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박사와 헤로데 대왕 - 세계문학 06
미셸 투르니에 지음, 이원복 옮김 / 종문화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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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끔 무척이나 자주 가던 곳에서도 종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때가 있다. 그것들이 새로 생긴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거기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더구나 발견한 그 무엇이 우리를 기분좋게 해 주었다면 그건 분명 작은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소소한 즐거움일 수도, 또 때로는 인생을 바꿀 그 무엇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우연이라 하더라도.....

하지만 우리들은 살아나가면서 자신이 계획하지 않은 것들을 만나게 되면 그것을 그리 달갑지 않게 받아들이거나, 배척하기 일쑤이다. 지키지 못하는 약속시간-어떻게 정확히 시간을 지킬 수 있단 말인가! 일찍 도착하거나 늦게 도착하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닌가!-, 배신하고 떠나는 연인, 늦게 도착하기만 하는 열차, 마음먹은 대로 끝나지 않는 일들, 절약하고 절약해도 목표대로 모이지 않는 돈.....

어쩌면 가장 계획하기 힘든게 우리의 삶일텐데도 우리들은 한사코 스스로의 계획표 속에 모든 것을 구겨 넣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우연히 얻어지는 즐거움은 아예 처음부터 포기한채 말이다.

이 소설속의 주인공들은 마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 같다.
가스파르, 멜쉬오르, 발타자르, 타오르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아니면 보다 나은 것을 찾기위해, 아니면 막연하게 각자의 목표와 필연을 가지고 여행을 시작한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우연들을 만나기 위한 것. 주인공들은 각자 갖가지 일을 겪고 우연히 한자리에 만나게 된다.

그리고 우연하고도 필연적(!)으로 헤로데 대왕(헤롯 왕)을 만나서 동일한 목표와 필연을 부여받게 된다.(예수의 탄생 보고) 하지만, 그렇다고 이 주인공들이 여행을 끝낸 자리에서 우연이 없는 획일적인 것들을 얻게 되지는 않는다. 각자에게 가장 골몰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얻게는 되지만, 그건 목표를 해결한데서 오는 성취감이 아니라, 목표를 생각하는 가치의 전도 그 자체에서 오는 해방감에 다름 아니다.

투르니에가 소설을 통해 가장 주제에 가까운 인물로 내세운 것으로 보이는 타오르는, 가장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여행을 시작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 목표는 어떻게 보면 가장 확실하나, 가장 보잘것 없는 목표이다. 목표라는 것이 '피스타치오를 넣은 라아트루쿰'이라는 과자 제조법을 알아내기 위한 것이 기에....

그걸 얻어내려고 출발한 여행에서 타오르는 야스미나라는 가장 아끼는 코끼리, 가장 아끼던 충신까지 포기하거나 잃게 된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 타오르는 이미 그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게 된다. 더 크고 본질적인 것을, 우연히 얻게 되었으니까....
이렇게 여행은, 삶은 우연을 얻어내기 위한 의도적인 계획하에 행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미 정전Canon이랄 수 있는 성경이나, 로빈슨 크루소 같은 작품에서 그 틈을 찾아내어 새롭게 재해석-창조해내는 투르니에가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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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와 근대성 문화과학 이론신서 6
이진경 지음 / 문화과학사 / 199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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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아니 나 또한, 아니 나는 보잘 것 없고 그저 세계에서도 변방, 그 변방의 변방에서도 중심에 있지 않은 일개 독자일뿐이라는 사실을 먼저 말하고 싶다. 그러나 아직은 젊다는 것도......

이진경의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을 놀라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읽었던 적이 기억난다. 그리고 그러한 수많은 책들이 내 인생에서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가면서 그 책들은 자연스럽게 고전과 시효상실이라는 레테르를 달고 정리된다. 아직 미완인, 아니 미완인게 분명한, 반드시 미완이어야 할 이진경의 작업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때로는 우리나라 연구자들의 인문.사회과학 이론서들을 읽다보면 조로증에 걸린 아이를 보는 듯하다. 대가인듯한 말투지만, 정리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 그럴때마다 정말 난 안타깝기 그지 없다. 외국 이론가의 논리에 절대적으로(!) 기대고 있지만, 그 외국이론가에 대한 연구서 한 권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다고 그 외국이론가의 일차저작물이 우리나라에 충분히 번역되고 소개되고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작업이 영문학과 석사논문류와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왜 보다 근원적인 문제에 접근하지 못하는가, 왜 본격적인 연구서를 쓰지 못하는가....

