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에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했던 <성녀이야기>에 이어서 <2011년 10월 6일부터, 2012년 1월 19일>까지 올렸던 <독도(獨島)>를 다시 올려드립니다. 그러므로 이런 기회에 아직도 반성을 모르고, 더욱 광기(狂氣)로 미쳐가는 일본(日本) 극우(極右)파들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해보시는 기회가 되길 기대합니다. 단, 프로그램의 이상으로 그림이 표현되지 않는 등, 수정이 불가하므로, 그래서 다음 회부터는 전에 올렸던 그대로를 올릴 예정이므로, 표현이 부족하다거나, 오탈자가 있더라도 이해를 바랍니다.

 

 

 

 


 

 

 독도(獨島)

 1.사전적인 의미

 경상북도 울릉군에 속하는 화산섬으로, 비교적 큰 동도(東島)와 서도(西島) 두 섬 및 부근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부근 해역은 전갱이, 고등어, 미역 따위가 풍부한 좋은 어장이며, 면적은 0.186㎢.

 2. 인터넷 자료

 독도는 대한민국 최동단에 있는 섬으로,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96번지에 걸쳐있다. 동경 131°51'~131°53', 북위 37°14'00"~37°14'45"에 위치한다. 그리고 옛날부터 삼봉도(三峰島)·또는 우산도(于山島) 또는 가지도(可支島) 또는·요도(蓼島) 등으로 불려왔으며, 1881년(고종18)부터 독도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섬이 주목받는 것은 한국 동해의 가장 동쪽에 있는 섬이라는 점도 있지만, 특히 한국과 일본 양국 간에 영유권분쟁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3. 서론(序論)갈음

 그리고 위의 내용 외에도 아주 잘 소개된 글들도 인터넷에서는 많이 있는 것을 本人도 확인했던 바 있었고, 일본 역시도 개인들의 블로그 등에서 나름대로의 주장들을 펼치고 있는 것을 많이 봤었지만,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의 대다수의 국민들은 <本人처럼> 그 <독도(獨島)>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이 많이 계시는 것 같고, 그리고 또 우리 한국인의 정서상, 주먹구구식, 또는 대충대충, 또는 적당하게만 알고 계시는 분들 또한 많은 것도 현실인 것 같아서, 그래서 이번 기회에 本人 역시도 독도(獨島)에 대해서 배우고자 하는 자세로 이 글을 써보기로 결심을 하였다.

 그러니까, 요즘 들어서 또 다시 일본인들이 그 독도(獨島)에 대해서 자주 들먹거리고 있는데, 그러면 우리나라는 왜 그에 대해서 뚜렷하게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또 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문가적인 견해들이 있을 것이고, 또 그에 합당한 정부의 대응도 있을 것이라고 本人은 생각은 하지만,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 무지(無知)한 국민들은 무엇인가, 그 석연치 않음에 답답해하고 있는 것도 현실인 것이다.

 그래서 本人은 이번 참에 그 <일본인들이 주장하는 것>을 한번 옮겨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또는 현재 우리들이 알고 있고 또한 주장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그네들의 생각은 우리와 또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고 싶다는 것이고, 그리고 또 그것으로 우리들이 반성해야 할 점은 없겠는지, 그리고 또 앞으로는 우리가 어떻게 그네들의 주장에 대해서 대처를 해나가야 할지, 등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보고자 나름대로 이런 기획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므로 또,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에 부디 오해 없으시길 바라며, 그리고 또한 本人처럼, 그 <독도(獨島)>에 대해서 공염불만 해 오셨던 분이 계시다면, 이
번 기회로 해서, 충분히 숙고할 시간을 가지시길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 * *

 그러니까, 지금은 바다건너 일본(日本)이란 나라에서도 소위, 한류(韓流)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고 하지만,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에는 어떠했을까?... 그때, 한국의 어느 방송사에서 일본으로 건너가서 <거리인터뷰>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인터뷰의 주제는 대충 <당신은 한국 또는 대한민국 또는 코리아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라는 것이었는데, 그런데 그 결과는 놀라웠다. 그러니까 그때, 주로 젊은 층을 대상으로 했던 그 인터뷰에서 그들은 일본인 특유의 머뭇거림과 웃음으로 한국의 기자를 대하면서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대답을 했던 것이다. <잘 모르겠는데요?> 또는 <저... 혹시, 동남아시아 어디에 있는 나라가 아닙니까?> 심지어는 <그런 이름은 처음 들어봤는데? 그것도 나라 이름인가요?> 등등... 그러자 本人은 그런 그들의 태도를 보면서 처음에는 경악했었지만, 그러나 나중에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니, 그들은 일부러 그것을(한국이란 나라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을) 피하려한다는 인상을 받게 되었고, 그것은 또 마치 그네들만의 사회적인 이슈로서 <그들에게서는 그것이 일종의 금기(禁忌)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던 것이 아니었겠는가...>하고 나름대로 납득을 했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또, 그로부터 약 10년 정도 지났던 때, 다시 한국의 방송기자가 이번에는 <독도(獨島) 문제>를 들고 일본으로 들어가서 <거리인터뷰>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또 그때는 약 10년 정도 지났던 때였기 때문에 그랬었는지는 몰라도, 하지만 앞전과는 달리 그들의 반응은 아주 적극적이었던 것을 本人은 그때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그때도 주로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하기는 했었지만, 그러나 주부들이라거나, 나이 든 노인들에게도 그 질문을 던져졌었는데, 그런데 또 놀랍게도 결과는 앞전과 마찬가지로 이구동성으로 일치했었고, 그것은 또 역시, 그들은 그 독도(獨島)를 자신들의 땅이라고 말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그 중에서 아주 인상 깊었던 어떤 젊은 주부의 말을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았다.

