못은 생각보다(?)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죠. 마지막 죄목인 "진실한 반성과 사과를 하지 않은 죄"에 뭉뚱그려져서 그렇지, 일일히 따졌다면 매 년 리스트가 갱신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백 가지 죄목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제가 참 일제의 만행에 대해 무지했구나 싶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자의 섬세한 노력의 결실이 앞으로 이 책을 읽을 많은 아이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알려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광복 이후 몇 세대가 흘렀지만 역사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과거는 계속하여 우리의 발목을 잡을 뿐입니다. "일본이 이미 사과했으니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어?"는 "일본은 우리의 적이니 무조건 미워해야 해!"만큼이나 잘못된 생각이니 말이죠.
초등학교 중~고학년 아이들에게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