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키시마마루사건(浮島丸事件)

 

 


<浮島丸-特設巡洋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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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舞鶴 위치도-적색 부분>


<마이즈루 灣-적색 동그라미 부분이 폭침순난현장>

 


 2. 계속...

 그리고 그 후, 현지(現地-下佐波賀 部落)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바다 위에서 큰 배가 딱 두 동강으로 잘라졌고, 그러자 그 배에 탔던 사람들이, 배의 마스트(mast)와, 최대한 높은 곳으로 몰리면서 비명을 질렀던 등, 말 그대로 참혹했던 모습들이 이어졌다고 한다. 그러자 또 그들 현지인들은 그 즉시 구조를 생각했고, 그래서 배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배를 몰고 나가서 조선인(朝鮮人)이라고 생각되었던 사람들을 몇 번에 걸쳐서 구조했다고 한다.

 하지만 또 그때, 우키시마마루(浮島丸) 근처, 직경 약 50미터 정도에는 해면(海面)이 부풀어 올라있었고, 그래서 또 그 파도 때문에라도 구조가 쉽지 않았으며, 거기다 해면(海面)을 덮었던 1센티미터 정도 두께의 중유(重油) 때문에 손이 미끄러워서 더욱 구조가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 구조를 하지 못했던 사람들도 많았다고 했는데, 그러자 또 그 배는 오후 11시경에 전부 침몰했고, 나중에는 마스트 2개만 수면(水面)에 남겨졌다고 한다.

 

 

 

 


 그리고 또 그때, 어촌(漁村)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해군(海軍)과 자위대(自衛隊)의 무관심(無關心) 또는 무성의(無誠意)에 대해서 말이 많았다고 했고, 그래서 또 그때 구조되었던 사람들은 거의가 자력(自力)생존 또는 그 마을사람들에 의해서 구조가 되었다고 했던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구조되었거나, 자력으로 생존했던 조선인(朝鮮人)들은 모두 중유(重油)를 덮어써서 새까맸다고 한다. 그리고 또 그 중에서 많은 사람들은 그 죽음의 공포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래서 또 그 바다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지기 위해서 산으로 도망을 갔다고 한다. 그리고 또, 부상을 당했던 사람들은 그 부락(部落)사람들의 간호를 받았다고 했지만, 그러나 또 그때는 전시(戰時)였기 때문에, 그래서 식량사정이 좋지 못해서 식사의 공급은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 그렇게 구조된 사람들은 군대의 지휘를 받아서 타이라해병단(平海兵團)으로 수용되게 되었고, 그러자 또 사람들은 공포와 불안으로 지쳤던 몸으로, 그날 밤 11경에, 그 타이라(平)까지 해안도(海岸道)를 따라서 줄지어서 걸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또 그때, 그들은 거의 구조된 상태 그대로였으며, 그래서 대부분이 맨발로 그곳까지 걸어서갔다지만, 그러나 또 어떤 사람들은 마을에서 제공해주었던 조우리(草履-일본짚신)를 신었던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아무튼 그 후, 그러니까 사고 발생 후, 불과 수 시간 만에 유체(遺體)들이 해안으로 떠밀려왔고, 그러자 군인들이 와서 그것을 수용(收容)해갔다지만, 그러나 그 후, 약 1주일간 계속해서 매일 수면 위로 떠올랐던 유체(遺體)들은 군대의 지시로, 수면(水面) 위에 나와 있었던 그 마스트에 묶어두었고, 그러다 그 숫자가 많아지자, 마츠가자키해병단(松ヶ崎の海兵團)에서 모아가서 매장을 했고, 그 외에는 타이라해병단(平海兵團)에도 매장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 그것으로도 사망자의 숫자는 상당했을 것으로 추측이 되지만, 그러나 일본정부는 여전히 그에 대해서 침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그 후, 그러니까 타이라해병단(平海兵團)에 수용되었던 후에, 조선인(朝鮮人)들은 자기 가족들의 생사(生死)를 확인하기 위해서 필사적이었다고 했지만, 그러나 대부분은 사망했다는 것을 알고 허탈해했다고 한다.

 3. 그리고 또, 그 사망인정서사(死亡認定書寫)란 것과, 호적말소통지사(戶籍抹消通知寫) 그리고 우키시마마루사몰자명부(浮島丸死沒者名簿)란 것이 한 세트가 되어서, 오오미나토해군설비부(大湊海軍設備部)에서 9월 1일에 작성된 것으로 되어있는데, 그러면 또 당시, 그 배에 승선(乘船)했던 사람들의 숫자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때에, 어떻게 1일주일 만에 그렇게 정확한 사망자들의 전(全)명부(名簿)를 작성할 수 있었던 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다.

