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 복잡한 세상을 만나다 -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지식인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완웨이강 지음, 이지은 옮김 / 애플북스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통찰력.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저자는 어떻게 이런 통찰력을 가지게 되었을까 감탄하게 됩니다. 번지르르한 말로 자신의 이론을 펼쳐놓고 모든 것을 끼워넣는 것이 아닌, 다방면으로 분석해보고 가설을 세운 뒤 그것을 증명해보이는 저자의 넓고 깊은 지식과 지혜가 놀라울 따름이에요. 

<지식인 복잡한 세상을 만나다>의 저자 완웨이강은 현재 미국 콜로라도대학교 연구원으로 활동중인 물리학자이자 칼럼니스트라고 합니다. 저자의 전공은 물리학이지만 철학과 사회학, 통계학, 교양학, 정치학 등 수많은 분야를 넘나드는 방대한 지식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명문대학교인 콜로라도대학교의 연구원이면서 저자는 스스로 "어디 가서 직업이 물리학자라고 말하기에는 차마 부끄러운 성과를 내는 데 그치고 있을 뿐"이라고 평가합니다. 바꾸어 이야기하자면 자신의 진짜 경쟁력은 물리학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 걸쳐 문제를 다각적으로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라 할 수 있죠. 

몇 년 전 유행하던 팟캐스트 방송인 "지대넓얕(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떠오르게 하는 이 책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진정한 인재(엘리트)가 되려면 결국 인문학과 예술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또한 이 모든 학문들은 단지 으스대거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있어 보이기 위한 소품들이 아닌 인생에 직결되는 지혜라고 강조하죠. 

사실 인성교육의 본질은 뛰어난 실용성에 있다. 
평생의 짝을 찾기 위한 연애의 기술 따위가 갖는 
실용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삶을 살아나가며 무엇을,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지 
배우게 해준다는 뜻이다. (...)
자유학의 본질은 올바른 결단을 내리기 위한
학문이라는 데 있다.
(21 페이지)

또 다른 중요한 메시지는 (얼마 전부터 이미 많은 책들이 언급한 바 있듯이) 한 분야에서 뛰어난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것보다는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가 이 시대에 맞는 지식인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한 가지 분야의 지식만을 활용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사실상 극히 적다(11 페이지)"는 것이죠.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하기 시작한 "전인적 교육"이나 "통합교육", "융합"과 같은 맥락으로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의 초식이 통하지 않으면 재빨리 다른 초식을 펼칠 줄도 알아야 한다.
똑같은 문제를 놓고 경제문제 또는 정치문제, 심지어 물리문제로
여길 줄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23 페이지)

때문에 자식들에게 왜 공부를 해야만 하는지 설득하는 데 있어 부실하고 어줍잖은 근거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면, 이 책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끊임없이 공부하며 자신의 지평선을 넓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책에 담겨 있으니까요. 

책을 읽다보면 조금은 의아할 수 있는 저자의 관점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성도 여가도 모두 포기한 채공부에만 집중하는 중국 학생과 봉사활동도 하고 자신만의 취미생활도 계발해나가며 명문대에 진학하는미국 학생은 결국 비슷한 부류라는 주장은 얼핏 들어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전자는 "잘못된" 교육의 단면으로, 후자는 "바람직한" 전인적 교육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자는미국 학생이 그렇게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스펙을 쌓아나가는 것은, 그가 사는 사회 가운데서 그것이 인정받기 때문이라고 꼬집습니다. 공부만 잘하면 장땡인 중국 사회와는 달리, 미국에서는 적어도 그 정도는(?) 해줘야 인재라고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죠. 즉, 전자가 나쁘고 후자가 좋다는 것이 아니라 전자와 후자 모두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대치에 수동적으로 부응하는 아이들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480 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을 자랑하는 이 책의 내용은 쉽게 분류할 수 없는 분야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복잡한 세상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저자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연구를 거듭했는지 대략이나마 알 수 있는 부분이에요. 사실 저자는 지식인(知識人)이 아닌 지식인(智識人)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후자는 전자를 통해 많은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지만, 지식을 아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자신의 경험과 지성을 더해 지혜롭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흔히 우리가 콘텐츠를 만들 때, 1차원적인 나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른 장르 혹은 학문과 융합하여 새롭고 지극히 개인적인 콘텐츠를만들어야 한다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을 가진 다른 사람들이 쓴 책과는 달리, 이 책의 저자는 어느 한 이념이나 정책, 문화나 관습 등을 놀라우리만치 비판하지 않습니다. (거의) 모두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신랄하게 비판해도 전혀 놀랍지 않을텐데 지극히 중립적인 입장에서 팩트만 정리하는 식이죠. 이것 또한 어떤 무언의 메시지가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요. 

저자의 많은 지혜를 배우면서 반성하며 결심했던 것 중 하나는, 저 자신의 편협적인 배움이나 경험을 토대로 섣불리 가설을 세우거나 판단해선 안된다는 것이었어요. 예술인으로서, 엄마로서, 제가 아는 것은 지극히 일부분일 뿐인데 나이가 들어갈 수록 마치 그 일부분이 전부인 양 착각할 때가 많아지는 것 같아요.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전에 충분히 검증하고, 객관적인 이유가 될 수 있는 자료들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정말 두고두고 읽으면서 배울 수 있는 좋은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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