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학교에 이 시간까지 있어본다. 복도를 통하는 문도 벌써 잠기고, 오가는 사람도 없는 본관 4층..

 항상 해야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은 엇갈리기만 하고 그 엇갈림은 종종 내게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어떤 선택이 이루어지든 언제나 그것에 만족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최선의 선택을 내리고 싶다.

 세상일도 그런듯, 하지 말아야 할것과 반드시 해야할 것을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는 속에서 한 사람의 목숨이 너무도 비참하게 끝나 버렸다. 더구나, 그건 그 사람의 선택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가슴이 아프고, 무기력한 내가 부끄럽기만 하다. 명복을 빌겠다는 입바른 소리도 죄스럽기만 하다..

 나는, 우리는 이제 무엇을 선택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부끄럽지 않을까... 무엇을 잊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그런일이 없도록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지혜를 기르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잊는 것이 낫다...

 어떻게 해야하나, 어떻게 해야 부끄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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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나이에 허리 디스크를 앓고 있는 나는 네 발 달린 동물들이 참말 부러울 때가 있다.

 아후! 나도 저렇게 허리를 부드럽게 말고 주둥이를 내 살에 파묻고 편안히 잠들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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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me01 2004-06-01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잠들고 싶어?? 쭈욱~?
 


 

 나른한 토요일 오후.

 늦게 눈을 뜨고, 눈을 뜬 후에도 늦게 일어나, 느릿느릿 식사를 하고, 식사를 하고 난 뒤에도 또 몽크를 보고, 샤워는 후다닥 하고 나와서 컴 앞에 앉았다.

 나른한 토요일 오후. 신맛도 고소한 맛도 비릿한 맛도 다 가지고 있던 우어회 한 접시 또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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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들은 이 사진을 보고 끔찍하다고 했다. 나도 사진 찍을때는 일찍 찾아온 더위에 팥빙수를 먹으며, 희희덕대며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그리 기분좋은 사진은 아닌게 틀림없다. 그런데도, 난 이 사진이 마음에 든다.

 수없는 찰나로 이루어진 시간들...  그 속에서 어떤 선택들은 나비효과에서처럼 저마다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불러 일으킨다는 것을 이 사진이 보여주고 있다면 이유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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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지옥 2
권지예 지음 / 문학사상사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왜 권지예라는 작가를 선택했을까?  2002년 이상문학상 결과를 보고 나는 잠시 의아해했었다. 그리고 그 의문은 수상 작품을 다 읽고 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안타깝게도, 이상 문학상 자체의 권위와 안목을 맹목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당시에 난 좀 의문이었다.

 그리고 그 의문을 내 스스로 한 번 해결해보고자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서서히 읽어보기 시작했다. 한 작가가 마음에 들면 그 작가의 다른 작품을 샅샅이 훑어서 읽어보고야 마는 습관이 있는 나로서는 이번엔 반대의 방법을 택한 셈이 된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만만치 않은, 그러나 어중간한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에 권지예는  두 권의 단편집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나의 의문은 풀리지 않았고 어느 잡지에 연재되던 작가의 첫 장편이 책으로 묶여 나오게 되었다.(제기랄, 두 권으로!!)

 이제, 그 장편까지 읽은 나는 여전히 그 의문은 풀지 못했고,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거나, 아예 읽지 않거나 선택해야 할 기로에 서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는 동의한다. '작가'라는 존재는 태어날때부터 무의식적으로 이미 형성되어져 있다는 것을. 다만, 그것을 밖으로 내놓는데 까지는 개인차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서 거칠게 뭉뚱그려 말하자면 성장소설류의 이야기들은 내게 굉장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예를 들어, 소녀의 날카롭게 벼려진 민감한 감수성으로 아름다움과 더러움이 뒤섞인 세상을 보고자 했을 때, 오정희의 <유년의 뜰>에 나온 주인공 유년시절의 체험을 따라가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권지예는 <아름다운 지옥>에서 주인공의 체험을 절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과 이야기로 주인공의 삶을 그저 더듬어대고만 있다. 때문에 주인공이 보는 세상은 너무 밋밋하고, 주인공이 겪는 이야기는 너무 싱겁기만 하며, 주인공의 감수성은 신파적이기만 해 보인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 '그녀'를 규정'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녀의 발자국을 쫒'는 식이었다고 밝히고 있긴 하지만,  설마 그것이 이렇게 밋밋하고 싱겁고 신파적이기만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인지....

 때문에, <아름다운 지옥>에 나오는 현실은 잘 꾸며진 세트같기만 하다. 그리고 그 세트는 이 연극, 저 연극에서 너무 많이 쓰인 그대로의 세트이다.  그래서 세트만 봐도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뻔해지고 나오는 인물들의 동선까지 예측하는 바 그대로이다. 세트는 잘 꾸며져 있지만 어디서 본 듯하고 연출가의 독특한 손길 역시 전혀 느껴지지 않고, 등장인물들의 연기는 흠잡을 데 없지만 유명한 영화배우가 잠시 쉬어가는 기간에 이벤트성으로 출연한 연극무대위에서의 연기처럼 인간적인 감흥은 전혀없는 연극을 한 편 지루하게 보고난 듯한 느낌...

 작가 자신에게는 절실한 이야기일런지 모르지만(그러기라도 바란다), 독자로서는 덜 떨어진 아이의 성장이야기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꼭 해야할 말을 쏟아낸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보는 것이 나을지.......  모르겠다...

 

 *덧붙여서 출판사 편집실에서 벌어졌을지도 모를 상상 장면 하나 : "이 소설 해설은 누구에게 맡길까?" "아이 씨, 아무도 안 써줄것 같아요." "그래? 그럼 예전에 전농동에서 살았던 평론가 하나 찾아봐." "아, 찾았어요!!" "해설 써준대?" "예." "(모두들)오~~~ 예!!"       ----- 소설의 배경은 60~70년대 전농동이다. 아무리 '주례사 비평'이 횡행한다하더라도 모래알 만큼의 감정이입은 있어야 해설이 써질터. 해설을 쓴 이가 전농동에서 살았단다. 아니나 다를까. 해설의 도입부는 감정을 이입하기 위해 장황하게 자신의 추억을 이잡듯이 서술하며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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