 

 <그것은 분명히 일본의 땅인데, 한국 사람들은 왜 자꾸 자기 거라고 억지를 부려요?>

 그리고 또,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났을 때, 그때는 <한일(韓日)월드컵>에 거는 기대가 양국 간에 팽배하고 있었고, 그래서 또한 민간(民間)적인 교류라거나, 나라 간의 왕래 등이 활발해지고 있었을 때였는데, 그런데 그때 한국의 젊은이들(주로 고등학생들)이 일본의 젊은이들과 친선을 도모하고자 일본으로 건너갔던 것이 티브이로 방송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 역시 그때도 그 방송을 유심히 보게 되었는데, 그러자 그들은 처음에는 화기애애한 자리를 만들기도 했었고
또 어디를 가더라도 서로 손을 잡고 가는 모습을 찍은 장면들이 심심찮게 나왔다든지, 그 결과로 또 그들은 마치 잃어버린 가족이나, 형제들이 다시 상봉하게 되었기라도 했다는 듯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또 정(情)을 나누면서 서로 울고 웃으면서 부둥켜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봤던 것이다. 그래서 本人 또한 그때는 까닭도 모르게 눈시울이 적셔졌고, 그 풋풋하고 때 묻지 않은 싱싱한 젊음들에 찬사의 박수까지도 보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마지막 날, 그들은 마지막을 아쉬워하면서 캠프파이어를 준비했고, 그리고는 석별(惜別)의 아픔을 가슴으로 새기면서, 서로 부둥켜안고는 마치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람들처럼 서로 간에 아쉬움을 나누는 장면이 방송되었다.

 그런데 그때까지는 정말로 좋았었다. 하지만 이어진 토론에서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었던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고, 그러자 또 그때부터 양국의 학생들은 갑자기 진지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그 중에서는 언성을 높이는 여학생까지 나왔을 정도였는데, 하지만 그 여학생은 한국의 학생이었고, 그에 비해서 또 일본의 학생들은 시종일관 침착함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또, 처음에는 한국의 학생들이 주장을 강하게 하면서 기선을 제압 하는가 했었지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정확한 기록과 근거 등을 내세운 일본 학생들의 논리 앞에 한국의 학생들은 그야말로 오합지졸이거나, 사상누각(沙上樓閣)처럼 무너져갔고, 급기야는 자신의 분을 이기지 못했던 한국 학생들은 기어이 그 자리에서 억울함의 눈물까지 펑펑 쏟아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러자 또 일본의 학생들은 그에 반해서 마치 <무슨 일이야? 쟤네들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하듯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의아해하던 모습까지도 나는 모두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또 나중에 후담(後談)으로 했던 한국의 어떤 여학생의 말을 대충 한번 옮겨보면 아래와 같았다.

 <너무도 분했어요! 獨島는 분명히 우리의 것인데, 제가 저들만큼 미리 공부를 해두지 않았기 때문에, 반박할 말이 전혀 없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헛공부를 했던 것이에요!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 사실들을 모든 친구들에게 알리고, 그에 대한 공부도 열심히 할 거예요... 운운>

 그리고 헤어질 때도 일본의 학생들은 마치 승자(勝者)의 모습으로 의연하게 한국의 학생들을 전송해주었지만, 그러자 또 그에 비해서 한국의 학생들도 겉으로는 같이 인사를 하는 모습이었지만, 그러나 그 모습은 또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게만 보였었고, 그리고 또 그 중에서는 눈물을 흘리던 학생들도 많이 있었는데, 하지만 그 또한 本人이 보기에는 이별의 아쉬움 때문만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어떤 서러움으로 인한 눈물 같게도 보였던 것이다.

 그러자 또 솔직히, 本人도 무엇인지 정확히는 알 수가 없었지만, 그 학생들처럼 억울했다. 하지만 역시, 당시의 시대상황으로 그런 것은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도 없었을 뿐더러, 또한 먹고사는데 급급해서 그런 것을 찾아볼 엄두도 낼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때는 本人 또한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그냥 속으로만 삭히고 말았던 기억이 지금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또 그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럼 도대체 그들은 무슨 교육을 어떻게 받고 있었기에 그렇게 어린 나이에 그런 공부들을 미리 해두고 있었을까?...

 하지만 또 물론, 그에는 또 그들 일본인들의 특성상, 한국학생들의 내일(來日)에 앞서서 미리 준비시켜두었을 것이란 생각도 쉽게 해볼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어쨌든 그렇게 결과가 났던 것으로 해서, 그들이 그때 어떤 교육을 받았었던가 하는 것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아보고자 本人은 현재 이런 글을 써보려고 하고 있는 것이므로, 그러므로 모쪼록, 혹시라도 이 글을 읽으실 분이 계시다면, 위 本人의 그런 심정을 십분(十分) 헤아려주시면서, 읽어주시기만 앙망(仰望)할 따름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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