 그러니까 당시, 해안으로 떠밀려왔던 유체(遺體)들의 숫자는 어떻게든 확인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나 그때 해저(海底)에 가라앉았다거나, 선체(船體) 내에 갇혀있었던 유체(遺體)들에 대해서는 전혀 파악도 하지 못했을 그 9월 1일의 시점(時點)에서, 어떻게 그렇게 정확한 숫자를 확인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명부(名簿)는 바로 그때, 확인 또는 사망으로 인정(認定)되었던 사람들의 숫자였을 것으로 생각이 되고, 그리고 또 그것을 누가 확인 또는 인정(認定)했던가에 대해서는, 오직 당시에 가족을 잃고 사방을 헤매고 있었던 조선인(朝鮮人)들이었을 것으로 생각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누가, 어떻게 작성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지만, 어쨌든 그것들은 그렇게 해서 작성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또 당시, 가족들이 모두 사망했던 경우와, 주변사람들과 교류가 전혀 없었던, 즉 그 사람의 존재조차 누구도 알지 못했던 개인들의 경우에서는, 그 자료에서 누락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가 있는 것이다. 거기다 또, 그런 자료의 수집에 대해서 전혀 듣지 못했을 사람들과, 또는 들었어도 보고(報告)나, 신청(申請)을 하지 못했을 사람들, 예를 들어서 탈진해서 누워있었다거나, 거동할 수 없었던 상태에 있었던 사람들 등, 그런 사람들의 경우에서도 자료는 수집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 자료들은 거의 졸속(拙速)으로, 그리고 대충대충, 자기들 마음대로 작성했을 것으로 생각이 되며, 그리고 또 그 외에도 많은, 그리고 여러 가지의 이유로 인해서 그 자료에 포함되지 못했던 사람들도 많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다 또, 그 9월 1일 이후에 작성된 자료는 없는데, 그것으로 또 당시, 그 조사를 얼마나 성의(誠意) 없이 또는 위의 명령을 받고 중지를 했든, 어쨌든, 졸속(拙速)하게 처리했는가를 알 수 있으며, 그래서 또 당시, 6000명인가, 8000명인가 하는 설(說)들도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4. 그리고 또 당시, 마이즈루방비대(舞鶴防備隊)에서는 수기(手旗)로 <소해(掃海)완료> 즉 <안전하므로, 입항해도 좋다>는 신호를 우키시마마루(浮島丸)에 보냈다고 했는데, 그것은 사실이었을 것으로 생각되고, 그 이유는 또, 그 당시에 우키시마마루(浮島丸) 외에는 어떤 함선(艦船)도 촉뢰(觸雷)되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마이즈루방비대(舞鶴防備隊)에서는 그때도 그럴 것이라는 안일한 태도에서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추측으로 그렇게 생각해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그 이유야 어떻게 되었든, 일본 측의 자료는 모두 소각(燒却)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미군(美軍) 측에는 자료가 남아있기 때문에 조금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마이즈루(舞鶴) 만구(灣口)를 GRID(구역)1 해역(海域)으로 해서, 5월 21일, 6월 20일, 7월 12일, 7월 28일, 8월 8일, 8월 15일, 6회(回)에 걸쳐서 611개의 기뢰(機雷) 투하(投下). 그리고 우키시마마루(浮島丸)가 침몰했던 마이즈루(舞鶴) 만내(灣內)는 GRID 2 해역(海域)으로 해서, 6월 30일, 7월 12일, 7월 20일, 7월 28일, 8월 8일, 5회에 걸쳐서 116개의 기뢰투하.

 그리고 또, 미군(美軍)의 그 기뢰(機雷)는 당시, 대단히 정교(精巧)했다고 알려졌으며, 그것은 또 종전(終戰)의 막바지에서, 일본 전국(全國)을 상대로, 군사적인, 경제적인 봉쇄(封鎖)를 목적으로, B29와 잠수함들에 의해서 투하되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또 그때, 미군(美軍)이 실수로 산에 떨어뜨렸던 것을 수거해서 살펴봤던 일본의 전문가들은, 그 기능의 우수함에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우수했던 기뢰(機雷)였어도, 그날 마이즈루방비대(舞鶴防備隊)에서 수기(手旗)로 <소해(掃海)완료>란 신호를 보냈을 정도로 그들은 안전하다고 보았다는 점, 그리고 또 우키시마마루(浮島丸)를 인도했던 그 두 척의 배가 무사히 입항을 했던 점, 등을 고려했을 때, 구(舊) 해군(海軍)의 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나타냈다.

