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엄마 고슴도치
최문정 지음, 지연리 그림 / 창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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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어떤 소설보다 현실이 가장 잔혹합니다.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의 이야기보다 바로 옆 가족의 이야기가 더 가슴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어쩌면 있을 수 있는, 현실감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처음 이 책을 손에 들었을 땐 사랑스러운 고슴도치 일러스트와 파스텔 핑크의 따뜻한 색감 때문에 마냥 "가슴시린 가족 이야기"일거라고 생각했어요. 이 책을 쓴 최문정 작가님은 2012년 SBS 드라마로 제작된 "바보 엄마"의 원작 소설을 쓰신 분이에요. 드라마는 보지 못했지만 워낙 여러모로 회자되던 작품이라 소문으로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답니다. 

소설 바보엄마가 2010년작이니 무려 14년만에 "바보엄마 고슴도치"로 돌아온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어요. 이 책은 초등 중고학년이 읽기 딱 좋은 글밥과 문체로 되어있기 때문에 4학년 아들과 함께 읽어보고 싶었답니다. 


사랑스러운 겉표지에 이끌려 아들보다 먼저 읽게 되었는데, 결론적으로 보면 잘된 일 같아요. 아직 아들에게는 이 소설이 말하고 싶은 바와 깊이를 설명하지 못할 것 같아서 말이죠. 아니, 사실 저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 궁금해졌어요. 조금 특별하게 태어나 원하는 만큼 애정과 관심을 받지 못했던 아리. 그런 아리에게 운명처럼 찾아온 사랑은 그만큼 큰 아픔을 남겼지만 모다라는 세상에 둘도 없는 존재를 안겨주었습니다. 아리는 결핍에서 오는 집착에 강한 사랑을 갈구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자신의 사랑을 쏟아낼 수 있는 모다의 존재는 이상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엄마와는 달리 모다는 사랑하는 방법도 몰랐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습니다. 자기 뱃속으로 낳은 자식인데도 모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와는 달랐으니까요. 마치 모다와 이 세상 나머지라는 이분법적인 구조로 나뉘어진 것 같은 세계. 모다와 주변 동물들은 놀라울만큼 무심하고, 무정하고, 무지합니다. 그 가운데서 고통받고 방황하던 아리는 결국 자기파괴적인 방법으로 마지막 사랑을 표현합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공감받지도, 이해받지도 못하는 사랑의 표현. 결국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면서도 그녀는 행복해하는 것처럼 보였지요. 어쩌면 아리는 무정한 이 세상에서 이해받지 못하고 살아가느니 차라리 죽음을 통해 해방되고자 한 건 아닐까 싶었어요. 아리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철저하게 부정한 세상이 매몰차게만 느껴졌겠지만, 아리 역시 그만큼 철저하게 세상을 부정한채 끝까지 자신의 방식으로 사랑하다 떠납니다. 이만큼 마조히스트적인 사랑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요. 


책은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저자에게 있어 "바보엄마"는 자기연민적인 뜻도, 자조적인 의미도 아닌 것 같아요. 저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이 글을 쓰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어쩌면 이 책의 결말이 과장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묵직한 여운이 남는 건 어쩌면 우리 현실에서 이와 비슷한, 아니 이보다 더한 이야기들이 반복되기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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