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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 카네기 여자를 위한 인간관계론
데일 카네기 지음, 미리내공방 옮김 / 정민미디어 / 2023년 9월
평점 :
<삶이 불쾌한가: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저자 박은미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타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존재하기를 희망할 수밖에 없지만 이러한 희망은 고통을 낳는다. 타인은 자기 방식대로 존재하지 내가 원하는 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엄정한 사실인데도 우리는 이러한 헛된 희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이 강렬한 서문 때문에 예정에도 없던(?) 책을 읽게 되기도 했죠. 그만큼 깊은 울림을 주는 깨우침이었던 것 같습니다.
갑자기 왠 쇼펜하우어냐고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자기계발서"를 가장한(!?) 인생책을 만났거든요. "인간관계"와 "처세술"이라는, 언뜻 보면 실용적인 조언들이 모여진 책 같은데 그 이면에는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에요. 제가 이번에 읽은 책은 완역본이 아닌 (특이하게도) <여자를 위한 인간관계론>이라는 편역본입니다. 출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 시대 여성에게 도움이 될 부분들을 추려 엮어냈다고 해요. 그래서인가 뭔가 일러스트도 색감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집니다.
나름 책 좀 읽고 살았다(?) 생각했는데 그토록 유명한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은 읽어본 적이 없어요. 이번 기회를 통해 편역본이라도 읽으면서 전체 내용도 살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이 책을 단순히 "금 나와라 뚝딱"같은 주문처럼 처세술로 볼 것이 아니라, 카네기의 깊은 통찰을 기반으로 인간의 본질을 배우고, 나와 너무 다른 타자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초반 쇼펜하우어가 <의지와 표상>을 통해 설명했듯 타인은 나의 희망이 아닌 자신의 방식대로 존재하는 것인데 우리는 단지 말이 통한다는 이유로 설득하거나, 윽박지르거나, 회유해서 변할 거라는 이상한 확신을 가지고 살고 있으니까요.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 세상에 나온지 100년이 지나가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우리들에게 필요한 내용을 담고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현대인의 삶에 완전히 녹아들며 자기만의 기준,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우리 사회를 더욱 각박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은 상호존중과 배려, 또한 이타적 사고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처세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총 서른 가지의 조언으로 구성된 이 책을 굳이 "여자를 위한" 책이라고 해야할까 싶었습니다 (아니면 제가 모르는 인간관계론의 다른 부분들이 지나치게 "남성중심적"일지도요?!). 서문에서 역자는 "일부 사례는 여성들의 시선과 다소 거리가 있는데, 이는 카네기가 제시한 지침의 강조 차원에서 부득이 살렸"다고 쓰고 있는데, 끝까지 정독을 하고서도 어느 부분이 그런건지 못 찾겠더라고요. 오히려 남편에게도 부담없이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