 <아무래도 그 사건에는 의문이 많다. 그리고 만약에 누군가가 자폭(自爆)을 했던 것이라면, 그것은 아무래도 하사관(下士官)들 중에서 어떤 음모가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그것은 또 왜냐하면, 당시에는 패전(敗戰)의 혼란기였기 때문에, 그 배의 실권(實權)은 그 하사관(下士官)들이 장악하고 있었고, 실제로 또 그들만큼 그 배를 잘 아는 사람들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그들 중에서 몇 명이 음모를 꾸며서 그 배안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면, 그것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음은, 우키시마마루사건(浮島九事件)에 대해서, 자신(佐藤勝巳)의 생각을 적은 것은 것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리고 또 저는, B29가 투하(投下)했던 기뢰(機雷)에 우키시마마루(浮島九)가 촉뢰(觸雷)되었다고 가정(仮定)해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그 B29가 투하했던 기뢰(機雷)의 폭발력(爆發力)이 일정(一定)했다고 한다면(調査 要), 그리고 또 증언(證言)들처럼 그때, 세 번의 폭발이 있었다고 한다면, 예를 들어서 우키시마마루(浮島九)처럼 5천 톤이나 되었던 배였다고 하더라도, 3천 명이나 되었던 사람들이 구조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저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그때 제가 탔던 배는 3천 톤 정도의 배였지만, 그때 25명의 승조원(乗組員)이 사망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망원인은, 기뢰(機雷)가 선저(船底)에서 폭발했고, 그리고는 그 폭발력으로 인해서 배가 두 동강이 났던 때문이었는데, 그래서 또 그때, 그 배 안에 있었던 사람들은 거의가 몸이 위로 튀어 올라서 선실(船室)의 천장에 머리를 부딪쳤고, 그래서 내출혈(內出血)이 일어났다든지, 신음소리들과 함께 귀에서 피가 흘렀던 등, 그 상황은 너무도 참혹했던 것입니다. 거기다 또 기관실(機關室)의 스팀파이프가 터져서, 스팀이 "확"하고 쏟아져 나왔던 때문에,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 뜨거운 증기 때문에 사망했던 사람도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 당직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운 좋게도 자리에 누워 있다가 그런 일을 당해서, 별 부상 없이 구조가 되었습니다만, 하지만 또 그 폭음(爆音)이 들렸던 순간에는 저 역시도 깜짝 놀랐을 뿐만 아니라, 그 순간부터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귀머거리 상태를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 우키시마마루(浮島九)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만약에 세 번의 폭발이 있었고, 그러자 또 3500명이나 되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밖으로 쏟아져나갔다고 생각을 해보면, 그 안에서는 아마도 아수라장(阿修羅場)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저는 그 외에도, 그와 비슷했던 많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상태는 쉽게 짐작할 수 있으며, 그리고 또 기록된 증언(證言)들을 살펴봤어도, 그 폭발순간부터 배가 침몰했을 때까지의 시간이 불명(不明)했다는 점과, 그런데도 그런 혼란 속에서 3천 명이란 사람들이 구조되었다면, 누가 생각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이란 것은 쉽게 짐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그 증언들을 토대로 종합해서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때, 그 폭발은 그다지 크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고, 그것은 또, 그 3천 명이나 되었던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전부 구조되었다는 사실이 증명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만약에, 정말로 기뢰(機雷)에 의한 폭발이었다면, 분명히 50미터정도의 수주(水柱-물기둥)는 생겼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러나 우키시마마루(浮島丸)의 경우에서는 그런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수중(水中)에서 폭발물이 폭발했을 때는, 수주(水柱)는 당연히 생기는 것이며, 그럴 경우에는 함교(艦橋)나 갑판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 수주(水柱)의 물벼락에 의해서 바다 위로 쓸려 내려갈 수도 있는 것인데, 그런데 증언자들 중에서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증언을 했던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기뢰(機雷)에 의한 폭침설(爆沈說)에 대해서는, 저로서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舞鶴灣>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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