가라타니 고진이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에서 말한 바 있듯이, 어떠한 책을 읽고 사상을 접한다는 것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중심으로 들어가 살펴보는 일일 것이다.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이진경의 작업이 보다 그 '중심'으로 들어가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그 스스로 후기에서 말한 바대로, 무거운 짐을 다룰 줄 알게 되려면 그 무게중심이 어디인지 파악하는 일이 먼저일 것이다. 그리고는 천천히, 한걸음씩 나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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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월터 J. 옹 지음, 이기우 외 옮김 / 문예출판사 / 199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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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레의 소설 'H서류'를 읽는데 마치 옹의 이 책을 소설로 옮겨놓은 듯한 착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은지가 벌써 5-6년전으로 기억되는데 그때 당시 학부 3학년이었던 나에게는 일종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책이었다. 그리고, 뛰어난 이론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항상 우리나라의 구체적 현실에는 맞지 않는 서구 이론서적을 보는데 한참 진절머리가 날 즈음에, 우리나라의 문학이나 사회 전반에 걸쳐서도 적용되는 범위가 넓었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 책이었다. 한글에 대한 언급이 한 쪽 밖에 안되는 것은 한국인으로서 조금 유감이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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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서류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박철화 옮김 / 문학동네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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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학부때 너무나 흥미롭게 읽은 월터 J.옹의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를 마치 그대로 소설로 꾸며놓은 듯 했다. 벌써 5-6년전쯤으로 기억되는데 그때 읽은 옹의 책은 구술성(기억력)이라는 것과, 쓴다는 것이 어떻게 텍스트를 다르게 구성해내가는에 대해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을 일깨워주었다.

이 작품에서 나오는 두 정보원 프레누쉬와 뒬은 각각 문자성(쓰기)과 구술성(기억력:청각)을 상징하는 듯 하다. 그리고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연구하는 두 외국인 학자들을 감시하는 뒬의 보고서는 그 내용과 방식 그대로 현대의 서사시가 된다.

뒬의 문장을 좋아하는 군수가 그것을 흉내내보고자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장면에서 이것이 더욱 확실해 지는데, 옹 식으로 설명하자면 구술문화 속에 사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에 사물의 힘을 불어넣기 때문에 문자문화를 바탕으로 한 말(글)에서처럼 자의성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 재미있게 읽은 소설을 개인적으로 또 재미있게 읽은 이론서적으로 비교 분석해보는 일은 분명히 의미가 있는 일이겠지만, 그것만큼 또 따분한 일도 없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 소설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특히, 카다레의 냉소적이면서도 흡입력있는 유머가 시종 흘러넘치는 이 작품을 개인적으로는 카다레 최고의 작품으로 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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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 김용호의 영상화두
김용호 지음 / 박영률출판사 / 199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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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읽은 책들을 알라딘에서 제공해주는 칸을 빌어 서평 형식으로 남기다가, 예전에 장정일의 독서일기 류에 자극받아 짤막한 독서후기를 남기던 노트를 찾아 읽어보았다. 노트를 확인해보니 이 책은 96년 3월 29일에 읽은 책이었는데, 그때의 감격(정말 감격이라고 말하고 싶다..)은 아직도 남아 있다. 이후 김용호의 작업을 굉장히 기대하고 있었는데, 내가 알기로는 <몸으로 생각한다> 이후에는 찾아볼 수 없는 아쉬움만 간직하고 있다.... 그때 적어놓은 서평을 잠깐 옮겨보면....

내가 쓰고 싶던 방식의 책....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영화로 잘 풀어나갈 수 있을까? <소비의 사회>와 더불어 내게 가장 중요한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필자는 이 책에서 인간 사고의 구속됨을 적대시하고, 이분법 내지 이분법을 교묘히 이용하여 발전한 양비론을 견지하며 진정한 변증법적 통합을 이루길 원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한 Aufhebung이 아니라 다시 그것을 뛰어넘는 다른 세계를 그리워 한다. 그리고 그것을 주도하는 원동력으로는 인간의 본성적 혼의 에너지, NGO 등의 유동적 문화집단 등을 꼽고 있다. 그러면서 이것들을 쉽게 영화에 꿰맞춰가며 전혀 무리가 없이 설명해나간다. 탁월한 아이디어, 정말 입 벌어지게 만드는 논리전개, 예리한 관찰력..... 정말 대단하다.... 2권이 기다려진다.....

최근들어 얼치기 철학이나 문학이론 등을 바탕으로 한 잘난척식 영화평론이 성업중인데, 이 책에 비하면 정말 유치하기 짝이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아직 못 읽어본 독자들께 한 번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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